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이제 곧 죽는데…” 80세 윤문식 너무도 억울한 상황에 결국…사랑하는 두번째 아내에게 건넨 이별 통보..

배우 윤문식 씨는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자신만의 개성 있는 감초 역할을 소화해내며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감을 보여주는 대단한 연기파 배우입니다. 


하지만 왜인지 한동안 그 모습을 잘 볼 수가 없었는데요. 

그런 그가 오래간만에 반가운 모습을 보여주며 그동안 왜 모습을 드러낼 수 없었는지 이유를 말해주었습니다. 

심상치 않아 보이는 모습의 윤문식 씨 

이유인 즉 이게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아니고 갑자기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데 이어 앞으로 7개월 밖에 못 사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매년 꾸준히 정기 검진을 받고 있었는데 그럴 리가 없다는 듯 분통을 터트리는 윤문식 씨 18살 연하의 아내와 재혼하였지만 사별한 전 아내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윤문식 씨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순서대로 알아보겠습니다.

‘이런 싸가지’라는 유행어와 함께 영화와 드라마에서 유명세를 떨친 것과 달리 그의 본래의 모습은 30년 외길 인생 무려 5000회가 넘는 공연을 한 마당놀이계의 전설입니다.

현재는 인간 문화재에 준하는 평가를 받는 TV보다는 연극 무대 현장이 더 잘 어울리는 그런 인물입니다.

1943년생으로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그는 동네에서 유명한 개구쟁이었습니다. 

수박서리, 참외서리 거기에 닭서리까지 동네에서 온갖 말썽을 부리던 말썽쟁이였는데요.

이는 아마 술과 풍류를 즐기던 마치 한량과 같았던 그의 아버지를 닮은 영향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유복한 집에 태어나 걱정 없이 말썽을 부리던 윤문식 씨 하지만 아버지가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니 이때 윤문식 씨의 나이 고작 9살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어머니가 홀로 생선 장사를 하며 7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힘겹게 키우게 되는데요.

새벽까지 장터에 나가 정신없이 일을 해야 했던 어머니 때문에 어린 윤문식은 아침을 비롯해 끼니를 거르기 일쑤 제대로 씻지도 못해서 꾀재재한 꼴로 혼자 시장 바닥을 헤집고 다니던 꼬마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혼을 쏙 빼놓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마을을 돌아다니던 악극단의 공연이었습니다.

이때부터 공연 천막에 쭈구리고 앉아 대사를 외우고 혼자 1인극을 하며 배우의 꿈을 키워가던 윤문식 씨

시간이 흘러 1964년 그토록 꿈에 그리던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렇게 첫날 강의실에 들어서게 되는데 다들 반듯한 정장에 백구두를 신은 귀티나는 멋쟁이들만 모여 있었던 것입니다.

이에 주눅이 들어 강의실 맨 뒷자리로 가는 윤문식 씨 그런데 왠지 자신과 처지가 비슷해 보이는 허름한 두 사람이 보였으니 그게 바로 지금도 함께 연극 무대를 지키고 있는 친구 박인환과 최주봉이었습니다.

이 중 박인환 씨의 경우 그나마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인지 어떻게 허름한 양복으로라도 구색을 갖췄는데 최주봉 씨의 경우는 너덜너덜해진 군복 바지에 까만 운동화를 신는 모습이 영락없는 시골 촌닭의 모습 그 자체였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 삼총사는 금세 의기 투합하여 주변에서 못난이 삼형제라고 따돌리던 말든 돈독한 우정을 쌓았습니다. 

따로 정해진 무대 없이 제방이나 학교 운동장 등에서 북과 꽹가리를 쳐가며 사람을 모으고 그 앞에서 공연을 하였던 대학 시절 이후 판소리, 민요, 고전 무용과 탈춤을 배우며 극단 생활을 하던 윤문식 씨

어느덧 그의 나이 30대 중반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극단의 선배가 여동생의 친구를 소개시켜주겠다고 한 여성과의 만남을 주선하게 되는데요.

천성이 떠돌이 광대인지라 결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윤문식 씨는 마음 편히 술이나 한 잔 걸치자 라는 생각에 약속 장소에 나가게 됩니다.

이날 이후 윤문식 씨의 인생은 180도 바뀌게 됩니다.

약속 장소는 평소 윤문식 씨의 단골이었던 허름한 술집

빨간 외투를 걸치고 그리 예쁘지도 그렇다고 못생기지도 않은 한 여성이 나왔으니 이 여성이 훗날 윤문식 씨의 첫 번째 아내가 되는 이영순 씨였습니다.

그녀는 윤문식 씨보다 세 살 연하로 당시 윤문식 씨의 나이는 36살 이영순 씨는 33살이었습니다. 

“아줌니 여기 막걸리하고 안주는 필요 없고 그냥 양배추 쌈이나 좀 주쇼”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대충 자리에 앉아 주문부터 하는 윤문식 씨

“잠깐만요 제가 살 테니까 드시고 싶은 안주를 드세요” 지켜보던 이영순 씨가 말했습니다. 


예 이게 웬 떡이냐 싶어서 돼지 족발을 큰 접시로 식히고 씻지도 않은 손으로 허겁지겁 족발을 뜯으며 술을 들이켜는 윤문식 씨 

적당히 취기가 오르니 집안 재산을 다 날린 아버지, 생선장수였던 어머니, 노총각의 생활 등 입에서 나오는 대로 편히 떠들어 대었고 이를 고개를 끄덕여가며 말없이 듣던 이영순 씨였습니다. 

그렇게 어느새 시간이 흘러 자정이 가까워지자 그녀는 “집에 가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이에 윤문식 씨는 “그럼 살펴가세요” 라며 엉거주춤 머리를 긁적이며 말하였습니다.

 
그렇게 사라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다가 순간 아차 싶었던 윤문식 씨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그저 놀러운 자리가 아니었는데 인생의 반려자를 소개받는 그런 자리였는데…


결국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녀를 따라나서 안전하게 집까지 바래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만난 두 사람 그제야 그녀가 초등학교의 교사이고 아버지는 교장 선생님이라는 것 등 그녀에 대한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이후 매일같이 만나며 서로에 대해 알아가던 나날들 그녀는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매력이 있는 참한 여자였습니다. 

처음엔 시큰둥했던 윤문식 씨도 그녀가 옆에 있으면 정말로 광대가 된 듯 세상에 대고 심각한 욕설을 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재롱을 부렸는데요.

그녀는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고 이를 받아주며 빈털털이었던 윤문식 씨를 대신해 술값이며 담뱃값 등을 모두 내주었습니다. 

아 이게 행복인가 알 수 없는 야릇한 감정을 느끼는 윤문식 씨 

공짜 술을 마시는 것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그녀가 자신의 속마음을 알아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인생에 더 없이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그녀가 눈이 퉁퉁 부어서 나타났으니 윤문식 씨를 만나는 것에 대해 집안의 반대 특히 아버지의 반대가 몹시 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광대에게 시집을 가느니 차라리 목숨을 끊으라는 것이었죠.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부끄럽게 느껴졌던 윤문식 씨 결국 두 사람 장인의 허락이 떨어지기도 전에 결혼식을 치러버리게 됩니다.

그 동안 교사 생활을 하며 착실히 돈을 모아놓았던 이영순 씨 신혼집도 이미 마련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부부가 된 두 사람 

“돈 걱정 말고 당신은 예술이나 하세요”라는 아내는 윤문식 씨의 열렬한 후원자였습니다. 


이런 아내의 내조와 편안한 가정의 분위기 덕분에

윤문식 씨는 활발한 활동을 하여 80년대 마당놀이의 중홍기를 이끌며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인상적인 것은 이렇게 한없이 너그러웠던 아내도 결혼 생활 3년이 넘어가자 “더 이상은 담뱃값 등의 용돈을 주지 못하겠다”며 “당신 용돈은 스스로 벌어보라”고 선전포고를 한 것인데요.


집도 직접 마련하고 이후 생활비까지 벌었던 아내가 참다 참다 폭발한 것이죠. 

이에 나이 40에 처음으로 돈을 벌어본 윤문식 씨 첫 월급을 아내에게 가져다 주니 “당신이 웬일이냐”며 “정말 고맙다”며 어린 아이처럼 좋아하며 볼에 뽀뽀를 하는 아내를 보고 그제서야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윤문식 씨였습니다. 


10원 한 장 허투로 쓰는 법이 없었던 구두에 갔던 아내 

어느 날 부산 공연을 하는데 중학생 두 명이 꽃다발을 들고 분장실에 찾아왔습니다. 

내용인즉 장학금을 주어서 정말 고맙다는 것으로 그렇게 구두쇠 같았던 아내가 사실 몰래 남을 돕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그릇이 큰 사랑스러운 아내였습니다. 

결혼이랑은 전혀 인연이 없었던 떠돌이 광대가 지금의 아내를 만나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1남 1녀의 자식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연기자로서의 명성도 얻게 되었고 말이죠. 

그야말로 인생 역전 행복한 인생이었습니다. 

하지만 불행은 소리 없이 다가온다고 어느 날 청천병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2. 죽음의 병

제법 흔하게 들을 수 있지만 너무도 무서운 병인 당뇨 

아내가 바로 그 당뇨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증세가 너무도 심각하였기에 갖은 합병증으로 온 몸에서 농이 나오기까지 하고 하루에도 기저귀를 400장 가까이 갈 정도가 되니 간병인도 버티지 못하고 도망갈 정도였습니다.

결국 윤문식 씨와 딸이 번갈아가며 아내를 간호하길 15년

윤문식 씨가 집안 공연을 하던 중 아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아내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은 윤문식 씨 아내는 세상을 떠나기 전 편지 한 장을 남겼습니다.

“아저씨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고마워요”


고통의 정신이 혼미해져 남편마저 못 알아볼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던 아내의 편지였습니다. 

‘나랑 결혼 안 했으면 그런 병에 걸리지도 않았을 텐데…아내에게 좀 더 잘 해줄 걸..’이라며 흐느껴 우는 윤문식 씨 

아내의 대소변을 받아내며 간호를 할 때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외면하던 아내 그 모습이 아직도 꿈에 나온다고 합니다.

2008년에 아내를 떠나 보내고 반쯤 혼이 나가 지내던 윤문식 씨 그는 같은 아파트에 살던 한 여성을 알게 되는데 바로 지금에 재혼한 아내인 신난희 씨입니다.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하던 신난희 씨 마침 

두 사람 다 혼자 사는 상황이었지만 신난희 씨가 워낙에 젊어 보였기에 후에 결혼을 하게 될 상대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윤문식 씨였습니다. 

그러던 중 윤문식 씨가 촬영 때문에 지방에 내려갈 일이 생겼는데 차가 없던 윤문식 씨를 대신해 신난희 씨가 운전 기사를 자처한 것입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차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신난희 씨가 먼저 같이 살자고 제안을 하게 됩니다. 


사별한 전 아내도 그렇고 재혼한 신난희 씨도 그렇고 윤문식 씨가 인물이 그렇게 뛰어난 것도 아닌데 도대체 어떤 매력이 있길래 하나같이 먼저 마음을 주는 것일까요?


신난희 씨가 말하길 그 머리를 열어보고 싶을 정도의 박학다식함에 반했다고 하는데요.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장인의 반대가 있었고

딸들이 혼인신고를 하지 말라고 했지만 신난희와의 결혼을 위해 딸들에게 재산까지 3등분해서 다 나눠줬다는 윤문식 씨

결국 두 사람은 재혼에 골인하게 됩니다.

아내가 사별 후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냈지만 다시금 새 인연을 만나 안정을 되찾게 되니 이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3년 만입니다.

3. 천벌

18살 연하의 아내와 재혼 후 제2의 결혼 생활을 누리던 어느 날 윤문식 씨가 유달리 기침을 심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간호사 출신 아내 신난희 씨는 병원에 가서 사진이라도 찍어보자고 합니다. 

그렇게 큰 병원으로 가서 정밀 검사를 해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윤문식 씨가 폐암 3기라는 것입니다.

“무슨 소리냐 안 그래도 내가 만성 폐쇄성 폐질환으로 7년 동안 꾸준히 정기 검진을 받고 있는데..”

“3개월 만에 갑자기 폐암 3기라니..” 분통을 터뜨리는 윤문식 씨

그런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윤문식 씨에겐 남아있는 시간이 앞으로 7개월 밖에 없는 시한부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한숨을 쉬는 윤문식 씨였습니다. 

그렇게 병원에서 돌아온 부부 내가 7개월밖에 안 남았다니…남은 기간 그냥 술이나 퍼먹고 죽자 자포자기해버린 윤문식 씨

아내에게 “7개월간 행복하게 살다가 헤어지자”고 이별 통보까지 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간호사 출신인 아내가 생각하기엔 무언가 마음에 걸렸는지 “다른 병원에 한 번 더 가보자”며 싫다는 윤문식 씨를 억지로 끌고 가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검사 결과 폐암 1기라고 합니다. 


3기가 아니고 말이죠. 이에 곧바로 시작된 수술 다행히 결과도 좋았습니다. 

“아니 도대체 전에 의사는 왜 3기라고 진단을 한 겁니까?”라는 윤문식 씨의 질문에 이에 의사가 말하길

“과거 윤문식 씨가 본인도 모르게 폐병을 앓고 나은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 흔적을 보고 의사가 착각했던 것 같다”라며 답변을 해주었습니다.

허탈한 듯 한숨을 쉬는 윤문식 씨

만약 아내가 아니었다면 수술을 포기하고 죽었었겠지 자신은 아내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윤문식 씨였습니다. 


아직도 종종 먼저 세상을 떠난 전철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린다는 윤문식 씨 

이를 모를 리 없는 현재의 부인 신난희 씨는 “남편이 돌아가신 형님에 대해 애틋함을 담고 계신다”

“물론 간직하고 있는 것은 좋지만 지금은 나와 사니까 이제는 잊어버렸으면 좋겠다”

  
이에 윤문식 씨는 “지금의 아내에겐 미안하지만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난다”

  
“전 처가 살아있을 때 좀 더 잘해줄 걸 더 좋은 말을 해줄 걸…하필 전처의 기일이 지금 아내의 생일이다”


“그래서 전처의 환생이 지금의 아내라는 생각에 더 잘해주려고 노력한다”

올해 80의 나이가 되는 62살의 아내와 함께 사는 윤문식 씨였습니다. 

윤문식 씨의 이런 인생사에 대해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외모가 그리 빼어난 것도 아닌데 여성들이 이토록 그에게 빠져든다니 자유로운 예술가의 영혼 매력의 소유자인가 보다 라는 생각이신지 아니면 

그토록 헌신적이었던 첫 번째 아내가 세상을 떠난지 고작 1년 만에 새로운 여성을 만나 3년 만에 재혼을 하게 되다니 자유로운 예술가의 영혼이라지만 전처에 대한 도리가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신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건 모르겠고 폐암 3기라고 착각하여 멀쩡한 사람을 죽일 뻔한 의사는 도대체 뭐냐 황당하다 라는 생각이신지 여러분들의 소중한 의견 댓글로 많이 남겨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