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틀린걸까요?” 배우 강태기의 비참한 죽음, 왜 하필 이런 일이..밝혀진 사망 원인에 여동생 오열 분노…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한 삶을 사는 듯한 연예인은 개개인의 차이가 특히나 큽니다.

 
누군가는 톱스타의 인생을 살지만 또 누군가는 사기를 당하거나 사업 실패로 생활고에 시달리죠 그런가 하면 쓸쓸하게 혼자 생을 마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지난 2013년 3월 10일 배우 강태기는 지켜보는 사람 없는 자신의 작은 방에서 홀로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나이 63세였습니다. 외출에서 돌아온 여동생이 발견했을 때는 이미 눈을 감은 뒤였습니다. 

그는 일생 동안 영화와 드라마 등 총 500여 편이나 출연해 왔으나 언제나 주 종목은 연극이었는데요.

연기 외적으로 대학로 문화발전위원회 부위원장과 한국연극배우협회 회장 등을 맡으며 척박해진 한국 연극인들의 복지와 권익 향상에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2012년 들어 지인으로부터 사기를 당한 뒤 충격을 받아 1년간 외부와 연락을 끊고 부모님 여동생과 함께 조용히 지내다가 2013년 자택에서 갑작스레 숨을 거뒀습니다.

동료들은 배우 강태기의 삶을 두고 연기의 신들려 선생이라고 평가했습니다. 

그런 명배우로 손꼽히던 그가 왜 이렇게 비극적인 사망을 하게되었을까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에쿠우스>로 명배우로

1950년 당시 황해도 연백군 벽란도에서 태어난 강태기는 전투 경찰이던 아버지를 따라 월남해 서울 곳곳을 전전하여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시절 학예반에서 위문 공연을 다녔던 것을 계기로 연기를 접하게 되었는데요.

중학교 2학년 때 드라마 센터에서 전국고교생극경연대회를 본 후  연기에 대한 흥미를 느끼게 됩니다. 

이후 연기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 서라벌 고등학교를 지망하였는데요.

부모의 완강한 반대에도 인문계 고교 진학을 포기했고, 이에 당황한 아버지에게 결국 승락을 받아냈다고 합니다.  

그는 입학 시험을 치르지 못했지만 입학금을 들고 서라벌 고교 교감을 직접 만나 입학을 허락받았다고 하는데요.

그는 입학 후 연기반에 들어가 연출과 이진순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연기 수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1967년 TBC 공채 탤런트 6기로 뽑혀 방송 데뷔를 하게 됩니다.

여느 배우들이 그렇듯 한동안 무명배우로 단역을 전전하며 활동하였는데요.

1970년 서울연극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극단 ‘실험극장’에 입단하여 연극 <멕베스>를 통해 처음으로 연극무대에 서게됩니다.

그는 군 제대 후인 1975년에 <에쿠우스>에 열연하면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요.

강태기는 에쿠스에서 예민한 감성을 지닌 알런 역을 맡아 센세이션을 일으켰습니다.


송승환, 최재성, 최민식, 조재현 등 내노라 하는 배우들이 뒤에 이 역을 거쳤으나 강태기의 알런을 본 대중은 그를 잊지 못했습니다.

이 공로로 현재 백상예술대상으로 불리는 한국연극영화예술상 연극부문 신인상을 받게됩니다.

이에 힘입어 1983년까지 5번이나 알론 역할을 맡으면서 알론 전문 배우로 이름을 날렸는데요.

이후 강태기는 연극 모노 드라마 <그대를 사랑합니다>, 드라마 <백조부인>, <명성황후>

영화 <사람의 아들> 등 무려 500여 편에 출연했습니다.

연극에 대한 애정


연기 활동을 하는 동시에 그는 특히 연극 배우들의 권익 증진에도 힘썼는데요.


그는 생전 인터뷰를 통해 과거의 연극계와 비교했을 때 “많이 좋아졌다”고 표현했는데요.

  
“당시 사회가 전반적으로 어려웠지만 특히 연극계에는 말할 나위가 없이 힘들었습니다”

  
“공연이나 연습 때 냉난방은 고사하고 식사조차 해결하기 힘든 시기였으니까요”

“요즘 후배들에게 그런 말을 하면 웃습니다”라며 개선된 연극 현장에 대한 소회를 밝혔습니다.

그런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에쿠우스>였습니다. 

“데뷔작이기도 하지만 너무 열심히 했고 나를 배우로 만들어준 작품이기도 했으니까요”


“또 연극으로서는 최초로 공전의 히트를 치며 한국 연극사의 커다란 족적을 남긴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때의 멤버들이 아직 우리나라의 공연계에서 중추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지요”


“젊음의 용기도 있었지만 참가자 전원이 커다란 자부심을 가지고 덤빈 작품이기도 하고요”

그는 <에쿠우스>의 성공 이후 연극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에서도 많은 섭외가 있었다고하는데요. 

유독 연극에 더 애정을 보였습니다. 

이에 대해 “결코 집착은 아니에요. 불러만 주면 시간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언제든지 달려갑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연극 연습을 시작하게 되면 섭외가 들어와도 연극을 선택하던 그였습니다. 

그는 “물론 금전적 유혹을 부딪히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런 배우는 더 이상 발전의 여지가 없습니다”


“아무리 현실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도리가 있는 겁니다”


“요즘 후배들에 대해서는 그런 면에서 화가 나지만 선배로 그들의 생활을 책임질 수 없으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라며 연극 무대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던 그는 한국연극배우협회의 협회장으로 취임해 연극인들을 위해 나서기도 했습니다. 

그가 협회장에 출마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 말렸다고 하는데요.

‘형은 그냥 배우로 살아라’는 말도 들었다고 하는데요.

주변의 말림을 이해하면서도 그는 고집을 피웠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그는 “연극인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많았거든요”


“수락한 연극 배우들의 위상 배우가 넘쳐나는 현실에 대한 대비 제작비 때문에 집도 담보 잡혔지만 정작 공연이 망해 거리에 나앉게 된 사람들을 위해서 제가 뭔가 해야 했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배우 강태기는 한국연극배우협회 협회장을 지내며 척박한 연극계에서 고생하는 연극인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노력했던 인물이었습니다.

충격적인 비보

연극계를 바꾸기 위한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가 노년이 되자 설수있는 무대는 점점 사라졌습니다.

제작사는 오랜 기간 연극을 해온 중견 배우를 해고하고, 개런티가 낮은 젊은 배우를 채용했습니다.

젊은 배우들의 사정도 너무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1달동안 무대에 서도 몇십만원을 받을 뿐이었죠. 

그런 사정이니 연기 좀 한다는 배우들은 모두 드라마와 영화로 넘어갔고, 연극 무대는 배우 등용문으로 변해갔습니다.

이로인해 그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며 2007년 부인과 이혼을 하게 됩니다.

이후 이러한 상황을 타계해보고자 노력했지만, 오히려 2012년 지인으로부터 사기를 당하게 됩니다. 

그 충격으로 외부와 연락을 끊고 혼자 은둔하여 지내게 되는데요.

그러다 2013년 3월 12일 자택에서 이미 숨을 거둔 채 발견되었다는 비보가 전해졌습니다.

당시 기사에는 “고인은 인천시 서구 불로동 한 아파트 작은 방침대 위에 옆으로 누운 상태였으며 주변에서 소주병이 발견됐다”라고 보도되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이 보도들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며 그의 여동생이 울분을 토했습니다.

故 강태기의 사인에 대한 의혹이 제기되며 극단적 선택이라는 말까지 흘러나오자, 이를 바로 잡기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까지 의뢰했다고 합니다.

여동생은 “제가 지하주차장에서 아는 분과 통화를 하고 올라갔을 때였기 때문에 4시 30분 경이었어요”

“처음에는 자는 줄 알았어요”라고 어렵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이어 “부검 결과 심장마비로 밝혀졌어요”

  
“우리 오빠 주위에 술병은 없었어요. 오빠 주변에 소주병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잘못된 내용이에요”라고 잘못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아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당시 경찰 관계자는 “강태기 씨가 평소 고혈압 약을 복용해 왔다 숨이 멎기 전 소주를 마셨으나 정확한 사인은 부검을 통해 알아낼 것”이라고 전하였습니다. 

부검 결과 협심증으로 인한 심근경색으로 숨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여동생은 “우리 오빠는 정직한 사람이었어요”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랑스러운 오빠라고 소리치고 싶습니다”라며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습니다. 


그리고 동료들 또한 애도를 전했습니다. 

배우 권병길은 “명배우를 지켜주지 못하는 빈궁한 연기자 세계를 저주하며 그는 떠났습니다. 편히 쉬시길” 이라고 아쉬운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개그맨 남희석은 “제가 안양예고 2학년 때 호화마트홀에서 ‘실험 극단’ 김동훈 님이 연출한 <피가로의 결혼>에 간역으로 출연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 주인공이던 강태기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봤습니다

“또 쓸쓸히 가셨습니다. 참 멋진 배우였습니다”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가수 겸 배우 신성우도 부고를 전한 지인의 글에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답글을 게재했고 이외에도 디자이너 이상봉, 소설가 이외수 등도 고인의 사망 소식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글을 게재했습니다.

강태기는 연극의 미래와 후배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겉멋에 치중하는 후배들이 참 안타깝습니다”


“그런 쪽으로는 승부가 힘든데 철저히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연극이 이루어지는 건데 외형, 겉으로만 드러나는 말초 신경만 자극하는 연기만으로는 미래가 없습니다”


“물론 먹고 살아야하니 현실도 중요한 것은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우선인지는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너무도 쓸쓸하게 떠난 그이지만 부디 그곳에서 더 이상 아무런 걱정 없이 편히 쉬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