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길은정 부친 결국 딸 따라 극단 선택…창고엔 유서 발견 되..편승엽 향해 남긴 한 마디 “두 발 뻗고 잠이오느냐”

얼마 전 mbc 복면가왕에 트로트 가수 편승엽이 출연해 근황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방송 출연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시청자들이 적지 않습니다. 

1997년 암 투병 중이었던 가수 길은정과 결혼해 화제를 모았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라는 말을 남기고 결혼 7개월 만에 이혼한 뒤 법적 분쟁에 휩싸인 일을 아직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인데요. 


편승엽은 소송 당시 침묵했던 것에 대해 길은정이 세상을 떠나고 한참 후에 밝혔습니다. 


방송에서 편승엽의 어머니는 “솔직하게 다 하라고 해도 우리 아들 말을 일절 안 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부친 역시 “자기 마음은 없는 사람 욕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말을 안 해요”

  
“변명을 안 하는 거예요”라고 덧붙였습니다.


편승엽은 “저는 그 당시에 변명을 안 했어요”

  
“제 입을 통해 밝힐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법에 호소했죠”라고 전했습니다. 

“아울러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법에 의해 밝혀졌어요”


“판결문에 나와 있어요”라고 설명했습니다.

그의 둘째 딸 편수지는 “사실 다 같이 힘들었어요”

“근데 아빠가 워낙 힘든 걸 알기 때문에 힘들다고 말을 잘 못했어요”

“아빠가 나쁜 사람이 아닌데 나쁜 사람 같은 이미지가 각인된 것 같 았고 지금도 너무 힘들었던 때라서 그때 이야기만 하면 항상 눈물이 나와요”라고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그렇다면 길은정의 가족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과거 부부의 연까지 맺었던 두 사람은 왜 법정 싸움까지 하게 된 것일까요?


길은정은 1984년 소중한 사람으로 가수에 데뷔했습니다. 

데뷔와 동시에 mbc 뽀뽀뽀의 진행을 맡아 뽀미 언니라는 별칭으로 사랑받으며 그 해 mbc 연기대상 mc 부문 신인상을 받았습니다. 


이후 음반을 발표하며 꾸준한 가수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kbs 가요톱텐’, ‘ebs 만들어 볼까요’ 등의 mc

정오의 희망곡 3시와 5시 사이 등의 라디오 dj로도 활약했죠. 

한때 ‘만들어 볼까요?’의 저주라는 이야기가 온라인을 떠돌았던 적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는 길은정, 여운계, 정선희가 출연했는데 세 사람 모두 좋지 않은 일을 겪게 됩니다.

길은정은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전 남편과 소송으로 싸웠고 여운계는 암투병 도중 암세포가 폐로 전이 돼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고 정선희는 남편이 스스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이렇게 한 프로그램에서 3명이나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자 ‘만들어 볼까요’의 저주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편승엽은 이혼의 아픔을 딛고 1997년 길은정과 재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결혼 7개월 뒤 두 사람은 이혼으로 결혼 생활을 마무리하게 되고 몇 년 뒤 길은정은 온라인에 자신의 일기를 공개하며 “편승엽의 자상함은 모두 거짓이었고 사기 결혼을 당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어납니다. 

“이 문제는 오랫동안 가슴 앓이를 해왔던 거라 아무리 억누르려고 해도 자극이 올 때마다 저도 모르게 튀어 올라와요”


“예를 들면 ‘편승엽 아이를 몇이나 낳았냐?’ 고 묻거나 ‘길은정 병구완 하느라 편승엽이 돈을 다 날렸다’는 이야기들이죠”

  
“또 신문 인터뷰 기사에 ‘암투병 시 편승엽의 지극한 간호로 건강을 추스리고 활발히 활동했으나 둘은 이혼하고’ 라는 내용이 나오면 저도 모르게 불끈 화가 치밀어 올라서 그 감정을 홈페이지 일기에 적곤했어요”


“그런데 편승엽은 정작 당사자인 그녀에게는 전화를 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통해 불편한 심기를 간접적으로 드러냈다”고 전했습니다. 


방송에 출연해서 “편승엽이 눈물을 흘린 것도 모두 거짓이었고 결혼 후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거나 병원에 데려가는 일은 물론 같이 있는 시간조차 거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수술 후 길은정에 인공 항문을 두고 농담까지 했다고 하죠.


지금은 관장 기법을 쓰지만 그때는 주머니를 달고 있어야 했어요. 

그 사람이 주머니를 툭툭 치면서 빙글빙글 야비하게 웃는 얼굴로 

“넌 좋겠다.  걸어 다니면서도 똥 싸고 밥 먹으면서도 뽕 싸고”라고 말했어요.


“심지어 편승엽의 자동차 할부금까지 자신이 부담해야 했고 와중에 생활비와 병원비 모두 부담해야 했습니다”

“하와이에서 돌아와 헤어지자고 했더니 그 사람이 안 된다고 했어요”


” ‘왜 안 되냐?’고 묻자 자기 가수 생활이 끝난다”고 했어요. 

내가 ” ‘당신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나도 마찬가지인데 같이 살 이유가 없으니 헤어지자. 그러면 내가 모든 것을 감싸 안고 다 잘했다고 이야기 해주고 멋있게 사랑했기 때문에 헤어진다고 말하겠다’고 하니까 ‘그러자’고 했어요”

  
“이혼 기자회견장에서 그 사람은 어김없이 눈물을 보였어요”

“그 후로 듀엣 곡을 부탁하기 위해 토크쇼에 출연하기 위해 잡지 인터뷰 때문에 간간히 내게 연락을 해왔어요”


편승엽은 이러한 길은정 이야기들을 모두 부정했고 인공항문 이야기 또한 “길은정이 민망할까 봐 우스갯소리로 했던 말”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이 사기 결혼 공방은 편승엽으로부터 혼인빙자 내통과 금품 갈취 등 피해를 당했다는 두 여인과 길은정이 또 다른 폭로를 하며 새로운 전환점을 맞습니다. 

91년부터 6년간 편승엽과 사실혼 관계에 있었다는 채 모 씨와 같은 시기에 결혼을 전제로 편승엽과 교제하던 중 물리적 가해와 금품 갈취에 시달렸다는 김 모 씨였습니다.

기자회견에서 채모 씨와 김 모 씨는 편승엽이 91년부터 길은정과 결혼 발표를 하기 직전인 96년까지 두 사람을 동시에 만나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채모 씨와는 6년간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는 동시에 김 씨에게는 총각이라고 속인 채 결혼을 전제로 교제를 해왔다는 것인데요. 

또한 두 사람 모두 편승엽으로부터 금품 갈취와 물리적 가해에 시달려 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인기피증 혐오증 불안장애 등으로 지금도 고생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편승엽 또한 즉각 반박 기자회견을 가졌으며 “몸과 마음이 아픈 길은정은 이해한다 해도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는 최모 씨와 김 모 씨에 대해서는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길은정은 96년 5월 “내가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획적으로 접근했어요”

  
“내가 암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자 혼인신고와 결혼식도 서둘렀죠 6개월 안에 내가 세상을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러면 내 유산도 상속받고 사람들에게 암 환자와 결혼한 아름다운 남자로 기억될 것이기 때문이죠”


“내가 빨리 목숨이 끊어지지 않자 그는 폭언 욕설 방치 등으로 나를 가해 했고 ‘너 때문에 내 인생 망쳤다’는 폭언도 서슴지 않았어요”


“나는 그가 주도한 사기 결혼의 피해자이고 그는 사기꾼입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편승엽은 길은정과 김모 씨의 이야기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또한 채모 씨는 ” ‘편승엽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친모가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이에 길은정과 결혼 발표가 나기 직전까지 아이들을 친자식처럼 돌보며 사실혼 관계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편승엽이 여성 전용 주점에서 일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편승엽은 “채모 씨에게도 아이가 있었고 각각 아이가 있었기에 집 안에서 반대가 심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부모님을 설득하기 위해 아이들과 잘 살 수 있나 알아보기 위해 잠시 채모씨의 집에서 살았다”고 덧붙였습니다.

 
또한 편승엽은 “나중에 아이들 말이 그 여자는 내가 있을 때와 없을 때가 많이 달라 힘들었다고 했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편승엽은 “이 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사람은 당시에 아내 이 씨”고 이야기하며

“길은정 측은 제 아내가 기른 정과 이혼하기 전부터 결혼을 생각했을 거라고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이에 대해 가수 현숙, 한혜진이 증언하겠다고 했어요”

“내 아내가 왜 그런 파렴치범으로 오해를 받고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폭로가 있고 난 다음 해에 길은정은 암이 재발합니다.


96년도에 직장암 수술을 한 뒤 강한 정신력으로 가수 활동과 방송 활동을 하며 투병 생활을 해왔던 그녀이지만 재발한 것이었습니다. 

편승엽은 이 세 여인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편승엽은 길은정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소송과 함께 5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이어지던 법적 분쟁은 결국 2004년 편승엽이 승소하며 마무리됩니다.


투병 중이던 길은정은 2005년 병세가 악화돼 세상을 떠나게 되고 편승엽은 재판에 승소해 명예를 회복했지만 많은 비난을 받게 됩니다. 


길은정은 떠나기 며칠 전까지도 방송을 진행하며 마지막 길도 방송과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길은정이 세상을 떠난 지 3년 만에 길은정의 부친 또한 딸의 뒤를 따랐습니다.

길은정의 부친은 자신의 집 2층 옥상 창고에서 넥타이로 스스로의 삶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세상을 떠나기 전 아버지는 ‘천수를 다했다’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습니다. 

편승엽은 “길은정 씨와 안 좋은 일도 있었고 같이 고통도 겪었지만 아버님 그리고 집안 식구들 모두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참 좋은 분이셨습니다”라며 옛 장인을 추모했습니다. 

여전히 편승엽과 길은정의 진실에 대해서는 대중들은 의문을 가지고 여러 의견을 내고 있습니다. 

‘억울함을 가지고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편승엽에게 응원을 보내기도

‘떠난 자는 말이 없다’며 길은정의 편에 서 편승엽을 비난하기도 합니다.


무엇이 사실인지는 이제 정확히 가릴 수 없게 되었지만 부디 고인이 편히 쉬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