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일 좋아하던 배우가 어쩌다 이런 꼴로…” 85세 오지명의 최근 너무나 안타까운 근황, 이순재 오열..

여러분 시트콤의 대부하면 어떤 사람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보통 이 질문에 많은 분들이 신구, 이순재 씨을 이야기하실 것 같은데요.

하지만 사실 시트콤 코믹연기의 창시자인 오지명 씨 또한 뺴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순풍산부인과’에서 너무나 코믹한 연기로 시청자들을 웃게 만든 오지명 씨은 무려 14년 동안 그 어떤 방송 활동도 하지않고 있는데요.

최근 오지명 씨의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오늘은 모두를 놀라게 한 오지명 씨의 알려지지 않은 일면과 그의 충격적인 최근 근황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대구 상고 학교 짱?

오지명씨는 중학교 3학년 때 발발한 6.25 한국전쟁을 피해 대구로 피신했다고 하는데요.

오지명 씨는 학창시절 공부와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대구상업고등학교의 짱 출신이였다고 하는데요.

심지어 고등학교 시절 술을 마시다 경찰과 시비가 붙어 싸운 적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던 오지명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갑자기 싸움을 멈추고 공부를 시작하게 됩니다.

이유는 바로 아버지의 한 마디 때문이었습니다.

오지명의 아버지는 서울 중앙일보 간부였다고 하는데요.

가족들에게 충실한 아버지가 아니어서 가족들이 살고있는 대구에 잘 오지도 않았고, 생활비도 자주 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 아버지가 갑자기 오지명과 여동생을 서울로 불러 ‘정복자’라는 영화를 보여줬는데요.

갑자기 오지명과 형에게 영어로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질문에 대답한 여동생과 달리 오지명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고, 아버지는 “지명이는 공부 좀 해야겠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에 자극을 받은 오지명은 두 번의 시도 끝에 성균관대학교에 입학했는데요.

배우 오지명

원래 오지명의 목표는 서울대라고 합니다.

그러나 서울대를 두 번이나 떨어지고 성균관대에 합격한 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큰 상실감에 빠졌죠.

대학 2학년 때까지도 여전히 혼란스러워 하고 있던 오지명은 우연히 국립극단 단원 모집에 관한 기사를 읽고 갑자기 극단에 들어가게 됩니다.

“월 2만원을 준다는 사실이 좋아서 들어갔다” 고 말한 것을 보면, 오지명이 처음부터 연기에 대한 꿈이 있어서 극단에 들어온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연기를 시작한 오지명은 누구보다 연기에 열심히 임했는데요.

곧 가족들의 강한 반대에 부딫히게 됩니다.

오지명의 어머님은 ‘연기하는 것이 아편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하면서 연기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는데요.

그러다보니 자신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에게 들킬까봐 두려웠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지명은 무려 50여 편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활발한 연기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이후 텔레비전의 탄생과 함께 오지명은 슈퍼배우로 KBS에 진출해 박근영, 여운계, 이순재 등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이름을 알렸습니다.

1970년 오지명의 첫 번째 전성기가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당시 대부분 남자 배우들이 멜로에 치중하여 큰 인기를 끌었던 것과 달리 오지명은 액션 배우로서의 남성적인 이미지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실제로 오지명은 전성기 액션 배우의 이미지처럼 실제로도 대단한 카리스마의 소유자였는데요.

겨우 한 살 차이나는 최불암도 오지명 앞에서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지금도 오지명은 최보람에게 커피 심부름을 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결혼과 이혼 그리고 가족

오지명은 한때 이혼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는 배우 유정임과 결혼해 슬하에 딸을 두고 있는데요.

그의 딸 오유선은 한 때 영화 배우로서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랐습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인지 이혼을 한 오지명은 이후 1981년 현재 부인인 유연희와 재혼했습니다.

재혼을 계기로 오지명과 유연희의 나이 차가 14살이라는 소식이 밝혀져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슬하에게 1남 2녀를 낳았습니다.

현재 오지명의 아들 오승익 씨는 아버지와 같은 배우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사실 그는 아들이 배우의 길을 가는 게 싫었다고 하는데요.

오지명 자신 또한 가족의 반대에 부딪혀 괴로운 시간을 보냈음에도, 아들의 연기활동을 반대하는 것을 보면 오지명은 그동안 배우 일을 하며 어려움을 많이 겪은 듯합니다.

시트콤으로 재조명

그도 그럴 것이 오지명은 ‘어린 시절 한 주먹 했다’는 과거때문에 ‘조폭이다’, ‘동료 배우들을 주먹으로 때렸다’ 등의 루머로 많은 고생을 했기 때문입니다.

오지명 드라마에서 주로 악역을 맡은 것도 이런 편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던 중 오지명 님의 이미지를 한 번에 전환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게 됩니다.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시트콤  ‘오박사네 사람들’에 출연했던 것인데요.

당시 ‘오박사네 사나이’는 최고 시청률 36.6%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또한 그 안에서 큰 존재감을 지녔던 오지명은 코믹 연기력으로 지금까지 액션 배우 악역 이미지를 모두 털고 연기 변신에 성공했습니다.

그야말로 오지명의 두 번째 전성기가 시작된 것이죠.

그리고 60세가 다 된 나이에 오지명은 지금도 회자되는 명품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 출연합니다.

그는 방송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정다감한 아버지의 모습이 아닌 어리버리하고 코믹한 아버지의 모습을 누구보다 잘 소화해 인기를 끌었습니다.

당시 그의 시트콤 연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오지명, 신구, 이순재 중 최고의 시트콤 배우는 누구냐는 질문에 한 치의 주저 없이 ‘무조건 오지명이다, 오지명은 넘사벽이다’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많은 사랑을 받았던 오지명은 2008년 방영된 코미디 ‘오포졸’ 이후 연기활동을 하지 않게도비니다.

오지명이 일체의 인터뷰와 연예 활동을 하지않았기에 오지명 사망, 오지명 은퇴 등 각종 루머들이 끊임없이 생산되었는데요.

평소 동생이나 다른 연예인을 통해 근황을 자주 알리던 오지명이 뜻밖의 매체에 등장하게 됩니다.

하늘궁 신도?

바로 제 20대 대선 출마자였고, 하늘궁의 교주인 허경영 씨의 유튜브 채널에서였죠. 

하늘궁은 ‘그것이 알고 싶다’, ‘피디수첩 탐사보도’와 같은 취재 프로그램을 통해 그 민낯이 낱낱이 밝혀진 바 있는데요. 

자세한 내용들은 여러분도 잘 아실 것이라 생각됩니다. 

무려 14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오지명 님은 당시 대선 선거 활동 중이던 허경영 씨의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허총재님이 이번에 꼭 대통령이 되셔야 해요 그래야 나라가 삽니다” 라고 하거나

“총재님의 1억 원 지급 공약이 말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계산을 해보니까 그 공약은 말이 됩니다” 라는 지지 발언을 하기도 했는데요. 

그런데 이런 발언에서만 그치지 않고 오지명 씨는 직접 허경영 씨의 선거 유세에 나가 힘을 싣기도 하는 등 허경영의 하늘궁 신도 그 자체였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네티즌들은 충격을 금치 못하며 “어떤 뉴스보다 충격적인 소식이다”

“가족들은 알고 있나 이게 무슨 일이야”


“선생님 어쩌다가…”와 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요. 

물론 무언가를 믿고 지지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함부로 왈과 왈부할 수는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지명은 후배들을 괴롭히는 피디들의 권위에 맞서 싸우거나 어떤 상황이든 불의를 보고 참지 않았는데요. 


그런데 오지명이 지지하는 허경영 씨는 자신이 만든 하늘공에서 신도들을 대상으로 기부금 명목의 금전을 받고 여성 신도들과의 부적절한 접촉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람입니다. 


또 허경영 씨에 대한 피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있죠 대체 오지형 님에게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길래 이런 상황까지 온 것일까요?


참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여전히 오지명 씨는 시트콤 섭외 1순위입니다. 

동료 배우 이순재 씨 또한 방송에서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지 않는 오지명 씨가 요즘 그립다”라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이순재 씨의 측근에 의하면 오지명의 최근 근황을 접한 후 많이 안타까워하셨다고 합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그의 연기를 기다리고 있는 만큼 오지명 씨가 부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연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길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