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도 안한 처녀에게 이런 짓을…” 64세 장미희 결혼도 못하고 각하 그늘에서 침묵한 과거…이제야 그 진실 밝혀


“아름다운 밤이에요” “떡 사세요~ 떡”이라는 유행어를 남기며 큰 사랑을 받았던 배우 장미희는 정윤희 유지인과 더불어 1970년대를 대표하는 여배우 트로이카 중 한 명입니다. 


장미희는 그 시절 다른 연예인과는 색다른 매력을 뽐내며 우아한 말투와 늘씬한 몸매 그리고 이지적이면서도 섹시한 얼굴로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하지만 각종 스캔들과 루머 그리고 학력 위조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장미인은 트로이카 여배우들 중 유일하게 한 번도 결혼하지 않아 아직 미혼인데요. 

나이가 들어도 잃지 않는 아름다움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여전한 인기를 구가하는 배우 장미희가 왜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소문들이 과연 진실인지에 대해 파헤쳐 보겠습니다. 

2세대 트로이카


장미희는 1958년생으로 올해 65세입니다. 

키 167cm의 늘씬한 장미희는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예쁘기로 소문나 있었다고 하는데요.

원래는 장미정이라는 본명이 있었지만 나중에 장미희로 개명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장미희는 유년 시절 아버지가 갑자기 집을 나가 홀어머니가 힘들게 키워주셨는데요. 

예쁘장한 외모와는 다르게 굉장히 활발한 섬머슴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축구를 좋아해 늘 축구공을 달고 살았고, 축구공으로 남자애의 발목을 맞춰 넘어뜨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원래 장미희는 초등학교 교사가 장래 희망이었으나 그녀의 외모를 아까워하던 언니가 장미희를 1972년 예술대회의 강제로 출전시켜서 금상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장미희는 그 후 1975년 TBC 특채 탤런트로 뽑혔는데요. 

이듬해인 1976년 박태원 감독의 신임 배우 공채 모집에서 276 : 1의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 춘향 역에 발탁되면서 영화 ‘성춘향전’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이후 장미희는 영화 겨울 여자로 당시 최다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배우로 거듭나는데요.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다양한 작품에 주요한 역할을 한 장미희는 유지인, 정윤희와 함께 문희 남정임 윤정희의 뒤를 잇는 2세대 여배우 신 트로이카 시대를 열었습니다. 


특히 동시대 여배우들과 비교했을 때 장미희의 흥행력은 압도적이었는데요. 


장미희는 역대 국산 최고 영화 흥행 기록을 두 차례나 갱신한 유일한 배우이기도 합니다.


1980년 종합소득세 신고 납부액에서 8천850만 원을 신고하고 세금만 해도 1700만 원을 납부했는데 이는 1979년 여배우 중 최고 수입이었습니다.


또 장미희는 젊은 시절부터 프로 정신이 대단해 창문을 통해 옆 건물로 이동하거나, 눈 위에서 경주용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 등 스턴트나 대역이 필요한 위험한 연기도 직접 다 해내는 열정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당시 정윤희가 외모로는 압도적으로 주목받았지만 장미희의 이런 연기 열정에 라이벌 의식을 가질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며 톱 연예인의 길을 걷던 장미희는 1982년 신군부 집권 시기에 출연금지 연예인 목록에 오르면서 1984년까지 제대로 된 드라마 활동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시간을 틈타 연기 공부를 위해 1982년, 1983년 두 번이나 미국 유학을 갔는데요.

장미희의 공백기를 심화시키는 데 큰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공백기 때문에 정부에 외압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기도 했는데요. 

이것이 장미희의 스캔들 중에서 제일 유명한 스캔들입니다. 

장미희 스캔들

전두환 전 대통령 정권 시절, 전두환이 장미희를 아껴 내연녀로 삼자 이에 질투한 이순자가 드라마 ‘길’을 촬영하고 있던 장미희를 납치해 자궁 적출 수술을 받게 하고는 알몸 상태로 5일 동안 남자가 있는 감방에 넣었다는 내용인데요. 


사실 이 스캔들이 떠오른 시기는 1980년인데 전두환의 여성 편력과 관련된 루머가 한참 나오던 때였고, 때마침 장미희가 미국 유학을 떠나는 등 갑자기 활동이 뜸해져 루머에 불을 지폈습니다. 

이 스캔들이 얼마나 당시에 파장이 컸던지 이를 영화화한 ‘서울 무지개’가 1989년에 상영되어 큰 흥행을 이끌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장미희가 82년 귀국 후 ‘깊고 푸른 밤’으로 그의 흥행 1위를 차지하고 ‘사의 찬미’ 등의 히트작을 쏟아내며 활발히 활동하자 루머는 점차 잦아들었습니다.


장미희 본인도 루머에 대해 인정한 적이 없고 종편에 연예계 뒷담아 프로에서조차 다루지 않으나, 아직까지 장미희가 미혼이다보니 계속해서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이렇게 장미희는 지금까지 미혼으로 지내고 있지만 사실 몇 번의 스캔들이 더 있었습니다. 

장미희의 남자

장미희는 귀국 후 배창옥 감독과의 만남으로 그녀의 영화 인생은 전환점을 맞게 되었는데요.

배창호가 감독을 맡은 안성기와 함께 주연을 맡은 적도 있고 ‘깊고 푸른 밤’이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적도의 꽃’의 흥행 성공으로 대종상 수상까지 하게 되는데요. 


이는 미국 유학 후 힘들 줄 알았던 연기 인생이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누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깊고 푸른 밤’은 장미희가 이전에 처녀 혹은 아가씨의 모습에서 벗어나 원숙미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색다른 충격을 주었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장미인은 뜻밖의 공개 구혼을 받게 되는데요. 

실제 과거 두 차례나 그녀와 영화 작업을 한 배창호 감독이 당시 기자들을 모아놓고 단독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그는 “장미희와의 결혼을 희망한다”고 언급했는데요.

하지만 장미희의 의사와는 관계없는 독단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이에 분노한 장미희 어머니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공개 구혼을 거절했고

훗날 장미희 본인 역시 “해명을 하고 싶지도 않을 만큼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어이없는 황당한 사건이지만 배창호 감독은 실제로 장미희를 많이 흠모했다고 합니다. 

그는 무명 시절 우연히 장미희의 친절함에 감동을 받았고 이후 감독을 맡고 오랜 기간 장미희와 호흡을 맞추며 연정을 품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장미희가 당시 마음에 품고 있던 사람은 따로 있었는데요.

1983년 26살의 장미희는 과거 잘나갔던 회사인 경남기업 사장과 약혼 소식을 전한 바 있습니다. 

그는 장미희보다 19살 연상의 남성이었는데요. 


실제 당시 두 사람의 관계는 매우 깊었고 결혼 날짜까지 잡았다고 합니다.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밀회를 가진 사진도 공개될 만큼 각별한 애정을 보여주던 이들은 갑작스럽게 파혼을 선택하게 되는데요. 


급격하게 경영 사정이 나빠진 경남기업의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이때 장미희는 크게 낙심했다고 하는데요. 

실제 당시 그녀는 “다시는 결혼하지 않겠다”라는 말을 동료 탤런트인 김영자에게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 경남기업의 사주 역시 그 후 여태껏 결혼하지 않은 채 독신 생활을 이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먼 훗날 두 사람의 사연을 안타까워한 장미의 동료 선우용녀는 20년이 지났을 때쯤 이들이 다시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긴 시간이 지나 56살이 된 장미희는 이 만남 주선을 거절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장미희는 과거의 인연을 그저 추억으로 남겨두길 희망했다고 합니다. 

학력위조 논란

한편 장미희는 학력 위조 논란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장미희가 장충 여자고등학교 ->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 미국 호손대학교를 졸업하였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실제로는 동국대학교 청강생에 불과했던 것인데요.


또 그녀가 졸업했다는 미국 호손대는 미인가 대학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런 학력위조 논란의 장미희는 사과 대신 할 말이 없다며 대답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잃지 않는 아름다움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여전한 인기를 구가하는 배우 장미희는 워낙 인기가 많았던 탓인지 수많은 루머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는데요. 

루머가 어디까지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녀가 평생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고 있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그녀만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연기 활동을 꾸준하게 이어나가며 자신의 꿈을 향해 끊

임없이 도전하는 것은 참 멋있게 보입니다. 

항상 여배우의 이름 아래 멋지게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을 오래도록 봤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