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계의 ‘개척자’ 故 박태남 아나운서 암 투병 중 방송 강행했지만 결국..전현무 김성주 한석준 오열..

예전에는 아나운서라면 주로 뉴스를 진행하는 사람으로 연예인이라기보다는 전문직이라는 인상이 강했는데요. 

언제부터인지 아나운서도 연예인처럼 쇼 프로그램 등에서 mc를 보거나 길을 펼치며 뉴스 후에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90년대까지만 해도 예능 프로그램 진행을 위해 방송 3사에서 김승현과 허수경 같이 쇼mc를 별도로 뽑기도 했는데요.

어느 순간 아나운서와 연예인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하며 아나운서의 예능 진출을 하는 것에 제약이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아나테이너’들의 시대가 열렸는데요. 

‘아나테이너’는 연예인처럼 재능과 인기가 많아 왕성한 활동을 하는 아나운서를 이르는 말입니다. 

한때는 극소수의 아나운서만 ‘아나테이너’라는 별명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현재는 아나운서로 입사할 때부터 연예인 못지않은 끼와 재능을 중시한다는데요. 

아나테이너들의 시대가 도래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kbs 아나운서 박태남인데요.

그는 아나운서 팀장을 역임하시기에 후배 아나운서들에게 연애 시사 프로 등의 mc가 될 기회를 준 고마운 선배라고 합니다. 

전현무, 한석준, 도경완 등 인기 아나운서들이 프리랜서 선언을 한 데에도 그의 공이 컸다는데요. 

아나운서 생활 내내 그는 남들과는 다른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 주변인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몇 년간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요. 

얼마 전까지 뉴스와 라디오에서 활동하던 그가 6년간 모습을 보이지 않은 이유는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는 6년 전 위암과 직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데요. 


그의 별세 소식을 뒤늦게 접한 시청자들은 그 슬픔을 감출 길이 없었다고 합니다. 

거기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암 투병을 하면서 고통에 몸부림치면서까지 방송 활동을 했다는 것이 알려져 가슴을 미어지게 했는데요.

오늘은 아나운서계의 한 획을 그은 박태남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021년 1월 장윤정의 남자 도경완이 kbs에 사표를 제출하고 프리랜서 선언을 했습니다. 

입사 13년 만에 과감하게 내린 결단에 많은 사람의 이목이 쏠렸는데요. 

도경완은 과거 프리랜서 선언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프리 선언을 하지 않는 것이 장윤정과의 결혼 조건이다”라며 의혹을 부인해 왔기 때문입니다.

장윤정 역시 “아무래도 한 사람은 고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할 것 같다”며 남편의 퇴사 소문에 관해 탐탁치 않아 하는 감정을 드러내왔는데요. 


과거에 끊임없이 밝힌 바와 다르게 퇴사를 결정하며 도경완의 프리 선언은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는 “최근 1년간 감사하게도 예능을 하게 됐는데 계속하다 보니 궁금하고 하고 싶었다”

  
“예능 분야에 들어와 보니 다시 마이너리그로 떨어지더라도 메이저리그에 부딪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며 프리 선언에 대한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장윤정과 함께 ‘장윤정의 도장 깨기’를 진행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데요. 

사실 도경완 외에도 그동안 꾸준히 아아운서들은 힘들게 들어간 방송국을 퇴사하고 프리 선언을 해왔습니다.

김성주, 전현무, 한석준, 오정연, 장성규 등도 아나운서로 입사했지만 프리 선언을 하며 퇴사를 했는데요. 

앞서 언급한 사람들 외에도 많은 아나운서 출신들이 퇴사 이후 지금까지활발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사실 많은 아나운서가 이렇게 연예인으로 보내 방송계에 진출한 데에는 한 사람의 공이 크게 이바지했는데요.

아나운서들의 방송 진출에 협격한 공을 세운 사람은 바로 kbs 공채 13기 아나운서 박태남입니다.


박태남이라는 이름 석자는 생소할지 몰라도 그의 얼굴은 많은 사람에게 익숙합니다. 

서글서글한 눈매의 신뢰 가는 인상 깔끔한 진행 솜씨로 수많은 활약을 한 바에 남은 kbs 뉴스를 책임지는 아나운서였는데요. 

그는 2007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kbs 뉴스 와이드 박태남입니다’라는 자신의 이름을 내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는 등 kbs의 얼굴로 맹활약했습니다. 


라디오와 뉴스를 진행하던 박태남은 진행 실력뿐 아니라 행정적인 측면에서도 능력이 뛰어났는데요. 

아나운서 팀장을 역임하며 훌륭한 업적들을 이뤄 후배 아나운서들의 귀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박태남은 아나운서들의 방송 진출에 협격한 공을 세웠는데요.

2008년 대대적인 방송 개편 당시 그는 공영성과 경쟁력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크다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박태남은 아나운서 팀장을 역임하며 아나운서들의 활용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는데요. 

고민 끝에 그는 개편을 맞아 아나운서들을 예능 등의 방송에 대폭 투입하는 시도를 했습니다. 

스스로 ‘대폭적인 개편이다, 입사 이후에 이런 개편은 처음 보는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로 그의 시도는 파격적이었는데요. 

그의 시도 전에는 아나운서들이 예능에 진출하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08년 그가 개편을 단행한 이후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평년 두 배 가까이 늘었다는데요. 

전현무를 ‘비타민’에 출연시키고 한석준을 ‘연예가중계’에 출연시켰던 사람도 바로 박태남이라고 알려졌습니다.

그야말로 아나운서 업무 범위를 대폭 확대한 것인데요. 

방송가에서는 박태남의 파격적인 시도 이후로 아나테이너의 시대가 열렸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박태남의 파격적인 행보는 그뿐만이 아니었는데요. 

박태남은 딱딱한 분위기의 뉴스를 부드럽게 만든대 크게 이바지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람들은 딱딱한 뉴스를 좀 더 친근하게 만든 사람이라고 하면 최일구 앵커를 떠올립니다.

 
최일구 앵커는 과거 mbc 뉴스데스크 주말 앵커를 맡은 적이 있는데요. 

그는 시종일관 진중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뉴스에서 때로는 속 시원한 소리를 하기도 하고 때로는 재미있는 논평을 남겨 크게 화제가 된 인물입니다.

최일구는 고철 파동 이후 맨홀 도둑이 기승을 부린다는 소식을 전할 때에는 “훔쳐가신 분들 빨리 제자리에 갖다 놓으시기 바랍니다” 라며 말을 끝내줬습니다. 

그리고 17대 총선 당선자들에 대한 소식을 전할 때에는 “299명 당선자 여러분 제발 이제 싸우지 마세요”

  
“머슴들이 싸움하면 그 집안 농사 누가 짓습니까?”라며 속 시원한 얘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또 쓰레기 만두 파동이 일어났을 때는 “저희도 저녁에 만두 시켜 먹었습니다”라고 말해 시청자들에게 소소한 웃음을 주기도 했는데요. 


박태남은 최일구 앵커와 함께 뉴스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데 앞장선 사람이라고 합니다. 

박태남은 ‘kbs 뉴스 옴부즈맨’을 진행할 때 마무리 멘트로 “앞으로도 시청자 여러분의 따끔한 뉴스 비평에 귀를 기울이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는데요.

지금이야 개성 있는 뉴스 진행자가 흔하지만 당시에는 오직 사실만을 딱딱하게 전하는 것이 뉴스였기에 그의 진행은 굉장히 파격적이었습니다.

 
확실히 진행이라든지 행정적인 면에서 혁신적인 면모가 넘치는 사람이었던 것인데요. 

앞으로도 kbs의 미래를 책임지며 혁신적인 발전을 이룩할 것이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았던 박태남은 어느 새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더니 2017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로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었지만 사실 박태남은 오랫동안 암투병을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다만 뉴스와 방송의 애정이 깊었던 그였기에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방송 활동을 한 것이었는데요.

위암 판정을 받고도 그는 ‘kbs 뉴스 옴부즈맨’을 진행하며 뉴스에 대한 열의를 불태웠습니다.

 
하지만 결국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고통에 이르게 되었고 그는 결국 휴직계를 내고 치료에 전념했는데요. 

아쉽게도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고 2017년 2월 22일 향년 59세의 나이에 위암과 직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빈소에는 한석준, 전현무 아나운서, 홍진경, 이영자, 정선희 등이 왔다간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얼마 전까지 뉴스에 나오던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한 시청자들은 

“아직 젊은 나이인데 안타깝다”

“최근까지 모습을 보인 것 같았는데 너무 놀랍다 너무 빨리 가서 아쉽다” 등의 반응을 보였습니다. 


아직도 어디선가 그의 목소리가 들려올 것만 같은데요. 

방송계에 큰 획을 긋고 아나운서들의 방송 진출에 큰 기여를 한 사람이기에 그가 떠난 후에도 많은 이들이 그를 추억하는 것 같습니다.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방송국을 떠나지 않았던 그의 모습에 그가 뉴스에 대해 얼마나 큰 열의를 가졌나를 짐작할 수 있었는데요. 

지금이라도 뉴스를 틀면 보일 것 같은 그가 암을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 안타깝게만 느껴집니다. 

아나운서의 세계를 개척한 그가 부디 그곳에서도 편안하기를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