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참 간단한 일이다” 배우 故 이동근 씁쓸한 소식..피부가 녹아내리는 고통과 31번의 수술을 견뎠지만 끝내…


여러분 혹시 불의의 사고로 온몸에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30번 넘는 수술을 받았던 故 이동근 님을 아시나요. 

벌써 사망 6주기가 다가오고 있는데요.


아마 얼굴이나 이름만 보면 생소할 수가 있습니다.


고인은 생사를 넘나들던 중 결국 2017년 4월 21일 향년 31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당시 사망한 채로 발견됐고 사인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라고 했는데요. 

과거 어떤 일들로 인해 이렇게 되었는지 구체적인 사유를 알아보니 2015년 1월 16일 서울 논현동의 한 상가 빌딩에서 4명이 일하던 방 한 칸짜리 사무실에서 펑 소리와 함께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고 했습니다.

불은 순식간에 사람들을 덮쳤으며 지인을 만나러 잠깐 들린 연극 배우 이동근 씨도 이 중 한 명이었던 것이었죠. 

이 화재 사고로 인해 전신 50% 3도 화상을 입었으며 피부가 녹아내려 얼굴과 몸이 망가지고 성대가 달라붙어 목에 꽂은 튜브를 막지 않으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고인은 8개월간 병원에 입원하는 동안 폐혈증으로 죽음의 문턱을 오가는 끝에 죽을 고비를 네 차례나 넘겼으며 31번이 넘는 수술을 견뎌야 했습니다.

또한 사고가 남긴 건 화상으로 달라진 얼굴과 생명 보험금 6억 원이었던 것이었죠. 

이 보험금으로 공연 기획사 ‘아이디 서포터즈’를 차렸고 대한민국 희곡작가전 등 10편이 넘는 연극과 축제를 기획했습니다. 


당시 고인은 인터뷰를 통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다”

“사무실 안에서 터져 오른 불길이 나가는 길목에 제가 있었고 정신을 잃었죠”


“깨어나 편의점 유리에 비친 모습을 봤는데 얼굴이 하얗게 뜬 것이었습니다”


“이어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가는 동안 아프진 않았다”


“허나 알고 보니 3도 화상으로 신경층까지 손상돼서 그랬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된 것이었죠”


“또한 사고 당시 손가락은 네 개를 절단했고 성대가 달라붙어서 목에 꽂은 추구에 손을 대지 않고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는데요”


“피부이식 수술을 17번을 했고 사람의 가장 큰 고통이 살이 타는 고통이라는데 그 살이 탄 자리를 매일매일 긁어냈으며 너무 고통스러워서 졸도만 네 번을 했다라”고 했습니다.

 
이어 그는 “중환자실에 두 달을 있었는데 같이 있던 환자들 중에 열 명이 넘게 눈을 감는 걸 보았습니다”

“당시 너무 고통스러웠고 너무 무서웠으며 나도 목숨을 잃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죠.


“또한 손등이 다 타버려서 건들면 부러지는 상태였으며 터치펜을 손에 휘감고 한 글자 한 글자 간신히 누르면서 몇 시간 동안 글을 썼습니다”

  
“눈꺼풀이 타버려서 눈이 감기지 않을 때라 뿌옇고 잘 안 보였으며 열이 40도를 육박해서 온몸이 땀에 젖었다”

  
“그렇게 8개월 동안 필사적으로 고통과 싸우고 드디어 퇴원했죠”

“가장 먼저 한 일이 뭔지 아세요. 대학로 게릴라 극장 바로 뒤편의 집을 구한 겁니다”

“그리고 곧바로 게릴라 극장으로 왔는데 극장이 너무 보고 싶었고 왕복 열 시간 거리를 다녔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고인은 죽음이 얼마나 간단한 일인지 확실하게 깨달아 버렸던 것이었죠.


그래서 “나는 오늘 행복해지고 싶다”라고 말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고인은 30번이 넘는 수술을 받으며 “주변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너무 많이 봤다”라며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고 느꼈다는데요. 


수술 고통을 이겨내면서 살아나면 진짜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자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도 연극이었다라고 하였죠.

고인은 중학교 때 교내 연극제를 통해 연극의 매력에 빠졌고 고교 시절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주말마다 경남 남해에서 서울까지 와서 연극을 봤는데요. 

그 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의 병원비를 대기 위해 연극을 접고 돈을 벌었다”라고 할 정도의 효자였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연극 배우가 하늘에 별이 되었는데요. 

그곳은 아픔 없는 행복한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삼가 고인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