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성우’ 김기현 妻 30번이 넘는 항암치료, 13년 암 투병 끝에 결국..그의 마지막 유언에 모두가 눈물 지은 이유

여러분 혹시 대한민국의 원로 성우이자 배우인 김기현 님을 아시나요?

은하철도 999, 카우보이 비밥, 쿵푸팬더 등 많은 애니메이션 시리즈의 성우를 맡기도 했으며 일반인들에게는 제5공화국의 장태완 소장 역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요. 

최근 10일 방송된 TV조선 <건강한 집>에서는 성우 김기현과 아내의 사연이 공개되어 화제입니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자랑하는 연예계 대표 몸짱 부부

그들이 <건강한 집>을 찾은 이유는 바로 심각한 대장암과 폐암 때문이라는데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더불어 성우계의 전설로 불리는 김기현 님의 삶에 대해서도 조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유명 성우가 되기까지

그는 충청북도 옥천군에서 태어났습니다. 

1950년 벌어진 6.25 전쟁으로 인해 그는 피난을 갔어야 했고, 당시 20살이였던 형은 강제로 군에 징용되었고 총에 맞아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후 그의 가족은 엉망이 되었는데요. 

아버지는 장남을 잃은 슬픔에 식음을 전폐한 채 술로 살았고, 어머니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해 하루 종일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도 가족은 너무나 가난했고 어린 김기현은 겨울만 되면, 손을 녹일 장갑조차 없어 동상에 걸려 손이 부어 피가 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꿈은 커녕 배 한번 부르고 먹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가난한 삶을 살던 중 그는 20살이 되던 해에 군대에 입소하게 되는데요.

이후 논산 훈련소에서 조교를 하던 와중에 우연히 KBS 탤런트를 하던 훈련병을 만나게 됩니다.

 그 훈련병은 김기현에게 “목소리가 좋으니, 성우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라고, 제안을 했고, 얼떨결에 훈련병이 가져온 대본을 창고에서 소리 내 읽어보았는데요.

그때 그는 “아 이걸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성우의 꿈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열심히 노력한 끝에 1964년 충청남도 특채 1기로 데뷔했고, 5년 후 1970년 MBC 4기 공채 성우로 정식 데뷔를 하게 됩니다. 

이후 그는 <은하철도999>, <맥가이버>, <폴리스 아카데미>, <레옹> 등 수많은 작품에 성우로 출연하게 됩니다.

성우뿐만 아니라 연기자로도 활동하고 있는데요. 

<투캅스3>, <카이스트>, <제5공화국>, <복면달호>, <야인시대>, <대왕 세종> 등 여러 작품에 출연한 바 있습니다.

특히 <제5공화국>에서 맡은 장태완 역으로 인해 시청자들은 그에게 ‘장포스’라는 별칭까지 붙여주기도 했는데요. 

“이 반란군놈의 새끼야”라는 유행어까지 생기기도 했습니다.

결혼 후 닥친 시련

그는 32살 때 지금의 부인인 손영화 씨와 결혼하게 됩니다.

당시 남성의 평균 초혼 연령이 만 24~27세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다소 늦은 나이였는데요. 

신혼 시절, 은행 대출까지 받아 방 3개짜리 신혼집을 차렸지만 빚을 갚기 위해 방 2칸을 세로 내줘야할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결혼과 동시에 MBC 성우가 되었지만, 수입이 거의 없었기 때문인데요.

얼마나 심각했던지 돈이 없어서 먹을 쌀조차 사지 못했고, 아픈 딸의 병원비도 없었다고 합니다.

김기현은 “첫재 딸이 고열로 경기를 일으키는데 돈이 없어서 할 수있는 것이 없었다. 그 때 성우를 그만두려고했다”라고 밝혔는데요.

그런 상황에서 그에게 일생 일대 기회가 오게 됩니다.

그는 “한 브랜드의 광고 더빙 제안이 왔다”

“그걸 성공적으로 찍고 나서부터 광고 더빙 제안이 나에게 쏟아지게 되었다”

“1997년에는 광고 대상까지 받았다”라며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이제야 행복하게 살 수 있나 싶었지만, 그의 시련은 이것이 끝이 아니었는데요. 

2000년 초 아내가 대장암에 걸리게 된 것입니다. 

김기현은 “처음에 진단받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숨이 안 쉬어졌다. 그런데 3년 뒤에 림프절, 3년 뒤에는 폐로 전이가 되었다”

“항암 치료만 30번이 넘었다”라고 밝혔는데요.

평생을 아내를 위해…

그는 이후 아내를 위해 매일 매일 가자미, 소고기 등 면역력 강화에 도움이 되는 식재료를 이용해 밥상을 차리고 전국 각지에서 보양식까지 구하게 됩니다.

이러한 극진한 내조 덕분인지 아내는 2017년 완치 판정을 받게 됩니다.

또한 그는 ‘내가 아프면 가족도 지키지 못하겠다’라는 생각에 술도 담배도 끊고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편 그는 한 방송에서 “난 항상 마음의 준비를 하고있다”면서

“내게 무슨 일이 생겼을 때 자식들이 볼 수 있도록 수첩에 유언을 적어놓았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공개된 유언에는 ‘내가 쓰러져도 절대 산소호흡기는 꽂지말라’는 등의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이유에 대해 김기현은 “호흡기에 연명하는 삶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그건 짐만 될 뿐이다”라고 설명하며

“언젠가 우리는 혼자 갈 수 밖에 없다”며 담담한 마음을 밝혀 스튜디오를 눈물바다로 만들었습니다.

김기현은 현재 80대의 나이지만 여전히 현역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왕성한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비결은 꾸준한 체력관리

그리고 시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강인한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앞으로도 그가 지금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많은 활동해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