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 큰 아들 참다참다 결국 중대발표 ‘휴대폰 속 비밀’ 공개하자 남자친구 오열..공개된 남자친구 얼굴에 모두 경악


고 현미 씨를 처음 발견한 팬클럽 회장의 정체가 밝혀졌습니다. 


현미 씨의 팬클럽 회장이자 사실상 매니저 역할을 해 온 73세의 김우일 씨는 지난 4일 자택에 쓰러져 있는 현미를 처음 발견해 신고했다고 하는데요. 

현미 씨는 12살 연하의 남자친구를 만나고 있다고 밝혀왔던 터라 남자친구라는 인물이 매니저이자 팬클럽 회장인 김우일 씨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가 현미의 마지막 순간에 함께 있었고 그녀를 정성껏 돌봤다고는 알려져 있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건강했던 현미가 갑작스럽게 별세한 것이 이상하다며 남자친구의 행적에 대해 의문을 표하는 의견들도 있는데요.


김우일 씨는 현미의 별세 직후에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모두 거절한 채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현미의 별세 이틀 후에야 자신이 현미의 별세를 목격한 팬클럽 회장이자 매니저라고 언론사들과의 인터뷰에 나서서 그 이유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의문을 표하고 있죠

자신이 바로 현미의 띠동갑 남자친구였다고 당당히 밝혀도 될 일을 왜 굳이 팬클럽 회장이라고만 밝히며 남자친구면 같이 잘 수도 있는데 자신은 현미와 따로 거실에서 잤다고 다소 신뢰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걸까요?


본인이 현미의 매니저로 평소 늘 그녀를 집에 데려다 준 뒤 자신의 집에서 자다가 그날은 기분이 세해서 마치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의 거실에서 잤다고 하는데요.

현미에게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어떻게 예측했으며 다음 날 현미는 아침에 일어나서 우유를 마시고 김우일 씨가 세탁소에 다녀온 5분 사이에 변을 당하였는데 다음 날 아침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을 했다는 걸까요?

 
현미의 팬클럽 회장이자 지인으로 자신을 소개한 김우일 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미의 임종 순간을 목도하게 된 상황에 관해서도 상세히 이야기했습니다. 

“현미 씨는 아는 원로 목사님의 부탁으로 강남 교회에서 기도문 노래를 열창했고 이튿날 경북 김천 효문화원이라는 곳에서 진행된 행사 공연에 참여하셨는데 먼 일정이라 자신이 ktx를 함께 타고 모셔다 드렸고 당일 행사를 끝낸 뒤 귀가도 함께 했다”고 밝혔는데요. 


이어서 그는 “그 날 따라 왠지 기분이 세해서 현미 선생님의 거실에서 잠을 자기로 했고 그날 선생님은 밤 9시에 주무셨다”고 설명했습니다. 

김 씨가 “기억하기로는 다음 날 아침에 현미 선생님이 일어나셔서 우유를 드셨고 자신에게 세탁소에 맡긴 옷을 찾아달라면서 심부름을 시키셨다”고 설명을 이어갔는데요. 


그리고 김 씨는 “그렇게 세탁소를 다녀왔는데 현미 선생님이 부엌 옆 쓰레기 버리는 베란다에 쓰러져 계셨다면서 급히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119를 불렀고 구급대원들이 도착한 뒤 선생님이 중앙대학교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끝내 사망하시게 된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김우일 씨는 “당시 건강하신 상태였다. 내가 세탁소 갔다온 게 딱 5분이었는데 우유 잔은 탁자에 두고 부엌해 쓰러져 계셨다”며 “119도 금방 왔는데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이미 사망 선고가 떨어졌다”고 말했는데요.

 
그는 “선생님은 지병은 없으셨다. 설거지를 하시다가 심정지가 와서 엎어지신 게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며 안타까워했죠.

‘혼자 계시니까 쓰러진 다음에 케어를 못 받으셔서 돌아가신 게 아닌가?’라는 추측에 대해서는 “아니다. 세탁소 갔다. 온 게 5 분 밖에 안 걸렸다 가슴에 손을 대니까 이미 심장이 멈춰 있었다”

  
“제가 심장 마사지를 하면서 119를 불렀다”고 설명했죠.


이어 “마지막 순간 연세가 90세를 바라보고 있지만 천사의 얼굴이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얼굴이 그렇게 편안해 보였다” 

“하늘에서 천사가 잠자는 모습이었다”고 부연했는데요. 

김우일 씨는 대우그룹 창업주인 고 김우중 회장을 모시는 과정에서 현미와 인연을 맺게 됐는데 생전 김우중 회장이 “현미 선생님을 잘 돌봐라”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미 씨의 큰아들 이영곤 씨는 중대 발표를 했는데 당초 장지는 서울 추모공원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취재진에게 장지를 미국으로 변경했다고 전했죠. 

현미 씨의 남자친구를 믿지 못해서일까요?


한국에는 노사연 한상진 등 가까운 친척들이 있고 거기에 남자친구와 가수협회에 수많은 동료들도 있어서 납골당으로 유해를 모신다면 국내 현미 지인들이 수시로 편하게 현미를 보러 올 수도 있을 텐데요.

장남 이 씨는 “저도 남동생도 미국에서 산 지 오래됐다 이곳에 모시면 자주 찾아뵐 수가 없다며 이제라도 자주 뵙기 위해 미국으로 모시기로 했다”고 설명했죠. 

이어 “다른 무엇보다 혼자서 가셨다는데 가장 마음이 아프다”며

“자식이 둘이나 있고 식구도 많은데 혼자 가시게 한 것은 평생 부류로 남을 일이라고 자책하며 어머니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살겠다”고도 했습니다. 

현미의 또 다른 조카 노사연도 빈소를 찾았는데 노사연은 큰아들 이영곤을 끌어안고 한참을 오열했죠.

이영곤이 “혼자 계시다가 갔어 내가 나쁜 놈이야 우리 엄마 너무 불쌍해 저렇게 가시냐고” 라며 울자

노사연은 “그만해 괜찮아 엄마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야 너무 죄책감 갖지 마”라고 위로했는데요.


노사연은 “너무 충격이어서 먹먹했다. 걱정되었던 게 이모가 혼자 계시니까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구나 싶었다라며 누군가가 소식을 말하길래 말도 안 돼 거짓말이야”라고 생각했다.


“요즘 가짜 뉴스가 너무 많으니까 그랬다 진짜라고 해서 너무 놀랐다”라고 말했죠.

 
영정사진을 본 노사연은 고인을 두고 “하늘처럼 멋있는 우리 이모라며 가장 멋있고 훌륭했던 큰 별”이라고 추모했는데요. 

노사연의 언니 노사봉도 “이모와 일주일 전에도 통화했고 ‘이모 건강하세요’ 하니까 ‘건강하자’고 이야기 나누고 문자도 했는데 이렇게 되니까 너무 기가 막히고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라고 안타까워했죠.


미국에서 체류 중이던 한상진은 이모 현미의 비보를 접하고 서둘러 한국에 귀국했으며 아침 일찍 고인의 빈소를 찾아 상주인 현미의 두 아들과 빈소를 지켰습니다. 


특히 한상진의 모습이 취재진 카메라에 포착돼 안타까움을 샀는데 한상진은 슬픔에 잠긴 표정으로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유족과 부둥켜 안고 오열했죠. 

그도 그럴 것이 한상진은 고인이 생전 각별하게 생각하고 예뻐했던 조카라고 하는데 과거 한 방송에서는 현미가 “가족 한상진과 시트콤을 찍고 싶다”라며 “가족인데 자주 못 본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요. 


또 두 사람은 불후의 명곡에 함께 출연해 애틋한 가족 관계임을 드러내기도 했는데 당시 한상진은 이모가 “나를 어릴 때 업고 키웠다”며 자랑한 바 있죠.

이어진 인터뷰에서 한상진은 “운전 중이었는데 제 옆에 있던 분들은 별세 소식 기사를 보고 제가 놀랄까 봐 말을 안 해주셨다”고 당신을 떠올리며 “가수 현미 이전에 저한테는 이모이지 않냐 저에게는 엄마 같은 분이다”

“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렀고 이모를 ‘마’라고 불렀었다라”고 그녀를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는 제가 드라마 하얀 거탑과 이산으로 신인상을 받았는데 한 회도 안 빼놓고 다 봐주셨다”라며

“제가 발음이 좋지 않은데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신인 때 쓴 소리를 많이 들었다. 너무 감사하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쏟았는데요.


가수 배일호와 함께 가장 먼저 빈소를 찾은 현숙은 “현미는 우리 가수들의 버팀목처럼 늘 푸른 소나무 같은 분이었다”며

“엊그제까지 마치 방송 녹화를 해서 지금도 큰 울림이 있는 멋진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듯하다 오래 계실 줄 알았는데 너무 슬프고 아쉽다 하늘에서도 많은 분께 힘이 되어 주는 노래를 부르셨으면 좋겠다”고 애도했습니다.


하춘화도 “100세 이상 살 줄 알았는데 6세 가수 데뷔 때 같이 한 무대에 섰던 분이고 첫 우상인 분”이라며

“아줌마 엄마라 부르던 대선배인데 지금도 춘화야라고 부른 유일한 분이다”

“이런 선배들이 우리 가요에 든든하게 지켜주셨는데 한 분씩 떠나니 마음이 너무 허전하다”며 비통함을 전했죠.

 
장미화와 한지일, 미혜경은 “3주 전에 배웠던 분이고 정말 정정해서 사진도 같이 찍었는데 갑자기 별세 소식에 충격 받았다”며

가수 진성도 “최근 근황에 넘어져서 다리 안 좋다는 얘기 들었는데 건강상은 문제 없을 정도로 건강해 보였다며 한결같은 모습의 비보는 상상도 못했다”고 슬퍼했습니다. 


대한가수협회 이자연 회장은 정말 이렇게 냉정하게 가실 수가 있을까라고 허망해 했는데요.

13일에 가수협회가 주관하는 무대에 서신다고 약속했는데 그 약속도 안 지키시고 며칠만 더 있었어도 그 무대에 설 수 있었는데라며 안타까워하며 비통한 심경을 전했죠.

영정 사진 속 현미는 지난 60여 년간 대중에 보여준 모습 그대로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빈소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국민의 힘 김기현 대표, 가수 나훈아, 남진, 이미자, 정수라, 태진아, 장윤정, 박상민, 송가인, 유승민 대한탁구협회장 등 각계 인사들의 조화가 빼곡하게 들어서 있었는데요. 

장남 이영곤 씨는 “집 문 밖에서는 대한민국의 대중가수 현미였지만 집에 들어오면 그 순간부터 두 아들의 어머니였다”며 “최근까지도 아침 저녁으로 차 조심해라 건강해야 한다 말씀하시던 평범한 어머니였다”

  
“자식이 둘이나 있고 친구분도 많으신데 혼자서 말 없이 가시게 됐다.  엄마 사랑해요. 이 말밖에 못하겠다”며 흐느꼈습니다. 


이어 그는 현미와 나눴던 메시지를 공개하면서 “항상 행복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다”며 “주변에서 제가 어머니와 나누는 대화를 보고 여자친구냐고 물을 정도로 다정했다”

  
“어머니가 저와 동생과 연락하는 걸 유일한 낙으로 생각하셨던 것 같다” 고 전했는데요.


타지에서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온 이 씨는 “평소 어머님과는 카톡이나 영상 통화를 자주 했다 한국 시간으로 아침이면 어머니께서 여러 가지 좋은 이야기와 이모티콘을 보내주시곤 했다”며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이 씨가 공개한 카톡에는 예쁜 꽃 사진과 좋은 글, ‘이따만큼 사랑해’ 등의 문구가 쓰여진 귀여운 이모티콘 등 우리 네 어머니들이 자식에게 보내는 아주 평범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죠. 


그는 한국에 도착해 빈소 일정을 잡고 어머님 댁에서 잤는데 어머님은 방에서 주무시고 그냥 내가 어머님께 다니러 온 것 같았같다고 말했는데요. 


시종 담담하게 어머니를 추억한 이 씨였지만 어머니께 한 말씀을 부탁하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그 얘기는 “죄송하다”며 끝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대한가수협회 주관해 오일장으로 장례를 치르게 된 데 대해서는 “어머님도 가수시고 가요계에서 대선배님이시니까 가수 협회장으로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에 흔쾌히 동의했다”며

“조문을 많이 오시든 안 오시든 엄마의 마지막 가시는 길이니까 하루라도 더 해 5일 동안 편안히 모시고 가자고 그렇게 결정했다”고 말했죠. 


이 씨는 “저와 동생이 있고 손주 손녀도 많은데 가실 때 혼자 가셔서 너무너무 마음이 아프다”

“분명히 편안하고 좋은 곳에 가셔서 지금쯤 저를 쳐다보고 계실지도 모른다”며 “어머니께서 영원히 국민 여러분들 가슴 속에 깊이 기억되는 가수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시 한 번 애도해 주시고 슬퍼해주시는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습니다. 

1월 mbn <겉과 속이 다른 해성 남녀> 출연 당시 현미 씨는 “5년 후 데뷔 70주년 콘서트를 꼭 할 거다 그때까지 가는 게 나의 소망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건강에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는데요.


다시는 그녀의 입을 통해 밤 안개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모쪼록 그녀가 이제는 고통 없는 곳에서 편안하게 쉴 수 있기를 바라며 향년 85세 가수 현미 씨의 명복을 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