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까지 해체하고 몸이 부서져라 일했는데..” 유현상 최윤희 부부의 충격 근황, 가슴 아픈 유현상의 20년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록그룹 백두산의 리더이자 보컬이었던 유현상 씨인데요. 

백두산은 1986년에 데뷔해 우리나라 헤비메탈에 새로운 장을 펼친 레전드 그룹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신해철 씨도 학창 시절 백두산의 팬이었다고 말했을 만큼 당시 대단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는데요. 

그리고 한 여자도 있었습니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 3관왕,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2관왕을 기록하며 한국 수영 역사를 새롭게 썼던 수영 선수 최윤희

그녀는 수영 실력에 뛰어난 미모까지 자랑했죠. 

그런데 그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운명처럼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운명이 30년 후 조금 뒤틀릴 줄은 상상도 못했겠죠. 

최근 유현상 씨는 아내 최윤희 씨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과연 이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알아봤습니다.

백두산과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 씨는 유현상 씨를 방송국에서 마주칠 때마다 예쁘고 겸손하게 인사했고 유현상 씨는 참 괜찮은 여자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요. 


그러다 어느 날 우연히 지인과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 최윤희 씨가 함께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최윤희 씨에게 연습실에 놀러 오라라고 했더니 진짜로 최윤희 씨가 찾아왔고 그때부터 13살의 나이 차이에 유현상 씨와 최윤희 씨가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데이트를 시작하니까 최윤희 씨 꿈에 매일 유현상 씨가 나왔다는데요. 

이처럼 유현상 씨는 전 국민의 스포츠 스타 최윤희 씨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렇게 두 사람은 6개월 동안 비밀 연애를 했는데요. 


하지만 그 사랑은 큰 난관에 부딪히고 맙니다. 

단식 투쟁에 가출까지

두 사람의 연애에 대해 최윤희 씨 어머니는 완강하게 반대를 했습니다.

한 번은 유현상 씨가 최윤희 씨와 밥을 먹고 집에 데려다 줬는데 어머니는 유현상 씨를 쳐다보지도 않고 “윤희야 상대가 돼야지~” 하면서 최윤희 씨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갔다는데요. 

그 순간이 유현상 씨에겐 가장 큰 상처였다고 합니다. 


그렇게 극심한 반대를 한 어머니는 최윤희 씨에게 외출 금지령까지 내렸는데요. 

그래서 최윤희 씨는 급기야 단식 투쟁까지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힘든 시간이 계속되자 유현상 씨는 최윤희 씨를 위해 헤어질 결심을 한 적도 있었는데요.


안 만나기로 마음 먹고 혼자 미술관에 갔는데 거기서 우연히도 최윤희 씨를 딱 만난 거죠. 

그때 유현상 씨는 결코 헤어질 수 없음을 깨닫고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두 사람은 1991년 6월 1일에 결혼을 약속했고 양가 부모님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6월 6일 극비 결혼식을 올렸는데요. 

최윤희는 당시 부모님에게 학원에 다녀오겠다 라고 인사드린 뒤 결혼을 하러 갔고 그렇게 완전히 집을 나와버렸다고 합니다.

결국 최윤희 씨와 유현상 씨는 신혼여행이 끝난 뒤 처가의 인사를 드리러 갔지만 장모님은 유현상 씨를 쳐다보지도 않고 등을 돌렸다고 하는데요. 

이처럼 잘 지낼 수 없을 것 같던 장모님과 유현상 씨는 큰 아들 동균군이 태어나며 화해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행복한 그 순간 갑자기 2001년 최윤희 씨가 미국에서 수석 코치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어 두 아이들과 함께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는데요. 


결국 그렇게 유현상 씨는 무려 약 20년 동안을 혼자 한국에서 지내며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유현상 씨는 mbn 소프리쇼 동치미에 출연하여 놀라운 얘기를 꺼냈습니다.

20년의 고통

그는 아이들 교육비와 생활비를 뒷바라지한 20년의 생활이 너무 억울하다 라고 털어놨는데요. 

사실 유현상 씨는 결혼 후 경제적으로 버티기 위해, 밴드 활동을 청산하고 트로트 곡 ‘여자야’를 불렀습니다. 

백두산 팬들에게는 변절자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질타를 받았지만 그래도 ‘여자야’의 히트 덕에 아이들에게 예쁜 옷도 사주고 좋은 책도 사줄 수 있었죠. 


당시 유현상은 아이들의 학비를 보내기 위해 하루에 저녁5시부터 새벽 4시까지 밤무대 행사를 11개나 뛸 정도였다고 하는데요.

행사비로 받은 돈을 모아 미국으로 보냈습니다.

당시 유현상 씨는 생활비와 학비를 미국에 보내고 오면 마치 구름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었지만 또 며칠 지나면 다음 달은 또 어떡하지라고 걱정이 찾아왔다고 하는데요. 

그는 “그 시간이 너무나 힘들었지만 남자니까 어디에서 티를 낼 수도 없었다”라며 당시의 막막함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2016년에 드디어 최윤희 씨가 귀국을 했습니다. 


그는 이제야 기러기 부부 생활을 끝내고 아내에게 밥을 얻어 먹겠거니 생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최윤희 씨가 한국여성스포츠회 회장으로 선출되고 문화체육관광부 차관까지 맡게 되었죠.

그러니 최윤희 씨 책상엔 서류가 가득했고 새벽 3시에 일어나 출근했다고 합니다. 

결국 그 정리는 모두 유현상 씨의 몫이었죠. 

그는 남은 서류를 파쇄기에 넣느라 바빠서 인간 파쇄기가 따로 없었다는데요. 

그런데 세상에 최윤희 씨가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안 했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아내가 월급을 받으니 이제 내 고생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자기 월급은 자기가 챙기겠다며 차관으로 발탁됐는데도 버는 돈은 구경도 못했다고 합니다. 


유현상 씨가 얘기를 털어놓는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지만 사실 내용 자체는 폭로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대중들은 “최윤희 씨 너무 했네요” “그동안 고생한 남편은 생각도 안 해주는 건가요” 등등의 반응을 쏟아냈죠. 

글쎄요 최윤희 씨의 입장을 들어봐야겠지만 유현상 씨의 이야기만 봤을 때는 억울함과 서운함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심지어 유현상 씨는 방송에서 최윤희 씨에게 내가 준 돈 어디 갔냐라고 묻고 싶다는 말을 했는데요.


그러자 갑자기 패널들은 “돈으로 애들 공부했지 그거 묻는 순간 쪼잔한 남편 되는 거예요” 라며 그런 질문은 아예 꺼내지도 말라고 말렸습니다. 

패널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었지만 최윤희 씨가 자신의 수입을 공유하지 않고 그렇게 혼자 썼다면 20년 동안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한 유현상 씨 입장에서는 당연히 물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동치미 분위기는 너무나 좋았지만 결코 웃으면서 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기러기 아빠의 존재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에 기러기 아빠의 존재가 크게 자리하고 있는데요. 

우리 연예계에도 기러기 아빠들을 종종 만날 수 있습니다.

정형돈 씨는 아내와 쌍둥이 딸을 하와이로 보냈고

권상우 씨 역시 아들 루키와 딸 리오 모두 뉴욕에서 학교를 다녀서  손태영 씨 역시 뉴욕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굉장히 마음이 아픈 기러기 아빠 연예인 사연도 있는데요. 

27년째 기러기 아빠로 지내는 코미디언 정명재 씨입니다.

 
그는 이제 방송가에 자신이 설 자리는 없지만 아이들에게 돈을 보내주기 위해 작은 가게를 차리고 열심히 일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미국에 갔더니 자신이 낯설어 피하는 딸 때문에 충격을 받았고 자신은 돈만 보내는 기계였음을 깨달아 눈물을 흘렸다는데요. 

물론 기러기 아빠는 각 가정의 선택이기 때문에 좋다/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확실한 것은 기러기 아빠는 결코 당연한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매달 가족들을 위해 하루하루 고통 속에서도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아빠들 유현상 씨가 “아이들에게 돈을 보내고 나면 구름위에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들었다”라는 그 말이 너무나 뭉클하게 느껴졌습니다. 

자식들과 가족들을 생각하며 혼자 외롭게 희생해온 아버지의 그 깊은 사랑을 가족 구성원들이 뼈 속 깊이 기억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