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바로 걷기도 힘들어..” 국민아버지 강석우 모든 방송 하차하고 폭삭 늙어버린 최근 근황, 도대체 무슨 일이?

누구나 천천히 늙습니다.

나이를 먹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불가피하게 발생하기에 피할 수 없으면 최대한 즐기는게 좋죠.


어차피 미래는불확실하니 온갖 상상을 하며 불안해봐야 스트레스만 쌓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몇 가지 대비는 해놓는 것이 좋겠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 편한 것인데요.


오늘의 주인공 강석우 역시 당시 최고의 청춘스타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2022년 3차 접종 후 눈 앞에 먼지나 벌레가 보인다며, 결국 걷는 연습부터 다시 하게 되더니

“자신이 너무 늙었다”며 모든 방송을 그만둬야 했는데요. 

오늘은 강석우의 파란만장한 삶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얼떨결에 배우


1957년 6월 25일에 태어난 강석우는 월남해 부산에서 고아원을 운영하던 부모의 1남 3녀의 장남 태어납니다.


그의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아들 강석우가 목사님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초등 6학년 때 아주 독특한 경험을 했고 그날부터 음악가가 되는 꿈을 갖게되는데요.


어느 날 수업 시간에 학교 앞을 지나가는 차가 경적을 울려 선생님이 “이 음이 뭔지 아냐?”고 물었는데 강석우가 ‘솔’이라 답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풍금 뚜껑을 열어 ‘솔’음계를 찾더니 어린 강석우가 맞췄다며 칭찬을 했습니다.

결국 이 날의 기억이 음악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되어 이후부터 음악가의 꿈을 가지게 됩니다 


사실 학창 시절만 해도 훗날 본인이 배우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채 대학 역시 영화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 입학을 했는데요. 

대학교 2학년 때 장난으로 연기 오디션을 봤는데 무려 800:1의 경쟁률을 뚫고 1등을 해 배우의 길을 걷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그 때만 하더라도 연기에 거의 관심이 없었는데요.

오디션에 지원한 것도 배우가 되고싶었던 것이 아니라 당시 정부 기관에서 남녀 신인 배우 모집을 하면서 무려 100만원의 상금을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이 오디션의 혜택은 어마어마했는데요.


방송사 3사에 출연하는 것은 물론 영화에서 바로 주연을 맡게 되는 엄청난 특혜였다고 합니다. (강석우가 본 오디션이 정부 기관에서 실시하는 처음이자 마지막 오디션이였다고 합니다)


그렇다 보니 방송사 공채를 힘들게 통과한 후 오랜 시간을 무명으로 보내야 했던 다른 배우들은 강석우에게 큰 불만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강석우는 당시 어떤 배우와도 어울리지 못하는 따돌림까지 당해야 했죠.


심지어 선배들은 그가 고개도 숙이지 않고 다닌다며 면전에다 “건방진 놈, 재수없는 놈”이라는 말까지 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속으로 ‘나는 너희들과 가는 길이 다르다’라고 생각하며 참았다고 하는데요.

결국 1985년 연기활동을 쉬게 되면서 배우가 아닌 다른 길을 고민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막상 연기를 그만두려니 나이도 찼고, 도대체 뭘 해야할지 막막하던 차에 평생의 은인 최인호 작가를 만나게 됩니다. 

하이틴 스타에서 아버지 전문배우가 되기까지

당시 그는 최인호 원작의 영화 ‘겨울 나그네’에 출연했는데, ‘이제 연기 없이는 길이 없다’는 생각에 열심히 촬영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주인공의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얻기 위해 일부러 일주일 동안 머리를 감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흣닐 그의 고백에 따르면 당시에는 자존심이 너무 강해 ‘겨울 나그네’ 제작 당시 출연 배우 이름이 나오는 순서를 놓고 실랑이까지 벌였다고 합니다.

강석우는 “내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이름이 먼저 와야 한다”고 주장했는데요.

영화사 측은 이미 알려진 안성기 씨의 이름을 먼저 내세우고 싶어했기에 당시에는 본인을 설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 영화가 큰 인기를 끌며 그는 가장 핫한 청춘 스타 중 한 명이 되었고, 이 때 가장 소중한 사람인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됩니다.


강석우는 친구 생일 파티 자리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첫 눈에 반해 그가 먼저 호감을 표시했다고 하는데요.

당시 그의 아내는 그에게 딱히 호감은 없었지만 ‘유명한 사람은 어떻게 살까?’라는 호기심에 몇 번 만나다보니 마음이 가 연애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둘은 1년 열애 끝에 결국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그는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했고 중년 아빠, 착한 아빠, 힘없는 아빠 등의 역할을 많으며 아버지 전문 배우가 되었습니다.

또한 연기 외의 분야에서도 활약했는데요.


대표적인 예가 라디오 입니다.

그런데 그가 나이는 먹었지만 아직 청춘의 꼿꼿한 성품을 간직하고 있어 벌어진 구설수가 있었습니다.

실명 위기


2015년 세월호 1주기에 박근혜 대통령이 해외 순방을 나가는 것을 보고, 

그가 “세월호 1주기인데 희생자 가족을 위로해야지”

“국제 행사가 중요하다해도 지금 출국하면 되겠느냐? 하루라도 미뤄야지”라며 대통령을 비판하는 쓴소리를 하여 큰 논란이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정치적인 의도가 아니라 세월호 아이들의 부모 입장에서 했던 말이었다”라고 해명했지만

이로 인해 그는 8년 간 진행했던 라디오를 하루 아침에 하차하게 됩니다. (정확한 하차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정부의 실권자에 의해 하차해야했다는 소문까지 돌았죠)

2022년 1월에는 3차 접종 후 ‘글씨를 읽을 수가 없다’며 또 다른 라디오 프로를 포함한 모든 방송을 중단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에 대해 그는 “3차 접종 이후 한 쪽 눈에 먼지나 벌레가 떠다니는 것 같은 증세가 나타났다”

“도저히 글씨를 읽을 수 없었고, 두려움이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실명 가능성도 배제 할수없었던 상황이라 당시 혼자 눈을 감고 걸어보는 연습을 할 정도였다”

“뭔가 폭삭 늙은 느낌이었다”


“다행히 한 달 반 정도 증세가 이어지다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마 일시적인 후유증이 아니었나 싶다” 라고 밝혔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석우는 한 방송에서 “살아가다 보면 불가피하게 조직 생활을 하게된다”

“물론 조직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바가 있겠지만 다른 것을 추구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다”

“젊었을 때는 술 마시는 모임이라든지 어떤 집단에 들어가지 않으면 스스로 도태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있다” 라고 말했는데요.

배우 시절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모든 것을 이겨냈던 지금의 강석우 씨를 응원하며 앞으로도 활발한 연기활동 보여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