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출 당한 ‘불타는트롯맨’ 김준수 결국 경찰 고소까지…진짜 악마는 누구인가? 10년 넘게 못 나오는 이유는?

톱스타 심은하는 연예인의 삶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화려하지만 헛헛하고 다 가졌으나 한없이 부족했던 삶 

오늘의 주인공 김준수 역시 한때는 나훈아, 조용필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으나 빚 좋은 개살구였는지 노예 계약을 파기한 후 방송 활동을 전혀 하지 못했는데요.

그런데 돈은 또 100배를 벌어서 배은망덕한 사람이라 불렀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지상파는 10년이 넘도록 나오지 못해

팬들이 직접 경찰에 고소를 하고,

한 번이라도 지상파 음악 방송에 나와 자신의 노래를 불러보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김준수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화려한 데뷔 

1986년 이란성 쌍둥이 중 둘째로 태어난 김준수는 어린 시절 집안 형편이 어려워 굉장히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게 되는데요.

당시에 얼마나 가난했냐면 집이 너무 작아서 어디에서 자야 할지 모를 정도였고 또한 화장실이 집 안에 없다보니 뒷마당에 대나무로 만든 화장실이 있었는데 그 곳에서 볼일을 봐야 했습니다. 


또한 집 안에는 뜨거운 물이 나오는 샤워기나 욕조가 없었기 때문에 한겨울에도 찬물로 씻거나 뜨거운 물이 나오는 공중 목욕탕을 이용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집마저도 없어져 어린 그는 엄마의 손에 이끌려 하루는 여인숙, 하루는 모텔 같은 곳에서 지내며 정처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하루는 엄마 손을 잡고 외할머니 댁에 갔다가 엄마가 돈을 벌어야 하니까 “준수야 엄마 화장실 좀 다녀올게” 라고 말한 뒤 아들을 맡겨둔 채 떠나고 말았는데요.

그런데 이때 대문 닦는 소리가 탁 들리자 어린 그는 형과 함께 맨발로 뛰어가 엄마를 찾았던 게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훗날 그의 고백에 따르면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 시절을 견뎌냈지 싶다”

“당시 1년 동안 말을 못하는 실어증까지 걸렸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다 이후 부모님이 몇 년의 고생 끝에 마침내 네 식구가 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마련했고 물론 이때도 화장실이 없는 집이었지만 그것마저도 행복했던 게 같이 뭉쳐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었다고 했습니다. 


한편 음악에 관심이 많아 6살 때부터 교회에서 찬양대로 활동했던 그는 이후 다양한 음악 활동을 하며 노래에 대한 열정을 키웠는데요.

그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sm에서 주최한 오디션에서 1500명 이상의 경쟁자들 중 무려 1등을 차지하며 마침내 동방신기라는 그룹으로 가요계에 데뷔하게 됩니다.

이후 그가 속한 그룹 동방신기는 그야말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는데 사실 비교가 어렵긴 하지만 거의 조용필 나훈아의 전성기만큼 젊은 사람들에게 정말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런데 2009년 여전히 최고의 자리에 있던 그가 돌연 팀을 탈퇴하게 되는데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왜 탈퇴했나?


당시 그가 속한 그룹 동방신기의 전속 계약 기간은 13년으로 군 복무 기간을 포함할 경우 15년 이상인데 그런데 이 계약 기간이 끝나더라도추가적인 연장을 강요당하다 보니 사실상 연예계를 은퇴할 때까지 아니 평생 계약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수익 배분 문제로 이와 관련해서는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하면 당시 계약금도 없었고 또한 활동 기간 동안 수백억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큰 인기를 얻었는데요.

그런데 당시 음반 판매량에 따른 수익이 멤버 한 명당 0.4에서 1%에 불과하다 보니 인기에 비해 터무니 없는 정산이 이루어지곤 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이유로 그를 포함해 3명의 멤버가 법정 분쟁 끝에 팀을 탈퇴하고 말았고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건 sm 입장에서는 이들이 괘씸했는지 여러 방송국에 입김을 넣어 김준수를 비롯한 나머지 멤버들이 방송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하게 됩니다. 

특히 젊은 가수들이 대거 출연하는 예능 프로, 가요 프로는 꿈도 꾸지 못하고 그나마 대형 연예기획사의 입김이 약한 보도국과 교양국에서나 간간히 볼 수 있었는데요.

그렇다 보니 그가 팀을 나온 지 6년 만에 최초로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던 방송국은 2015년 교육 방송인 ebs 채널의 ‘스페이스 공감’이라는 프로였습니다. 


이렇다 보니 당시 결국 공정위에서는 거대 기획사인 sm이 이들의 방송 출연 및 연예 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는 시정명령이 내려지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이때 한 국회의원은 방송사가 이유 없이 연예인의 방송 출연을 막지 못하는 일명 jyj 법까지 발의하곤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김준수가 고백하길 “그때는 지금처럼 이렇게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감히 생각하지도 못했다”


“내가 ‘가수 활동을 계속해야지’ 하는 마음이었다면 이렇게 나오지 않고 남아 있었을 거다”


“그때는 아직 어렸고 최정상이었고 그런데 계산을 대충 해보니까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계약이 만료될 조건이었다”

“그렇게 활동을 마치게 되면 보기에는 빛 좋은 개살구처럼 좋아 보일지 몰라도 과연 ‘내가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금의 이 생활을 여기서 끝내는 게 낫지 않을까 지금의 이 울타리에서만큼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라고 했습니다. 

탈퇴 후 돈방석 그러나…

아무튼 김준수 그는 동방신기를 탈퇴한 후부터는 방송 활동이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전혀 하지를 못했는데요.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게 소속사에 있을 때보다 방송 활동이 전혀 없었던 이 시기 돈을 무려 100배나 더 벌게 됩니다. 


당시 방송 출연은 전혀 하지 못했지만 솔로 앨범을 발표하고 뮤지컬을 하며 또한 일본을 중심으로 콘서트와 팬미팅을 열어 수익을 창출했었는데 그리고 앞서 얘기한 100배의 수익은 팀을 탈퇴 후 몇 년에 걸쳐 본 게 아니라 딱 1년 만에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무렵부터는 방송에 출연하지 못하는 한이라도 풀듯 사치 아닌 사치, 허영 아닌 허영심으로 한 대에 몇 억씩 하는 자동차들을 과감하게 구입하기 시작했는데요.

특히 국내에 단 한 대뿐이라는 한정판을 사는 등 당시 자동차를 구입하는 돈으로만 무려 41억 원 가량을 사용하게 됩니다. 

그의 돈 쓴 쓰이는 차뿐만 아니라 모든 곳에서 나타나게 되는데 2017년 지금 살고 있는 집을 48억에 분양받고 또한 집 안에 있는 가구와 인테리어는 미국 전 대통령 트럼프와 아랍에리미트의 대부호 만수르가 애용하는 제품들로 가득 채우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때 그는 아무리 돈을 써도 인간 김준수로서의 존재는 점점 작아지고 흔들리고 있었는데요.

왜냐하면 앞서 얘기한 대로 연예인의 신분임에도 방송 활동을 전혀 하지 못했고 그런데 한때 함께 활동했던 동료들이 버젓이 tv에 나오는 모습들을 보면 나라는 존재에 대한 여러 복합적인 감정들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즉 돈은 많이 벌지만 김준수라는 가수는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지는 것 같았고 그렇다 보니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기 위해 당시 생긴 수입으로 남들이 쉽게 사지 못하는 비싼 물건들을 사며 “나 건재해” “나 김준수 여전히 잘 나가” “나 여전히 가치 있는 인간이야”라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고 합니다.

이 시기 그에게 도는 사치와 허영심이 아닌 사람들로부터 잊혀지기 싫었던 몸부림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돈을 미친 듯이 쓰는 김준수를 보며 “정신 나간 거 아니야? 밥 굶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그에게는 그 돈이 사치가 아니라 돈을 통해서만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시키고 증명할 수 있다보니 어찌 보면 너무 슬프고 처절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김준수 그가 유난히 한정판을 선호했던 이유도 보통의 사람들이 그것을 소유하는 과정과 굉장히 많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일반 사람들이 한정판 자동차를 산다고 했을 때 매장에 전화를 걸어 “우리나라에 딱 한 대 있는 그 차 제가 사겠습니다”라고 하면

자동차 딜러가 “무슨 소리세요. 일단 매장으로 오세요” 이럴 텐데 하지만 만약 그가 전화를 걸어 “저 김준수입니다라고” 하면

“아 그러세요. 그럼 저희가 언제까지 준비를 해놓을 테니”라며  곧바로 반갑게 응대를 해줬을 것입니다.


그렇게 값비싼 물건들을 소유하는 중간 과정에서 완벽하게 vip 대우를 받으며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그는 “나 이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야” 라는 인정을 받기 위해 한정판에 집착을 하고 또한 그런 물건들을 소유함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계속해서 확인받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시간이 흘러 방송가에는 종편 채널이 생기고 물론 이때도 ‘한 번이라도 음악 방송에 나와 내 노래를 불러보는 게 꿈’이라고 말할 정도로 자유롭지 못한 처지였다고 하는데요.

그럼에도 sm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tv조선과 채널a 등에서 점차 모습을 드러내더니 종편에서만큼은 활발히 활동하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됩니다. 

한편 이런 속 깊은 이야기를 <오은영의 금쪽상담소>라는 프로에서 모두 고백했었는데 그리고 당시 그는 “그 많던 물욕이 지금은 사라졌는데 왜 사라졌을까?”라는 의문에 오은영의 대답은 “수많은 고난과 성장을 겪으면서 그 흔들렸던 정체성의 길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즉 뮤지컬 가수로서 탄탄하게 인정을 받았기 때문에 모두에게 인정받는 뮤지컬 배우가 된 후로는 그 흔들렸던 정체성이 안정이 되면서 나 아직 건재해 나 이런 것도 살 수 있어 같은 값비싼 물건들로 더 이상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준수 그가 고백하길 “내가 만약 데뷔전으로 돌아가 연습생 김준수에게 조언을 할 수 있다면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전해주고 싶다”


“물론 사람들은 ‘이미 많은 걸 이뤘으니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냐?’라고 하며 모순적으로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가진 게 없었기 때문에 반드시 열심히 살아야만 했고 가수의 꿈을 이루어야 한다는 목표 하나밖에 없었다”


“그런 시기를 모두 겪었기에 지금의 내가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 같다”

“그리고 힘들었던 순간 이겨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정말 팬들 덕분이다”


“내가 약 10년 동안 방송에 나오지 못했음에도 뮤지컬 배우로서의 기회를 얻고 평가를 받은 건 모두 팬과 관객들 덕분이다”

“그 덕에 지금의 소속사도 만났고 그 감사함에 보답하고자 열심히 살고 있다”

“예전에는 정말 화려하고 특별한 것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그런 것보다 편안함과 안정감을 찾게 된다”

“물론 나에게도 아직은 도전과 목표 의식이 있다. 지금까지 데뷔 후 21년을 달리며 긴장감에서 벗어난 적이 없을 정도로 치열했는데 이제는 좀 내려놔도 될 것 같다”라고 했습니다


한편 사람이 너무 착하다 보니 안티에 대한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해 부모님 욕설까지 올라오는 상황을 그대로 방관했던 김준수

그의 이런 모습이 안타까워 결국 팬들이 내부에서 결의하여 변호사를 고용해 경찰서에 고소를 했는데요.

김준수의 팬들은 서초 경찰서에 찾아가, 김준수와 관련된 악성 댓글 작성자와 루머 유포자 약 30명을 고소하면서, 연예인 당사자가 아닌데도 고소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