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 또 당했다…어머니까지 잃고, 떡갈비 집에서 발견된 그의 충격적인 최근 근황

혹시 천재 바이올린 리스트 유진박을 기억하시나요?

그는 어느 날 혜성처럼 등장해서 한때 대한민국의 바이올린 신드롬을 일으킨 장본인입니다. 

그야말로 그의 전성기 시절의 인기는 정말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과거에 유진박을 관리해주던 소속사 매니저와 관련하여 충격적인 사건이 밝혀지면서 큰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에는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이 사건은 어느 정도 일단락이 되었지만, 그 이후 또 한 번의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천재 바이올린 리스트 유진박에게 벌어진 과거 안타까운 사건들과 더불어 최근에 그의 근황까지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1975년, 유진박은 미국 뉴욕에서 의사인 아버지와 어머니 이장주 씨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납니다. 

그는 이미 3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잡았으며, 8세 때 전액 장학금을 받으면서 역사상 최연소로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입학하기에 이릅니다. 

입학 후 10살 때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펼치는가 하면, 13살 때에는 링컨센터에서 데뷔하면서 신동 바이올리니스트로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16살 때는 하버드 대학교 입학이 가능할 정도로 상위권 성적을 유지했으나, 줄리아드의 요청으로 하버드를 포기하고 줄리아드 스쿨에 입학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유진박이 어린 시절은 음악 신동 내지는 음악 천재의 길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그에게 첫 번째 시련이 찾아오게 됩니다.

갑작스러운 시련

줄리아드 스쿨 내에서도 신동으로 소문난 유진박은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그야말로 총망받는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줄리아드 스쿨에서 대학생활을 하던 유진박은 양극성 장애를 진단받게 됩니다. 

흔히 조울증이라고 불리는 이 병은, 조증과 우울증이 너무나 심하게 번갈아가며 나타나는 감정장애로, 일종의 정신질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양극성 장애가 발병한 영향으로, 유진박은 전공을 클래식에서 전기 바이올린으로 바꾸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클래식 바이올린으로 계속해서 음악을 깊이 공부해서 나중에 교수가 되거나, 아니면 학문으로 재능을 꽃피우기에는, 유진 박 씨가 가지고 있는 병을 고려해봤을 때,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만약 그에게 이런 조울증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줄리아드에서도 앞날이 창창한 그가 갑자기 전기 바이올린으로 전공을 바꿔서 대중음악을 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요?

17세 때, 전기 바이올린으로 전공을 바꾼 유진박은 마치 날개를 달듯이 여러 유명한 뮤지션들과 협연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 무렵, 유진박은 뉴욕타임즈 및 뉴욕 포스트에도 기사가 날 만큼 유명 인사가 되었고, 급기야 줄리아드 스쿨 역사상 최초로 전기 바이올린 독주회를 열기도 하였습니다. 

줄리아드 스쿨을 졸업한 유진박은 당시 뉴욕 최대 매니지먼트사를 비롯하여 세계 여러 유명 회사들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바이올리니스트 뿐만 아니라, 음악적으로 그가 가진 재능이 너무나 뛰어났기 때문에, 서로 유진박을 데려가려고 혈안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그러나 유진박은 이 모든 제안들을 거절하고 한국에서 활동을 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 이후, 유진박은 1996년 열린 음악회에 초청을 받아 국내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그의 재능과 진가를 알리는데, 딱 그 한 번의 공연이면 충분했습니다. 

열린 음악회에서 유진박의 공연을 본 국민들은 극찬을 쏟아냈고, 정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습니다.

당시 그의 전기 바이올린 연주는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그동안의 격식을 완전히 깨뜨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유진박의 열정 넘치는 무대매너와 활발하고 폭발적인 연주는 유진박 신드롬까지 일으키게 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게 됩니다. 

유진박 혼자서 작사, 작곡, 편곡까지 전부 작업한 그의 첫 번째 앨범은 무려 100만 장이 넘게 팔리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참고로 지금까지도 연주 음반 중에서 단기간에 100만 장이 넘게 팔린 앨범은 유진박이 유일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유진박은 tv 드라마 출연을 비롯해서 다수의 광고를 찍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현재까지도 유진박에 비견될 만한 훌륭한 전기 바이올리니스트가 탄생되지 않을 정도로 그는 대한민국 음악계에서 한 획을 근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그에게 두 번째 시련이 찾아옵니다. 

더러운 옷 입고 곱창집에서..

시간이 지나 유진박 신드롬도 조금씩 잦아들면서, 그는 대중의 관심에서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2009년 7월 말, 유진박이 지방의 소규모 행사장과 술집, 무료 행사장 등에서 전전하며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다는 제보가 이어지기 시작합니다.

그 이후 소속사에서 대우를 제대로 받지 못했고, 그로 인해 유진박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큰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소속사와 그의 매니저는 유진박에게 무리한 공연을 시켜 공연비를 강제로 빼앗는가 하면, 한 곳에 강제로 가둬 놓고 그를 때리는 행동을 일삼기도 하였습니다. 

유진박은 한국어도 익숙지 않았고,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이었기에 그런 끔찍한 생활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의 조울증은 관리가 전혀 안 되어 급속도로 심해졌고, 매일매일 무리한 공연과 소속사의 악행에 유진박은 점점 피폐해져 갔습니다. 

당시 대중들은 엄청난 재능을 가진 천재 유진박이 이런 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만약 유진박이 과거 한국이 아닌 미국을 비롯한 세계적인 유명 소속사의 제의를 수락했다면 어땠을까요?

그의 재능을 전 세계에 꽃 피우며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지 않았을까요?

지금 생각해도 그의 엄청난 재능을 단지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하며 악행을 저지른 그들이 너무나 원망스럽습니다. 

그 이후, 대중들은 유진박 구명 운동을 벌이며 유진박 구하기에 나섰고, 여러 방송사의 프로그램에서도 이 문제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사건의 심각성을 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유진박의 황금기라고 할 수 있는 그 시기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고통만 받으며 보내왔지만, 이때부터라도 관리가 잘 되었다면 그는 충분히 재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그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찾아옵니다. 

마지막으로 믿었던 사람마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유진박은 그를 한국에 처음으로 데뷔시킨 매니저 김 씨와 재회하게 됩니다.

김 씨와 재계약 후, 유진박은 다시 활발한 활동을 하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2017년, kbs 인간극장에서는 15년 만에 다시 만난 유진박과 매니저 김 씨의 깊은 인연을 집중 조명하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방송에서 유진박은 “과거의 매니저들은 나를 많이 때렸다 지금의 사장님은 너무 최고다 눈물 날 것 같다” 라는 고백을 하며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매니저 김 씨도 “어머니와의 의견 차이로 재계약이 불발돼 유진박이 겪지 않아도 될 아픔을 많이 겪었다”

“다시 만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어려웠던 시절에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밀려온다” 라고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말 진심으로 유진박을 잘 챙겨줄 것만 같았던 매니저 김 씨는, 유진박을 괴롭혔던 그 전 매니저와 전혀 다를 게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의미로는 더 악랄한 사람으로 보일 정도였습니다. 

당시 알려진 바에 따르면, 매니저 김 씨는 유진박의 출연료 5억 600만 원을 횡령하였고, 유진박 명의로 사채를 몰래 빌리기도 하였는데, 그 금액은 약 1억 800만 원 가량이었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급기야 매니저 김 씨는 유진박이 어머니에게 상속받은 제주도 땅을 헐값에 팔아서 차액을 가로채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유진박은 본인이 제주도 땅을 상속받았다는 사실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매니저 김 씨는 유진박에 살고 있는 아파트 보증금에까지 손을 대는 등, 진박의 수입과 재산을 철저히 가로채 왔습니다. 

그 돈들은 대부분 매니저 김 씨가 도박을 하는 데 쓰여졌다고 합니다. 

뒤늦게 이 사실이 밝혀지면서, 많은 사람들은 또 한 번의 충격을 받게 됩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어야 할 유진박 씨가 한 번도 아니고 어떻게 두 번씩이나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되었을까요? 

이 사건으로 유진박 씨는 더 큰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방송을 통해 유진박에 달라진 최근 근황이 전해졌습니다. 

떡갈비 집에서 생활하는 근황

현재 그는 어머니의 예전 지인이 운영하고 있는 제천의 한 떡갈비집에서 식당 아주머니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유진박이 바이올린을 마음껏 연주할 수 있는 공연장과 테라스가 있는 전망 좋은 집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현재 유진박과 관련된 법적인 부분과 금전적인 부분은 법원에서 지정한 변호사가 관리하고 있으며, 제천의 떡갈비집을 운영하는 사장님은 유진박이 잘 생활할 수 있도록 후견인으로서 돌봐주는 역할만 하고 있다고 합니다.

방송에 비춰진 유진박의 모습은 너무나 밝고 건강해 보였습니다. 

아마도 제천에서 식사도 잘하고, 약도 잘 챙겨 먹고 하고 싶은 음악도 마음껏 함으로써 심리적으로 많이 안정을 찾은 것으로 보입니다. 

방송을 보면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유진박의 후견인을 비롯해서 그를 따뜻하게 잘 챙겨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올해로 유진박은 47살에 접어들었습니다. 

앞으로의 유진박은 하고 싶은 음악뿐 아니라 사회인으로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배우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길 진심으로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