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 스승’ 작곡가 박현우 아내와 사별 후 한평생 일만 했다더니..멀쩡히 살아있다? 고소까지 당해…결국 밝혀진 진실

국민 mc 유재석의 합정역 5번 출구라는 노래를 15분 만에 작곡해 박토벤으로 유명세를 얻은 작곡가 박현우

그는 지금도 작곡 의뢰는 물론 방송 출연에 광고 출연까지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며 대세 작곡가로서 전성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한 방송에서 절친한 사이인 작곡가 정경천에게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하게 되는데요.

“혼자 사는 게 자랑도 아니라서 아내와 사별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평소 재수 씨와 다복하게 사는 자네를 보면 참 부럽다”


“그런데 나는 혼자 집에 들어오면 너무 적막해 365일 사무실에 나온다”며 아내와 사별해 외롭게 지낸다는 안타까운 처상을 공개하자 박현우의 눈에도 정경천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습니다. 


그런데 이 방송을 무심코 지켜보던 한 여인이 함께 눈물을 흘렸는데 그건 놀랍게도 사별했다는 박현우의 아내였는데요.

분명 방송에서 사별했다고 말한 당사자가 멀쩡하게 살아 tv 프로그램을 지켜보는 상황이 벌어진 것인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사연일까요?

더불어 박현우가 왜 후배로부터 고소를 당했는지 박현우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불혹 넘어 결혼 그러나…

1942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박토벤 아니 박현우는 어린 시절 집이 안동극장 바로 뒤에 있어 저녁만 되면 극장에서 손님 오라고 축음기로 음악을 틀다 보니 매일 유행가를 들으며 자라게 됩니다. 


그래서 국민학교 1학년 때부터 유행가 박사가 되어 그걸 부르고 다녔는데 그러면 당시 선생님들이 어린 놈이 뭘 한다고 그리 구슬픈 노래를 부르냐면 막 배꼽을 치며 웃곤 했습니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나름 음악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보니 이후 중학교 때도 학교 대표로 나가 노래를 부르곤 했는데요.

그런데 한 번은 음악 시간에 선생님이 C장조 D장조 이런 것들을 시켰는데 반 아이들이 모두 못하자 ‘박현우는 할 줄 알겠지’ 하고 시켰는데 똑같이 못해버리자 그 때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이날부로 음악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런데 당시 악기가 없으니까 목공소에 가서 나무 합판으로 까만 건반을 칠해 소리 없는 건반을 만들었고 그리고 그걸로 솔솔미미레도라 이런 식으로 혼자 계명 연습을 해 노래 하나를 다 외워가지고 교회에 가서 풍금을 눌러보면 계이름이 모두 다 맞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성인이 된 그는 군대를 제대하고 1968년 은방울 자매의 ‘포항 아가씨’를 작곡하면서 마침내 대중가요계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이후 문주란 현미 등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들과 작업을 하며 작곡가로서 이름을 떨치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저작권에 대한 개념이 없던 탓에 작곡만 회사는 밥 벌어 먹기가 쉽지 않았는데요.

그게 어느 정도였냐면 소주 한 병에 짜장면 한 그릇이면 곡 하나가 왔다갔다 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도저히 먹고 살 수 없어 작곡을 때려 치우고 10인조 악단을 구성해 주로 야간 업소 등에서 연주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런 와중 무대에서 무용을 하는 18살의 연하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됩니다.


당시 아내는 외국에서 무용을 하다 잠시 한국에 왔을 때 무대에서 박현우를 만났던 것이었고 그래서 하루는 “선생님 저 공연 끝나고 다시 외국으로 떠나요” 라고 했더니 당시 박현우가 남자답게 “소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나이도 있는데 내한테 시집이나 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말에 18살 연하의 아내는 별 생각 없이 듣고 그냥 집에 돌아왔고 그런데 집에 와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 박현우가 경제력도 있고 잘생기고 옷도 잘 입어서 그래 이 정도면 결혼해도 되겠다 싶어 두 사람은 짧은 연애 후 바로 결혼식까지 올리게 됩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결혼식을 올리자 당시 패티김 길옥윤 등 수많은 연예인들이 총출동해서 축하해주며 매스컴까지 탔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달콤한 신혼 그리 오래가지 못했는데 이후 아내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고 집을 나와 잠적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관련해 박현우의 아내가 고백하길 “무용가로 활동하던 20대 중반 불혹을 넘긴 남편을 만나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


“당연히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그때는 내 나이가 남편에 비해 너무 어렸고 서로 가치관 등이 많이 달라 결혼 생활을 한다는 게 녹록치 않았다”

“인기 있는 작곡가인 남편 주변에 곡을 받으려는 여자들이 많았고 그리고 이때는 자가용이 많지 않았던 때라 남편이 여자 가수들을 차로 데려다 주곤 했다”


“한 번은 립스틱이 묻은 음료수병이 운전석 옆자리에 놓여 있기도 했다”


“당시 나는 어리고 소심하다 보니 그런 걸 직접 물어보지는 못하고 속으로만 앓으며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남편에게 숨겨진 딸이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듣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참다 참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결혼 생활 6개월 만에 무작정 집을 나와버렸다”


“그리고 이때 더는 살고 싶지 않아 해서는 안 될 나쁜 선택까지 시도했고 그런데 실패하자 이번에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생을 마감하고자 일본까지 가서 나쁜 선택을 시도했었는데 그럼에도 살았다”


“이 때의 그 후유증으로 앉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는 병명 없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래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는데 그 후로부터 일주일 있다가 앉게 되고 그다음 또 서게 되고 그다음 또 걷게 되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신앙심이 움튼 박현우의 아내는 그 길로 목사가 되어 이후 30년간 목회자의 길을 걸었고 그리고 세월이 흘러 하루는 tv를 보는데 30년 전 헤어졌던 남편 박현우가 방송에서 “내 아내는 살았는지 천국 갔는지도 모른다”며 눈물을 흘리자 그제서야 미안하고 묘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재회

박현우의 아내는 고민을 하다가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114에 전화를 걸어 박현우 작곡가 사무실 번호를 물어 결국 전화를 걸었고 그러자 마침 남편 박현우가 전화를 받자 “30년 만에 그녀가 저 금주예요. 저 기억하세요? 저 목사 됐어요” 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박현우가 “너랑 결혼한 뒤로 헤어져 지금까지 쭉 혼자 살고 있는데 내가 너를 어떻게 기억 못하겠니 나는 네가 어디 시집 가서 잘 살고 있는 줄만 알았다”라고 하며 두 사람은 30년 만에 긴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한편 사실 이때만 하더라도 박현우의 아내는 그저 안타깝고 해서 안부 정도만 물어보려고 전화를 걸었던 거지 다시 만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는데요.


그런데 며칠 후 시누이한테 전화가 와 “우리 오빠 한번 만나보지 않겠냐?”고 하자 “이미 지나간 추억은 간직하고 끝나렵니다”며 거절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후 시누이로부터 전화가 세 번이나 더 와 계속해서 “만나보지 않겠냐?”고 하자 당시 박현우의 아내는 목사라는 사람이 이를 계속 거절하면 덕이 안 될 것 같고 또한 남편과 딸의 영혼을 살려야겠다 싶어 즉 전도를 하겠다는 마음으로 일단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약속한 식당에서 마침내 재회를 했는데 그런데 30년 만에 봐서 그런지 서로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고 그런 와중 박현우가 먼저 말을 꺼냈는데 아내의 안경을 보고는 “눈이 되게 나쁘네” 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두 사람은 조금씩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 박현우의 아내가 고백하길 “당시 내가 거기에 앉아 무슨 할 말이 있었겠나?”

“세월이 흐른 남편의 모습을 보니 그저 안쓰럽고 측은했다”

“과거 남편이 생활비도 제대로 안 주고 나를 홀대했었는데 그래서 그런 점을 따졌더니 그토록 강인했던 남편이 ‘자기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내가 미쳤었나 보다’라고 자책을 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솔직히 놀랐다”

 
“그러면서 또 하는 말이 ‘여자는 결혼하면 집에서 조신하게 밥이나 하고 그러는 줄 알았고 잘해줘야 하는지 몰랐다’ “


” ‘자기와 평생 같이 살 줄 알았는데 그렇게 떠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 ‘당시 내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해 정말로 미안하다’고 하는데 솔직히 이때 마음이 많이 찡했다”라고 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두 사람은 30년이라는 긴 시간 끝에 다시 만나 많은 대화를 통해 그동안 쌓여 있던 오해와 상처를 조금씩 풀 수 있었고 그러다 일주일 후 박현우가 아내에게 두 번째 프러포즈를 하며 마침내 두 사람은 다시 결혼하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 박현우의 아내가 고백하길 “남편과 재회하고 며칠 후 꽃다발과 반지를 끼워주면서 남편이 나에게 두 번째 청혼을 했다”


“당시 했던 말이 남은 생애를 너를 위해 바치고 너를 위해 살겠으니 같이 살자”고 하는데 이 또한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나 역시 “그동안 못했던 내조에 전념하는 삶을 살겠다”며 남편의 청혼을 수락했다.

 
“60이 넘어 다시 받는 프러포즈는 20대 중반에 받았던 것과 완전히 다르더라”

“아무튼 우리 남편이 내가 떠난 이후로 여자에 대한 자신감도 사라지고 당시 큰 충격을 받아 한 10년을 폐인처럼 지내다가 이후 다시 정신 차려 지금의 사무실을 차렸다고 하더라”

“그리고 나를 잊지 못해 여태 혼자 살았다고 하더라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부부였지만 지난 34년을 전혀 다른 곳에서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다른 길을 걸어왔고 그런데 그 길에서 남편은 새 반려자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33년 만에 만난 남편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내 유일한 부인이야’라고 했습니다”

한편 작곡가 박현우는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지난 10월 후배 작곡가 이 모 씨와 함께 가요작가협회 신임 회장에 누구를 추천할지를 놓고 갈등을 벌이다 박현우가 추천하는 신임 회장을 후배가 지지하지 않자 후배에게 손찌검을 해 이에 후배가 박현우를 서울 강서경찰서에 손찌검 혐의로 고소를 했습니다. 


그렇게 입건된 그는 이후 약식 기소가 되어 벌금 50만 원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벌금 50만 원의 수준은 멱살잡이 밀치는 수준의 행위라 사실 엄청 심하게 한 것 같진 않은데 아마도 후배가 화가 나서 신고를 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