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이야기가 거짓이었어?” 최근에야 드러난 박군의 충격적인 실체, 어떻게 온 전성기를 이렇게…

살아가면서 인생의 굴곡은 누구나 있기 마련이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죠

그래서 어릴 때부터 오르막과 내리막을 모두 경험해야 어른이 되어서도 작은 시련에 무너지지 않게 됩니다.

오늘의 주인공 박군 역시 어릴 때부터 남들이 겪지 못한 엄청난 시련들을 겪었으나 꿋꿋하게 이겨내고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온 인물인데요. 

그는 한 때 방송에서 돌아가셨다고 고백한 아버지가 사실은 살아계셨다가 진짜로 돌아가시게 됬고

모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게 8살 연상의 누나와 결혼을 하는 등의 사건으로 팬들까지 그에게 등을 돌렸었는데요.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15살에 느낀 가장의 책임감

1986년 외동아들로 태어난 박군은 부모님이 6살 때 성격 차이로 이혼을 하면서 이후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야 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릴 때부터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인해 갖은 고생들을 겪어야만 했습니다. 

형편이 어렵다보니 그 어린 나이부터 눈치가 생겨 우유값을 내야 된다든지 학용품을 사야 된다든지 할 때 “엄마 나 이거 사가야 돼”라고 말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학용품 중에서도 파레트 물감 같은 건 2만원이 넘어가니 사실상 이런 건 불가능해서 말조차 꺼내지 않았죠.

그런데 학교에 가면 선생님은 이러한 사정을 모르고 그저 말 안 듣고 준비물도 준비 안 하는 말썽쟁이로 생각해 혼을 내곤 했습니다. 

어린 박군은 서러운 마음에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는 새벽 신문 배달 하며 그 돈으로 필요한 학용품을 사기도 했습니다.

 
당시 어머니가 식당 일을 하며 생계를 겨우 유지하긴 했으나 일정치 않은 수입에 생활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집에 냉장고도 없어서 반찬을 밖에 내놓고 먹을 때마다 꺼내 먹었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샛방 자리를 전전하며 어렵게 살다 보니, 하루는 외할아버지를 모시고 살던 외삼촌이 같이 살자고 해서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그랬던 외할아버지가 어느 날 병이 와서 병원에 입원하자 초등학교 3학년인 박군이 3개월간 할아버지의 병간호를 해야 했습니다.

심지어 2년 뒤에는 외삼촌마저 교통사고가 크게 나 삼촌의 병간호도 책임지게 됩니다. 

삼촌의 대소변도 갈아드리고 씻겨드리기도 했는데 이때가 그의 나이 12살 초등학교 5학년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박군에게 가장 큰 시련과 고비는 따로 있었으니 그건 바로 어머니의 말기 암 판정이었습니다. 

그가 중학교 2학년 때 어머니가 많이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가봤더니 말기 암에 심지어 1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시한부 선고까지 받게 됩니다.


어머니는 11시간 반 정도의 대수술을 받았고, 이때부터 박군이 진짜 가장이 됩니다.

당시 그는 학생이긴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마치면 병원에 가서 보호자 침대에서 자고 아침에는 학교에 가기를 반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할 수 있는 알바는 다 했었는데, 배달 알바가 시급이 세다 보니 중국집, 치킨집, 피자집 등 배달이 가능한 알바는 모조리 다 하며 어머니의 병원비를 보태고 생계를 책임졌다고 합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아픈 어머니를 대신해서 일만 하려고 했으나, 하지만 어머니가 무슨 일이 있어도 졸업은 꼭 하라는 당부에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게 됩니다. 

아들의 지극 정성 덕분인지 1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시한부 선고에도 불구하고 이후 어머니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전교 1등까지 차지하며 당시 장학금 75만 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이때를 그가 고백하길

“내가 쉴 틈 없이 일을 하면 한 달에 월급이 60만 원이었는데 어느 날 학교에서 차원이 다른 장학금이 나온다고 하더라”

“그래서 장학금을 받기위해 당시 배달 일을 하며 짬짬히 공부했고, 부족한 부분은 새벽 4시까지 공부했다”  

“당시 선생님이 전교 회장에도 출마하라고 하셔 나갔다가 결국 전교 회장도 당선이 되었다”

“이후 어머니께는 학생회장 소식과 장학금을 싹 다 드렸는데 어머니가 많이 우셨다”


하지만 그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 대학교는 진학할 수 없었는데요.

다시 여느 때처럼 일을 하다가 특전사 모집 포스터를 보게 되었는데요.

이때 박군의 눈에는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로지 월급을 준다는 내용만 눈에 들어오게 됩니다. 

그래서 생각을 해보니 ‘어차피 군대는 가야 하고 여기서 근무하면 전역할 때 목돈을 들고 나갈 수 있다’ 싶어 지원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20살의 나이로 특전사에 입대한 그는 군에서도 특유의 끈기와 성실함을 보여주며 훌륭한 직업군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무렵 1년의 시한부 선고를 받았던 어머니가 무려 7년을 더 사신 후 결국 아들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때를 그가 고백하길 

“어머니가 당시 1년도 못 산다고 했지만 살아야겠다는 의지로 7년을 더 사셨다”

  
“아마 내가 어른이 되어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어떻게든 악착같이 버티신 것 같다”

  
“내가 조금씩 자리를 잡았고, 아들 혼자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겠다 싶었는지 그렇게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가 살아 생전 몸도 안 좋으시면서 자꾸 면회를 온다고 하시길래 오지 말라고 했었는데 너무 후회가 된다”

“그럼 한 번이라도 엄마를 더 봤을 텐데 너무 아쉽다” 라고 했습니다.

생애 한번만 오는 기회


아무튼 그렇게 그는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살아갈 이유마저 잃어 부대도 전역을 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부대에서 가족같이 그를 위로하고 배려하자, 큰 감동을 받았고 15년간 특전사에서 장기 복무를 하며 의리를 지키게 됩니다.

한편 15년간 군 생활을 하면서 노래를 좋아했던 그는 부대에서 행사가 있으면 늘 무대 위로 올라가 노래를 불렀고 짬을 내 양로원을 찾아 다니면서 노래를 부르는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가수를 하면 어떨까?’ 하는 막연한 꿈도 꾸기 시작했는데요.

한번은 인터넷에서 우연히 트로트 곡 ‘한잔해’를 부를 가수를 뽑는 오디션 공고를 보고 노래 영상을 보냈는데 기적처럼 바로 합격 통보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 그는 사실 4년만 더 군 생활을 하면 전역 후 평생 동안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였는데요.


주변에서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는데 왜 굳이 연예계에 발을 들이려 하느냐’며 대부분 반대를 했지만, 이번 생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 생각해 그는 평생 연금까지 포기하게 됩니다.

그렇게 ‘한잔해’라는 노래로 가요계에 데뷔한 그는 이후 나름 좋은 반응을 얻긴 했으나 직장인들의 애창곡 정도였지 박군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는데요.


2020년 sbs ‘트롯신이 떴다’에 출연하면서부터 자신의 얼굴도 알리기 시작합니다. 

노래도 노래지만 앞서 얘기한 그의 가슴 아픈 사연이 덩달아 화제가 되어 이를 지켜본 시청자들도 함께 눈물을 흘렸는데요.

그러면서 마침내 가수 박군의 이름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이후 그는 괴물 신인이라 불리며 수많은 광고와 수많은 방송사의 섭외가 되어 가장 잘 나가는 남자 트로트 가수 중 1명이 되었는데요.

그런데 그는 평생에 한 번 올까 하는 전성기 때 누구도 예상 못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만든 전성기를…

바로 8살 연상의 동료 가수 현영과의 결혼을 갑작스럽게 발표한 것인데요.

두 사람은 한 예능 프로를 통해 인연을 맺은 뒤 선후배 관계로 조언을 주고받으며 호감을 키우다가 연인 관계로 발전했던 것이었습니다. 

이제 막 전성기를 누리게 된 그가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결혼을 하겠다고 하자 주변 지인들에게는  ‘어떻게 얻은 전성기인데.. 조금만 더 있다가 결혼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조언을 주변에서 듣게됩니다.

그럼에도 그의 선택은 바뀌지 않고 본인의 결혼 소식을 발표하게 됩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워도 너무 갑작스럽다보니 이러한 과정에서 ‘팬들을 위한 배려가 없다’며 사람들이 그를 비난하며 등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박군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박군 갤러리 측도 ‘그의 갑작스러운 결혼 발표로 실망을 했다’며 갤러리를  폐쇄하고 그간 갤러리를 관리해온 매니저가 작성했던 게시물을 모두 삭제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때 박군은 자신의 sns를 통해 

“팬분들께 제일 먼저 좋은 소식 전해드리려고 조심스럽게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 열애설 기사가 먼저 났습니다”

“서운함을 느끼셨을 팬분들께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라고 사과문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기쁜 일도 있으면 슬픈 일도 있는 법인지, 또 하나의 슬픈 소식이 박군에게 전해졌는데요.

또 한번의 슬픔, 그의 거짓말

이번에는 결혼식을 올리기 3주 전에 오랜 시간 연락이 닿지 않았던 아버지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요.

안타깝게도 많이 아프다는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이와 관련해 그가 고백하기를 

“사실 그동안은 여러 방송을 통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이야기를 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결혼 3주 전쯤 관공서에서 연락이 왔는데 아버지가 몸이 많이 안 좋으시니 빨리 오셔야 한다는 전화였다”

“그래서 아내와 같이 아버지를 보러 내려갔는데 당시 아버지는 암인데도 불구하고 1년 가까이 수술도 안 하고 버티다가 온몸에 전이가 되셨다”

“그러다 결혼식이 끝나고 결국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동안 쓸쓸하게 아파했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 마음이 아파서 아내를 붙잡고 많이 울었다”


“진작에 연락을 줬으면 내려가서 같이 밥도 먹고 했을 텐데 안타깝다”라고 했습니다. 

어렵고 힘든 세월을 견딘 박군이 앞으로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