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장소는 ○○” 前남편에게 1000억대 재산 뺏긴 64세 김연자 전격 결혼 발표한 이유?결혼은 선택이라더니..

1959년생 64세 트로트 가수로 1974년 ‘말을 해줘요’로 데뷔하여 올해 데뷔 후 50주년을 맞은 김연자 씨는 일본에서 20년간 가수 생활로 1400억 대에 달하는 큰 돈을 벌었지만 전 남편과 이혼하면서 사실상 전 재산을 잃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산전수전을 다 겪은 김연자 씨는 고군분투하여 재기에 성공했는데요.

그녀는 지난 15일 밤 방송된 mbc 라디오스타에 출연했는데요.

무대만 서면 신바람이 나서 무당이라는 소리도 들었고

북한 김정일을 단독으로 만난 적도 일본 팬에게 100만 엔을 선물 받았으며

엑소 팬들 덕분에 아모르파티가 4년 만에 역주행했던 얘기 등을 털어놓았습니다. 


또한 머지않아 결혼식을 갖겠다고 깜짝 발표하여 팬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과연 김연자의 비하인드는 무엇일까요?


현재 동거 중이기도 한 예비 남편은 누구일까요?

올해 데뷔 50주년을 맞이한 첫 레전드 김연자 씨는 아모르 파티의 역주행 비화를 공개했는데 다름 아닌 엑소 덕분이었습니다. 

김연자 씨는 열린 음악회에서 암으로 파티를 부르게 됐는데 엑소 팬들이 sns에 들어 달라는 요청의 글을 올려 홍보했기 때문에 4년 만에 역주행 됐다고 했습니다.

이어 김연자 씨는 일본 등 수많은 해외 곳곳에서 공연을 했다면서 2년 연속 북한 단독 공연 에피소드를 털어놨습니다. 

김연자 씨는 2001년과 2002년 두 차례 북한에서 단독 공연을 했습니다. 


김연자 씨는 평양에서 공연을 마친 후 북한 관계자의 안내에 따라 특급 열차에 올라탔고 비밀 유지를 위하여 창 밖을 볼 수 없도록 차창에 커튼을 내린 채 밤새 이동했습니다.


함흥에 도착하여 보안 검색을 마치고 공연장으로 이동하여 모든 공연 준비를 마친 김연자 씨는 북한 안내 요원을 따라 어떤 비밀 장소로 이동했습니다. 


거기엔 김정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너무 놀라 손가락으로 김정일을 가리킨 김연자 씨는 다행히 북한 측으로부터 따뜻한 커피 환대를 받았습니다. 


김연자 씨는 “내가 김정일에게 혈액형을 질문하자 주변에서 술렁거렸다”

“알고 보니 북한에서 혈액형 질문은 금기였다며 그런데 제가 당시 혈액형 얘기를 너무 좋아해 물어봤더니 a형이라고 했다”고 전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김정일이 워낙에 대중문화 예술을 좋아했기 때문에 특급 기밀을 노출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또한 김연자 씨는 1988년부터 2020년까지 20년 이상 일본에서 활동했던 사연도 들려줬습니다.


콘서트를 가보면 나라마다 혹은 지역마다 문화의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도 충청도냐 대구냐에 따라 관객의 반응이 다릅니다. 


대전에서 열리는 조용필 콘서트에 가보면 관객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아 가수가 답답해하는 반면 대구나 서울 콘서트는 관객의 반응이 즉각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노래 부르기가 훨씬 더 신이 나는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본 팬들의 응원 스타일에 대해 김연자 씨는

“일본에 처음 인사할 때 박수 치고 간주할 때 박수 치고 끝나고 박수 친다”

“정말 열정적인 팬은 연자 이름을 부르고 끝난다”며

“선물로는 꽃다발 과자도 주시고 백만 엔 한화로 약 1천만 원 정도 받아봤다”고 말해 진행자와 게스트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한국에서 가수들의 콘서트에 가보면 흥겨우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서 춤추고 흥얼거리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한편 <가요신인스타>라는 프로그램으로 16살의 나이로 데뷔한 김연자 씨는

“잘 나갈 때는 주머니에 들어오는 게 모두 돈이었다”


“부모님께 집을 해드리고 싶어서 바로 집을 샀다” 


“그 당시 한 달 수입이 1억이었다”라고 말했습니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와 독창적인 꺾기 창법으로 큰 사랑을 받은 그는 화려한 의상과 열정 넘치는 자세가 트레이드 마크였습니다.


특히 ‘수은등’과 같은 트로트의 밀당 창법은 본인만의 스타일이며 이 때문에 확고부동하고 몰입도 높은 팬층을 갖게 됐습니다. 


‘씨름의 노래’ ‘아침의 나라’에서 등을 연이어 히트시킨 김현자 씨는 원조 한류스타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습니다. 

김연자 씨는 “딱 한 번은 한 회에 1억을 받은 적이 있다” 


“음반 회사와 전속 계약으로 또 1억 원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는 일본 오리콘 차트 1위를 15번이나 차지했고 한국 가수 최초로 도쿄 교양악단과 공연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김연자 씨의 놀라운 음악적 성과에 비하면 전 남편과 결혼 생활은 행복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그동안 애써 번 돈을 거의 잃은 것으로 보입니다. 


열심히 활동해서 모은 재산을 남편이 모두 관리했는데 김연자 씨는 “지칠 때마다 남편에게 내가 당신의 노예냐?” 라고 언급한 점을 볼 때 속된 말로 김연자 씨는 철저하게 이용만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30년 가까이 일본에서 1400억 원을 벌었지만 남편과 이혼을 하면서 한 푼도 받지 못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1400억을 벌었지만 한 푼도 받지 못하다니요?


돈이 뭔지 저런 좋지 않은 돈 관련 족적들은 장윤정, 박수홍, 이승기 씨 등에게 그대로 이어져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김연자 씨는 주로 일본에서 활동하다가 다시 한국에 돌아와 앨범을 냈습니다. 


하지만 반응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아모르파티 무대가 sns를 타고 입소문이 나면서 4년 만에 다시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바로 엑소 팬들이 홍보해준 덕분입니다.


김연자 씨는 “전국 공연을 다니며 하루에 기름값만 60만 원 1달에 1000만 원의 기름값이 들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김연자 씨는 전국 떼창을 유발하며 대학교 축제에도 초청을 받았습니다. 


‘아모르파티’는 처음으로 연자송으로 작용하였고 김연자 씨도 “제 인생을 그렸다고 해서 ‘연자송’이라 했었다”며 노래 가사처럼 제2의 전성기를 이뤄냈습니다. 


‘아모르파티’는 김연자 씨에게 큰 용기를 준 노래였습니다. 

노래밖에 몰랐던 김연자 씨는 전 남편과 살면서 1400억 원을 벌었지만 거의 돌려받지 못했고 결국에 이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새로운 인연을 맺은 김연자 씨는 “어렸을 때 인연이 있는 같은 학원 동기였다”

  
“저는 기억을 못한다 소속사 사장이자 가수이기도 했다”고 말했습니다.

 
한 방송에서 프러포즈를 받은 김연자 씨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데뷔 50년 차를 맞이한 64세 김연자 씨에겐 현재가 최고의 전성기인지 모릅니다. 

그는 스스로 ” ‘사생활은 0점이지만 가수로서는 100점이었다’라는 칭찬을 받는 가수로 남고 싶다”고 했습니다. 

김연자 씨는 전남 영광에 자신의 기념관을 짓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기념관 옆에 자신의 이름을 딴 연자 마을이 조성될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김연자 씨는 연자 마을이 생기면 기념으로 여기서 결혼식을 할 예정이라고 깜짝 발표를 해 모두로부터 축하를 받았습니다.

김연자 씨는 이제 겨우 60대 중반입니다. 

과거의 아픔은 모두 잊으시고 새 남편과 행복한 결혼 생활 이어가시길 빕니다. 

인생의 희노애락이 노래에 고스란히 담길 것으로 보이는 김연자 씨는 어찌 보면 이제부터 시작인지 모릅니다. 

인생의 깊은 맛을 담은 트로트의 진수를 보여주시기에 딱 좋은 나이십니다.

장윤정 씨를 비롯한 많은 선 후배들과 팬들은 당신의 새 출발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트로트 발전을 위해 한 몫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