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해도 너무하는구나..” 영화계의 전설 故 트위스트김의 빈소 텅 비어버린 충격적인 이유, 아들 서러움에 오열..

요즘 인기 드라마에서 빠지지 않는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출생의 비밀인데요. 어느 순간부터 출생의 비밀이 나오지 않는 드라마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한순간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고 또 그렇다보니 근거 없는 유언비어가 퍼지게 되기도 하는데요. 

톱스타 송승헌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의 친부가 원로 배우 트위스트김이라는 유언비어가 퍼진 것인데요. 

친부진실 공방으로 갑자기 비극적인 출생의 비밀 주인공이 되었던 송승헌 그 내용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송승헌의 친부 논란

송승헌은 활발히 활동하던 2000년대는 물론 현재도 다수의 팬을 보유하고 있는 톱스타입니다. 

남자셋 여자셋, 가을동화, 에덴의 동쪽, 보이스4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여 한류 톱스타 반열에 올랐고

잘생긴 외모와 지적인 분위기로 각종 cf 및 광고계에서도 유명한 배우인데요. 


이런 송승헌이 2002년 원로 배우 트위스트김의 아들이라는 유언비어가 대중들에게 퍼졌습니다. 

하관이 빠지는 인상이나 이마 등 외관상 닮은 점이 있기 때문이었을까요?


근거를 알 수 없는 이 소문은 일파만파 퍼져나갔습니다. 

트위스트김은 1959년 신상옥 감독이 설립한 영화자 신필름의 연구생으로 들어가 배우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1962년 영화 ‘동경서 온 사나이’로 데뷔하였습니다. 


1962년 출연한 영화 ‘아름다운 수의’에서 그가 선보인 트위스트 춤을 눈여겨본 신상욱 감독이 극중 인물 이름을 트위스트 김으로 바꾼 것을 계기로 김한섭이라는 본명 대신 트위스트김이라는 예명으로 활동합니다.

한국의 최초로 ‘트위스트’라는 춤을 소개하고 당시 자유와 청춘에 목말라 했던 젊은이들에게 청바지를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1964년 당시 청춘 스타였던 엄앵란, 신성일과 함께 출연한 영화 ‘맨발의 청춘’이 크게 히트하면서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한 이래 한국 영화의 전성기인 1960년대와 1970년대의 개성 넘치는 성격파 배우로 인정받으며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한동안 유언비어로만 떠돌던 트위스트김의 송승헌 친부설 소문은 갑자기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커져갔는데요. 

그건 바로 트위스트김이 펴낸 자서전에서 ‘스타 S군이 내 아들이라는 소문이 있었습니다’라고 밝힌 후 한 스포츠 신문과 인터뷰를 하면서 일어났습니다. 


스포츠 신문에서 송승헌의 실명을 그대로 실린 채 일문일답 기사가 나간 것입니다. 

본인이 낸 자서전 때문에 발생하게 된 일이었으나 트위스트김은 억울하다는 주장을 했었는데요. 

“8월 모 주간지에 제 기사가 실렸을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송승헌이 내 아들이다’라는 식으로 말한 게 아닙니다”


“나도 그런 소문을 들었고 괴롭다고 대답한 게 다예요 그런데 그걸 실명으로 게재해 놓은 겁니다”

  
“저희 집도 지금 난리예요. 저도 알고 보면 피해자입니다”


한편 사건이 이 정도로 확대되자 중소기업체 대표이사로 있는 송승헌의 부친은 직접 기자회견을 열어


“송승헌은 제 아들이 맞습니다”


“막내 승헌이는 1976년 10월 5일 미아3동 신일고등학교 옆 처가에서 낳았습니다”

    
“승헌이는 형제들과도 닮았고 내 젊은 시절 모습과도 판박입니다”


“또 승헌이 엄마는 트위스트 김과 일면식도 없으며 미스코리아도 아니었습니다”

 
송승헌의 부친은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할 것이며 소송 과정에서 친자 확인을 위한 유전자 검사도 받을 것임을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인터넷 상에 송승헌 아버지의 사진을 배포하기도 했는데요. 

송승헌보다 더 잘생긴 외모 세련된 슈트 차림의 사진은 굉장히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이때만 해도 송승헌 부친은 법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긴 했으나 해명과 사과가 이루어진다면 극단적인 조치는 취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했습니다.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건은 커져만 갔습니다. 

사태가 더 이상 수습 불가능한 지경으로 가게 된 것은 한 방송 연예 프로그램이 방영되면서입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트위스트 킴이 “그런 여자가 한 둘인가요? 내가 바람을 워낙 많이 폈어야지요”라고 대답하면서

“송승헌의 어머니를 만나면 알 수 있겠냐?”는 질문에 “나하고 만약에 연이 있었다면 알 수 있겠죠”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손승원이 “친자가 맞냐?”라는 질문에 “어허 참 어려운 질문인데” 등 묘한 뉘앙스의 발언을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송승헌은 불편한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처음에 S군으로 기사가 나왔을 때는 이러다 말겠지 하고 생각했지만 실명까지 거론된 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나에 대해 이런저런 소문이 나도는 것은 감당할 수 있지만 부모님이 나 때문에 욕 보는 것은 참을 수 없어요”


“처음으로 연예인이 된 것을 후회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인인 본인 때문에 모친이 모욕적인 소문의 주인공이 되어 버리니 많이 속상했을 텐데요. 

결국 송승헌 측은 부친 송세주 씨 명의로 서울지검에 트위스트 김을 형사고발하는 극단의 조치를 취했습니다. 

명예훼손 혐의로 거액의 민사소송도 제기했는데요. 

이후 트위스트 김은 거듭 자신의 말이 와전됐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방송에서 편집 때문에 그렇게 비친 겁니다”


“내가 ‘아닙니다, 당시에 대해 사과한다’는 얘기를 거듭했음에도 그 부분은 잘렸어요”

  
“질문이 2~3번 반복돼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도 있다고 말했고 그 부분만 나가다 보니까 그렇게 비친 거지요”


“어제도 제가 모 방송 프로에 나가서 담당 피디의 주선으로 송 씨 측에 전화를 했어요”


“방송을 통해 공개 사과를 하려고 했는데 그 쪽에서 일방적으로 끊어버려 못했습니다”


“이 문제가 법정으로 옮겨져 진실이 밝혀진다면 1년 동안 저를 괴롭혀온 소문에서 저 자신도 벗어날 수 있으니까 저도 좋은 겁니다”

  
“저는 어찌 됐건 일단 사과는 할 겁니다”

“다만 제가 만들거나 퍼뜨린 소문이 아니라 기자들에 의해 벌어진 일이라는 걸 말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대중들은 “한 가정을 파탄으로 몰고 갈 수 있는 사안을 무책임하게 얘기한 트위스트 김의 잘못이다”라는 반응과

“그래도 연예계 대선배인데 너무 극단적으로 몰아가는 것은 아니냐”며 양분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후 재판이 진행되며 트위스트김은 송승헌과 가족들에게 끼친 정신적 피해에 대해 사과하고 유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면서 송승헌 측과 합의했는데요.

송승헌 측이 사과를 받아들이고 처벌하지 말 것을 요구해 공소 기각 판결을 받았습니다. 

사건이 일단락되면서 송승헌의 친부 유언비어는 다행히 잠잠해지기 시작했고 송승헌은 더욱 유명해지면서 각종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죠.

반면 트위스트 김은 안타까운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모두에게 철저하게 외면받다..


이 사건이 끝난 뒤 2005년 트위스트 김은 자신의 예명을 도용한 음란 성인 사이트로 인해 구설수에 올랐습니다. 

각종 조사 끝에 전혀 관련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잇따른 악재로 극단적선택까지 하는 등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결국 트위스트 김은 다시 재기를 위해 활동을 벌여오던 지난 2006년 9월 한 호텔에서 공연을 하던 중 넘어져 외상성 뇌출혈을 일으켜 쓰러졌습니다. 


이후 수차례의 수술을 받고 치료를 거듭해 왔지만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4년여 동안 투병 생활을 했지만 끝내 향년 74세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팬들은 큰 슬픔에 빠져 안타까움을 자아냈는데요.

하지만 그의 장례식장에서 또다시 논란이 생겼습니다. 

몇 차례 논란이 있긴 했지만 그는 한국 영화계에서는 대선배이고 그의 공로가 대단한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런 트위스트김의 장례식을 영화 배우들이 외면한 것인데요. 

그가 숨진 후 빈소에는 가족 외에 거의 찾아오는 조문객이 없었다고 합니다.

6~70년대를 거의 주름 잡다시피 했던 이 대단한 배우의 빈소에 왜 대체 영화인들의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던 걸까요?


그것은 트위스트김과 당시 영화인들의 해묵은 앙금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 후반부 영화계는 군부 정권의 탑과 검열을 받기 시작했고 영화계는 검열에서 자유로운 에로티시즘의 방향으로 돌아섰는데요.

이때 트위스트김은 영화계를 떠나 밤무대에 서서 생계를 이어나갑니다. 

영화인들 입장에서 보자면 한창 어려울 때 한국 영화를 찍히기는 커녕 회피해 버린 트위스트김이 얄밉고 야속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한동안 영화계를 떠났던 트위스트김은 1990년대에 이르러 밤무대를 청산하고 충무로 복귀를 원했지만 그를 받아주는 영화는 많지 않았을 뿐더러 여러 구설수로 잡혀 있던 캐스팅도 다 취소가 되어 버립니다.

 
그의 아들은 이후 밝히길 “아버지가 우울증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시절 가장 좋았던 것이 의사가 본인의 말을 잘 들어준다는 거였어요”

“그만큼 평소 아버지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상태가 많이 호전됬고, 드라마 섭외도 들어오며 재기를 꿈꿨는데, 갑자기 사고를 당하게 되셨다”라고 말했습니다.

끝내 외롭고 쓸쓸하게 마지막을 맞이한 트위스트김 그가 한국 영화계에 남긴 수많은 작품들과 재기발랄한 연기들은 영원히 대중의 기억 속에 남아 간직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