허정무가 32년만에 밝힌 차범근에 대한 한 맺힌 눈물…클린스만 후폭풍에 이은 한국 축구 전설들의 폭로전

허정무가 32년 만에 차범근에 대한 증오를 터뜨려 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80년대 해외진출의 선구자

국내 축구계의 해외 진출 선구자를 꼽자면 70~80년대 차범근과 허정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두 사람은 실제로 동갑이지만 호적상 허정무는 1955년생, 차범근은 1953년생으로 허정무가 윗사람 대우를 해줬죠.

그리고 이후 차범근이 2년 앞서 고려대에 진학했고, 허정무는 2년 뒤 사학 라이벌인 연세대로 진학합니다.

그 후 차범근은 공군에서, 허정무는 해병대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차범근은 1979년 독일 진출로 선수로서 한국 축구의 새 역사를 열게 됩니다.

그리고 이듬해 1980년 허정우도 네덜란드 진출 1호 선수가 되었습니다.

당시 그들은 축구 선진국과의 문화적 격차를 혼자 감당하며 경기에 나서야 했던 시대였고요.

먼저 차범근은 당시 26세의 늦은 나이에 분데스리가에 진출하여 10년 동안 뛰었습니다.

이때 구단 역사상 역대 10번째 외국인 선수이자 최초의 비유럽 및 동양인 선수 영입에 해당되었는데요.

시기상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차범근은 한국 축구계의 전설로 활약했었죠.

11시즌 동안 리그 기준으로 308경기를 출장해서 98골을 기록하였고, 유에파업까지 포함하면 372경기에서 121골을 기록하였습니다.

이런 차범근과 비교해 허정무는 다음 같은 기록을 갖고 있죠.

허정문은 1980년 네덜란드의 명문 클럽인 아인트호벤에 입단하게 됩니다.

팀 적응기였던 반년 정도는 경기 말미에 투입되는 교체 멤버로 뛰다가 후에 주전 선수로 활약하게 되죠.

주로 미드필더로 뛰면서 1982~1983시즌 팀의 준우승에 기여하였고, 에인트호번에서 세 시즌 동안 77경기에 출장에 11골을 넣었습니다.

당시 에인트호번이라는 구단 자체가 워낙에 네덜란드의 명문팀 중 하나인 데다가 우승 경쟁을 하는 상위권 팀이다 보니 팀의 리그 성적만 놓고 본다면 당시 비교되던 차범근에 비해 엄청나게 무시당할 수준은 아니었죠.

이렇듯 라이벌이자 동료로서 이 둘의 인연은 각별했는데 비록 소속팀은 달랐지만 청소년 시절부터 국대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한국이 32년 만에 본선 진출에 성공한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도 함께 활약했습니다.

때문에 허정우와 차범근은 생각보다 더 깊은 인연의 끈이 존재했죠.

허정우는 차범근에 대해 종종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밝혔는데요.

“차범근 선배 덕분에 네덜란드 리그로 진출할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차범근을 라이벌 관계로 말하고 자주 비교하지만 사실 선수로서 차범근 선배는 나보다 더 훌륭한 선수였다”고 말합니다.

이어 “차범근 선배가 먼저 독일로 진출해 한국 선수의 실력을 알렸다”

“아무도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모를 때 뛰어난 활약을 펼쳤었다”

“그제서야 유럽 축구 관계자들이 한국에 눈을 돌려 나를 스카웃했기 때문에 차범근 선배의 간접적인 도움으로 비교적 쉽게 유럽에 갈 수 있었다”고 밝혔죠.

하지만 이 둘은 이렇게 각별한 사이였지만 현재까지 만나지 않는 충격적인 일화가 존재하는데요.

당시에 이 둘에 대한 많은 루머가 나돌았는데 그 중 하나는 “허정무가 차범근 욕을 하고 다닌다더라”

“차범근을 질투해서 안 만난다더라”와 같은 허정무의 질투심으로 인해 차범근을 피한다는 소문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둘이 악연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실이 마침내 허정무의 회고록을 통해 32년 만에 밝혀졌습니다.

국가대표 동료사이인데…

허정무의 회고록에 의하면 시점은 해외 진출 당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회고록을 통해 “내가 주전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그해 겨울에 장명석 MBC 파리 특파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부부와 독일에 있는 차범근 선배 부부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찍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차범근 선배 때문에 내가 유럽에 진출한 것이고, 유럽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국내 팬들에게도 한국 축구에 대한 인식을 드디어 새롭게 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이때쯤에는 유럽의 김진국 선배를 비롯해서 박상인, 김민혜, 박종원 등이 진출해 있었기에 유럽 무대에서의 한국 축구 위상을 소개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장 특파원이 차 선배가 있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나는 게 어떻겠냐고 어렵게 말했다. 차 선배가 있던 프랑크푸르트는 에인트호벤에서 무려 500km가 넘는 거리였다. 솔직히 말해서 중간쯤에서 만나면 좋았겠지만 후배가 가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해 흔쾌히 좋다고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장 특파원은 차 선배 쪽과 먼저 통화했고, 내가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것을 이미 결정한 뒤 형식상 내 의견을 물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혹시 내가 자존심 때문에 가기 싫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하던 차에 내가 쉽게 승락하자 장 특파워는 그제야 걱정을 덜었었다. 그런데 제가 ‘네덜란드에서 여행을 안 다녀봐서 길을 잘 모르는 게 걱정입니다’라고 말하자 장 특파원은 잘 됐네요. 제가 에인트호벤으로 가서 같이 프랑크푸르트로 가면 좋겠습니다라고 답하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린다고 생각했는지 조금은 신나는 목소리로 말했었다. 장 특파원은 토요일에 에인트호벤으로 와서 하룻밤 자고 이튿날 새벽 출발한 뒤 정오에 차 선배를 만나기로 스케줄을 짰다. 장 특파원은 부인을 데리고 토요일 오후에 도착했다. 나와 차 선배 부부가 함께 만나는 것이므로 본인도 아내를 동행한 것이었다. 장 특파원은 기분이 좋은지 작은 선물까지 사가지고 왔다. 마침 이날 경기가 있었는데 골을 기록한 터라 나도 기분이 좋았다.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맥주까지 곁들였다. 이튿날 새벽에 출발하려고 일어났더니 밤새 눈이 수북하게 쌓여 운전할 일이 걱정이었다. 허나 이미 약속한 터라 조심조심 운전하며 프랑크푸르트로 출발했다. 이때 내 아내는 임신을 해서 배가 많이 불렀다. 때문에 장거리 여행이 안 좋을 수도 있었지만 차 선배 부부를 만난다는 기쁨에 내 아내는 기꺼이 함께 가기로 했다. 네덜란드에서 몇 번 전화를 한 적은 있었지만 유럽에서 직접 만난 적은 없었었다. 장 특파원의 차가 앞에 가고 내가 그 뒤를 따르며 프랑크푸르트로 향했다. 몸이 고생했어도 프랑크푸르트의 약속 시간대로 도착할 수 있었다. 섭외한 촬영팀은 벌써 나와 있었는데 무슨 일인지 차 선배 부부는 보이지 않았다. 장 특파원에게 뭔가 속삭이는 촬영팀 책임자의 표정이 어두웠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장 특파원은 근처의 공중전화에서 오랫동안 통화하더니 ‘죄송하게 됐습니다. 차 선수가 약속을 취소했는데 왜 왔느냐고 하네요’라며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구며 내게 말했다. 나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장 특파원 설명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차 선배가 전하기를 본인이 만나겠다고 약속한 것은 맞지만 곧 약속을 취소한다며 MBC 파리 지사에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장 특파원은 이미 네덜란드로 떠났기에 사무실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었다.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MBC 파리 사무실로 전화했지만, 도착한 날짜는 일요일이어서 MBC 파리 사무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난 정말 난감했고, 장 특파원에게 물어봤다. ‘우리 부부가 500km를 달려서 도착했다고 말했나요?’ ‘그럼요 그래도 그냥 쉬겠답니다’ 그 말을 전해 들으니 정말 섭섭했다. 대표팀에서 수년간 한솥밥을 먹은 동료고, 무슨 원수진 일도 없는데 시간이 안 되면 차라도 한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바꿔달라는 소리도 없었나요라고 내가 묻자 장 특파원은 대답 없이 민망한 표정만 지었을 뿐이다. 나도 그렇고, 내 아내도 그렇고, 함께 동행한 특파원의 아내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만삭의 내 아내에게 미안했다. 차 선배에게 이런 대접밖에 못 받는 남편이었으니까  내 아내는 ‘걱정하지 마세요. 밥이나 먹고 돌아가지요’라며 명량한 척을 했다. 고려식당이라는 간판이 붙은 한국 식당을 찾아가 점심을 먹었다. 다들 마시고 먹고 음미할 마음이 아니었다. 이튿날 훈련이 있으므로 바로 되돌아가야 했다. 제가 ‘길을 잘 모르니까 고속도로 타는 곳까지만 안내 바랍니다’라고 말하자 장 특파원은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지갑에서 500마르크를 꺼내어 내게 밀었다. ‘죄송해서 그럽니다. 이거라도 제발 받아주세요’라며 건넸고, 난 사양하다가 장 특파원이 더 미안해할까 봐 받았다.

국경을 넘을 무렵 차창을 열고 차 선배의 전화번호를 적은 메모를 잘게 찢어버렸다”

이렇듯 허정무의 회고록에 의하면 전화가 없던 시절 차범근과 약속을 잡고 만삭인 아내와 눈길을 뚫고 500km가 넘는 거리를 힘들게 찾아갔지만, 차범근의 일방적인 취소만 전달받은 채 결국 만나지 못했던 걸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이전말에는 밝혀지지 않은 더 충격적인 일화가 존재하는데요.

사실 허정우는 마지막 예의를 지키고자 본인의 회고록의 모든 전말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허정무는 XX선수

충격적인 진실은 이러했는데, 허정무와 함께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장 특파원은 공중전화로 차범근의 집에 전화를 걸었더니 차범근의 아내인 오은미가 받았다고 말합니다.

장 특파원은 차범근 아내에게 “약속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 왜 아직 안 오는 건가요?”라고 물었는데, 차범근 부인의 다음 같은 답변은 정말 충격 그 이상의 답변이었습니다.

“우린 그런 삼류 선수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없어요” 라는 무례한 답변을 했다고 전해집니다.

화가 난 장 특파원이 “그럼 처음부터 약속은 왜 했습니까?”라고 따지자 차범근의 부인은 “어쨌든 우리 남편은 그런 삼류 선수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없다니까요”라며 본인 할 말만 일방적으로 하고 전화를 툭 끊었다고 합니다.

장 특파원은 차범근 아내의 무례함에 수화기를 내동댕이 쳤다고 밝혔습니다.

현장에서 장 특파원을 통해 그 말을 전해 들은 허정무의 얼굴은 시뻘겋게 상기됐다고 하고요.

이런 사실이 허정무의 회고록과 스포츠 서울 국장의 기사를 통해 전해지자 네티즌들은 차범근과 그 아내에 대해 충격을 금치 못하는 반응을 보여줬습니다.

또한 허정무의 지인이라고 말했던 어느 네티즌이 후술하길 “허정무는 차범근에 대한 증오심을 선배에 대한 존경심과 감사함으로 숨겨왔었다”

“그러나 몇 번씩 마주친 공식 자리에서도 차범근이 이에 대해 사과를 하지 않자 결국 허정무도 한 인간으로서 큰 실망을 하며 사석에서 분개심을 드러냈다” 라며 허정무와 차범근의 악연에 대해 생생한 목격담을 전해줬습니다.

이에 대해 차범근 측의 얘기도 분명히 들어볼 필요성은 있지만, 허정무의 회고록 및 언론사에 국장이 직접 기술한 것을 비추어 보면 아마도 사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 건 솔직히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