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임신까지 시키고..” 나이 들어 결혼한 민해경, 믿었던 연하 남편의 충격 만행에 논란? 어떻게 참고 살았나

1979년 말 고등학생의 나이로 가요계 혜성처럼 등장한 가수 민해경

당시 서구적인 미모와 시원한 가창력으로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1980년대 최고의 디바로 군림하였습니다. 


당시 그녀의 노래 ‘그대 모습은 장미’가 히트하자 그녀의 집 앞에는 장미가 한가득이었고

이번에는 ‘그대는 인형처럼 웃고 있지만’이 히트 하자 인형이 매일같이 집 앞에 쌓이는 등

그렇게 1980년대의 민혜경은 당시 여자 가수는 라이벌이 없을 정도로 그녀의 독주 시대였습니다. 

이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로서 그녀의 인생길은 항상 탄탄대로 꽃길만 펼쳐질 것 같았지만…

가수로서의 민해경과 달리 정작 인간 민해경의 인생길은 꽃길이 아니라 누구보다 힘든 맨발의 가시밭길이었습니다.

그녀는 한때 연예인 요정 출입 스캔들이 터져 방송 출연 금지 조치를 당해 단돈 30만 원을 들고 일본으로 떠나야 했는데요.

당시 너무나도 억울한 마음에 급기야 술에 취한 상태에서 해서는 안 될 행동을 두 번이나 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또한 처음으로 결혼까지 생각한 굴지의 s그룹의 자상한 남자를 만났지만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 말아야 했고

이후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며 행복을 그렸지만 하지만 이번에는 모두가 반대해 일가 친척이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은 가슴 아픈 결혼식을 치러야 했던 가수 민해경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고등학생이 밤무대에?

1962년 대구에서 태어난 민해경은 어린 시절 직업군인인 아버지로 인해 굉장히 무섭고 엄한 가정에서 자랐는데요.

그녀의 어린 시절 별명인 여우 깍쟁이가 말해주듯 당시 내성적이고 결벽적인 성격 때문에 남과 어울리지 못하고 항상 혼자였다고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가창력이 남달랐던 그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전국 노래 자랑에도 출전한 적이 있는데 당시 두 번의 예선을 좋은 성적으로 통과는데요.

그러나 나이를 속이고 출전한 게 뒤늦게 들통나 결국 본선에는 오르지 못했습니다.

한편 당시 군인이던 아버지가 퇴업과 동시에 사업에 투자를 하였다가 전 재산을 날려 먹는 큰 사기를 당하게 되었는데요.

이때부터 가세가 기울어 급격하게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고 말았습니다. 

이후 그녀는 학교에서 육성회비와 등록금을 내지 못해 자신의 이름이 불릴 때는 너무나도 부끄러워 사라지고 싶었다고 하는데요.

이때부터 어려운 집안 사정에 보탬이 되고자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 돈을 벌기 위해 무작정 나이트 클럽을 찾아가게 됩니다. 


처음에는 학생이 이런 곳에 오면 안 된다며 업주들은 그녀를 내쫓았으나 끈질기게 노래를 부르게 해달라고 조른 결과 고등학교 2학년의 나이로 밤 무대 가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그녀가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은 업주들만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는데요.

한 번 무대에 오르면 3만 원을 받았는데 노래 잘한다는 소문에 6군데 무대를 다니며 한 달에 20만 원가량을 벌었습니다.

근로자의 평균 월급이 14만 원이던 그때 5남매와 부모님을 책임져야 했던 그녀에게는 그야말로 엄청난 돈이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일대에 있던 나이트클럽 업소 사이에서 노래 잘하는 아이로 입소문을 타면서 그 일대를 장악했고 덕분에 집안의 빚도 갚고 온 식구가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 역시 어린 소녀에 불과했습니다.

나이트 클럽의 거친 어른들을 사회의 첫 인상으로 만난 그녀는 자연스레 마음의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이때를 그녀가 고백하길 “밤무대에 서보지 않은 사람은 그게 얼마나 힘들고 비참한지 모른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자신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사람이 싫고 특히 남자가 소름 끼칠 정도로 너무 싫었다”


“원래도 성격이 차가운 편이었는데 흐트러지면 누군가가 나를 해칠 것만 같아 결국 나의 차가운 성격을 나 자신을 지키려는 방패로 삼았다”고 했습니다. 

이후 나이트클럽 생활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밤무대에서 만난 가수 박경애의 추천으로 정식 앨범을 낸 진짜 가수로 데뷔하게 되는데요.

‘요정’ 논란

1980년 여전히 고등학생이었던 그녀는 ‘누구의 노래일까’라는 곡으로 가요계에 정식 데뷔했는데요.

또한 그에 발표한 ‘어느 소녀의 사랑 이야기’라는 노래가 연이어 대히트를 기록하며 그녀가 데뷔한 지 3개월 만에 연말 신인 가수왕 자리에 올라가며 당시 인기 가수였던 노사연을 위협할 정도로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이후 김현준과 듀엣으로 부른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 곡을 발표하며 당시 가요톱텐 4주 연속 1위에 오르며 마침내 그녀가 최고의 인기 스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노래가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를 눈앞에 두고 있을 때 돌연 금지곡 판정을 받아 활동을 중단해야만 했는데요.

알고 보니 당시 이 노래가 방송을 타면서 수많은 아이들이 자기 인생에 있다며 부모의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노래가 나올 때마다 방송국에 ‘제발 그 노래 좀 틀지 말아달라’는 항의 전화가 쇄도했고 설상가상 이 무렵 앞서 얘기한 연예인 요정 출입 스캔들의 그녀가 휘말리면서 이번엔 노래가 아닌 방송 출연 금지 조치로 가수 활동을 중단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요정이란 종사자가 손님 옆에 앉아 술 시중 드는 곳으로 즉 지금으로 치면 유흥업소였는데요.

그때만 하더라도 나라에서 ‘퇴폐 풍조 단속’이라는 이유로 다방과 요정 출입을 금지시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당시 수많은 연예인들이 대마초와 더불어 요정 출입 등을 이유로 방송국으로부터 출연 금지 조치를 당했는데요.

그러나 당시 요정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지 못했던 민해경은 오히려 자신의 사생활을 철저히 조사해 결백을 밝혀달라며 호소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더 이상 방송국 출연을 할 수 없었습니다. 

이에 그녀는 충격을 받고 식음을 전폐하며 매일 술에만 의지했는데요.

급기야 술에 취한 상태에서 2번의 옳지 못한 선택으로 소동을 벌이는 등 벼랑 끝에 몰리게 된 그녀는 결국 단돈 60만 원을 움켜진 채 홀로 일본으로 떠나게 됩니다. 


어쩔 수 없이 일본에서 생활하며 가수로서도 활동했지만, 기대했던 만큼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데요.

그래도 그나마 그때 그녀의 출연 금지 조치가 해제가 되면서  1986년 마침내 그녀의 복귀작 ‘사랑은 이제 그만’이 당시 가요톱텐 1위까지 오르는 인기를 얻으며 다시 국내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수많은 히트곡을 연달아 발표하며 화려한 무대 매너, 패션 감각 등으로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남편의 만행

한편 그때 민해경 그녀는 처음으로 결혼까지 생각한 남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 사람은 굴지의 s그룹의 식구였으며 그의 자상함에 반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양가 부모님의 반대가 엄청 심했고 특히 남자의 어머니가 “못 올라갈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며 무시하자 충격을 받은 그녀는 결국 그 남자와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헤어지고 말았습니다. 


이후 가수로서 최고의 전성기가 조금은 지난 1995년 뮤지컬을 하고 있던 그녀에게 갑자기 예상하지 못한 인연이 찾아오게 됩니다. 


당시 연습 중이었던 뮤지컬 상대 배우와 집 앞 카페에서 만나게 되었고 하필 두 사람은 모두 지갑을 두고 와 계산을 못하고 있을 때, 계산대에 서 있던 젊은 직원이 “그냥 가세요”라며 넉살 좋은 웃음을 지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속으로 ‘사장도 아니면서 어떻게 책임지려고 하지?’ 라며 어이가 없었지만 일단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주었고 그녀는 한동안 자신의 외상을 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한편 카페의 그 남자는 당시 인기 가수였던 민해경의 번호를 받고 호기심에서라도 전화를 할 만한데 그러나 그녀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고 이후 그녀가 갑자기 외상 생각이 나서 돈을 갚으러 다시 카페에 가게 되었습니다. 


다시 찾은 카페에서 만난 그 남자는 알고 보니 카페의 사장이었고 그렇게 두 사람은 이 계기로 인연이 되어 몇 차례 만나게 됩니다.

놀랍게도 남자를 끔찍이도 싫어했던 그녀가 마침내 이 남자를 신랑감으로 점 찍게 되는데요.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는 그의 행동에 다른 남자와 다름을 느낀 그녀는 그를 믿게 되었는데요.

이후 임신까지 하게 되면서 결혼을 앞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1달 앞두고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사건이 발생하게 되는데요.

그 인상 좋고 착한 예비 남편이 당시 대마초를 상습적으로 핀 혐의로 구속된 것입니다.


그녀의 가족들은 “대마초를 피우는 남자에게 딸을 보낼 수 없다”며 결혼을 극심하게 반대하였는데요.

하지만 당시 임신 6개월이었던 그녀는 남편을 용서하고, 일가 친척이 단 1명도 참석하지 않은 이 결혼을 강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후 그녀의 남편은 누구보다 좋은 사람으로 그녀의 옆을 지켰는데요.

훗날 그녀는 “남편은 한 번도 나를 꾸짖거나 지적하지 않았고 나의 부족한 면도 매력이라며 지금도 칭찬해 준다”


“그런 남편 덕분에 평소 화가 많고 까칠했던 나에게 좋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어렸을 때부터 고생한 내게 남편을 안식처로 보내준 것 같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