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추억’ 가수 한혜진 남편의 충격적인 돌연사에 혼절..피눈물 흘리며 극단적 선택까지..그녀의 한과 비애


가수 한혜진은 1965년에 경북 경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지금은 가수로서 정상의 자리에 오른 한혜진 하지만 그녀는 원래 가수로 데뷔한 게 아니었습니다. 

대학을 서울예술대학교 영화학과에 진학하여 연기를 전공했던 그녀는 1985년 KBS 11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며, 처음에는 가수가 아닌 연기자로 대중에게 첫선을 보이게 됩니다.

당시 ‘산유화’라는 드라마에서는 여대생 미란 역으로 출연하여 연기력도 인정받게 되는데요. 


이렇게 원래는 배우의 꿈을 꾸고 있던 그녀가 어떻게 하다가 가수로 직업을 전향하게 된 것일까요? 

운명처럼 가수의 길로

사실 그녀는 공채 탤런트로 선발이 되긴 했지만, 경상도 억양이 고쳐지지 않아 연기할 때 나오는 사투리 때문에 배우로 활동하기가 힘이 들었는데요.

그러던 중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는데, 한 피아노 학원이 우연히 한혜진의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 학원을 보게 된 그녀는 “연기를 할 때 노래하는 신이 나오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어서 무작정 학원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서 우연히 계셨던 작곡가 선생님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 작곡가 선생님은 한혜진에게 노래를 해보라고 시키게 되었고, 당시 한혜진은 이은하의 ‘겨울 장미’라는 노래를 불렀는데요.


그 작곡가 선생님은 허스키한 한혜진의 노래를 듣자마자 가수를 해보라고 권유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한혜진의 인생이 운명처럼 연기자에서 가수로 바뀌게 됩니다.


1987년 강변가요제에서 ‘사랑의 신이여, 내곁에’라는 곡으로 입상하면서 그녀는 가창력을 인정받게 되는데요.

이듬해인 1988년, mbc 신인 가요제마저도 입상하는 데 이어, 같은 해, 가슴 아픈 말 하지 마라는 펑크록 장르의 곡으로 정식으로 가수로 데뷔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헌신

당시 그녀는 앨범을 취입하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을 모두 아버지로부터 지원받게 되는데요. 

원래 그녀의 아버지는 딸의 연예인의 꿈을 반대했지만, 결국 그녀가 음반을 취입한다고 하자, 그의 소요되는 모든 비용을 전부 부담해주며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게 됩니다. 

또한 한혜진의 본명은 원래 한명숙이었는데, 그녀는 성공하기 위해 야심차게 이름도 한혜진으로 예명을 지어 활동했는데요.

하지만 그녀의 첫 번째 앨범은 기대를 저버리고 처참히 실패를 하게 됩니다. 

피나는 연습 끝에 앨범을 발표했지만, 아쉽게도 그녀의 노래는 알려지지 않게 되는데요. 

이후 한혜진의 개성 강한 목소리를 알아본 김인배 작곡가는 그녀에게 트로트 장르로 전향을 해보라고 권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다시 아버지의 지원을 받아 두 번째 앨범을 트로트로 발표하게 되는데 이때 곡명을 당시 유행했던 드라마 제목과 똑같이 ‘사랑이 뭐길래’로 지어 음반을 추입하게 됩니다.

 
이 노래는 당시 대중들로부터 약간의 반응을 얻는가 했지만, 역시 크게 히트하지 못하고 다시 한 번 참담하게 실패하게 되는데요.

이때 그런 그녀를 일으켜 세운 건 바로 아버지였는데요. 

당시 한혜진의 아버지는 혼자서 앨범을 제작해야 하는 딸을 위해 집과 땅, 과수원을 모두 팔아 차기 앨범 제작비를 또 마련을 해주게 됩니다.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한혜진은 심기일전하며, ‘갈색 추억’이라는 곡이 수록된 음반을 발표하게 되는데요.


지금의 한혜진이 있게 해준 이 노래의 ‘갈색 추억’은 대중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으며, 당시 가요 톱10에서 3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무려 15개월이나 순위권에 머무는 등 초특급 메가 히트를 기록하며 한혜진이라는 가수를 이 세상에 알리게 됩니다. 


당시 시장과 고속도로, 휴게소 등 길거리에서도 그녀의 노래가 울려 퍼지며, 무명 가수였던 한혜진을 인기 가수의 반열에 올려놓게 되는데요.

후에 그녀는 방송에 나와 ‘갈색 추억’ 의 히트로 아버지가 팔았던 과수원을 다시 사들이면 되지 않았냐는 mc의 질문에, “과수원 자리가 3년 만에 신도시가 되어 못 사들였다 엄청 올랐다”면서 너스레를 떨기도 했습니다.

첫번째 결혼


이렇게 가수로 승승장구하던 한혜진 그녀는 2000년 복싱 선수 출신의 사업가였던 김복열과 결혼하게 되는데요. 


7년의 연애 끝에 한 결혼으로 두 사람은 잉꼬 부부로 불릴 정도였으며, 4~5차례 지상파 방송에 출연해 부부애를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행복할 줄 알았던 그녀는 결혼 9년 후 남편과 이혼을 발표하게 됩니다. 

한혜진은 당시 남편과 협의 이혼했는데, 사유는 성격 차이 때문이고, 둘 사이에 자녀는 없었다고 덧붙였는데요. 


하지만 남편 김복열 씨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사실 우리는 혼인 신고를 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무슨 협의 이혼이냐? 한혜진이 일방적으로 집을 나간 뒤 갑자기 보도자료를 뿌려 이혼 사실을 알린 것”이라며 억울해 했습니다.


하지만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만큼 두 사람은 사실혼 관계였고, 사실혼은 당사자 일방의 의사에 의해 혼인 관계가 해소될 수 있는 만큼, 한혜진이 결별을 선언했다고 해서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은 없는 것인데요. 


당시 한혜진은 협의 이혼이라고 발표한 것은 그나마 남편에 대한 마지막 배려 차원이었는데요


“집을 나온 것은 결혼 뒤 계속된 남편의 사업 자금을 대는 것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라며,

“결혼 이후 남편은 한 번도 생활비를 가져다 준 적이 없었고, 애를 갖지 못한 것도 한혜진이 임신으로 일을 쉬면 경제적으로 생활이 어려워질 것이란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또 한혜진은 “3년 전부터 이혼을 해달라고 말을 해왔는데, 단순히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남편의 언어 폭력을 견딜 수 없었다. 집을 나온 이후 남편에게 여러 차례 심한 말을 들었다 관련 문자며 음성 메시지가 증거로 남아 있다”고 맞섰습니다.

 
그녀의 소속사 관계자 또한 “아름답게 마무리 짓기 위해 협의혼이라고 발표했던 것이 문제가 됐다면 이는 수정하겠다”

“하지만 한혜진 씨가 오죽하면 집을 나왔을지에 대해서 알아줬으면 한다”고 설명했는데요.

결국 최고 전성기 시절, 차압까지 들어오자 끝내 이혼까지 하게 된 그녀

당시  한혜진의 수 중에는 고작 100만 원만이 남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헤아릴 수 없는 마음 고생 끝에 결정한 이혼이었지만, 한혜진은 딸의 결정을 늘 응원해줬던 아버지에게만은 이혼 사실을 차마 알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걱정하실까 봐 기대에 어긋나는 딸이 되고 싶지 않았던 마음 때문이었지만, 결국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고, 건강도 좋지 않으셨던 아버지께 결국 조심스럽게 이야기 드렸는데요.


말씀드리자마자 “왜 이제야 결정했노”라며 아버지는 힘들었던 마음을 다독여주셨는데 한혜진은 그런 아버지께 너무너무 죄송하고, 가슴이 아파 정말 많이 울게 됩니다. 

가수인 것을 피눈물나게 후회한 날

이후 다시 한혜진이 일어날 수 있게 아버지가 뒷바라지를 하던 중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아버지가 췌장암 말기셨던 것입니다.

그녀는 수소문 끝에 큰 병원에 아버지를 모셨지만, 결국 전신에 암이 퍼지신 상태였고 수술도 하지 못하는 상태였죠.

그녀는 당시에 대해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버지가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게되었다”

“나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버지 얼굴조차 보지못했다”

아버지의 임종을 보았느냐는 MC들의 질문에 그녀는

“보지 못했다. 가수임을 피눈물나게 후회한 날이였다”

“아버지의 병원비를 벌기위해 서울에서 행사를 하던 중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행사들이 있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일을 못하겠어요’라고 말하고 손해배상해서 행사를 취소하고 싶었지만 그것도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결국 노래를 불렀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하필 신나는 댄스곡인 ‘꽉 낀 청바지를 불러야 했다’ “

“행사를 마치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펑펑 울었다”며 당시 감정을 밝혔습니다.

후에 그녀의 아버지는 암 투병 끝에 하늘로 떠나게 되는데, 그래서 한혜진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행복했던 두번째 결혼 그러나…

이후 그녀는 동료 가수 박강성의 소개로 대한특공무술연맹 총재 출신의 사업가 허준서와 재혼하게 되는데요. 

복싱 선수와 결별하고, 다시 특공무술연맹 총재와 재혼을 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남편과는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였지만, 연락이 끊겼었다가 박강성 덕분에 20년 만에 재회하며 열애를 시작한 것이라 하는데요. 

열애 당시는 한혜진의 아버지가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았을 때라 무척 힘들었을 시기였는데요.


그 시기를 남편이 같이 견뎌주면서 남편이 바쁜 와중에도 매일같이 아버지를 찾았고, 그런 남편의 마음의 감동에 그녀는 결혼까지 결심하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밖에서는 큰 사업을 하는 대범한 성격이지만, 집에서는 살림을 도맡을 정도로 자상하고 가정적인 사람이라고 하는데요. 

하지만 행복했던 결혼 생활도 잠시 결혼 4년 만이었던 2016년, 남편이 부동산 관련 사건에 연루되면서 다시 마음 고생을 하게 됩니다. 


당시 한혜진의 남편은 토지 개발 사업 관련 사기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게 되었는데요. 

한혜진은 연예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피해를 본다는 것이 안타깝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결국 그녀의 남편은 법정 구속이 되게 됩니다. 

그렇게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 일이 있으므로 한혜진은 최근 다시 한 번 충격적인 사실을 공개하게 되는데요.

 
그녀는 얼마 전 방송에 나와 “작년 남편이 하늘나라로 갔다”며

“전날 저녁에 같이 밥 먹고 새벽에 몸이 이상하다고 해서 119 불러서 바로 병원에 갔는데 그 다음날로 하늘나라로 갔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니까 기가 막힌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왜 기가 막힌다는 단어가 있는지”

이어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딱 스톱이 됐다. 충격이 컸다”

“큰일을 겪어 엄마가 가슴 아파 했다. 엄마와 전화 붙들고 울고. 전화가 안 되면 엄마가 10번~20번 전화를 했다”

“그 뒤로 엄마가 오셔서 같이 살게 됐다”고 모친과 함께 살게 된 과정까지 설명했다.

한혜진은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이고, 자신한테 참 잘했던 사람이라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나는 왜 평범하게 살지 못할까 그냥 끝내버릴까 이런 생각도 했다”며 극단적 선택까지 생각했음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나쁜 생각이 들었을 때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며 기도하며 1년의 시간을 보냈고, 이제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하는데요

어머니가 계셔 든든하고 따뜻한 밥도 해주고 좋은 걸 챙겨주신다는 한혜진. 

젊은 시절 배우로 잘 풀리지 않아 가수에 도전했지만, 아버지가 재산을 팔아 지원을 해주어도 계속된 실패를 맛봐야만 했고, 천신만고 끝에 가수로는 성공했지만 첫 번째 남편에게 시달리며 결별하게 되었는데요.


그 와중에 아버지는 투병하면서 끝내 하늘로 보내드려야만 했고, 다시 만난 두 번째 남편과는 행복한 인생을 살아보는가 했지만 남편이 사건에 휘말리며 구속되고 결국 세상까지 떠나게 된 한혜진의 슬픈 인생 

너무나 힘든 삶을 살아온 그녀에게 시청자 여러분의 따뜻한 응원을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