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애보다 동안이였는데 왜?” 원조 첫 사랑 원미경 최근 폭삭 늙어버린 근황, 그녀가 직접 밝힌 속사정

tv나 영화에 나오는 연예인들을 보면 ‘세월 앞에 장사 없다’라는 말이 정말 무색하죠


특히나 여배우 같은 경우는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전혀 늙지 않는 것만 같습니다. 

그만큼 잘 관리를 하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관리를 통해 최대한 젊음을 유지하려고 하는 대다수의 여배우들과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그 주인공은 배우 원미경 씨입니다.

원미경 씨의 전성기 시절 외모가 워낙 화려하게 빛났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그녀가 조금은 빠르게 늙어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이를 두고 일부 시청자들은 어쩌다 엄미경 씨가 이렇게나 갑자기 늙게 되었는지 의문을 표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배우 원미경 씨의 화려했던 전성기 시절과 그녀가 직접 밝혔던 인생 이야기를 통해 그녀가 갑자기 늙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이유를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독보적인 미모

원미경 씨는 이런 집에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성장하였는데요.

 
어려서부터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원미경 씨는 무용과 미술을 배웠고 여러 대회에서 입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원미경 씨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친구의 빚 보증을 잘못 선 탓에 집안의 가세가 크게 기울어지게 됩니다. 

280여 평의 큰 집은 물론이고 소유하고 있던 땅과 산도 모두 넘어가게 될 정도로 빚 보증의 규모가 컸습니다. 

그 이후 원미경 씨는 고3 때까지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대학을 목표로 학업에 정진하게 됩니다.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원미경 씨는 어느 날 장난삼아 친구들과 함께 미스 롯데 선발대회에 지원하게 됩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과 다르게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원미경 씨가 제3회 미스 롯데 선발대회에서 1위로 입상을 하게 됩니다. 

당시 이미숙을 비롯해서 차화연, 경인선, 이문희 등 등 너무나 쟁쟁한 참가자들이 지원한 치열한 대회였습니다.

 
그만큼 원미경 씨는 그 사이에서도 눈에 띌 정도로 빛나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대회 이후 tbc 공채 20기 탤런트로 바로 데뷔함과 동시에 스타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훗날 이미숙 씨는 한 방송에 출연하여

“78년 미스 롯데 선발대회 당시 내가 1등을 할 것이라고 예감했는데 원미경에게 1등을 내주고 5위인 인기상에 만족해야만 했다”

“대회 참가자 대부분이 학생 신분으로 수수한 메이크업이었던 것과 달리 원미경 씨는 학생이었음에도 굉장히 화려하고 세련되었다”

“그 후보가 1위가 되는데 누구 하나의 이견도 없을 정도로 타당했다”


“인생에서 첫 번째 큰 쇼크였다”

  
“이후 원미경은 바로 연속극의 주연을 맡았다”

  
“그런 원미경을 보며 출발은 너보다 늦지만 더 우뚝 설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라며 당시를 회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미숙 씨가 인정한 것처럼 원미경 씨는 데뷔하자마자 화려한 연기 경력을 쌓았습니다.

1979년 ‘청춘의 덫’으로 대종상에서 신인 여우상을 받으며 연기력 또한 인정받았습니다. 


아름다운 외모에 뛰어난 연기 실력까지 그야말로 원미경 씨는 신인 시절부터 최고 인기 여배우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이 당시 원미경, 이미숙, 정애리, 이보희 씨는 일명 1980년대 트로이카 여배우로 불렸는데요.

그중에서도 전성기 시절 원미경 씨의 인기는 다른 여배우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원미경 씨의 이런 화려한 전성기는 한 가지 스캔들로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L모 기자와 열애 중

아버지의 빚 보증으로 가세가 기울었던 탓에 원미경 씨가 연예계에 데뷔하면서 소녀 가장 역할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녀는 누구보다 더 열심히 배우 생활을 해왔고 그러다가 한 연예부 기자와 열애에 빠지게 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그 남자와 헤어지게 하였는데요.

그 이후 갑자기 기자였던 남자는 그녀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여배우를 보는 시선이 엄격했기 때문에 폭로로 인해 원미경 씨는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당시 주연으로 출연하고 있었던 kbs 드라마 ‘순애’에서 강제로 하차하게 되었고 대신 배우 박준금 씨가 출연하게 됩니다.

mbc로 자리를 옮긴 원미경 씨는 당시 톱스타였음에도 불구, 한수 아래라고 평가받던 이미숙 씨 주연의 드라마 ‘황진이’에서 조연 역할을 맡게 됩니다. 


원미경 씨의 인기를 고려해 보면 굴욕적인 배역이었지만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해야 했기에 기꺼이 출연하는데요.


이마저도 kbs의 반발로 얼마 안 있어 하차를 해야 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광고 모델 계약마저 해지되며며 방송 출연 금지 연예인이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하였습니다.


이 모든 게 한 때 연애를 하였던 한 기자의 폭로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방송 출연을 할 수 없게 된 원미경 씨는 그때부터 영화에 주력합니다. 

1984년 드라마에 복귀하기까지 총 9편의 영화를 찍으며 한국 영화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 이후 드라마에 복귀한 원미경 씨는 ‘간난이’ ‘사랑과 진실’로 큰 주목을 받으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1987년에 결혼한 후에도 그녀는 활발하게 드라마 활동을 이어갔는데요.

주목할 점은 주연이든 조연이든 심지어 억척스러운 아줌마 역할이든 전혀 구애받지 않고 출연을 하였다는 점입니다. 


당시 아름다운 미모로 큰 주목을 받았고 큰 인기를 얻고 있던 톱스타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그녀의 행보는 파격적이었는데요. 

현재에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배우 김희애 씨를 보면 이런 점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데요.


김희애 씨는 50세가 넘은 나이에도 드라마 미래에서 19살이나 어린 유아인과 호흡을 맞췄고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는 마찬가지로 10살이나 어린 배우 박해준 씨와 부부로 출연했습니다. 

실제로 드라마 상에서 김희애 씨는 55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말 동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그에 비해 원미경 씨는 전성기 시절 김희애 씨를 능가할 만큼 아름다운 미모로 주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빠른 나이에 중견 배우의 역할을 맡았고 다른 여배우들에 비해서 조금은 관리를 덜 하는 듯한 모습이였는데요

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이와 주름

“올해 드라마가 끝나는 대로 미국에 있는 남편에게 갈 예정입니다”


“제대로 결혼 생활을 누려보지도 못했어요”

“아이들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로 살아보고 싶어요”


이 말과 함께 2002년 드라마 ‘고백’을 끝으로 배우 원미경 씨는 돌연 미국으로 향했습니다.

그 후 2016년 그녀가 복귀할 때까지 원미경 씨는 새 아이를 키우고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며 평범한 주부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원미경 씨는 아이를 키우며 주부로 사는 삶이 너무 행복해 복귀하지 않으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 큰 아이들에게 “그동안 우리 키우느라 고생했으니 늦기 전에 엄마의 일을 해야지”라는 말을 들은 원미경 씨는갑자기 등 떠밀리듯 복귀하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저는 배우는 키나 얼굴을 만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피아노 치는 사람에게는 손이 중요하듯이 배우의 생명은 표정이다” 


“표정을 짓는데 방해되는 건 하지 않는다” 라며 그동안 성형수술을 비롯해서 어떠한 관리를 받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더불어 “저는 나이 드는 것에 대해 감사하고 있어요”


“사랑스럽고 얼굴의 주름살이 부끄럽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엄마로서 내 주름살 안에 내 삶이 있고 우리 가정이 있고 우리 아이들이 있고 내 주위 사람들이 있어요”

“그게 젊어서는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을 내 나이에 내 주름이 표현하는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주름살이 부끄럽지 않게 웃을 수 있는 거고요. 내 나이에 그 주름은 당연한 게 아닐까요?” 라며 본인의 주관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정말…그녀는 천상 배우인듯 합니다.


화려한 역할에만 국한되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본인의 나이에 맞는 본인의 경험과 주름에 맞는 자연스러운 역할에 도전하는 원미경씨 

앞으로도 멋진 배우로서의 행보를 응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