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 식객 임지호 향년 65세로 돌연 별세, 뒤늦게 밝혀진 사인에 모두가 황망..결국 사랑한 3명의 어머니 곁으로..

“엄마들의 힘은 정말 대단합니다”

“얼음 깨고 그 한겨울에도 옷을 빨고 하는 어머니들의 노고가 바로 우리나라의 부의 기틀을 잡았다고 봅니다”

  
“그 엄마들의 희생 그 노고가 오늘 우리가 이렇게 세계가 부러워하는 곳으로 만들어 놨습니다”라고 말하며 어머니의 위대함을 최고의 가치로 둔 임지호

평생을 방랑하며 누구보다 어머니의 사랑을 그리워하던 방랑 식객 임지호는 결국 어머니를 만나러 천국에 갔습니다.

오늘은 임지호 셰프의 가슴 아프지만 아름다웠던 삶과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셰프가 되기까지 어떤 인생의 여정이 있었는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3명의 어머니


1956년 임지호는 경북 안동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주워왔다’는 수군거림을 들으며 자라야했는데요.

임지호의 아버지는 한의사이며 이미 4명의 딸이 있었지만 독자가 대를 잇기를 원했기 때문에 임지호의 생모를 데려와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러나 집이 너무 가난해서 먹을 것이 없어 임신한 어머니를 내보내게되는데요.

임지호는 그렇게 다른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한의사지만 가난했던 이유는 돈을 받고 치료해주는 것이 아니라, 시골 한의사로써 사람들이 오면 치료해주고 그 댓가로 달걀, 닭 등 주는데로 받는 식이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임지호는 3살 때 친어머니와 생이별하고 아버지와 양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양어머니는 친아들은 아니었지만, 정성으로 임지호 를 돌봐주었다고 합니다.

3살 때 헤어진 친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 는데 어릴 때 몇 분이 와서 “잘 큰다”라고 말하고 간 것을 잊지 못하고 있었 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한 분이 친어머니였을 것으로 짐작된다고 합니다.

그렇게 임지호는 평생 단 한 번도 친어머니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훗날 친어머니는 일찍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라고 하는데요.

그것도 확실하지 않았고 나중에는 친어머니 산소까지 없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어렸을 때 어렴풋이 느꼈 던 친어머니에 대한 기억으로 평생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게 되었 습니다.

양어머니는 임지호가 22살 때쯤 돌아가셨는데 너무 죄송해서 엄청나게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친아들 못지않게 어린 임지호를 잘 키워주셨는데 자기를 혼이라도 내면 ‘친엄마가 아니라 그렇다’라며 자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의 오해를 받으며 억울하고 힘들게 살았을 양어머니를 생각하니 너무 죄송해서 애끓는 심정 이었다고 합니다.

그에게 양어머니도 소중한 어머니였습니다.


임지호가 자연의 재료를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던 2009년경 지리산 자락 에서 우연히 밭에서 냉이를 캐던 김승규 할머니를 만나게 되는데요.

“밥 먹었 냐?”라고 물어봐서 “안 먹었어요”라고 하니까 바로 자기 집으로 데려가 그 냉이를 가지고 된장찌개를 끓여서 밥을 해주었습니다.

아무것도 안 들어 가고 냉이와 된장 정도만 들어간 냉이 된장찌개였는데 그것을 먹고 오랫 동안 사무쳤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녹아내리는 느낌을 받고 그 할머니를 길에서 만난 어머니로 삼게 됩니다.


그래서 때때로 찾아뵙고 요리도 해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이 기회에 돌아가신 새어머니를 위한 108가지 음식을 찾아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로 만든 다큐멘터리 영화가 바로 ‘밥정’입니다.

어렸을 때 동네 같은 또래들은 임지호를 ‘주워온 자식’이라며 놀려댔고 때문에 그는 하루 종일 혼자 강가에 가서 앉아 있곤 했 습니다.

주변에 마음을 붙이지 못한 그는 10대 때부터 거의 10여 년간 걸핏하면 집을 뛰쳐나와 바깥세상을 떠돌았습니다.

그러면서 마음 한구석에서는 생모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으로 ‘어딘가에서 어머니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품었다고 합니다.

일본으로 밀항하면 돈을 벌 수 있다라고 해서 시도해 본 적도 있었는데 포기하고 식당에 들어가 잔심부름과 청소 등을 해 주며 취직했습니다.

가출했다가 돌아온 그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가르쳤다 고 합니다.

첫째,남의 물건은 티끌 하나도 탐내지지 말라

둘째, 남의 집에서 일할 때 는 주인이 일어나기 전에 일어나라

셋째,조상에게 부끄러운 말과 행동을 하지 마라

또한 한의학을 공부한 아버지는 그에게 “자연의 모든 재료가 생명을 살리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고 일러줬습니다.

그가 훗날 자연 요리 연구하게 된 바탕이 그 말씀 속에 있었습니다.

방랑 식객

그는 전국을 떠돌면서 차를 잘 타지 않고 걸어 다니며 방랑했고 당시 자신의 형편에서 접근하기 쉬웠던 식당에 가서 일하는 것을 선택하며 10대 때부터 요리에 입문했습니다.


양식, 중식, 한식, 일식, 경양식, 라면, 분식 등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다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그는 누구에게도 배우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다가 20살이 되면서 음식에 평생을 걸기로 다짐하고 자나 깨나 음식 생각만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1977년 23살 때 <묘기 대행진> 이라는 방송 프로에 ‘연탄 배달 달인’으로 TV에 처음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연탄을 최대 12장까지 한 줄로 들고 나를 정도로 달인의 경지에 올랐는데 자기가 연탄 배달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구경할 정도로 거의 쇼 같았다고 합니다.

임지호는 뭐를 해도 몰입해서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연탄 배달의 달인 도 될 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연탄 배달 일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혼자서 요리를 공부했고 다양한 시도를 했습니다.

그 후 그는 결혼하게 되었는데요.

배 속의 아이와 아내를 먹여 살리기 위 해 1980년대 사우디아라비아 건설 현장에서 주방장으로 일한 적이 있었습니다.

28살에 본부 주방장으로 발탁되어 무려 2,000명 분의 음식을 했다고 합니다.

그 후 한국으로 돌아와 30살에 한 호텔의 주방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나름 잘 나갔는데 안정된 삶을 포기하고 사표를 쓰고 나왔습니다.

이후 숱한 실패를 겪었는데 좌절하지 않고 요리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끊임없이 했습니다.

그는 실패에도 실망하고 술을 마셔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실패 하면 다시 시작한다고 합니다.

임지호는 가난 때문에 첫번째 아내와 헤어졌다고 합니다.

무척 고통스러운 기억이고 두 아이의 엄마라고 합니다.

음반 업계에서 일하던 동갑 아내 를 만난 것은 40살 때쯤이었습니다.

이후 그에게 돈과 명성이 함께 들어 왔습니다.

음식으로 세계인과 소통하겠다는 꿈을 꾸게 된 것은 전적으로 아내의 도움 덕분이었다고 합니다.

2000년대 들어 그는 다양한 국제 행사에 참여하며 우리나라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먼저 인정을 받게됩니다.

특히 2006년 미국의 가장 유명한 요리 관련 잡지 푸드아트의 표지 모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놀랍게도 단 한 번도 요리를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었다는데요.

그렇다면 그는 누구에게 배웠을까요?

물론 처음에는 식당에서 주방장에게 배웠겠지만, 그는 전국 곳곳을 다니면서 방랑길에서 만난 할머니, 어머니들에게서 음식 만드는 법을 배웠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해외에서도 그곳의 어머니들에게 배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자신의 스승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알고 보면 그는 이승에서는 그리운 생모를 만나지 못했지만, 이 세상 모든 어머니를 어머니로 삼고 그 사랑의 위대함을 느끼며 음식을 배우는 스승 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품으로…

고인은 향년 65세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임지호 씨가 자는 도중 갑작스럽게 심장마비가 닥쳐 대응도 못한 채 황망하게 별세하셨다고 합니다.

고인의 빈소에도 조문 행렬이 이어졌는데요. ‘더 먹고 가’에서 함께한 개그맨 강호동, 황제성을 비롯해 ‘식사하셨어요?’에 출연했던 배우 김수로 등이 빈소를 찾아 명복을 빌었습니다.

이밖에도 김혜수, 송윤아, 한지민, 한효주, 신현준, 박정수, 이금희, 이영자 등이 빈소를 찾았습니다.

그림도, 요리도, 거의 모두 독학으로 경지에 오른 그는 ‘음식으로 고치지 못 하는 병은 의사도 고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며 음식의 중요성을 설파하기도 했습니다.

자연 재료를 자기가 직접 먹어보고 테스트하는데, 자연 요리를 연구하다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며칠씩 자다 깨어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임지호는 지병도 없었고 너무나 건강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셔서 다들 충격을 받았습니다.

혹시 또 자연 재료를 직접 드시다가 컨디션이 안 좋은 상태에서 치명적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진 않았을까? 이 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임지호 님이 살아계셨다면 더 많은 일을 해내셨을 것 같은데 갑자기 일찍 돌아가셔서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평생 그리워하던 어머니를 만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