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부터 1970년대를 풍미한 너무나 유명한 영화 배우 남궁원 씨
서구적인 마스크와 당시 보기 드문 180cm의 큰 키로 한국의 그레고리 팩이라 불렸죠.
항상 근사하고 멋진 모습으로만 기억되는데요.
그의 진짜 인생은 영화 같지만은 않았습니다.
그가 밤무대에 오르고 온갖 파격 영화에 출연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또한 최근 2022년 그의 충격적인 근황이 알려져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는데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시대를 너무 앞서간 남궁원
남궁원 씨는 1934년 경기도 양평에서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학창 시절에 한국전쟁으로 먹고 살기 힘들어 미군 부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는데요.
원래 그의 꿈은 외교관이나 대학 교수였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유학 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어머니가 자궁암 말기로 3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이었어요.
돈은 없고 어머니의 치료비를 마련해야 했던 그는 평소 영화배우를 권했던 친구의 아버지인 영화사 사장을 찾아가 큰 돈을 받고 영화를 찍기로 약속합니다.
어머니를 위해 그 돈을 치료비로 아낌없이 다 썼는데 결국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그렇게 운명적으로 영화배우로 데뷔했어요.
데뷔 초에는 멋진 외모에 비해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성실한 성격답게 꾸준히 노력해서 1960년대 말에는 연기력에서도 인정받는 배우가 됩니다.
그러나 그는 대형 배우가 될 외모만큼 크게 성장하지는 못했어요.
1960년대 ~ 1970년대에 협객 영화 건달 영화가 유행하긴 했으나 남궁원 씨 같은 귀족적인 외모의 배우에겐 어울리지 않았죠.
또한 양복에 잘 어울리는 서구적 외모와 큰 키를 가진 그는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에서는 더욱 자기 자리를 찾기가 힘들었어요.
그가 머슴역을 한번 못 해본 것이 안타깝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007 시리즈를 흉내낸 스파이 영화가 잠깐 제작되기도 해서 그가 제임스 본드를 연상시키는 스파이 역할을 하기도 했는데요.
충무로의 주류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신상옥 감독과 배우 최은희 씨는 그런 그를 보고 안타까워서
“너는 지금 나온 게 참 아깝다 한 10년 15년 뒤에만 나왔어도” 라고 할 정도였죠.
그의 인생에서 그는 또 한 번 시대를 너무 앞서간 일을 벌인 적이 있어요.
1972년 명동에 빅보이라는 햄버거 가게를 개업해서 한국 최초의 햄버거 가게를 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인들에게 햄버거가 너무 낯설고 입맛에 맞지 않았던 까닭이 그는 채 2년도 안 되어 햄버거 사업을 폐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979년 롯데리아가 생기면서 한국의 햄버거 시대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죠.
또 한 가지 앞서간 것이 있는데요. 바로 조기 유학 붐을 이끌어낸 장본인입니다.
그러나 조기 유학은 그의 인생에 상처뿐인 영광만 안겨주었어요.
가슴 아픈 고백
1967년 남궁원 씨는 해외 촬영을 빈번하게 다니면서 부인 양춘자 씨를 만납니다.
당시 그녀는 스튜어디스였는데요. 상당한 엘리트였고 영어 실력도 대단했습니다.
남궁원 씨는 결혼 후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자기의 못다 이룬 꿈을 자녀들이 이루어 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고, 아이들에게 돈이 아닌 무형의 재산 지식을 물려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1남 1녀 세 자녀 모두 유학을 보냈고 엘리트로 성장하죠.
남궁원 씨의 본명은 홍경일 씨인데요.
아들은 그 유명한 홍정욱 씨입니다. 홍정욱 씨는 기업가이자 전 국회의원으로 대선 주자로까지 꼽힌 인물이죠
중학교 때 유학을 가서 하버드 대학교를 나와 저서 7막 7장의 주인공으로 조기 유학 붐을 일으키기도 했죠.
이렇듯 결혼한 이후에는 한 평생 스캔들 하나 없을 정도로 반듯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영화 배우는 많은 사람들의 규범이 돼야 한다는 평소의 소신 때문이었어요.
그래서 당대의 여러 배우들과 달리 밤무대 출입을 안 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자녀들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의 소신과 전혀 다른 일을 해야만 했어요.
아들 홍정욱 씨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후 학비를 벌기 위해 밤무대 출연을 자주 했다고 합니다.
밤무대도 밤무대지만 온갖 파격 영화에도 출연했어요.
또한 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계에서 온 우뢰매 시리즈’나 ‘로보트 태권브이 90’에도 출연한 바 있죠.
사실 그는 자존심이 세기로 유명했는데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자존심을 내팽개치고 일했던 것인데요.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또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아들의 미국 유학 뒷바라지를 하던 중 아내가 암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아주 심각한 상태였는데요. 유방암 3기인 유방암 말기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암에 걸려 돌아가신 나이와 똑같은 46살에 아내도 이 지경이 된 것을 알게 되어 “내가 무슨 죄를 지었나요..”라며 하늘을 원망했다고 합니다.
그는 또 다시 암으로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은 것처럼 아내를 잃을 수는 없었습니다.
‘심청이 아버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그는 아내의 옆에 꼭 붙어 지극 정성으로 아내를 간호했어요.
몸에 좋다는 것은 어떻게든지 구해 먹이고, 아이들 학비며 아내의 암 투병으로 돈이 많이 필요해 그는 자신의 커리어에 어울리지 않는 일도 해야만 했던 것이죠.
그런 과정이 자신도 힘들었던지 그 자신도 암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남궁원 씨는 과거 2002년 대장암 2기 판정을 받았는데 3기로 넘어가기 직전이었다고 밝혔어요.
그 때 가족 외에는 알리지 않았고 대장을 무려 30cm를 잘라내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원래는 수술 후 항암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 부인의 설득으로 받지 않았다고 해요.
남궁원 씨는 이 후 친한 의사에게 물어봤는데 살 수있을 확률은 50대 50이였다고합니다.
그는 지금은 다행히 완치가 되었는데요.
그 후 2011년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하고 80이 넘은 2015년에도 ytn 뉴스에 출연해 인터뷰를 통해 선후배 배우들을 위해 노력하는 등 노년을 활기차게 보내는 근황을 알렸는데요.
2019년 날벼락 같은 일이 벌어지죠 아들 홍정욱 씨의 딸이자 그의 손녀가 합법적이지 않은 제품에 손을 대 난리가 났는데요.
당시 대선 주자에 거론되던 홍정욱 씨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고 남궁원 씨도 또한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특히 손녀 바보로 유명한 그였기에 더욱 충격이 컸을 것 같아요.
2020년 홍정욱 씨는 “2019년 큰 딸의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당시 중병을 앓고 있었던 아버지, 어머니의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었다”고 밝혔는데요.
그러다가 최근 2022년 충격적인 근황이 알려졌습니다.
충격 근황
2015년 ytn 초대석에 나와 방송 인터뷰를 할 당시만 해도 꼿꼿한 슈트 차림에 여든이 넘었지만 60대 정도 밖에 보여지지 않는 초절정 미노년 간지를 내뿜었습니다.
그런데 2020년 갑자기 서울 아산병원에서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위독하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절친인 신영균은 “남궁원 아우가 요 며칠 사이 전화를 안 받아 불안하다”며 우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는데요.
문병으로 가려했지만, 허용되지 않는 상황이라 아들인 홍정욱에게 대신 위로의 말을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2022년 영화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남궁원 씨는 장기간 입원 치료를 해오다 현재는 자택에서 투병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관계자는 “투병 기간이 2년 정도 됐다며 지난해 고비를 넘기고 퇴원 후에는 통원 치료를 받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지난해 중환 위기를 넘기고 치료에 차도를 보여서 퇴원을 했지만 남궁원 씨는 현재 건강 상태도 좋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어요.
이 관계자는 의식도 뚜렷하고 말씀하시는 데도 무리가 없지만 이동할 때 휠체어에 의지해야 할 만큼 거동이 불편한 상태라고 귀뜸했습니다.
그렇게 건강하시던 분이 갑자기 휠체어를 타야 할 정도로 악화되시다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부디 하루 빨리 쾌차하시기를 바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