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얻은 딸을 이렇게 허무하게..” 70세 배우 양희경의 가슴 아픈 고백, 딸의 마지막 한 마디에 오열한 이유

배우 양희경은 tv 드라마 등에서 아주머니의 역할로 자주 볼 수 있는 친숙한 배우이죠.

작품에 따라 억척스러운 이미지나 푼수역 그리고 여주인공을 괴롭히는 시어머니의 역할까지 뛰어난 연기력으로 드라마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약방의 감초 같은 그런 배우입니다.

이름에서도 예상할 수 있듯이 가수 양희은 씨의 친동생이기도 한 그녀입니다.

같은 형제이지만 언니인 양희은 씨는 대가 세고 생활력이 강한 이미지라면 그에 반해 동생인 양희경 씨는 언니보다는 좀 더 둥글둥글하고 여린 느낌이 드는 것도 같은데요.

아무튼 현재까지도 tv 드라마 등을 통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양희경 씨

별다른 걱정 없이 안정적인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녀이지만 어릴 적부터 다사다난한 굴곡진 인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계모

1954년생으로 올해로 68세인 양희경 씨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북 출신으로 남하하여 육사 4기에 포병 장교를 거쳐서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였습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서울예대 성악과 출신의 디자이너로 확실히 서민적이라기보다는 여유가 있는 집안이라는 느낌인데요.

하지만 그런 안정적이고 편안했던 가정은 오래가지 못했으니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그녀의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게 된 것입니다.

결국 아버지는 외도를 하여 집안에 새 엄마를 들리게 되고 양희경 씨를 비롯한 형제들은 새 엄마인 계모 밑에서 자라게 됩니다.

그런데 이 계모라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제대로 된 사람이었다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텐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양희경 씨를 비롯한 형제들은 이 계모에게서 갖은 핍박을 받으며 자라게 됩니다.

양희경 씨가 훗날 회상하기를 “계모에게서 구박을 받아 늘 소화 불량으로 고생을 했다”고 하는데요.

아마 당시 양희경 씨의 나이가 고작 8~9살 정도였을 텐데 얼마나 눈치를 주며 못살게 굴었길래 그 어린 꼬마가 소화 불량으로 고통을 받았을까요?

그런 양희경 씨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언니인 양희은 씨에 기대어 의지를 하면서 겨우겨우 버텨나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눈치를 보며 괴로운 시기를 보냈던 양희경 씨와 형제들 그러던 중 새 엄마가 들어온 지 2년 만에 아버지가 사망하여 돌아가시게 됩니다.

이제는 남편도 없고 남편의 자식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상황 이에 계모는 미련 없이 자식들을 내 팽개치고 자신의 길을 찾아 홀로 떠나게 됩니다.

결국 남겨진 양희경 씨와 형제들은 다시 친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이걸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 때 양희경 씨의 나이는 고작 11살 때였습니다.

우아한 엄마

그렇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못된 계모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서 다시 친엄마의 품으로 돌아온 자식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양희경 씨의 어머니는 매우 생활력이 떨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남편 없이 여자의 몸으로 홀로 악착같이 일하여 자식들을 훌륭히 키워내는 사람들도 있지만 양희경 씨의 어머니는 그런 타입의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우아하게 의상 디자이너가 되어서 일을 벌였지만 별다른 사업 수환이 없었던 그녀의 일은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더해 세상 물정 모르고 친구의 빚 보증까지 섰다가 그 친구가 야반 도주하여 혼자 거액의 빚을 고스란히 떠안기도 하는 등의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온다고 했나요? 운영하던 양장점에 불까지 나게 되어 몽땅 다 태워버리게 되니 그야말로 앞이 깜깜해지는 답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보다 못한 맏딸 양희은이 통기타 하나 들고 나가서 노래를 부르며 엄마 대신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실질적인 가장의 노릇을 하게 된 것이죠.

훗날 양희은 씨가 회상하기를 “엄마는 너무 우아해서 경영마인드랄까 아니면 보증 서면 안 된다랄까 하는 그런 게 없었다”

“아마 우아하게 도장을 찍었겠지 덕분에 나의 20대가 날아갔다” 라고 말하며 아직 엄마와 화해하지 않았다며 응어리가 남아 있는 듯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생활력이 없었던 엄마 대신에 양희은 씨가 가장의 노릇을 하였고 그럼 동생인 양희경 씨는 어땠을까요?

언니인 양희은 씨가 나가서 돈을 벌어오는 동안 동생인 양희경 씨는 어머니 대신 집안의 살림을 맡아서 하게 됩니다.

이렇게 일찍부터 철이 들어 부모님을 대신해서 집안을 꾸려나갔던 자매들 언니인 양희은 씨는 엄마에게 서운한 점이 있었지만 동생인 양희경 씨는 언니인 양희은 씨에게 서운한 점이 있었다고 하는데요.

양희은 씨가 맏딸로서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며 마치 아버지의 역할을 하면서 집안의 일거수 일투족을 다 간섭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에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하며 밥하고 빨래하고 온갖 집안일을 대신하던 동생 양희경 씨는 어릴 적 기대였던 그런 든든한 언니이지만 한편으론 그런 언니의 속박에 많이 힘들어 했다고 합니다.

아직은 어린 두 사람에게 세상의 짐이 무겁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아무튼 당시 힘들어했던 양희경 씨는 결국 언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유명한 연극 배우로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하던 참에 24살이라는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됩니다.

또 다시 불행

드디어 집에서 독립하게 되어 새로운 가정을 꾸린 양희경 씨 이후 단란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않았던 모양입니다 시어머니가 양희경 씨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것인지 양희경 씨는 고된 시집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게 일방적인 정도의 시집살이가 아니었는지 양희경 씨는 그 스트레스로 인해 결혼할 당시에는 50kg였던 몸무게가 일 년 만에 60kg으로 찌고 만삭 때는 83키로까지 나갈 정도로 체중이 늘어났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집살이로 마음 고생이 심했다는 양희경 씨 중간에서 남편이 잘 조율을 해주면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그 남편도 좋은 남편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과도 문제가 많았던 양희경 씨 결국 1997년 결혼 생활 약 20년 만에 남편과 이혼을 하게 됩니다.

두 아들이 있었기에 남편과의 이혼 사유에 대해 구체적인 말들을 아끼는 양희경 씨이지만 이미 이혼 전부터 별거를 하고 있었으며 단순한 성격 차이 이외에도 여러 문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 빨리 집에서 독립하려는 마음에 24살의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너무 서두른 결혼이었는지 그 끝은 좋지 못하였습니다.

새로운 가족

이혼 후 혼자 아이들을 키우며 지내던 양희경 씨 “혼자 그러지 말고 좋은 사람 있으면 사귀고 그래라”

“이 세상엔 좋은 사람이 더 많다”라는 언니 양희은의 충고를 받아들여 언니가 소개해 준 한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수입 가구상을 하고 있었던 동갑내기의 남자의 예의 바르고 순박해 보이는 모습에 양희경 씨도 조금씩 마음이 끌리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두 사람은 조금씩 가까워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남자도 양희경 씨처럼 이별의 아픔을 겪은 사람으로서 사춘기에 막 접어든 딸이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계모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있었기에 더욱 자신이 없었던 양희경 씨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좀처럼 진전이 없이 친구처럼 우정을 쌓아오던 중 뜻밖의 비보가 들리게 됩니다.

남자의 어린 딸이 불치병에 걸려 얼마 못 산다는 소식을 말이죠.

양희경 씨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9살에 엄마를 잃고 이제 15살 한창 뛰어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어린 소녀의 운명이 말이죠.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이대로 그냥 보낼 수 없다는 마음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양희경 씨의 마음이 어린 소녀에게도 전달이 된 것일까요?

남자의 딸은 특이하게도 자신의 집보다는 양희경 씨의 집에서 치료받기를 원했고 양희경 씨 역시 소녀의 부탁을 저버릴 수 없기에 이를 승낙하여 남자의 딸 그리고 나머지 자식들까지 두 가족이 양희경 씨의 집에 모여 더부살이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양희경 씨는 아픈 소녀를 정성껏 간호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말하길 “아줌마 우리 아빠랑 결혼하면 안 될까요. 난 아줌마가 내 엄마가 됐으면 좋겠어요. 제 마지막 소원이에요” 라고 말을 하였다고 합니다.

아이가 보았을 때 양희경 씨는 자신과 아빠에게 잘해주는 착한 사람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양희경 씨 본인은 어렸을 때 계모에 의해 고통을 받았기에 더더욱 아이들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지 않았을까 생각도 듭니다.

아무튼 곧 아이의 소원대로 두 사람은 결국 재혼을 결심하고 언니인 양희은 씨의 집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그리고 아픈 소녀도 이제는 양희경 씨의 딸이 되었는데요.

진짜 양희경의 딸이 된 아이는 처음엔 익숙치 않아 부르기 어렵다던 엄마 소리를 그녀와 눈이 마주칠 떄마다 신나게 외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두 달 뒤 그렇게 얻은 양희경 씨의 새 딸은 결국 하늘나라로 가게 됩니다.

양희경 씨가 말하길 “우리 딸 아이는 마지막까지 효녀였어요” 라며 소중한 딸을 마음에 묻고 회상하였습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양희경 씨와 남편은 물론이고 서로의 자식들끼리도 서로 친형제와 다름없이 지낸다고 합니다.

계모 밑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첫 번째 결혼해서도 행복을 찾을 수 없었던 양희경 씨이지만 뒤늦게 얻게 된 착한 딸로 인해 행복한 새 가족을 얻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가족 모두 행복하기를 바라며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주기를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