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외로웠어요..” 가수 현숙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아들과 재산 직접 공개..남자친구와 결혼하지 않은 속사정


이름만 들어도 힘이 나는 유명가수 현숙의 본명은 정현숙입니다. 


본명에서 성만 뺀거죠.

짧고 동그란 머리를 가진 현숙은 헤어스타일만큼 둥글둥글한 성격으로 어딜 가서도 사람들과 곧잘 어울렸습니다. 


늘 언니들 옷을 물려받았지만 전혀 위축되지 않고, 씩씩하고 시원한 성격으로 자랐는데요. 

그런 현숙이 결혼을 하지 못한데에는 다소 안타까운 사연이 있습니다. 

또한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아들이 있다고 밝혀 많은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는데요.

그녀에게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요?


현숙은 가수로 데뷔해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중병에 걸리게 되시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중풍으로 크게 앓아누워 투병하시던 어머니의 병세가 갑자기 심해진 건 1996년 치매를 앓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부터였는데요.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충격으로 의식을 잃고 입을 닫으셨다고 합니다.

말을 못하는 것은 물론 물 한 모금도 삼킬 수 없을 정도로 증세가 심각했는데요.

돌아가시기 전까지 무려 11년 동안 호스로 영양액을 공급받아 목숨을 연명하셨다고 합니다. 

또한 변을 가리지 못해 항상 기저귀를 차고 있으셨다고 하죠. 

현숙은 어머니가 하늘로 가시기 전날 어머니가 평생 모은 돈 3700만원에 자신의 돈 5000만원을 보태 한양대병원에 기부했습니다.

현숙은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리를 듣고 마지막으로 어머니에게 해드릴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했는데요. 

그러던 중 집안 형펀이 어려워 수술을 받지 못하는 백혈병 어린이들에게 수술비를 지원하기로 한 것입니다.

어머니는 마지막까지 유언도 남기지 못한 채 가족을 떠났지만 마음속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고 합니다..

“돌아가시기 직전 입을 우물우물 하시는 걸을 봤어요”


“올케 언니가 ‘우리에게 그동안 고생했구나’라고 말씀하시는거라고 하더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 ‘나는 이제 편한 곳으로 가니 행복하게 잘 살아라’라고 말하시는 것 같았어요”


“마지막엔 어머니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도 눈물까지 흘리셨어요”


“저도 엄마 귀에다 대 ‘사랑해, 사랑해’라고 계속 얘기 드렸어요”

그런데 현숙은 미혼이지만 아들이 있는데요?

바로 현숙의 남동생 아들을 양자로 들인 것입니다


현숙은 과거에 몸이 심하게 아팠던 적이 있는데요.

39도까지 열이 나는 상황에서 혼자 병원에 누워 있으며 ‘누군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현숙의 남동생은 홀로 남게 될 누나를 배려해, 자신의 막내 아들을 누나의 양자로 보내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현숙의 올케는 “아이에게 먼저 물어보았더니 아이도 ‘알겠다’고 하니 조금 서운했지만 멀리 가는 것도 아니고 고모랑 있는 것이니 보내주었다”고 밝혔습니다. 


현숙은 조카를 입양했만 나이가 아직은 어리다보니 바로 동거하지는 않았습니다. 

조카가 11살이 되자 호적에 양자로 입적시켰고, 생일날 함께 저녁을 먹고 아이를 위해 주택 부금도 들고 아이가 모은 돼지 저금통을 들고 은행에 적금을 드는 등 아이와 좋은 추억을 많이 쌓기도 하며 아들에 대한 애정을 보였습니다.


현숙은 최고령 연예인이셨던 故 송해를 수양 아버지로 극진히 모신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실제로 2019년 말에 송해가 입원했을 때 병원에서 직접 병수발을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숙은 자신의 부모님 그리고 송해의 병수발을 들면서 결혼할 시기를 놓치게 됩니다. 

결혼 시기는 이미 놓친 상황이지만, 현숙이 독신주의자는 아닙니다. 

그녀는 “남들 하듯 남자친구와 연애는 할만큼 다 해봤습니다”

“하지만 편찮으신 부모님 두 분을 모시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어요”

“그래서 남들의 다섯배나 되는 스케쥴을 소화하며 일하느라 헤어질 수 밖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현숙은 결혼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는데요. 

“가야 할 운명이라면 가고, 이렇게 살아야 한다면 일부러 결혼을 하거나 남편을 만들지는 않겠지만 가정을 이뤄 보통 사람처럼 행복하게 살고싶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고 합니다. 


또한 현숙은 돈은 많이 벌지못하더라도 아침마다 출근하는 성실한 남자가 이상형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연하를 만나는 것은 어렵고 특별한 남자보다는 단지 자신을 사랑하고, 어른들이 걱정하지 않는 사람과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싶다”고 밝혔죠.

현숙은 기부천사로도 굉장히 유명한데요.  

그녀는 2004년부터 매년 한 지역에 4000만원 상당의 이동식 목욕 차량을 기부했고,

자신의 디너쇼 수익금 1억원을 유니세프에 기부하면서 아너 소사이어티 멤버가 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고향 후배들을 위한 장학금 마련,  암과 백혈병에 걸린 어린이를 위한 수술비 기부 등 다양한 기부 활동을 펼치는 중입니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현숙의 성격은 항상 낙천적이고 밝았는데요. 

어떤 나쁜 일이 닥치더라도 항상 밝게 긍정적으로 이겨내는 인물입니다. 

한 번은 예능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현숙은 양지은의 집을 찾아 눈길을 끌었는데요.


그녀는 양지은과 즐거운 시간을 가지던 중 아버지의 신장이식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양지은은 “2010년 8월 21살 대학생 때 아버가 당뇨 합병증으로 몸이 안 좋았다”라고 운을 뗐는데요. 

양지은은 “아버지가 몸이 너무 안 좋아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으며 가족들 마음의 준비를하라고 하더군요”


“마지막 방법은 신장 이식밖에 없었는데 언제 이식을 할 수 있는 차례가 올지는 기약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드리면 되는 게 아닌가?’ 라며 생각해 주저없이 아버지에게 신장 이식을 하게되었습니다”라며 계기를 전했습니다. 


수술은 생각보다 너무 아팠고 어린 나이에 처음 겪는 통증이라 수술 후 쇼크로 정신까지 잃었던 경험을 얘기하며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양지은은 수술 후 눈을 뜨자마자 아버지를 찾았는데요. 

“다행히 아버지가 수술을 잘 받으셔서 너무 행복했어요”라며 지난 날을 회상했습니다. 


또한 “큰 사건을 겪고 죽어가시던 아빠도 살렸는데 못할 게 뭐있나?라고 생각했어요” 라며 효녀 가수다운 모습을 보였는데요.

현숙은 “요즘 아버지의 상태는 어떠시냐?”라고 물었고 양지은은

“올해가 신장이식 11년째 되는 해라 다시 검사를 받았는데 이식한 새 신장이 다시 망가졌어요..”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습니다.


양지은은 “왜 이렇게 슬플까요? 제 몸의 신장은 멀쩡한데 아빠에게 이식한 신장은 망가졌다니 너무 슬픕니다”라며 죄책감을 느낀 듯한 모습도 보였습니다. 


양지은은 “지난주부터 투석 시작하셨는데, 현숙 선배님 얼굴을 보면 너무 좋아하실 것 같아요” 라며 영상 통화를 제안했습니다.

양지은의 심정을 이해하는 현숙은 제안에 흔쾌히 응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현숙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하는데요. 

“현숙의 신곡 ‘김치볶음밥’을 좋아한다”고 말하는가 하면 현숙이 제주도에 기증한 이동식 목욕탕을 이용해본적도 있다” 고백했습니다. 

이에 현숙은 “저랑 지은이가 많이 닮았어요”
  
“우리 이제 자매처럼 지내기로 했어요”

“아버지를 위해 같이 노래 한 곡 불러드릴게요”라며 노래까지 열창하였습니다.

항상 밝은 얼굴로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는 현숙이 앞으로도 선한 영향력을 많이 펼치길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