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C 라디오 방송국 한켠에는 20년 넘게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해온 MC들의 입 모양을 본뜬 ‘골든마우스’가 있습니다.
일종의 명예의 전당인셈인데요.
‘김혜영의 스마일쇼’ 진행자 김혜영은 여성 최초로 골든 마우스의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하는 세월동안 한결같이 밝은 모습을 보여왔던 그녀
그런데 그녀가 사구체신염이라는 불치병과 싸우고 있었다는 사실은 뒤늦게 알려졌는데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김철민과의 인연
어느 날 김혜영 아나운서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온다.

여느 때처럼 자신의 라디오 진행을 하던 중 어느 날 후배가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인데요.
당시 병마와 사투를 벌인 후배는 개그맨 故 김철민이었다.
다들 아시다시피 김철민은 폐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개그맨이죠.
MBC 공채 개그맨 출신이었던 김혜영 씨는 동생 김철민이 투병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그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데요.
사실 김혜영과 김철민은 MBC 선후배 사이라는 점 외에는 특별히 친하지는 않습니다.
김혜영은 MBC 3기에 영입된 개그맨이고, 김철민은 5기에 영입된 개그맨이라 선후배 기수로는 2기수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MBC는 매년 개그맨을 뽑는게 아니였기에 김혜영이 속한 3기 개그맨은 1981년에 선발했고, 김철민이 속한 제5기 개그맨은 1994년에야 선발했기에 데뷔년도가 무려 13년이나 차이가 납니다.
그렇기에 더 더욱 두 사람이 가까워질 기회는 없었는데요.
그래도 김혜영은 개그맨 후배의 투병을 안타까워했는데요.

김철민이 투병하던 해 1월 1일 김철민을 “철민아, 잠깐만!”이라며 부르더니 그의 주머니에 봉투를 집어넣어주었습니다.
이어 봉투를 확인한 김철민은 봉투 안에 200만원이라는 거액이 들어 있음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김혜영은 평소 친하지도 않은 후배에게 거액의 돈을 건네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유는 김혜영이 김철민과 비슷한 처지의 아픔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친근한 엔터테이너 김혜영

아시다시피 그녀는 MBC 라디오 싱글벙글쇼를 30년 넘게 진행해온 전설적인 라디오 DJ입니다.
30년 동안 라디오를 진행한 것은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기록입니다.
이처럼 그녀가 오랫동안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 수 있었던 비결은 그녀가 조금도 연예인답지 않은 모습으로 살고있기 때문입니다.
평소 화장을 하지 않은 채 돌아다니는 것은 물론 많은 연예인들이 꺼려하는 대중목욕탕을 자주 다니며 털털한 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라디오 DJ로 바쁜 와중에도 이웃을 잘 챙기는가 하면 15년 동안 아파트의 반장을 도맡아 했을정도로 동네 이웃들까지 알뜰살뜰 챙기고 있는데요.
이런 한결같은 행보 덕분에 그녀는 이웃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라디오 청취자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았습니다.
하지만 사실 김혜영은 스타가 되겠다는 꿈도 없었고, 남들 앞에서 튀는 성격도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방송 인생
그러다 어느 날 사주를 봤는데 그녀의 팔자가 남들 앞에 나서서 먹고살 팔자라는 사주가 나왔고 김혜영은 고교 졸업 후 정말로 서울예대에 진학하게 되면서 1981년에 연극배우로 첫 데뷔까지 하게 됩니다.
이어 이듬해 MBC 개그콘테스트에 응시하여 합격하면서 정식으로 개그맨으로 TV에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공채 동기로는 이경규와 최양락, 김정렬 등이 있습니다.
개그맨에 뽑히면서 그녀는 <일요일 밤의 대행진>과 그 후속 프로그램인 <일요일 일요일 밤에>, <청춘 행진곡> 등에 출연했습니다.
개그우먼치고는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었던 김혜영은 당시로서는 코미디계를 대표하는 미녀로 꼽히기도 했고, 그런 외모 덕을 보면서 코미디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광고와 드라마까지도 섭외가 되면서 나중에는 라디오 방송의 게스트로도 출연하게 되었습니다.

그게 인연이 되면서 데뷔 5년 만인 1987년에 MBC 라디오 싱글벙글쇼 진행자로까지 전격 발탁이 됩니다. 그렇게 MBC 개그맨 선배인 강석과 함께 87년부터 ‘싱글벙글쇼’의 진행을 맡게 된 것입니다.
이후 30년 동안 김혜영은 집안의 경조사가 있어도 단 하루도 라디오를 거르지 않고 진행하는 진기록까지 세우게 됩니다.
김혜영이 싱글벙글쇼에 대한 애착은 그녀가 결혼했을 당시의 에피소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 김혜영은 결혼 전 라디오국 부장님께 청첩장을 들고 갔는데 부장님이 그녀에게 “라디오 생방송하고 가야지.”라고 말하자, 그 말을 들은 그녀는 ‘내가 열심히 한 걸 알아주시는구나’라고 생각해서 식이 열리는 당일에도 생방송 스케줄을 취소하지 않았는데요.

그러면서 결혼식 준비를 위해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열정까지 보여주게 됩니다.
김혜영은 당시 프로그램을 마친 후에야 결혼식을 하러 식장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게다가 식이 끝나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그녀는 신혼여행 중에도 제주 지역국과 본사를 연결해서 이원 생방송을 하는 투혼까지 보여주게 됩니다.
그녀의 파트너인 강석은 서울 스튜디오에서, 그리고 김혜영은 제주도 신혼여행지에서 이원으로 연결하여 방송했던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라디오국 부장은 그녀에게 장난삼아 했던 농담이었는데 김혜영은 그걸 진담으로 받아들이고, 혼자 투혼을 불사르며 투철한 직업 정신과 못 말리는 사명감을 발휘했더라는 해프닝으로 남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본인의 일을 사랑하며 이후에도 30여 년을 책임감 있게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그녀에게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갑작스러운 불치병 선고
김혜영이 활동하던 어느 날 소변 색깔이 콜라색이어서 병원에 갔는데요.
검사를 해보니 결과가 사구체 신우염이라는 병에 걸리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병으로 콩팥에 구멍이 나면서 혈류와 단백질이 쏟아져서 소변 색이 그렇게 됐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구멍으로 체내의 모든 영양분과 단백질이 다 빠져나가게 되고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보는 시간과 살기 위해서 밥을 조금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시간은 몸의 에너지가 다 빠지는 바람에 너무 힘들어 온종일 누워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요.
심지어 손조차 딱딱할 수가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됩니다.
의사는 “나빠지면 더 나빠지지 지금보다 더 좋아질 수는 없다”
“치료방법도 약도 없다”라며 불치병 선고를 내렸는데요.
당시는 사랑하던 두 딸의 나이가 겨우 10살, 5살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렇다 할 치료 약도 없던 터라 더욱더 절망적이었습니다.

이렇게 건강 문제가 심각했던 상황이었지만 그녀는 프로그램을 쉴 수 없어서 아픈 몸을 이끌고 프로그램의 진행을 이어갔고 결국 음악이 나가는 중간중간마다 엎드려서 겨우 버텨가며 진행하는 투혼까지 발휘하게 됩니다.
라디오를 할 때 신나서 싱글벙글쇼를 외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있는 힘껏 싱글벙글쇼를 외치고 난 후 엎드려 있었고 노래가 나가는 동안, 광고가 나가는 동안, 틈틈이 엎드리면서까지 끝까지 방송을 놓지 않았습니다.

김혜영은 비록 자기 몸은 그렇게 되었지만, 가족들 앞에서는 차마 슬픈 내색을 낼 수가 없어서 남편과 아이들 앞에서 울지 못하고, 자다가도 베란다에 나가서 입을 틀어막고 몰래 울기까지 했습니다.
당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그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언니와 동생과 상의 끝에 김혜영은 어머니에게는 본인의 사실을 알리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어머니도 나중에 결국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딸의 아픔에 온 세상이 무너진 듯 처절하게 통곡했다고 합니다.
현숙 너를 위해 내 장기라도
당시 친했던 가수 현숙은 소식을 듣고 김혜영에게 “너를 위해서라면 나의 신장까지 떼어주겠다”고 전하며 그녀를 위해 장기 기증을 할 것임을 밝혔는데요.
그 말을 들은 김혜영은 너무나 고마운 마음에 또 펑펑 울었습니다.
다행히 새로운 치료법이 발견되어 장기간 치료 끝에 마침내 회복되었습니다.
하마터면 다시는 라디오에서 김혜영의 목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을뻔했는데요.
그녀는 투병 생활을 했기 때문에 후배인 김철민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고, 그에게 거액의 돈을 보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너무나 가슴 저미는 삶의 고난을 겪고 난 후 아픈 과거를 뒤로 하고 다시 대중 앞에 선 김혜영은 다시금 열심히 라디오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녀의 활동에 따뜻한 응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