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래자랑 진행 후 ○○협박까지..” 송해 뒤 이은 김신영 최근 밝혀진 그녀 충격 실체, 정선희 눈물 펑펑..


전국 노래 자랑 최초 여성 진행자 자리에 오르며 팬들을 깜짝 놀래 켰던 김신영이 다시 한 번 깜짝 놀랄 만한 소식을 전했습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제9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상에서 생애 최초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것인데요. 

앞서 박찬욱 감독은 여러 인터뷰 등에서 김신영에 대해 타고난 배우, 천재 등의 수식어로 극찬해 왔습니다.

박찬욱 감독은 칸 현지 인터뷰에서 김신영에 대해

“탁월한 천재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안 시켜 봐도 연기도 당연히 잘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즉흥적인 순발력도 그렇고 사람들의 특징을 캐치해서 모사해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요”라고 극찬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이렇듯 다방면에서 인정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성공의 아이콘 김신영이지만 오랜 시간 힘든 생활을 버텨야 했습니다. 

데뷔 후 활동 초반 과체중이었던 것도 과거 불우한 시절과 연관되어 있죠

게다가 최근 전국노래자랑 MC로 발탁된 후 협박까지 받았다고 하는데요.

김신영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요?

그녀가 살이 찔수밖에 없었던 이유


김신영은 자신이 살이 쪘던 이유가 가난 때문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렸을 때 판자촌에 살았다는 김신영은 동네 아주머니들이 봉지에 주신 밥을 먹으며 끼니를 해결했습니다. 

오빠가 얻어온 햄버거 반 개로 이틀을 먹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 먹지 않으면 내일 목숨을 잃을 것 같아서 한 번에 폭식을 하는 일이 많았고 이는 살이 찌는 지름길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김신영은 육성회비를 못 냈을 정도로 가난했고 냉난방이 제대로 안 되는 컨테이너에서 생활했는데요.

그녀가 밝히길

“우리 아빠 공장 위에 컨테이너를 급하게 지었다”

“거기서 외국인 노동자와 지냈는데, 진짜 덥고 진짜 추웠다”

“여름에는 외국인 근로자였던 인도 출신 삼촌도 덥다고 했어요”

“겨울에는 외국인 근로자였던 러시아 이모도 한파라며 혀를 내둘렀어요”라며 아픔을 웃음으로 승화시켰습니다.

하지만 김신영은 생활이 어려웠어도 남을 웃기는 일이 너무 좋았습니다. 

친구들이 웃기다며 자신에게 모여들 때 너무 행복했다고 합니다.

김신영은 “웃을 수 없는 환경에서 웃음을 계속 보고 싶은 결핍과 갈망이 있었어요”

“혼자 있을 때 외로움 결핍을 채워주는 게 이 직업이다보니 재미있어요”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하지만 개그맨이 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히게 됩니다.

고3 때 개그 콘테스트를 보다 자막에 ‘예원예대 코미디 연기학과 모집’이라 써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부모님에게 저도 가고 싶다했어요”

“그런데 부모님은 간호사 같은 안정된 직업을 원해서 간호학원도 가봤는데 그날로 도망 나왔어요”


“부모님이 ‘너 하고 싶은 거 하려면 내가 벌어서 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50만 원만 주십시오 이걸로 어떻게든 벌어보겠습니다’라고 했는데 운 좋게 2002 한일 월드컵 때였죠”

 
“물장사,머리핀, 아이스크림, 우비 장사 안 해본 게 없어요”

“그렇게 돈을 벌어 1200만 원을 모아서 대학에 갔어요”

방송 울렁증


어려운 생활 끝에 마침내 그녀는 2003년에 sbs 7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하게 됩니다.

이후 예능 프로그램에도 나오게 되지만 처음부터 인기가 많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한 번 출연했던 모든 프로그램에서 두 번 다시 김신영을 부르지 않기도 했죠. 

잘 짜여진 개그 프로그램 무대와 실시간으로 주고받는 순발력이 중요한 예능 프로그램의 성격이 달랐던 것입니다.

“자꾸 들이대라고 하는데 ‘어느 타이밍에 들어가야 하지..’ ‘혹시 기분 나빠하면 어떡하지’ 소심증이 다시 도진 거죠”

“내가 하도 못하니까 진행자가 이야기하다가 ‘신영 씨도 그랬나요?’ 말 시켜주면 ‘네’ 이게 끝이었어요”

“작가 언니들은 스케치북에 말아라고 써서 흔들지, 중간에 감독님이 와서 ‘웃겨야지 캐릭터가 아깝잖아?’이러면 더 기가 죽어서 공황 상태가 되고 진짜 어쩔 줄을 몰랐어요”

“그러다가 정선희 선배가 테이블에서 진행한 ‘써니 사이드’에 태현 오빠랑 출연하면서 언니가 워낙 잘 받아주니까 좀 자신감이 생겼어요”

“그 이후에 라디오 게스트를 많이 하면서 긴장감이 많이 풀렸어요”정선희는 김신영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로 뽑는 인물이기도 한데요.

2005년에서 2006년경 김신영은 난독증 때문에 사연을 제대로 읽지 못했고 이 때문에 라디오에 고정 게스트로 섭외되었다가 잘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김신영은 당시 정선희가 진행하던 정오의 희망곡에도 고정 게스트로 출연했는데 난독증으로 고생하던 게스트 김신영에게 정선희가 응원과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하는데요.

“난독증 때문에 힘들 때 정선희 선배가 믿는다고 하여 50만원을 주셨다”

“그 50만원으로 위인전을 사고 큰 소리로 읽었다. 다 읽고 둘이 같이 펑펑 울었다”

“나라는 사람의 가능성을 열어주신 분”이라며 남다른 애정을 보였습니다.

멋부리기 위해 다이어트 했다?

한편 김신영은 데뷔 때부터 꽤 오랜 시간 통통한 모습이 트레이드 마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다이어트를 하며 살을 빼게 되죠. 

사연을 모르는 이들은 김신영이 개그가 아니고 멋 부리는 데에만 신경 쓴다고 이야기했지만 여기에도 이유가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뒤 의사 선생님은 김신영에게 “10년 뒤에 뭐 하고 있을 것 같아요?” 라는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김신영이 “그냥 뭐 제 쇼도 하고 있을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했는데 의사는 “이대로면 10년 뒤에 없을 수도 있어요”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을 듣고 심각성을 느낀 김신영은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한때 40kg 중반까지 내려갈 만큼 완벽하게 다이어트에 성공합니다. 

처음 다이어트를 한다고 했을 때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재미없어지고 싶어? 이러면 안 돼’라고 벽을 치면서 반대했습니다. 

모두가 김신영이 살을 못 뺄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김신영은 성공했습니다. 

살을 빼고 10년 동안 유지하며 유혹도 있었습니다.

“비포엔에프터 확실한 살 빼주는 업체들 있잖아요”

“약 광고 라인들까지 광고료를 다 합하면 20억인데 모두 거절했어요. 왜냐하면 저는 그렇게 다이어트 안했거든요”

 
“저는 제가 했던 걸로 하고 싶었어요”

그 시기 김신영은 공황장애까지 겪으며 5년 정도 칩거 생활하듯이 지내기도 합니다.

이때를 그녀가 고백하길

“당시 공황장애가 심해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어두워졌다”

“그래서 사진 찍어달라는 팬의 요청을 거절했더니, 뒤에서 ‘연예인병 도졌네’ ‘뭐 그리 대단하냐’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 싶어,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일단 무조건 유쾌하게 지내보자는 생각으로 당시 내 주변 사람들에게 오랜만에 먼저 전화도 걸었다”

“그러다보니 신기하게도 진짜 사람이 유쾌해졌고, 방송도 하나 둘 다시 복귀할 수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전국노래자랑 출연 후 지인의 협박에…

최근 김신영은 전국노래자랑 새 진행자로 나섰는데요.

SNS에서는 “10년은 한 거 같은 바이브”, “어쩜 이렇게 찰떡이지?” 등의 호평이 있는 한편 

“전국노래자랑 김신영은 아닌듯”

“김성환으로 MC를 바꾸자” 

“많이 버거워 보인다” 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요.

그런 와중에 최근 김신영이 지인 A에게 협박을 당해 고소장을 제출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전해졌습니다.

지인 A씨는 김신영의 지인으로 돈을 목적으로 협박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경찰은 고소장 내용을 토대로 수사를 한 결과 “A씨에게 혐의점이 있다고 판단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는데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인에게 협박을 받아, 정신적인 충격이 상당했다고 전해집니다.

전국노래자랑의 진행자가 되고, 영화도 대박나니 파리떼가 꼬이는 것 같은데요. 

힘든 시간을 지나 의지의 아이콘이 된 김신영이 계속해서 어떤 활약을 펼칠지 기대하며 앞으로도 좋은 모습 보여주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