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67세 코리아나 이용규 암 투병 끝에 하늘로…딸은 아파트 6층서 투신..이쁘고 멋진 부녀에게 왜 이런 비극이..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라는 노래를 다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주제가였던 이 노래를 불렀던 그룹 코리아나가 불러 유명해졌죠. 

2명의 남성, 2명의 여성으로 이루어진 이 그룹의 멤버 중 한 분은 연예인인 클라라의 아버지이기도 한데요. 

2021년 코리아나의 멤버였던 이용규 씨가 67세의 일기로 암 투병 중 사망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재벌과 CJ그룹의 맏며느리로 시집 간 딸 이래나 마저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다고 하는데요.

오늘은 그의 아픈 가족사를 알아보겠습니다. 

전설의 그룹 코리아나


코리아나는 이용규, 형 이승규, 동생 이혜숙, 사촌 형수 홍화자로 구성된 4명의 가족 그룹으로 유명했죠. 

멤버 이승규의 딸은 바로 배우 클라라인데 요즘 한국 활동은 뜸하지만 중국에서 아주 활기차게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은 참으로 알 수 없는 게 이승규 씨의 동생 이용규 씨가 먼저 세상을 하직했는데요. 

‘오는 것은 순서가 있고 가는 것은 순서가 없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손에 손잡고’는 언제 들어도 가슴 뭉클한데 이용규 씨는 영어 발성과 창법이 아주 인상 깊었죠. 

이용규는 1962년 2월부터 그룹 코리아나의 보컬리스트로 데뷔하여 가수 활약했습니다. 

코리아나는 1988년에는 대한민국 서울 올림픽 테마 송이었던 ‘손에 손잡고’를 부르면서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죠. 


지금 들어봐도 촌스럽지 않고 노래가 좋은데요. 

당시 ‘손에 손잡고’는 약 1200만 장이 팔리며 세계적인 인기를 누렸죠. 


그때 ‘빅토리’라는 노래도 큰 인기를 끌었고 아마 펩시콜라 광고에도 쓰였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코리아나는 이승규, 이용규, 이혜숙 남매와 사촌 형수인 홍화자로 구성된 가족 그룹인데요.


이승규는 배우 클라라의 아버지로도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으니, 이승규와 이용규가 형제 관계이므로 클라라는 이용규의 조카가 됩니다. 


코리아나는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음반 프로듀서 조르조 모로더가 작곡한 88 서울 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잡고’를 노래했는데요.

해당 곡은 당시 유럽 차트 상위권에 오르는 등 큰 인기를 얻었죠.

그룹 코리아나의 전신은 1976년 ‘파이브 핑거스’의 멤버였던 이승규, 이용규 그리고 이들의 형수 홍화자

따로 트리오 활동을 하던 홍화자의 오빠인 홍신윤 그리고 그의 아내 안영희 동생 홍윤식

이렇게 두 사돈 집안이 합쳐지면서 만들어진 ‘아리랑 싱어즈’로 음악 활동을 시작했죠. 


1978년 이 멤버 그대로 발표한 싱글 ‘Dark eyes’가 유럽 전역에서 빅히트를 치면서 상당한 인기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1979년 안영희, 홍신윤 부부가 탈퇴하면서 김규식, 김유희를 새로 영입하여 ‘코리아나’로 개명하여 활동을 이어나갔는데요. 


이 시기에 국내에도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국내 팬들도 이들의 존재를 알게 되었죠. 

1985년 홍윤식이 탈퇴하면서 그룹은 이용규 이승규 이혜숙 홍화자 이렇게 우리가 아는 4인조로 축소되었습니다.


이들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 주제가를 담은 음반을 발표하는데 개막식 때 명곡 ‘손에 손잡고’를 부르면서 전 세계적으로 알려집니다. 


당시의 해외 음악 트렌드와 정보를 얻기 어려웠던 국내에서는 그룹 코리아나를 교포들이 만든 3류 가수 수준으로 취급했는데요.


그러나 코리아나는 197080년대 당시 유럽에서 상당히 인기를 얻었던 그룹으로 아리랑 싱어즈 시절의 대표곡인 ‘Dark eyes’는 국내에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었죠. 

1980년 당시 서독의 인기 프로 ‘무지크라덴’에서 유럽의 음악 그룹 탑텐에 선정되기도 하는 등 당시 해외에서의 명성도 대단했고 음악성도 알아주는 그룹이었죠. 


따라서 코리아나는 전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의 주제곡을 부르기에 결코 부족하지 않은 명성과 실력을 가진 그룹이었다고 할 수 있는데요. 


88 올림픽을 계기로 올림픽 주제곡인 ‘손에 손잡고’ 외에도 역시 조르조 모르더 작곡의 ‘더 빅토리’라는 노래를 발표했고 이 곡 또한 대중적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습니다. 

부녀의 비극


한편 sbs 이재룡 정은아의 좋은 아침에서는 코리아나의 둘째 이용규의 집이 공개된 적이 있는데요. 


성공적인 사업가로 변신해 서울에 살고 있는 이용규는 아내 주세량 씨, 딸 이래나 양과 함께 mc들을 맞았죠. 

코리아나 멤버들과 가족 모임을 갖는 장소로 주로 쓰이는 그의 집에는 지하에 손님들을 위한 바를 만들었고 집 안 곳곳을 은은하게 수놓은 조명은 훨씬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습니다. 

방송에는 코리아나 이용규의 딸 이래나 양이 나왔는데요.


이용규의 딸 이래나는 얼굴도 예쁘지만 공부를 정말 잘했습니다. 

이래나 양은 초등학교 졸업 이후의 짧은 유학 생활 말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국내 외국인 학교에서 공부했는데 전교 1등 자리를 놓치지 않을 정도로 성적이 좋았다고 합니다. 


머리도 좋았지만 공부를 잘하고자 하는 승부욕도 강했죠.

미국의 명문 예일대에 합격한 이야기와 함께 공부에 대한 부분도 이야기를 했는데 하루 4시간 이상은 자지 않고 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미모도 출중하시고 tv 화면을 통해 받은 그녀의 느낌은 수수함도 느껴지고 따뜻한 사람으로 보였죠. 


요즘 흔히 말하는 뇌섹녀라는 말은 이래나 씨 한테 어울려 보였습니다. 


이래나는 클라라의 사촌이라고 하는데 어려서는 연예인을 꿈꾸기도 했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꿈을 접었다고 하는데요. 

이래나 씨는 “어릴 때 연예인을 꿈꿨다 하지만 아버지가 극구 반대했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연예인을 해서 경험이 많으셨기에 내가 연예인이 되고자 하는 걸 말리셨다”고 밝혔는데요. 


이래나 씨의 아버지 이용규는 “지드래곤이나 비처럼 끼와 열정을 갖춰도 힘든 곳이 연예계”라며 이래나가 연예계의 모든 뒷 이야기를 듣고 “쉬운 공부를 하겠다고 했다”고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요즘 이런 저런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클라라 씨와는 다르게 예일대에 엄친 딸로서 이래나 씨가 더욱 돋보였는데요. 

고 이용규 씨의 딸 이래나 씨는 예일대학교 재학 중 모 재벌가의 회장 아들과 결혼했으나 2016년 사망하는 비보가 전해져 충격을 안겨줬었는데요.


고 이래나 씨는 뉴헤이븐에 거주하던 2016년 11월 4일, 결혼 7개월 만에 ₩ 6층에서 향년 22세의 꽃다운 나이에 투신해 사망했다는 미국 한인사회의 언론 매체의 보도가 있었습니다.


당시 그가 9월 학기가 시작된 뒤 학업 등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는 지인들의 말이 있었지만 자세한 투신한 사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습니다. 

이선호 부장을 만나 2년 간의 교제 끝에 2016년 결혼에 골인했던 고 이래나 씨는 가수 이용규의 딸로 남다른 외모와 끼로 한 때 연예인 꿈을 꿨으나 아버지의 극구 반대로 미국 예일대에 입학했다고 전해졌는데요. 


당시 고 이래나 씨의 나이가 22살이었던 것을 감안했을 때 결혼을 서두른 이유에 대해서는 신장이식 수술 후 거부 반응이 계속되는 등 불안정한 상태에서 부신부전 증세까지 있었던 CJ 그룹 이재현 회장의 권고가 있었다고 알려졌죠. 

또한 이선호와 결혼한 지 7개월 만에 맞은 비극이었으며 특히 고 이래나가 빼어난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재원이었다는 점이 알려져 많은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아울러 일각에서는 이 일대 재학생들이 고 이레나의 사망 이후 소속 명문대의 휴복학 절차와 학업 스트레스를 문제 삼았다고 전하기도 했으며 적잖은 명문대생들이 휴학 후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예일 대학교 여자 펜싱팀의 추모글에서는 ‘레나는 햇살 같았습니다. 어디를 가든 즐거움을 해뿌리고 다녔죠’

‘밝았던 모습을 표현할 단어가 마땅치 않을 정도의 사람이었습니다’라며 글을 남겼는데요. 

또한 과거 이래나 씨는 하루 4시간 이상 잔 적이 없을 정도라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학구열을 보였습니다.

예일대 한 재학생은 입학하면 쏟아지는 과제와 압박에 우울증이나 정신적 문제를 호소하는 사람이 많지만 학교를 다니면서는 제대로 된 정신 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죠. 


이어 이선호 씨는 2018년 10월 부인을 잃은 지 2년도 채 안 돼 이다희 전 스카이TV 아나운서와 결혼해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몇 년 만에 부녀 모두가 안타깝게 고인이 되어 가슴이 아픈데요.

왜 이런 비극적인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곳은 아픔 없는 행복한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삼가 고인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