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M 영화음악’ 정은임 아나운서 교통사고로 허망하게 별세, 밝혀진 죽음의 진실에 유가족 오열..5살 아들만 남기고…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것은 언제나 감당하기 힘든 슬픔을 가져다 주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로 젊은 나이에 그를 떠나보내야 한다면 그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더 괴로울 것 같은데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많은 이들을 눈물 짓게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아나운서 정은임입니다.

정은임은 여느 때와 같이 출근하던 중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했는데요.

제발 일어나 달라는 많은 이들의 염원에도 다시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죽음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5살짜리 어린 아들만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났다는데요. 

오늘은 오래전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우리 마음속에 깊은 여운으로 남아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 정은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 전문 잡지 하나 없었던 시절 영화 팬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전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

  
정은임은 92년 mbc 아나운서로 데뷔해 정은님의 fm 영화 음악을 오랫동안 진행하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나긋나긋하면서도 따뜻한 고운 목소리와 차분한 진행 솜씨로 청취자들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영화에 대한 깊은 애정과 해박함으로 수많은 마니아성 애청자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녀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한 이후인 92년에 mbc에 입사해 4개월 만에 ‘정은임의 FM 영화음악’을 진행했는데요. 


해당 프로그램은 기본 콘셉트이 ‘최신 영화 정보를 소개하지 않는다’일정도로 주류 대중적인 영화와는 거리가 먼 영화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당시 국내에선 제대로 소개되지 않는 영화들을 자주 소개하면서 영화 마니아들의 필수 감상 라디오로 등극하기도 했는데요. 

이 프로그램은 영화 관련 정보에 목말라 하던 청취자들의 기대와 폭발적인 사랑에 부응하며 새벽 방송임에도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당시 방송에서는 정성일 박찬욱 등 유명 평론가들이 해당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며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훗날 박찬욱은 “알던 사람들이 영화 감독으로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상처받은 자존심과 열등감으로 약올라하며 견디던 날을 먹여 살려줘서 너무나 고마웠던 프로그램”이라고 출연 소감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정은임의 영화 음악은 모든 영화인의 사랑을 받는 인기 방송이었습니다. 


매번 “안녕하세요 fm 영화음악의 정은임입니다”라는 말로 시작했던 정은임의 영화 음악은 사회의 경종을 울리는 오프닝 멘트를 하기로도 유명했는데요.

어느 날은 강제 철거의 부당함을 고발하는 내용을 오프닝 멘트에 담았으며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볼셰비키의 ‘인터네셔널가’를 내보내기도 하는 등 사회 참여적인 내용을 방송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정은임은 손석희 아나운서와 함께 유일하게 ‘노조 결성 거부 각서’에 서명을 거부하고 mbc 노동조합 여성부장과 업무혁신위원회 위원으로 분하며 방송 현실 개선에도 앞장섰는데요.

사회적 문제에도 관심을 보이며 따뜻한 시선을 보냈던 그녀였지만 방송 진행자로서는 더 뛰어난 자질을 보이는 최고의 아나운서였습니다. 


보통 라디오에서 게스트들이 출연해 말을 하는 시간을 가지면 DJ들은 다음에 이어질 멘트를 위해 대본을 보거나 다른 생각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정은임은 항상 게스트의 말을 진심으로 경청하는 몇 안 되는 DJ였다고 합니다. 


영화에 조예가 깊은 데다가 진행도 잘하고 따뜻한 시선의 진심을 이끌어내는 진행 능력까지 그 어느 것 하나 뒤처지는 부분이 없기에 그녀는 최고의 DJ로 칭송받았는데요. 


그런 정은임이 이끌어낸 ‘fm 영화음악 정은임입니다’는 폭발적인 인기로 폐지되려 할 때마다 팬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92년 11월 2일부터 방송한 ‘FM 영화 음악 정은임입니다’는 95년 4월 1일에 방송을 종료했는데요. 

팬들의 반대에도 단호하게 방송을 종료해 버렸지만 2003년 10월 다시 부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04년 4월에는 다시 종방을 알렸는데요. 

이때도 팬들의 반대와 항의가 심해 기사화되기도 했습니다.

전무후무한 영화 속의 프로그램이었던 데다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팬들의 방송 요청에 ‘fm 영화 음악 정은임입니다’   3기가 출범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있었는데요. 


아쉽게도 팬들의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영화 음악’이 종료된 지 3개월 후 그러니까 2004년 7월 우리는 뜻밖의 사고 소식을 접했습니다. 

정은임은 방송국으로 출근하던 중 직접 운전하던 차량이 전도 사고로 크게 다쳤습니다. 


정은임이 운전하던 차량은 당시 서울 한강대교 남단 서울지하철 9호선 공사 현장을 지나고 있었는데요.

인근 주민이 유독 그 지점에서 접촉 사고가 잦았다고 증언할 정도로 당시 도로 상황은 좋지 않았다고 합니다. 

9호선 지하철 공사 때문에 지면이 울퉁불퉁한 상태로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는데요. 

정은임의 차량은 2차로에서 1차로로 차선 변경을 시도할 때 뒷바퀴가 공사장 복공판 위로 살짝 올라가면서 그대로 옆으로 넘어진 채 반대 차선으로 굴러갔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만 해도 심각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정은임은 2차 사고의 피해자가 되며 크게 다치게 되는데요. 

맞은 편에서 오던 스타렉스 차량이 옆으로 누워 있던 차량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약 80킬로미터의 속도로 들이받는 2차 사고를 내었던 것이었습니다.

충돌의 결과로 그녀가 타고 있던 차량에 지붕이 내려앉으며 정은임은 뇌를 심하게 다치게 되었다는데요. 

이후 심각한 증상 때문에 수술 후에도 회복하지 못하고 중태에 빠졌고 뇌부종이 갈수록 심해졌다고 합니다.


당시 그녀의 수술 집도인은 “뇌가 많이 부어 있고 손상도 심하니 일주일 정도 지켜봐야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겠지만 상황이 매우 좋지 않다”라며 심각함을 밝혔는데요.


결국 그녀는 중증 뇌부종 연수마비라는 사인으로 2004년 8월 4일 향년 35세의 나이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은 팬들과 ‘정은임의 영화 음악’을 사랑했던 수많은 애청자에게 큰 충격과 비통함을 주었습니다. 

그녀가 떠난 후 많은 사람이 슬픔을 감추지 못했는데요. 

유가족은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며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영정을 응시하는 남편 눈에는 눈물마저 말라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는데요. 

2004년 8월 6일 mbc 사우장으로 그녀의 장례식이 치러졌습니다. 

입사 동기인 이재용 아나운서의 사회로 영결식이 진행되었고 유족과 mbc 관계자 일동, 여의도 지역 주민, 영화 음악 팬들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습니다.


그녀가 생전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 ‘정은임의 fm 영화 음악’에서 정은임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역시 입사 동기인 김지은 아나운서가 조사를 낭독했습니다. 


김지은은 정은임이 병상에 누워 있을 때 면회 시간마다 거의 매일 병문안을 갔을 정도로 고인과 절친한 사이였는데요. 

김지은은 “언니 같이 놀러 가야 할 엄마가 안 오니까 성빈이는 지금 엄마가 나쁜 공룡들과 싸우고 있는 줄 알아요”

  
“왜 엄마 혼자 나쁜 공룡들과 싸워야 하느냐고 같이 싸우면 안 되냐고 물어요”라며 조사 낭독 중 고인의 아들을 언급하며 많은 이들을 울렸습니다. 


당시 5살이었던 그의 아들 성빈 군은 아무것도 모른 채 옆에 있는 사촌들과 장난을 치며 웃기까지 해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데요.

조사 낭독과 헌화가 끝난 후 정은임은 경기도의 한 공원묘에 안치되었습니다.


그녀의 비보는 모든 영화 팬들을 슬픔에 빠뜨렸는데요. 

그동안 그녀의 쾌유만을 바랐던 많은 이들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생전 고인은 ‘정든님’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었습니다.

 
정은임이라는 이름이 발음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유로 그리고 편하고 정이 간다는 이유로 ‘정든님’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는데요.


어떤 경우엔 별명이 본명보다 더 멋있을 때가 많다는 그녀의 말에 팬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정든님’으로 불러줬다고 합니다.


팬들과 진심 어린 소통을 하며 만인의 ‘정든님’이었던 정은님 아나운서가 떠난 빈자리는 19년이 지난 지금도 슬프게만 느껴지는데요. 


세상을 향해 보냈던 그녀의 따뜻한 마음은 영영 잊기 힘들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5살의 어린 아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나야만 했던 그녀 하늘에서도 남겨진 가족들 생각에 마음 아파할 것 같은데요. 


부디 그곳에서는 어떤 고통도 슬픔도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