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걸 가졌던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 시한부 선고받고 직접 고백한 마지막 인생 이야기..4번이나 결혼한 진짜 이유?


유독 화려한 사생활로 세간에 오르내렸던 재벌 회장이 있습니다. 


바로 동아그룹을 이끌었던 최원석인데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의 최원석이 그간 살아왔던 자신의 삶에 대해 토로한 인터뷰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동아건설 창업주 최준문의 아들이자 전동화그룹 회장이었던 43년생 최원석은 현재 시한부 선고를 받고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 중입니다.

한때는 재벌 회장으로 누구보다도 화려한 삶을 살았던 그인데, 이제는 말기암과 싸워야 하는 신세입니다. 

최원석은 한양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가 조지타운 대학교를 졸업한 수재입니다. 

91년도에는 대통령 선거인단 선거, 서울 중구 2선거구 민주정의당으로 출마해 당선된 바 있는데, 정계보다는 재계에 몸 담은 세월이 덕입니다.

최원석은 동아건설 및 대한통운 대표이사 사장, 대전문화방송 사장, 동아생명 회장 등을 거쳐 동아그룹 회장도 지냈습니다. 


그는 굉장히 능력 있는 인물이었는데, 20세기의 대역사로 불리우는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수주하고 지휘하면서 동화건설을 세계적인 건설사로 성장시켰습니다.

그와 함께 동아그룹의 위상은 날로 높아졌는데, 성수대교 붕괴 사고와 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결국 그는 경영권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한순간에 몰락해버린 동아그룹과 최원석 그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최근 최원석이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진행하며 그 궁금증을 풀어줬다고 해서 화제입니다. 


진행자는 최원석의 파란만장한 삶에 대해 먼저 질문을 건넸습니다. 

이에 최원석은 “내 인생이 젊었을 때는 좋았을 것 같다”

“그런데 나이 들고 보니까 그렇게 좋진 않았었구나 이런 생각을 한다”며 입을 뗐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 습관적으로 일에 미쳐 있었던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그때를 매우 그리워했습니다. 

최원석의 가장 큰 업적에 대해서도 말이 나왔습니다.

진행자는 “리비아 1단계 공사 수주하셨을 때 국가 예산이, 대한민국 예산이 한 10조 정도 넘었다”

  
“근데 그때 수주하신 금액이 3조가 넘더라”며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언급했습니다.

 
이에 최원석은 “그 때 당시에는 세계적인 공사를 한다는 건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


“지금에서 그런 액수로 일을 했다면 대단한 뉴스거리가 됐을 텐데”라며 아쉬워했습니다. 


무엇보다 세간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았던 사생활 논란에 대한 언급도 있었습니다. 

최원석은 다른 재벌 회장들보다 유독 여성 관련 주문들이 많았습니다.

우선 그는 공식적으로 4번이나 결혼과 이혼을 반복했습니다. 

첫 번째 결혼은 64년 미스코리아 진이자 신도환 전 국회의원의 딸 신정현과였습니다. 

신정현과 얼마 살지 않고 이혼한 최원석은 원로 배우 김혜정을 두 번째 아내로 맞이했지만, 이도 영원하지는 않았습니다. 

세 번째 부인은 가수 배일순이었는데, 배일순은 이혼 후 30년 만에 부르는 ‘커피 한 잔’이라는 책을 내서 최원석의 사생활을 간접 폭로해 사회에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책 속에는 여배우 J와 L, 탤런트 L와 K, 대형 가수 K 등의 이니셜이 등장했습니다. 


실명은 적혀 있지 않았지만 자세한 묘사가 특정 인물들을 떠올리게 했고, 이 책 때문에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배인순은 책에 자서전 대신 굳이 자전소설의 이름을 붙이고 그냥 기관한 여자의 인생을 담은 소설로 읽어달라고 부탁했지만, 본인의 이름과 ‘펄스’, 전두환 전 대통령 등 대다수 인물들의 실명이 그대로 등장해 논란이 됐습니다. 

배인순은 이 책에서 최원석으로 추측되는 C회장은 부인을 내보낸 후 버젓이 제 집 안방에 여배우를 초대하는 남편, 내연녀와 결혼하겠다며 이혼을 요구했던 남편으로 그렸습니다.

특히 대형 가수 K와 부인을 한 방에 끌어들이는 파격적인 장면까지 묘사돼 적지 않은 파문이 일었습니다. 

배인순 측은 최원석의 네 번째 부인인 장은영도 내연녀 중 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는데, 최원석으로서는 대단히 억울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인터뷰에서 최원석은 세간에서 떠드는 자신의 사생활에 관한 언급을 잊지 않았습니다.

“나는 지금 생각해도 그게 잘못된 생각을 안 한다”

“왜냐하면 그때 당시에는 술도 먹어야 되고 파트너를 불러야 되고 기업을 하는 마당에 필요해서 한 거다”

“그리고 그렇게 내가 두 사람을 들고 살 수 있을 정도로 힘이 좋다면 여한이 없다”


“하지만 그렇지도 못한데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그랬다”

“사생활 이야기는 열 가지라고 하면 한 가지도 믿지 말아라” 그러면서 최원석은

“자연히 손님들도 많이 오고 그러면 술 한 잔씩 하고 또 그러니까 여자들도 많이 있겠지 이렇게 생각을 하겠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내가 복잡했으면 고소당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렇지만 나를 고소한 사건이 하나도 없다”


“세상에서 알려진 것처럼 그렇지는 않다 정반대다”라고 힘주어 얘기했습니다.


최원석은 잦은 결혼과 이혼에 대해서도 본인의 의사는 아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내가 결혼을 하자고 해서 결혼하는 사람이 있나?”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있나? 사귀다 보니까 얘기가 통하고 여자가 ‘결혼하자’ 그러면 신경 안 쓰고 그래 호적에 올려라 했다”

“내가 결혼을 하자는 얘기는 한 번도 안 했다 항간에 떠도는 사생활 논란은 거진 다 거짓”이라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여론에 나온 게 진실이면 기분이 좋지 않았을 텐데 여론에 나온 거는 순전히 사람들이 만든 거라 신경도 별로 안 쓰였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굴지의 대기업이었던 동아건설은 2001년 파산 선고를 받았습니다.

주거래 은행과 채권단은 그룹을 해체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최원석의 퇴진과 일가의 지분 및 선산을 포함한 부동산 등 사유재산의 헌납까지 요구했습니다. 

선친이 일군 그룹을 공중분해시키기 싫었던 최원석은 이에 모두 동의했지만 그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동아 그룹을 공중분해했습니다. 

최원석은 무엇보다도 선산까지 빼앗겼다는 데 원통한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개인 선산 묘까지 하는 건 감정적으로 하는 거다”


“그러니까 그 화는 맺혀있다 생각하기도 싫다. 너무나 분통하고 원통하다”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어떤 심정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거다”

믿었던 이들에게 하루아침에 배신을 당한 셈이 된 최원석은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가 읽어놓은 것을 모두 빼앗겼다는 데에 보니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인터뷰 영상 중에는 아버지와 그가 찍은 사진도 공개됐습니다. 

막 성인이 되었을 무렵 찍었다는 사진을 보며 최원석은

“아버지는 잘 만났다 내 편은 아버지 뿐이었다 뭐든지 이해를 해주시고 참 잘 해주셨다”

“하늘나라에 빨리 가서 아버지를 만나 뵙고 싶다”


“아버지는 권력 싸움 등을 잘 견디게 사기를 항상 올려주셨고 나와 권력 싸움을 하지는 않으셨다”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내비쳤습니다. 


그러면서 동아그룹에서 일했던 직원들에 대한 미안함도 고백했습니다.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별로 잘한 것 같지 못해 후회된다”

“직원들에게 미안하다 책임감이 없었던 것 같아서.”


누구보다 화려한 삶의 주인공이었던 최원석은 현재

말기암 환자로 병마와 싸우며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그 누구보다도 당당하게 거침없이 살아온 그이지만 지난 날을 돌아보면 후회가 많습니다. 

특히나 동아그룹이 망하며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어버린 전 직원들에게 애틋한 마음이 깊었습니다.

뒤늦게라도 최원석의 진심을 전해 들은 사람들은 오해가 풀려서 다행이다 젊었을적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영웅 같은 분이셨는데 병도 건강하게 이겨내시면 좋겠다며 그의 쾌유를 바라고 있는데요. 

많은 이들의 바람처럼 그에게 기적이 찾아오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