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故 김진아 향년 50세로 별세..2번의 장례식까지 치른 숨겨진 이유, 딸 따라 세상 떠난 母 배우 김보애의 마지막 말

아버지, 어머니, 오빠, 남동생, 이모부, 조카, 사위 등등 무려 한 집 안에 13명이 연예인이 있다는 연예계 대표 로열패밀리, 그 속에서 우리는 배우 김진아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1983년의 영화 <다른시간 다른장소>로 데뷔한 김진아는 당시에는 흔하지 않은 섹시한 이미지로 독보적인 인기를 끌었는데요.

한국의 샤론 스톤이라고 불리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대체할 수 없는 이미지로 80년대 아이콘이었던 그녀는 안타깝게도 2014년 8월 우리 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유족들은 그녀의 사망 원인을 함구하며 세간의 궁금증을 끌어내기도 했습니다. 

섹시한 건강미로 80년대 영화계를 이끌었던 김진아는 어떤 이유로 세상을 떠나야만 했을까요? 

오늘은 김진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한 집에만 13명의 연예인?


아버지는 출연작만 600편이 넘는 국민 배우 김진규, 어머니는 한국 최초 화장품 모델이자 배우인 김보애

남동생은 배우 김진근, 올케는 배우 정애연, 첫째 이모부는 개그맨 이규혁, 둘째 이모부는 이덕화, 이모는 김보옥 등등 김진아는 연예계 대표 로열패밀리로 한 집 안에 13명의 연예인이 있습니다. 


그런 가정환경에서 김진아는 어릴 적부터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대해 거부감 없이 커왔습니다. 그 덕분인지 김진아는 83년<다른시간 다른장소>라는 영화로 데뷔하게 되었습니다. 

데뷔 후 김진아는 <수렁에서 건진 내 딸>, <창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밤의 열기 속으로>, <연산일기> 등 쉬지 않고 작품에 출연하며 80년대의 아이콘으로까지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연기 생활은 예상만큼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국민배우의 딸로 시작을 한 김진아는 아버지의 전성기 시절 태어나 세상이 모두 자기 것으로 생각할 만큼 풍족하게 자라왔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명세 때문에 모든 행동거지의 과하게 조심해야만 했습니다. 

부모님이 유명한 분이라 많은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사실이나, 부모님의 사생활 때문에 속앓이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김진규와 김보애는 15살 차이로, 지금이라고 해도 큰 나이 차지만 당시에는 정말 충격적일 정도의 나이 차이였습니다. 

김보애는 20살, 김진규는 35살의 두 사람은 결혼했습니다. 

두 분은 한창 사랑하며 사시다가 김진아가 사춘기에 접어들 시점에 이혼하였습니다. 

15살 연상의 아이가 둘 딸린 김진규와 김보애가 결혼할 당시에는 세기의 결혼식이라고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김진규는 술만 먹으면 주먹을 휘두르고 외도하는 등 참 좋지 못한 가장이자 아버지였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과 더 이상 결혼 생활을 이어 나가기 힘들었던 김보애는 참다, 참다, 견디지 못하고 네 아이와 함께 남편을 떠났습니다. 

당시 사회는 ‘이혼은 무조건 여자의 잘못이다’ ‘무조건 여자가 참고 살아야 한다’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등의 남존여비 사상이 뿌리 깊게 박혀 있었습니다.


가뜩이나 사춘기로 불안한 시점에 김진아는 그런 분위기에 사회에서 부모님의 이혼을 하자 크게 방황했습니다. 

김진아는 무조건 엄마의 잘못으로 이혼한 거고, 엄마로 인해 내가 힘든 거다라고 생각하며 반항했고, 어머니의 가슴에 못을 많이 박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이혼 후 김진아는 경제적으로 힘든 생활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 어머니 김보애는 장사하면서 4남매를 키웠습니다. 

자존심 강하고 대쪽 같은 엄마이기에 자식들은 당시 힘들었던 형편을 몰랐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른 후 어머니가 밝힌 바로는 쌀 한 가마 살 돈도 없었다고 합니다. 

김보애는 한 인터뷰에서 “자녀를 생각하면 함부로 행동해선 안 된다. 김진규와 이혼을 안 했으면 그 많던 재산도 그대로 있었을 것이다.”라며 자식들에 대해 미안함을 내비쳤습니다. 

유책 배우자가 너무 확실한 상황에서도 당시 이혼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는 김보애 모습에서 당시 상황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탑스타가 되었지만…

그러다가 김진아는 우연한 기회로 영화에 데뷔하게 됩니다. 아버지처럼 유명해지기 싫었던 김진아는 초반에는 밀려드는 캐스팅에도 출연을 고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어머니가 영화 촬영을 강력하게 권유하셨습니다. 

김진아는 데뷔하면서 거액의 출연료를 받게 되었고 하루아침에 생활이 변하면서 배우로서의 삶의 눈을 떴다고 합니다. 그 후 김진아는 <수렁에서 건진 딸>, <창 밖에 잠수교가 보인다> 등으로 톱스타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김진아는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다가 <연산일기>를 촬영하며 배우로서 큰 슬럼프에 빠졌고 그 이후 도피하듯 미국으로 넘어가 한동안 모습을 안 보이기도 했습니다.
 

미국으로 도피한 김진아는 배우뿐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인생의 슬럼프도 경험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만나던 애인과도 결별하고 배우로서의 슬럼프도 겹쳐 20대 초·중반에는 굉장히 심각한 고통을 받았다고 합니다. 

주변에서도 김진아가 혹시 나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지, 매일 밤 살폈을 정도라고 합니다.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던 김진아는 우연히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를 계기로 마음을 치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말하길 “거기서 돌아가시는 환자들을 보면서 ‘내가 너무나도 위험한 생각을 했다’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모든 게 감사한 거예요. 살아서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어요”

“자원봉사를 하면서 은혜를 받고 성격이 바뀌었어요. 남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를 통해 오히려 더 큰 도움을 받았어요”라고 밝혔습니다.

그렇게 마음의 안정을 얻은 김진아는 평생의 반려자를 찾아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김진아는 2000년에 미국인 사업가 캐빈과 결혼했는데요.

그 이후에는 아이까지 입양해 기르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특히 유산의 아픔을 겪고 힘들게 꾸린 가정이었기에 감회가 남달랐다는데요.

아쉽게도 그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갑작스러운 불치병

김진아는 2010년 MBC <기분 좋은 날>에 출연해 “불치병에 걸렸다”라는 사실을 고백했습니다.

“어느 날 몸이 붓기 시작했다.”라고 말문을 연 김진아는 “몸이 부어 성형수술 했냐?라는 오해까지 받았다. 검사를 했지만 아무 이상이 없다”라는 말이 들렸다.

“그런데 몸이 아파 죽을 것 같았고 검사 결과 몸의 면역력이 심하게 떨어져 있었다”라고 했다. 

“게다가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몸이 부었고 7호였던 결혼반지가 13호까지 늘어날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라며 고백했습니다.

많이 걱정되는 건강 상태였지만 지난날을 극복하고 다시 방송에 모습을 드러내 다행이라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안심한 것도 잠시 김진아는 2014년 8월 20일 자택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장례식이 치러졌습니다. 

이덕화가 조카 故 김진아 유족을 대표해 취재진과 인터뷰를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진아는 살고 있던 하와이에서 장례를 치른 후, ‘대한민국 80년대를 책임졌던 아이콘이었기에 한국에서도 장례식을 치르자’라는 캐빈의 뜻대로 한국에서 두 번째 장례식을 치렀다고 합니다. 

생전 꽃을 좋아했던 고인을 위해 한국에서 치러진 장례식은 조의금을 전혀 받지 않고 대신 화환을 받았습니다. 

그로 인해 고인의 마지막 순간은 향기가 가득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주로 생활했기에 고인의 정확한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동생 배우 김진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녀의 목숨을 앗아간 정확한 병명에 대해 알 수 있었습니다. 

김진근은 인터뷰에서 “누나의 병명을 사실 말하지 않았다. 빈자리가 중요하고 돌아가신 상황이 더 중요했지, 우리한테는 병명이 중요하지 않았다.”라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김진아는 면역체계 질환 중 하나인 ‘희소병 경피증’을 앓았다고 합니다.

피부에 이상이 오고 혈액순환이 안 되어 몸에 이상이 생겨 결국 종양이 생겼고 그게 암으로 번졌다고 합니다. 

종양 제거술을 받았지만, 미국에 돌아간 후 재발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종양은 무서울 기세로 커지며 위급한 상태가 되었고 결국 유명을 달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경화증은 자가면역성 질환으로 피부가 두꺼워지고 딱딱해지는 병으로 현재 의료 기술로는 완치가 불가하고 진행을 늦추는 치료밖에 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합병증이 생길 가능성이 큰 병이고 5년 생존율이 50% 이하인 무서운 병이라고 합니다. 이 병으로 생전 고인은 얼마나 고통을 받았을까요? 

그 힘든 시간은 감히 짐작도 못 하겠습니다. 

많은 사람의 응원에도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50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 큰 슬픔을 남겼습니다. 

어머니 김보애의 후회

모친인 원로배우 김보애는 “딸이 세상을 떠나기 전 미국 하와이에서 딸과 3개월을 지냈다”

“딸이 서울에 가있으라고 해서 집에 있었고, 미국에 다시 돌아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출발했는데 도착했을 땐 이미 딸이 숨을 거둔 뒤였다”

“아마 그 애는 자기가 가는 걸 부모에게 안 보이려 했던 것이다”

“내가 죄인이다 내가 먼저 갔어야했는데…”라며 눈물을 흘렸는데요.

딸을 먼저 떠나보낸 어머니의 심정은 감히 짐작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딸 김진아가 떠난 후 엄청난 심적 고통을 받았던 3년만인 2017년 어머니 김보애 또한 숨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2016년 뇌종양을 진단받고 1년동안 투병했으나 병세가 악화된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80년대를 이끈 그 시대의 아이콘으로 사람들을 돕는 날개 없는 천사로, 또 한 가정에 사랑받는 아내이자 어머니로 김진아는 인생에서 참 많은 사랑을 받고 갔습니다. 

하늘에서는 그 어떤 고통 없이 편하게 지내시길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