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치매까지..” 77세 윤복희 안타까운 투병 근황, 무대에서 기절할 정도로 아프다니…

가수 윤복희는 1950~1960년대 세계를 돌며 멋진 무대를 선보였던 가수였습니다

그런 그녀 한 동안 방송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요.

알고 보니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녀의 생애는 어땠는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루이 암스트롱과의 인연

가수 윤복희, 본명은 윤복희 1946년 출생으로 올해로 77세를 맞이한 그녀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였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가수이며 현재는 목사가 된 윤한기 씨가 그녀의 작은 오빠이기도 합니다. 

충남 보령이 고향인 윤복희 씨는 어릴 때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1952년 6살의 나이로 뮤지컬 배우로서 데뷔하게 됩니다. 


이처럼 어릴 때부터 넘치는 재능을 뽐냈던 그녀는 미국의 전설적인 음악가인 루이 암스트롱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하는데요.

윤복희 씨가 13살 14살쯤 무렵 워커힐 호텔에서 오프닝 공연이 있었고 거기에 루이 암스트롱이 초대되었다고 합니다. 

톱스타 루이 암스트롱의 방문은 당시 대한 뉴스에 나올 정도로 큰 사건이었는데요. 

루이 암스트롱은 한국에서의 공연에 함께할 자신의 모창을 잘하는 여자 아이를 찾았습니다.

윤복희 씨는 5~6살 때 루이 암스트롱의 모창 때문에 데뷔를 할 만큼 루이 암스트롱의 모창에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결국 윤복희의 모창을 듣게 된 루이 암스트롱은 그녀를 자신의 쇼에 게스트로 초대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루이 암스트롱의 한국 공연 마지막 무대에 나와 노래를 하였고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고 합니다.

이 후 루이 암스트롱은 그녀에게 파격적인 대우로 계약을 제시하였습니다만 그녀의 기존 소속사와의 문제 때문에 계약이 이루어질 수는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계약 조건으로 숙식을 제공하며 주급 40불을 제시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40 불이면 집 한 채 값이었다고 합니다. 

소속사 때문에 계약에는 응할 수 없었지만 그와는 별개로 그녀는 루이 암스트롱을 아빠라 부를 정도로 친분을 유지했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어려운 환경에서 힘겨웠던 윤복희 씨

루이 암스트롱 역시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기에 항상 주위를 챙기는 고마운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는 윤복희 씨

이후 루이 암스트롱과의 특별한 인연을 통해 필리핀과 홍콩 싱가포르를 거쳐 영국, 독일, 스페인, 스웨덴 미국으로 건너가 라스베가스에서 1976년까지 활동하며 월남전 미군 위문 공연에도 초청되는 등 국제적인 활약을 펼치게 됩니다.


풍부한 성량과 스테이지 매너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압도적인 무대를 보여준 그녀는 1950~1960년대의 빅3 이미자, 패티김과 어깨를 나란히 한 시대의 아이콘이었습니다.

미니 스커트 사건


윤복희 하면 떠오르는 것 바로 미니 스커트 

윤복희는 한국의 미니 스커트를 처음 알린 인물로 유명인 가운데 최초로 미니스커트를 착용해서 당시 장안의 화제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윤복희 씨의 미니스커트 모습은 파격적이었고 많은 젊은 여성들이 그런 윤복희 씨를 따라 미니 스커트를 입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1967년으로 당시에는 여자가 다리를 드러내는 것이 금기시되던 때였습니다. 

정부에서는 과도한 초미니 스커트에 대해 치마 길이 단속을 하기도 하는 등 언론 그리고 나머지 대중들은 미니스커트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유명했던 사건 루머 바로 ‘윤복희 계란 세례 사건’인데요.

윤복희 씨가 공항에서 미니스커트를 입고 귀국하다가 군중들에게 계란 세례를 맞았다는 것은 매우 유명한 루머이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당시 신세계 백화점의 광고 연출 영상을 본 일부의 사람들이 오해를 한 것으로 실제 윤복희 씨가 공항에 들어왔을 당시는 1월쯤의 한겨울로 윤복희 씨는 긴 코트를 입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공항에 들어온 시간도 당시 통행 금지 시간이라 택시가 다니기 시작하는 새벽 4시까지 공항에 묶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계란 세례 루머는 사실이 아닌 백화점 광고 화면의 오해였던 것이죠. 

2번의 결혼

윤복희 씨는 2번의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녀의 첫 남편은 가수 유주용 씨로 당시 김소월의 시에 노래를 붙인 ‘부모’라는 곡으로 인기몰이를 하던 가수였습니다. 


유주용 씨의 아버지는 독일 유학파 출신의 의학 박사 그리고 어머니는 독일인 여성으로 부유한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란 유주용 씨

유주용 씨 본인도 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화학과 연세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한 수재였으며 유주용 씨가 가수를 하게 된 계기도 서울대학교 교내 장기자랑 대회에서 노래로 1등을 하면서부터였다고 합니다. 

이후 20살이 되면서 윤복희 씨를 만나게 되었는데요. 

결혼을 하게 된 두 사람 순탄한 결혼 생활을 하며 시가로부터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두 사람은 결국 갈라서게 되는데요.

그 이유는 남편인 유주용 씨는 “자기보다 훨씬 재능이 뛰어난 아내 윤복희를 뒷바라지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자신이 가수를 그만두고 아내의 매니저를 자처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내 윤복희 씨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어릴 때부터 지독한 가난으로 고생을 해온 윤복희

비록 노래가 좋아서 데뷔를 했지만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노래가 돈을 벌기 위한 일이 된 후로는 무대에서 내려오고 싶었다고 합니다. 

결혼하면 전업 주부로서의 삶을 꿈꿨던 것이죠. 

그런데 오히려 남편이 가수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뒷바라지를 하겠다니 여기서부터 불화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사건 바로 가수 남진 씨와의 스캔들이었습니다. 

당시 남진 씨가 했던 말이 와전되어 윤복희 씨와의 스캔들 기사가 났었는데 이 기사를 본 남편 유주용 씨가 윤복희 씨에게 기사를 보여주며 추궁하였다는데요.

윤복희 씨는 남편이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한다는 생각에 실망하여 홧김에 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시간이 흘러 남편은 미국으로 건너가 다른 여성과 재혼을 하게 되었고 윤복희 씨는 홧김에 스캔들이 났던 당사자인 남진 씨와 만나며 결국 결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둘의 결혼 생활은 그리 길지 못하였고 약 3년 7개월간의 결혼 생활 끝에 이혼을 하게 됩니다. 

둘은 실질적으로 약 6개월간의 기간 동안만 동거를 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인상적인 건 당시 이혼에 대해 ‘남진 씨가 윤복희 씨를 폭행했다’는 등 안 좋은 루머들이 떠돌면서 남진 씨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남진 씨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비난을 감내하였는데요. 

훗날 윤복희 씨가 방송에 나와 “남진 씨가 워낙 남자답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 당시 인기 스타로서 피해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로서 윤복희를 최대한 배려해 줘야 된다 생각하고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라고 회상했는데요.

남진 씨와 결혼을 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도 “남편 보라고 고백한 사람의 순진성을 이용했다. 그 분에게 굉장히 미안했다” 라고 하며 남진 씨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남편 유주용 씨에 관해서도

“우리는 나쁜 상황에서 이혼한 게 아니다”


“남편은 가정적인 사람이었다. 나에겐 오빠 같은 사람이다”


“지금은 결혼해서 사시는 분과 행복하게 지내신다 참 잘 됐다” 라고 남편에게는 잘못이 없음을 전했습니다. 

이후 윤복희 씨는 두 남자에게 아픔을 줬다는 죄책감에 1978년부터 쭉 혼자 살고 있습니다.

충격적인 건강 상태

어린 시절부터 세계를 돌며 압도적인 무대를 보여준 가수 윤복희 최근 방송의 모습을 보이지 않아 근황을 알 수 없었는데요. 

얼마 전 그의 오빠인 윤남기 씨가 방송에 나와 동생 윤복희 씨의 근황에 대해 전해주었습니다. 

근 몇 년간 볼 수 없었던 윤복희 씨는 안타깝게도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그녀의 병명은 ‘삼차 신경통’으로 얼굴과 머리에서 오는 통각과 온도 감각을 뇌에 전달하는 삼차 신경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라 합니다. 


직접 뇌신경에 이상이 생기는 것으로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기 때문에 아파서 무대에서 기절까지 할 정도로 극심한 통증이라고 합니다. 

괴로운 투병 생활에 살까지 쭉 빠져버렸다는 윤복희 씨

덕분에 다른 활동들은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안타까운 근황입니다. 

하지만 이어서 동생 윤복희에게 전화를 거는 윤한기 씨 직접 통화하여 안부를 묻자 방송이라 그럴까요?

  
“어찌 되었든 그녀는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며 “살만 찌면 된다”고 안심을 시켜주었습니다.


윤남기씨는 동생 윤복희 씨에 대해 “천재다. 노래와 무용과 연기와 의상 본인이 다 한다”

“그런 동생을 둔 내가 행복하다” 라며 응원을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윤복희 씨는 최근 한 방송에서 자신의 건강과 관련하여 직접 입장을 밝히기도 했는데요.

그녀는 고백 하길 “내가 현재 70살 하고도 반이 넘었는데 제일 걱정되는 건 치매다”

“내 옆에는 아무도 없으니 행여나 치매가 오면 정말 큰일 난다”

“내가 참 좋아하는 배우 로빈 윌리엄스도 치매가 와서 자살하지 않았나?”

“나는 솔직히 유명인들이 ‘아 이건 안되겠다’하는 마음에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 이해가 간다”

“그래서 나는 갈 때 가더라도 폐를 끼치지 않는 상태에서 깨끗히 가야겠다 싶어 10년 전부터 쇼핑도 안한다”

“옷도 몇십년 전부터 입던 것 입고 웬만큼은 후배들에게 모두 주면서 세월 앞에 어쩔 수 없듯 혹시 모를 내 일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하루 빨리 쾌유하여 건강한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