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만은 사람도 아니다” 김병만이 갑자기 모든 방송에서 하차한 충격적인 이유, 이수근 복받쳐 눈물..


여러분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누군지 아십니까? 그건 바로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살아 생전 효도 한 번 하지 못하고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잘해드릴 걸..’ 후회하며 사는 사람들이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지요. 


오늘의 주인공 김병만도 한때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무려 몇 년간은 말을 하지 않다가 하지만 아버지가 그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시면서 어머니에게만큼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며 최선을 다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마저 지난 2022년 갯벌에서 조개를 줍다 밀물에 고립돼 세상을 등져버리자, 정글의 법칙 아일랜드 편을 마지막으로 모든 방송을 하차해야 했던 김병만의 눈물 나는 인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가난해도 꿈꿀 수 있을까요?


1975년 전북 완주군 산골 마을에서 1남 3녀 중 둘째로 태어난 김병만

원래는 꽤 부유했던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주었지만 아버지가 그 돈으로 집 짓는다, 양장점 하겠다며 여러 가지 시도를 하다가 모두 다 날리고 말았죠.

그는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대학은 고사하고 오로지 집안의 빚을 갚기 위해서 건설 현장 막일 즉 노가다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일을 하던 중 잠깐 tv를 보고 있는데 그런데 고등학교 시절 라이벌처럼 친구들을 웃겼던 한 친구가 tv에 나오게 됩니다.

한때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친구가 tv에 나오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그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저 친구가 했다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불끈 치솟아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일을 하기로 마음 먹고 서울에 상경하게 됩니다.


하지만 연기를 배워보겠다고 도전한 서울예대는 6년을 내리 떨어지고 개그맨이 되겠다고 도전한 개그맨 시험은 무려 8번이나 떨어졌습니다. 


낙방도 낙방이지만 워낙에 돈이 없다보니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했는데요.

당시 먹을 것이 없어서 라면 하나를 사골이나 죽처럼 불러서 먹고 노숙은 밥 먹듯이 했다고 합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전화가 와  “너도 해볼 만큼 해봤으니까 그만 내려와서 빚 좀 갚아”라며 집에 돌아올 것을 권유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때 그가 “제가 신문지 덮고 자는데 어떻게 아버지에게 효도를 합니까?”


“저한테 더 이상 아무 말씀 하지 마세요” 라고 냉정하게 얘기한 후 몇 년간 아버지와 대화를 하지 않는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런 와중 이수근을 만나 콤비를 이루어 2001년 kbs 공채 시험을 봤는데 또 떨어지면서 총 8번이나 낙방하게 됩니다.

그가 고백하길 “내가 방송국 공채를 마지막으로 떨어졌을 때가 2001년 kbs 공채다”

“그런데 둘 다 떨어지자 수근이가 ‘더 이상 못하겠다’며 생계를 위해서 원래 하던 수련원 강사를 한다고 지방에 내려갔다” 

“당시 나는 너무 서운해서 전화기를 든 채 펑펑 울면서 ‘너 다시는 안 본다’며 절교까지 선언했다”


“나는 1년 더 준비해서 kbs 공채 17기 개그맨이 되었고 합격 이후 제일 먼저 한 게 수근이에게 ‘꼭 다시 시험 보라’고 권유한 것이다”

  
“성공한 것처럼 보이려 벤츠까지 렌트한 결과 수근이가 한 기수아래인  kbs 18기에 합격해 함께 무대에 서게 되어 서로 펑펑 울었다” 라고 했습니다.

달인 김병만 탄생 그러나…


그토록 바라던 코미디언이 된 그는 이후 개그 콘서트에서 ‘달인’이라는 코너를 통해 일약 스타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아버지의 빚도 조금씩 정리해 드리면서 그동안 못했던 효도를 하려고 마음 먹게 됩니다. 


그래서 목돈이 생기자마자 아버지께 집을 지어 드리기로 약속을 하고 대출까지 받아 서둘러 땅을 샀는데요.

하지만 구입과 동시에 아버지의 대장암 판정과 더불어 당시 가족들 누구도 알지 못했던 치매까지 발견되었는데요. 

이후 아버지는 가족들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때를 그가 고백하길

“과거 몇 년간 말을 하지 않다가 내가 조금씩 유명해지면서 조금씩 집에 돈을 보낼 무렵 아버지와 했던 이야기가 있다”

“그 때 동네에 앉아서 ‘아버지 그때는 제가 죄송했습니다’ “

  
” “대신 저기 건너편 땅을 사서 멋진 집을 지어드리겠습니다’ 라고 하자 아버지가 별 말씀은 안 하시고 ‘그래 좋지’ 이 한마디만 하셨다”

“하지만 아버지가 치매로 인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한 번은 내 친구와 아버지가 계시는 병원에 갔는데 친구의 말에는 대답을 하시고 내 말은 대답을 하지 않으시더라”

“그때 아버지와 말을 하지 않았던 몇 년간의 불효가 서운한 감정으로 남아서 이러시는건가 싶어 너무 마음이 아팠다”

“이 무렵 동네 사람들이 ‘성공하니까 변했다, 아들이라는 사람이 아버지를 보러 내려오지도 않는다. 김병만은 아들도 아니다’며 나를 욕했다. 근데 솔직히 진짜 내려갈 수가 없었다”


“돈을 벌어야 헸디 아버지의 병원비도 대야했고, 시집 간 누나는 월세방에 살 정도로 가난했고 동생도 결혼 생활이 불행해 당시 조카마저 내가 데리고 살았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효도라는 걸 뭔가 내가 성공한 뒤에 모아서 근사하게 해드리려고 했던 게 그게 잘못된 것 같다”


“보잘 것 없던 때라도 그때그때 조금씩 효도를 해드렸다면…그게 가장 후회가 된다” 라고 했습니다. 

이후 아버지는 김병만이 ‘달인’이라는 코너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2011년 끝내 하늘로 떠나게 됩니다. 

꽃길 속 충격적인 소식


한편 이 무렵 마흔이 코앞인데도 노총각으로 살던 그가 돌연 7살 연상에 키도 본인보다 8cm나 더 큰 여자친구와 결혼하며 모두를 깜짝 놀래켰습니다.


당시 어머니가 결혼을 결사 반대하기도 했었는데요.

초혼인 아들과 다르게 며느리가 애 딸린 연상의 재혼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때를 그가 고백하길

“내가 아내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가족들의 반대에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끝내는 내 선택을 존중해 주셔서 지금은 다 풀린 상태다”

“그리고 사실 아내는 원래 나의 열렬한 팬이었고 7개월간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사랑을 키웠다”


“그리고 이 무렵 내가 너무 일정이 바빠 데이트할 시간이 안 됐었는데 그런데 그런 부분을 다 이해해 주고 감싸주더라”

“힘들고 지칠 때 옆에 있는 사람이 징징대거나 주정부리면 감당하기 힘든데 아내는 연상이라 그런지 마음 씀씀이가 달랐다”라고 했습니다.

이후 그에게도 새로운 가족이 생기고 또한 아버지께 못해드렸던 효도를 어머니에게 마음껏 해드리며 마침내 김병만 그에게도 꽃길이 펼쳐지게 됩니다. 

특히 어머니께는 한평생 살아오면서 본인의 명의로 된 집을 처음으로 선물해 드리자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우셨습니다.

하지만 2022년 5월 뉴스에서는 그의 어머니의 안타까운 소식이 보도됩니다.

당시 뉴스에 따르면 전북 부안의 한 갯벌에서 조개를 잡던 70대 여성이 밀물에 고립돼 생을 마감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그 여성이 김병만의 어머니였습니다.

이처럼 그의 어머니는 4시간여 동안 조개등을 채취하다가 물이 들어오는 때를 뒤늦게 인지하고 육지로 빠져나오지 못해 사고를 당하면서 하늘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김병만 그가 고백하길

“온 가족이 모두 힘들게 살았는데 그중 특히 어머니가 제일 고생을 많이 하셨다”

“어머니의 처녀 때 사진을 보면 허름한 집 앞에 검정 고무신 신고 서 있는 모습이 정말 없이 살았구나 싶더라”

“어머니는 식당 허드렛 일이라도 하겠다며 상경했고 나도 코미디를 하겠다고 서울로 온 거다”

“그렇게 수십 년을 어머니가 식당 일을 하며 생활을 꾸리셨는데 손톱이 다 달아 없어질 정도로 일을 많이 하셨다”


“내가 코미디언으로서 큰 돈을 벌게 되자 어머니의 명의로 된 집을 선물해 드렸더니 한 평생 처음 있는 일이라 그런지 아무 말 없이 우시더라”

“사실 낡은 한옥집인데도 귀하다면서 조심조심 생활하셨다”


“집에 조그만 정원이 있는데 과일이며 채소며 다 심어놓고 매일 정원을 가꾸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보내주시는 모습에 눈물을 흘렸다”


“어렸을 때 가난한 환경에서 태어난 것이 서러워 어머니에게 화를 내고 속에 없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런데 당시 어머니는 나의 철 없는 소리를 들으시고 화를 내시는 게 아니라 ‘미안하다’고 하셨다”


“내가 나이가 들수록 몸은 굉장히 단련됐는데 마음은 나약해져서 부모님 생각만 하면 감정이 자꾸 울컥한다”

“이제는 작은 키조차 감사할 만큼 모든 것에 감사하다”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