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69세 여고시절 이수미 ‘하늘의 별’이 되다…파란만장했던 인생과 그녀가 세상을 떠나며 남긴 마지막 목소리


여러분 혹시 이 분을 아시나요?

1970~80년대에 인기가 많은 가수였고 당시 김추자, 정미조와 함께 3대 트로이카라 불렸던 가수 이수미 씨인데요.

‘여고시절’의 가수 이수미 님의 별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녀는 폐암 3기 판정을 받고 서울 신촌의 세브란스 병원에서 투병을 하다 2021년 9월 2일 향년 69세의 나이로 별세하셨습니다.

그녀는 인기 절정의 순간에 터진 연이은 사건 사고로 내리막길을 걸어 무려 20년간 노래를 부를 수 없었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 묵묵히 가수의 길을 갖고 봉사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던 이수미 씨

폐암 3기로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던 고 이수미 님은 투병 중에도 입원 직전까지 자신의 신곡을 녹음하면서 노래에 대한 의지를 불태웠는데요. 

그녀의 눈물 겹도록 아름다운 인생에 대해 전해드리겠습니다.

한 순간에 톱스타로…

이수미 씨는 1952년 전라남도 영암에서 8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노래의 소지를 보여 1969년 목포 kbs 노래자랑을 통해 데뷔했습니다. 

당시 목포여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녀는 언니들 옷을 빌려 입고 가발을 뒤집어 쓴 채 무대에 올랐습니다. 

결과는 5주 연속 우승이었습니다.

이듬해 목포 mbc가 생기면서 연말 노래자랑 결산 방송을 보러 온 한 음반사 사장의 눈에 띄어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데뷔 초 트로트 가수로 시작한 그녀는 별 반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작곡가 김영광 씨를 만나 1972년 발표한 팝계열곡의 그 유명한 ‘여고 시절’이 당대의 히트곡이 되면서 톱스타 반열에 올랐습니다.

하루 아침에 신데렐라가 된 거나 다름없었죠.

올해 연말 신인 가수상도 거치지 않고 곧바로 mbc 10대 가수와 tbc 7대 가수상을 수상하는 진기록을 남기며 톱스타의 자리에 올랐는데요.


귀여운 외모에 달큰한 슬픔이 묻어 있는 매혹의 허스키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특유의 음색으로 높은 인기를 누린 그녀는 젊은 남성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김추자 정미조와 함께 여가수 트로이카로 어깨를 나란히 했습니다.

이 밖에도 ‘내 곁에 있어주’ 등 많은 히트곡과 함께 1970년대를 풍미했습니다. 

당시 유명한 라디오 DJ 이종환 씨를 만나 그가 작사해준 ‘두고 온 고향’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음악다방 DJ로 활동하던 이종환 씨는 1964년 mbc 라디오 pd로 입사한 뒤 국내 라디오 황금기를 이끌었죠.

 
1970년대 <별이 빛나는 밤에>, 1980년대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는 2011년 폐암 진단을 받고 2년 뒤 2013년 향년 75세로 하늘의 별이 되었습니다. 

1970년대 초 이수미 씨의 매니저라 자처할 정도로 이종환 씨가 이수미 씨의 재능을 높이 사주었고 그래서 더욱 승승장구하던 이수미 씨에게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사고가 터지게 됩니다. 

연이은 시련으로 몰락..

그녀의 나이 이제 겨우 22살인 1973년 7월 지방 공연이 끝나고 이틀의 휴가를 얻어 동료 가수들과 대천 해수욕장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저녁 무렵 혼자 해변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괴한이 나타나 순식간에 이수미 씨를 공격했습니다.

당시 경황도 없고 또 자신을 해칠 만한 사람도 생각나지 않아 그냥 “내가 했다”라고 거짓 자백을 했습니다.


동료 가수들이 밤샘 조사를 받는 모습을 보면서 문제가 너무 커질까 봐 두려웠다고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 사고를 낸 것으로 종결된 이 사건은 사실은 모 방송국의 유명 dj가 저지른 짓이라는 소문으로 바뀌어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문제가 커지자 가수협회에서는 그녀를 제명했습니다. 

생사를 넘나들 만큼 큰 상처였고 게다가 여자로서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빠진 피해자였지만 이미지만 추락하고 사건이 종결된 거죠. 

각 언론 지면에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실려 많은 사람을 경악케 했습니다. 

연예 활동에 염증을 느낀 그녀가 처지를 비관 스스로 사고를 냈다는 끔찍한 내용이었습니다.

정말 끔찍한 사건이었고 이수미 씨는 엄청난 상처를 입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이수미 씨는 수술로 생명을 간신히 건질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후유증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 다시 실현 1년여 뒤에 제재가 풀려 ‘내 곁에 있어주’로 재기에 성공했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또다시 사건이 터집니다.


1975년 연예인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어 무기한 출연 정지를 받아 무려 7년 동안 활동이 금지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사건의 내막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이수미 씨 생일에 집에 놀러 온 동료 연예인들이 대마초를 피웠고 다들 그러니까 막기도 어려웠는데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죄로 다른 사람들 때문에 이런 피해를 받게 되어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마음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결국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며 이수미 씨는 낮에는 화장품 회사의 홍보사원으로 백화점에서 근무하고 밤에는 밤무대에 올라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끊임없이 재기를 꿈꾸었지만 사회정화 추진위원회의 징계로 번번이 좌절되어 절망의 나날을 보내게 됩니다. 

천사표 남편

이렇게 20년 넘게 이수미 씨는 은둔 생활을 하며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재기하겠다는 욕심마저 다 내려놓고 작은 교회에서 신앙 생활을 하던 중 97년 현재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됩니다.


다행히 천사표 남편이라 부를 정도로 좋은 사람을 만나 안정을 얻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고아원에서 봉사활동을 할 때 수양딸 정은이를 만났습니다. 

남편과 전처 사이에 낳은 딸 정아와 함께 두 아이와 부부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친구처럼 지냈다고 합니다.

이수미 씨는 긴 터널을 지나 20년 만인 2003년에 다시 가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51세의 신곡 <또 다른 세상에서>를 발표하는 등 대중가수로서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며 복음성가 활동도 펼쳤습니다.


가수들의 권익 보호와 권리 신장에도 관심을 갖고 대한가수협회 이사와 감사직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 12월에 폐암 3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욱 마음이 아픈 것은 이수미 씨가 투병 중이던 2021년 5월에도
신곡 별이 <빛나는 이 밤에>를 발표하는 등 노래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이 곡이 자신의 마지막 곡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이미 주변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니면 생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혼신을 다해 곡 작업을 하였던 것일까요?

그녀가 마지막으로 녹음한 곡은 2021년 5월에 ‘별이 빛나는 이 밤에’는 너무나도 구슬픈 노래입니다.

고 이수민 님에 대한 사연을 몰랐다면 단순한 연인에 대한 노래라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렇게 노래를 들어보게 되니 이수민 님이 폐암 3기로 극심한 고통을 받으며 생과 사를 생각하며 곡 작업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인에 대한 곡이 아니라 삶의 이별을 앞둔 사람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그런 이별의 노래 같이 들려서 더욱 구슬프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배우 이광수, 한지일, 가수 장미화, 임희숙 등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추모했습니다.


그녀의 노랫말처럼 그녀가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되기를 바라며 부디 평안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