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판 재벌집 막내아들)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손자는 왜 생활고로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요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큰 화제를 일으키고 있죠?

드라마 재벌집 막내 아들은 지난 12월 11일 전국 21.1%를 기록해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할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얻고있습니다.

재벌가에 환생했지만 하필이면 후계 구도의 가장 밑바닥인 막내 손자로 태어난 주인공이 총수인 할아버지의 신임을 얻고 자신을 죽인 후계자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가는 모습이 너무나 통쾌하게 그려지는데요.

많은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보며 재계 서열 1위 삼성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2022년 12월 10일 인터넷상에서는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 등장하는 내용들이 실제 어느 사건을 각색한 것인지 묻는 글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요.

오늘은 드라마의 배경이 된 삼성家의 이야기를 통해 비정한 재벌의 세계에 대해 얘기드리고자 합니다.

2022년 6월 11일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의 사촌형인 이재관 전 세한그룹 부회장이 별세했습니다. 

향년 59세 이재관 부회장은 2021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귀국한 뒤 우울증 체중 감소 등을 겪었다고 해요. 

구체적인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고인의 아버지는 세한그룹 창업주이자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차남인 고 이창희 회장이죠. 

삼성가에서 차남 이창희 회장은 비운의 황태자로 불리는데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장남 이맹희 씨는 경북고등학교 재학 당시 전두환 노태우 씨 등과 어울려 반공운동을 하고 학도병으로 입대하겠다고 조르는 등 속을 썩였습니다. 

그 때문에 이병철 씨는 이맹희, 이창희 씨를 일본으로 유학보내게 됩니다. 


귀국 후 이맹희 씨와 이창희 씨는 아버지 이병철이 세운 삼성그룹의 입사에서 한국비료 이사, 제일모직 이사, 삼성물산 이사 등을 거치며 아버지의 사업을 적극적으로 도왔어요. 


그런데 삼성가의 흑역사라고 할 수 있는 사카린 밀수 사건이 터집니다. 

사카린는 설탕의 대체제로 단맛을 내는 인공 감미료인데요. 

1966년 5월 24일 삼성그룹의 계열사 한국 비료공업이 일본 미스 그룹과 공모해서 사카린 2259포대를 건설 자재로 꾸며서 들여와 판매하려고 했다가 들통난 밀수 사건이죠. 


사카린 이외에도 현금화가 쉬운 일제 냉장고, 밥솥 등 말 그대로 당대 재벌 삼성그룹이 잡상인 마냥 밀수를 자행하다 걸린 황당한 사건입니다.

경향신문의 폭로로 이 사실이 드러나자 들끓는 민심에 부산세관은 1059포대를 압수하고 벌금 2천만 원을 부과했습니다. 


당시 중앙정보부의 비호 하에 정권의 비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은밀한 사업이었다는 설이 있어요. 

실제 장남인 이맹희 씨가 1993년 출판한 회고록 묻어둔 이야기에서 당시 정권의 묵인 하에 자신이 직접 진두 지휘한 일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죠. 

그런데 장남이 아니라 둘째 이창희 씨가 사카린 밀수 사건의 책임을 지고 감옥에 들어가 1년 동안 수감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병철 회장이 후계자인 장남 이맹희 씨를 살리기 위해서 둘째 이창희 씨에게 니가 대신 총대를 메고 감옥에 가라고 종용했다는 설도 있어요. 

이 사건으로 아버지 이병철 회장은 잠시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고 장남 이맹희 씨가 회장직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장남의 경영 실적에 대해 탐탁치 않아했던 아버지는 2년 후 다시 회장에 복귀하죠. 

옥살이를 하고 나온 둘째 이창희 씨는 대신 감옥까지 갔다나왔지만 아버지에게 오히려 상처를 받게 됩니다. 

아버지 이병철 회장은 감옥을 다녀온 둘째 아들에게 큰 흠집이 생겼다고 생각하고 그를 무관심하게 대했다고 해요.

이에 크게 분노하고 배신감을 느낀 둘째 이창희 씨는 1969년 왕자의 난을 일으킵니다. 

1969년 말 차남 이창희 씨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아버지 이병철 회장을 삼성그룹의 회장 자리에서 축출해야 한다는 투서를 날리면서 삼성가가 뒤집어진 사건이죠.


투서는 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해외로 달러를 밀반출한 내용, 제일모직과 제일제당의 탈세 내역 등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은 이병철 회장의 불법보다 아들의 패륜에 초점을 뒀고 이병철 씨가 이 사실을 알고 이창희 씨를 완전히 내쫓아버리면서 삼성가의 왕자의 난은 실패로 돌아갔어요.

문제는 그 후폭풍인데 이병철 씨는 장남 이맹희, 차남 이창희 두 아들을 사실상 호적에서 파버리고 삼남인 이건희 씨를 후계자로 지목하게 되었죠. 

이러한 삼성그룹 경영 상속 과정에서 벌어진 왕자의 난으로 인해 아버지와도 연을 끊게 되었지만 후계자로 지명된 삼남 이건희 씨와도 갈라서 버렸죠.

그렇게 차남 이창희 회장은 삼성을 나와 새한 미디어를 세워 1980년대 내내 비디오테이프, 플로피 디스크 등 기록 매체 관련 사업 중심으로 회사를 키워 성경 그룹, skc 등에 버금가는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그 후 이창희 회장이 1991년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병원에서 58살이라는 나이로 백혈병 치료 도중 사망했는데요.

아내 이영자 씨가 세한 그룹의 회장을 맡고 아들 이재관 씨는 34살의 젊은 나이에 부회장으로 취임하며 경영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오너의 경험 부족과 여러 가지 문제로 무너지고 맙니다. 

1995년 삼성그룹으로부터 제일합섬을 넘겨받은 후 계열사 12개를 거느린 재계 순위 27위에 어마어마한 반열에 올랐지만 무리한 차입을 통해 사업 확장에 나섰다가 결국 실패하고 만 것이죠

기업이 존폐 위기에 다다르자 이재관 부회장은 작은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에게 희망을 걸었어요. 

그러나 헛된 희망이었습니다. 

삼성 임원들조차 이재관 부회장을 만나주지 않았고 오히려 삼성의 금융 계열사들에서 가장 먼저 돈을 거둬가는 바람에
세한그룹은 더더욱 위기의 수렁 속에 빠지게 됩니다. 

이후 반전의 기회도 얻지 못하고 2000년 계열사 전체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세한그룹의 오너 일가는 회사 지분과 자택 등 대부분의 자산을 내어놓고 경영에서 물러나게 됐고 계열사들은 채권단 관리 하에 전부 제 3자에게 매각되었습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장남 이재관 부회장과 차남인 이재찬 사장은 평탄하지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삼성과의 측근은 이창희 회장의 아들들은 삼성 기념 행사에도 잘 참석하지 않고 가족 모임에도 잘 나오지 않고 거의 은둔 생활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어요.

두 형제에게 닥친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지난 2010년 동생 이재찬 사장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당시 그는 가족과 떨어져 아파트에서 홀로 월세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요.

세계에서 내노라 하는 기업의 창업주의 손자이자 우리나라 최고 부자의 조카가 돈이 없어 월세를 살다가  생활고를 비관이 스스로 삶을 끝낸 것입니다. 

실제로 자주 다니던 동네 슈퍼나 가게에 수십만 원에 달하는 외상도 있었다고 전해져요. 

동생의 사망 소식이 세상에 알려지며 비운의 삼성가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빈소에 조화 하나도 보내지 않을 정도로 범 삼성가와는 사이가 안 좋았어요.

그 후 2012년 이병철 회장의 장남 이맹희 씨가 이건희 회장을 상대로 상속 재산 소송전을 벌입니다. 

무려 7천억 원의 소송전이었어요. 

이때 이창희 회장 부인과 동생의 유족이 이건희 회장과 삼성 앞으로 소송을 걸기도 했어요. 

2014년 이맹희 씨는 형제간의 우애가 유산보다 중요하다며 상고를 포기합니다. 

그러나 그의 이건희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의식을 잃고 장남 이맹희 씨마저 이듬해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이들은 끝내 화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이맹희 씨 본인이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소송따위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은 듯 해요. 

현재는 이들의 후손들도 왕래가 없이 거의 남남으로 지내고 있죠.

동생 이재찬 사장이 사망한 지 12년이 되는 해인 2022년 6월 11일에는 장남인 이재관 부회장까지 향년 59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되면서 더욱 주변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습니다. 


최근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재관 부회장 역시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상황에서 어렵게 생활했다고 하는데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게 된 거죠. 


비운의 아버지에 이어 아들들까지 그 비운이 이어지며 삼성과의 아픈 손가락이 되었습니다.

동생 이재찬 사장 사망 당시 이건희 회장 부부와 이재용 당시 부사장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 등은 싱가포르 출장으로 국내에 없었다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이번 이재관 전 부회장의 별세 때도 사촌인 이재용 부회장은 유럽 출장 중이어서 직접 조문은 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빈소에 조화를 보냈죠.

이재현 cj그룹 회장, 손경식 cj 회장, 조동길 한솔그룹 회장 등 범 삼성가에서 모두 조화를 보냈어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빈소를 찾아 직접 조문했는데요. 

범 삼성과의 집안 싸움이 종식되는 것이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안타깝게 돌아가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