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관우야 내가 너 엄마야..” 59세 가수 조관우 어쩌다 이 지경까지…충격적인 근황과 김미화와의 가슴절절한 인연

 
신승훈, 김건모, 조성모  세 가수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혹시 아시나요?

 
이들은 4집 연속으로 무려 100만 장 이상의 음반 판매고를 올리며 90년대를 휩쓴 남자 솔로 가수입니다. 

물론 이러한 기록을 말하지 않아도 그들의 전성기 당시 인기와 영향력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 있죠.


그런데 엄청난 음반 판매량을 기록한 남자 솔로 가수가 또 있다는 사실 알고계셨나요?


그 주인공은 바로 조관우 씨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관우가 그러한 놀라운 기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모를텐데요.

오늘은 한 때 신승훈, 김건모, 조성모와 어깨를 나란히 할 굉장한 기록을 가지고 있지만, 많은 이들의 기억에서 급속도로 사라졌던 비운의 가수 조관우의 파란만장한 이야기

그리고 최근 그의 안타까운 소식도 함께 전해드리겠습니다.

방치된 어린 시절


나아가 그가 김미화만 보면 눈물을 흘리는 속사정도 함께 조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조관우 씨는 고작 6살 때 부모님의 이혼을 겪었는데요.

그 후 어린 조관우 씨는 양육권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와 같이 살았습니다.


그러나 판소리 명창이었던 그의 아버지 조통달 씨는 너무 바빠 조관우를 제대로 돌보지 못해 그는 외할머니 집과 친척집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에서는 어머니에게 양육권을 주는 것이 이치상 맞을텐데요.


그럼에도 아버지에게 양육권이 있는 이유는 어머니가 6살 조관우를 철저히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잠시 후에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조관우 씨가 할머니 집에 살 때 그의 할머니는 우울증을 앓고 있어, 조관우를 데리고 몇 번이나 극단적인 시도를 했다고 하는데요.

이 때문인지 조관우 씨는 말수가 유난히 적어졌고 어린 나이부터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조관우 씨가 10살 때 아버지가 재혼하셔서 마침내 아버지와 한 집에서 살 수 있게 되었는데요.

그것도 잠시 3년 만에 집을 나가는 등 그 이후도 조관우 씨의 삶은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아마 애착 관계가 형성되어야 할 시기에 마땅히 받아야 할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

데뷔하자마자 밀리언셀러?

그러나 이렇게 불우했던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조관우 씨에게는 뛰어난 재능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형문화재 판소리 명창 박초월, 판소리 명창 조통달

할머니에서 아버지로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음악인의 피가 흘렀고, 그런 그는 데뷔와 동시에 대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그의 대표곡인 ‘늪’이 실린 1집 앨범은 130만 장이라는 기록적인 판매고를 올렸는데요.

심지어 조관우 씨는 당시 방송 활동도 하지 않으며 이런 기록을 세웠다고 합니다.

조관우는 데뷔 당시 얼굴 없는 가수로 활동 해 앨범 프로모션이나 TV출연을 전혀 하지 않았죠. 

그럼에도 불구 엄청난 그의 앨범판매량은 그가 얼마나 크게 대중에게 어필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와도 같았죠.


이후에도 조관우 씨의 인기는 이어져 2집, 3집, 4집이 모두 100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기록하였죠.

앞서 언급했듯 4집 연속으로 밀리언셀러 기록을 세운 솔로가수는 신승훈, 조성모 김건모가 유일합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상승세를 이어온 이들과는 달리 조관우는 대중들 사이에서 급속히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위기의 순간

사실 당시 조관우 씨의 등장은 가요계에 큰 충격을 안겼는데요.

여성들보다도 높은 자유로운 음역대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가성 또한 누구보다 깨끗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그의 데뷔와 동시에 일어난 성공은 그가 개척한 팔셰토 창법 덕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1,2집 발매 후 겉으로 보이는 엄청난 성공과는 달리 너무나 심각한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고 합니다.


조관우는 회사와의 불리한 수익 분배 구조 때문에 앨범을 100만장 이상 연속으로 팔았지만, 돈이 없어 막걸리로 끼니를 떼우곤 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한 뉴스에 따르면 조관우 씨의 2집 판매량은 무려 320만 장을 넘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는데요.

공식 통계상 이 앨범보다 많이 팔린 앨범은 김건모의 3집, 신승훈 5집, BTS의 앨범 2장 이렇게 총 4장 뿐이라고 합니다.


이 정도로 많은 음반을 판 사람이 생활고에 시달리다니…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당시에는 소속사의 불합리한 횡포가 만연해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조관우 씨는 소속사를 나와 차츰 안정을 찾는 듯했는데요.

또 다른 시련을 겪게됩니다.


바로 조관우 씨의 지인의 배신으로 15억원이나 되는 막대한 빚을 지게 된 것이죠.

게다가 조관우 씨의 불행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2011년 당시 mbc ‘나는 가수다’의 무리한 일정으로 인해 가수 생명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성대 결절이 오게 된 것인데요.


그는 성대 결절 진단을 받고 “난 이제 그냥 죽어야 하나?”라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회복이 어렵다는 의사들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마침네 성공적으로 회복하게 됩니다.

2번의 이혼 그리고 4명의 자녀

조관우 그는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었는데요.

첫 부인 장연우 씨는 우연히 음악을 하다가 조관우 씨와 만났다고 합니다.

장연우 씨는 조관우 씨의 음악 스승이었다고 하는데요.

장연우 씨는 조관우 씨의 대부분의 곡 작업을 도맡아 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장연우 씨는 음악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음악적 공감대 때문인지 두 사람은 이혼 후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관우 씨와 함께 식사도 하고, 함께 앨범을 만드는 등 여전히 좋은 동료라고 하는데요.

하지만 두번째 부인인 손혜련 씨와는 그다지 좋게 헤어지지 않았는데요.

앞서 말씀드렸던 경제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큰 상처를 안고 자란 조관우 씨는 누구보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결혼을 선택했을텐데요.

안타깝게도 그에게 돌아온 것은 두번째 이혼의 쓴 맛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후 “이혼의 아픔보다는 나의 4자녀에게 부모의 이혼을 경험하게 한 것이 더 마음이 아팠다” 고백 했습니다.

이쯤에서 아까 못 다한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마무리 해볼까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너무나 바빠 집에 거의 오지 않았기 때문에 조관우 씨는 아버지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는데요.

6살 때 헤어진 생모와의 관계는 말할 것도 없죠.

그런데 조관우 씨가 10살이 되었을 때 자신이 보고 싶어 친어머니가 찾아왔다고 하는데요.

어머니를 전혀 알아보지 못해, ‘이 아줌마 도대체 누구지?’라는 생각까지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조관우 씨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은 것 같습니다.

김미화와의 슬픈 인연

 
김미화 씨와의 일화를 들으면 그의 상처가 더 많이 느껴지는데요.

조관우와 김미화는 연예계에서 각별한 동료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연히도 김미화 씨와 조관우의 친모는 이름이 같고 체구도 비슷하다고 하는데요.

조관우 씨는 그래서 김미화를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졌고, 두 사람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김미화 씨는 조관우 씨가 너무 안쓰럽게 여겨져 그를 많이 감싸주었다고 합니다

이후 조관우 씨는 “김미화 씨가 내 엄마 같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친어머니에 대한 갈망이 얼마나 컸던지 모르는 동료에게서 엄마의 그림자를 찾았던 조관우 씨

그는 아직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 아이들에게는 이혼한 아버지로써의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배경 때문인지 최근 방송에 나온 조관우 씨의 모습은 너무나 초라했는데요. 

그는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행사가 취소되어 수입이 끊겼고, 15억원의 빚 때문에 집 두 채와 카드 등 모든 재산이 압류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심지어 생활고로 인해 전 처의 양육비도 두 달째 못준 상황이라고 합니다.  

주변에서는 조관우 씨에게 파산을 권유하기도 했는데요. 

그러나 그는 파산 신청을 하지 않았으며 “언젠가 기회가 오면 빚을 갚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밝혔죠.

자기 잘못으로 진 빚도 아니고 지인의 배신으로 지게 된 빚임에도 피해를 본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책임지려 하는 조관우 씨의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지면서도 참 안타까운데요.


쓸데없는 생각처럼 들릴 지 모르겠지만 조관우 씨가 만약 그를 진정 아끼고 사랑해줄 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자신을 정말 아껴주는 소속사에 들어갔다면 그의 가수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신승훈, 김건모, 조성모와 같은 대기록을 세웠다는 점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