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무슨 관계이길래” 故 마광수 빈소 뒤엎은 김수미 흉기 소동까지 벌이며 오열한 이유, 결국 경찰에 연행..


시대를 잘못 만난 천재, 시대를 앞서 간 자유주의자 등의 말로 표현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51년생 작가 마광수입니다.

마광수는 생전 ‘성’에 솔직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 주장을 몸소 보여준 인물입니다. 

하지만 자기 생각을 여과 없이 드러냈기 때문에 많은 비난을 감수해야만 했는데요.

그는 음란한 소설을 집필한 죄로 옥살이를 해야 했으며 교수 자리까지 잃었습니다. 

그리고 문단과 학교 대중들에게까지 철저한 외면을 받았는데요. 

생전 가감 없는 발언들로 수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그는 세상을 떠난 후에도 큰 소란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이유는 그의 장례식을 찾아온 한 손님 때문이었는데요.

생전 고인과 절친했다고 주장하는 김수미는 마광수의 빈소를 찾아 한 차례의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김수미가 가방 안에 몰래 숨겨온 물건 때문에 경찰이 출동했을 정도인데요. 

대체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

시대를 앞서간 천재라는 별명을 가진 마광수는 대한민국의 교수 국문학자 소설가 시인이자 화가입니다.

그야말로 문화예술계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던 사람인데요. 

그는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후 청록파 박두진의 추천으로 26세에 등단했으며 28세의 어린 나이에 홍익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가 되었습니다. 

또 32세에는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인문학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는데요.

그는 77년 시로 등단한 이후 85년 장편소설 ‘권태’로 소설가로서의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리고 이후 ‘즐거운 사라’ ‘자궁 속으로’ ‘발랄한 나라’ 등의 소설과 ‘가자 장미여관으로’ ‘야하디 얄라숑’ 수필집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등을 발표했는데요.

하지만 잘 나가던 마광수는 92년 강의 도중 자신이 발표한 소설 ‘즐거운 사라’ 때문에 경찰에게 끌려가 옥살이를 하게 됩니다.

그가 발표한 소설 즐거운 사랑은 자유로운 사랑을 추구하는 여대생 살아가 온갖 관계를 즐기며 쾌락을 추구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소설의 내용 자체는 많이 야하지 않지만 마광수의 신분이 대학 교수이기 때문에 크게 논란이 되었는데요. 

간행물윤리위원회는 검찰의 음화 제조 및 음화반포제로 마광수와 출판사를 고발했고 결국 그는 체포되었습니다.

당시 대중은 ‘마광수 때문에 에이즈가 유행한다’ 

‘연세대 교수라는 사람이 야한 소설을 쓰다니 세상이 망했다’  

‘구역질 난다’며 비난을 쏟아부었는데요.

 
이 일로 마광수는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고 연세대 교수직에서 해임되었습니다. 

그리고 98년 마광수는 다시 교수로 복직을 알렸습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그의 입지는 매우 좁아졌는데요.

마 교수는 문단과 학교에서 잘못된 이미지로 찍혀 배척당했으며 사실상 교양 강의만을 맡는 교수로 좌천되었습니다. 

게다가 교수 퇴임 후 전과 때문에 연금 수급에도 문제가 생겼는데요. 

그는 과거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문학도 인정받지 못했고 학계와 문단에서도 철저히 외면 당했다”

“한 많은 인생이다. 하루종일 멍하니 지낸다”

“난 실패한 인생이다. 몸시 우울하고 외롭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는 생활고와 우울증 때문에 2017년 9월 5일 향년 66세의 나이로 스스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비보가 들려오자 여러 곳에서 애도를 표했습니다. 

연세대 재학생 커뮤니티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그의 명복을 빌었습니다. 

한 학생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랍고 안타깝다”

“타고난 통찰력과 뛰어난 문장으로 진실을 알려주셨던 분 부디 편히 쉬시길”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한편 마광수의 빈소는 용산구 순천향대 서울병원에 마련되었습니다.

빈소에는 쓸쓸함과 슬픔만이 가득했는데요

친척들, 마광수 교수의 전 제자와 지인들만 있을 뿐 문학계 인사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고인을 추모할 때 한쪽 편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는데요.

김수미의 난동

배우 김수미가 마 교수의 빈소를 찾아 한 차례 소동을 벌인 것입니다. 

김수미는 오전 11시쯤 마 교수의 빈소에 만취한채 조문을 왔습니다. 

그녀는 “글을 이상하게 썼다고 감옥에 보내고 교수들이 배척해서 억울하게 이렇게 만든 것 아니냐?”

“나도 죽을 것이다”라며 소란을 피웠습니다.

 
덧붙여 그녀는 “마 교수를 감옥에 보낸 사람들은 다 수사해야 한다”며 목놓아 오열하며 소리쳤습니다. 

결국 경찰까지 출동해 그녀를 제지했습니다.


조용히 고인을 추모하는 분위기에서 만취한 김수미의 난동은 삽시간에 화제가 되었습니다. 

사실 당시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택시기사였습니다. 

김수미은 마광수의 빈소로 가는 택시 안에서

“마광수가 내 친구인데 너무 슬프다 나도 죽어버리겠다”고 슬픔을 토로했습니다.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은 택시 기사가 김수미를 장례식장 앞에 내려주고 바로 경찰에 신고했다고 후에 밝혀졌습니다. 

놀라운 것은 소동을 일으킨 김수미의 가방에는 ‘커터칼’까지 발견되었습니다.

꺼낸 적은 없다지만 실제로 그녀가 그 물건을 왜 챙겨갔을까에 대해 의문스러워 했는데요. 

후에 김수미 측은 마광수와 막역한 사이라 빈소를 찾은 것이라 해명했습니다. 

하지만 마광수와 올해 함께 한 강철웅 대표는 “김수미와 마광수는 막역한 사이가 아닐 뿐더러 일면식 없는 사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김수미는 마 교수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다”


“그건 제가 보장한다 그렇게 빈소에서 죽겠다고 소동 벌일 정도면 평소 연락이라도 하고 마교수님 어려운데 용돈 챙겨주시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생전 연락도 없고 한 번도 못 봤다”


“작품을 보지도 않고 식사 한 번 커피 한 잔 대화 한 번 나누지 않은 사람이 친구라니 화가 난다”라고 어이없어 했습니다.

사실 김수미 씨는 이전에도 논란이 많은 인물이었기에 김수미가 마광수의 빈소를 뒤엎어 놓은 데에 대해서도 말이 많았는데요. 

생전에도 숱하게 구설에 올랐던 마광수가 세상을 떠나서도 큰 소란에 휩싸인 데 대해 안타깝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마광수는 자신의 시 ‘내가 죽은 뒤에는’ 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윤동주 연구로 박사가 되었지만 윤동주처럼 훌륭한 시인으로 기억되긴 어렵겠다”

“아예 잊혀져 버리고 말든지 아니면 조롱 섞인 비아냥 받으며 변태, 색마, 미친 말” 등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의 시 구절처럼 일각에서는 그를 외설에 집착한 변태로 몰아갔습니다.

하지만 그의 책을 읽어본다면 그 모든 게 오해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는데요. 

게다가 성희롱 같은 논란은 마광수를 지속적으로 비난해왔던 타 문학계에서 더 많이 발생해왔죠.

동시대에 훨씬 외설적인 작품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그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를 얻었습니다. 

끊임없는 비난에 배척까지 당하며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요?


결국 그는 스스로 세상을 떠나며 많은 이들에게 잊히기를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그 선택마저 존중받지 못했는데요. 

세상을 떠난 후에도 제 간의 입안에 시끄럽게 오르내린 데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진실은 알 수 없으나 아마 김수미도 문화예술인의 한 사람으로서 마광수의 일에 깊이 공감해서 그러지 않았겠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시끄러운 세상을 살다 간 비운의 천재가 좀 더 자유로운 세상에서 원하는 문학 활동 많이 하시길 바라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