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깨달았어요” 백일섭 졸혼 후 딸이 너무 보고싶어 ○○○까지..그의 충격 고백

어머니가 3명?

백일섭은 1944년에 전남 여수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그의 아버지는 툭 하면 바람을 피웠고, 결국 9살 때 어머니가 집을 나가며 이혼을 하게 됩니다.

어느 날 밖에서 놀고 있던 백일섭에게 어머니는 ‘엄마 간다’ 하며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고 얼마 안 가 아버지는 집에 새 어머니를 들리게 되는데요.


새 어머니는 이후 또 다른 새 어머니로 바뀌고 그렇게 백일섭은 어린 시절 새 어머니가 세 번이나 바뀌었는데 의붓어머니들로부터 구박도 많이 받으며 마음의 상처와 혼란 속에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됩니다.

당시 백일섭의 아버지는 일본으로 가며 무역업을 했는데 아버지가 한 번 일본에 가면 2년 동안 집을 비우게 되어, 그는 마음의 공허를 느끼게 되는데요.


결국 백일섭은 고1 때 서울로 떠난 친엄마로부터 오라는 연락을 받고 책가방 하나 들고 엄마 주소만 가지고 서울로 찾아가게 됩니다.

고향에는 미련이 없었지만 떠난다는 생각에 그는 한두 시간이나 울며 집을 나섰는데요.

그는 보고싶던 어머니를 만났지만 어머니도 서울에서 이미 새아버지와 재혼을 한 상태였습니다.

여수에선 다른 어머니에 대한 상처, 서울에서는 다른 아버지에 대한 상처로 백일섭은 그렇게 혼란 투성이로 성장기를 보내야만 했던 것인데요.


이후 성인이 된 백일섭은 1965년에 kbs 공채 탤런트로 연기에 입문하게 됩니다.


그는 데뷔하자마자 무명을 거치지 않고 바로 주연급 연기자로 성공 가도를 달렸는데요.

이런 백일섭에게 드라마 녹화 중이던 어느 날 점심 때쯤 청와대 비서관이라는 사람이 전화로 백일섭을 찾게 됩니다.


비서관은 백일섭에게 2시까지 방송국 현관에 나와달라고 통보를 했는데 녹화 중이라고 했더니 웃으면서 “오시는 게 좋을 겁니다”라고 전했는데요.

백일섭은 더는 거절할 수 없어 결국 부랴부랴 양복으로 갈아입고 현관으로 나가게 됩니다.

방송국 앞에는 지프가 한 대 서 있었고 백일섭을 태웠는데요.

그렇게 해서 백일섭은 생전 처음. 영문도 모르고 청와대 출입을 하게 됩니다.


청와대에 도착한 백일섭은 육영수 여사의 안내를 받아 박 대통령이 기다리고 있던 식당으로 가게 되는데요.

알고보니,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 박지만이 백일섭을 좋아한다고 해서 초대를 받게 된 것이었습니다.

백일섭은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두 손을 모아 대통령 내외와 악수를 했다고 합니다.


육영수 여사는 백일섭에게 오늘은 특별히 스테이크를 마련했다며 음식을 권했는데요.

당시만 해도 칼질하며 양식을 먹을 기회가 없을 때였지만 백일섭은 그보다는 도대체 손이 떨려서 고기를 썰 수가 없었습니다.

육영수 여사는 손수 고기를 썰어내 백일섭에 접시에 옮겨주었고 백일섭은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며 식사를 마치게 됩니다.


그렇게 청와대로부터 초대까지 받을 정도로 인기를 구가했던 백일섭은 큰 체구 덕분에 우루사 CF 모델로도 오랫동안 활약했는데요.

이후 그는 mbc 드라마 ‘아들과 딸’에 출연하면서 최절정 인기를 달리게 됩니다.

당시 드라마에서 백일섭은 ‘홍도야 우지마라’를 부르며 다양한 유행어를 탄생시켰고 드라마는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했었죠.

하는 것마다 다 망하는 마이너스의 손


하지만 그렇게 잘 나가던 백일섭은 이후 이런저런 사업에까지 손을 댔다가 무려 합계 9억 원이나 되는 돈을 받지 못하며 여러 차례 사기를 당하게 됩니다.

백일섭은 평소 술과 사람을 좋아하고 남에게 싫은 소리 하느니 그냥 자신이 손해를 보고 마는 스타일이었는데요.


경기도의 한 골프장에서 최 모 씨라는 사람과 우연히 함께 라운딩을 하게 된 백일섭

최 씨는 자신이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최우수 성적으로 합격한 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제비서관으로 근무했다고 주변인들을 속여왔는데요.

최 씨는 인천 검단지구 상가와 경기 용인 아파트에 투자하면 두 배의 이익을 남길 수 있다고 유도해 백일섭으로부터 합계 5억 원의 자금을 갈취하게 됩니다.

나중에 확인을 해봤더니 최 씨는 돈을 받아가서 투자한 흔적이 어디에도 없었는데요.


백일섭은 화가 났지만 현금 5억 원 대신 그에 상응하는 가치의 부동산을 변제받는 것으로 합의하며 사건을 마무리 짓게 됩니다.

백일섭은 향후 부동산 시세만 괜찮으면 손해 보는 건 없었기 때문에 그냥 부업한 셈 치겠다고 한 것인데요.


또한 백일섭은 한때 영화사를 차려 일본 대중문화 수입이 지금처럼 허용되지 않았던 시절 일본 애니메이션을 수입한 적도 있었는데요.

홍콩 작품으로 소개되었던 애니메이션이 사실은 일본 작품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백일섭의 회사는 그만 영화사 등록을 취소당하고 말았습니다.


한 때는 카바레 사업을 엄청 큰 규모로 했다가 시원하게 휘청했고 그 밖에도 식당 사업 등 다양한 사업에 도전했지만 사기꾼들에게 휘말려 총 9억 원을 떼어 먹히게 됩니다.

뒤늦은 후회..


게다가 젊은 시절 딴따라라는 처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어렵게 결혼한 10살 연하의 아내와도 백일섭은 최근 졸혼한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그는 배우 아버지로서 집안에서 대우를 받고 싶고 위로도 좀 받고 싶었지만 촬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아내와 이런저런 일로 싸우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니 집에 있어도 마음이 너무 불편했고 결국 가족들과도 대화가 단절된 삶을 살게 되었는데요.


결국 그는 자신이 피땀 흘려 지은 집마저 아내에게 주고 자신은 혼자 나와서 살게 됩니다.


게다가 조언하는 과정에서 아내와 다툴 때 중간에 딸이 중재를 하다가 아버지와 사이가 멀어지며 현재 백일섭은 아들 내외만 왕래하며 지내고 있는데요.

하지만 백일섭은 손자 육아비와 손자 보모에게 들어가는 비용 월 200만 원은 본인이 다 부담을 해주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게 그는 집을 나와 조그만 한 오피스텔에 들어갔는데 이후 두 달을 술만 마셨다고 합니다.


밥을 혼자 나가서 사 먹으면 자신의 모습이 너무 초라하니, ‘아점’은 집에서 해먹는데 이제는 익숙해져서 괜찮다고 밝히기도 했는데요.


몇 년 전부터는 디스크 협착증으로 허리 수술을 두 차례나 받았고 무릎 수술까지 받아 현재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상당히 힘들어진 상태라고 합니다. 이로 인해 매일 먹는 약만 한 움큼이죠.


백일섭은 자신보다 한 살 아래인 조경환이 간암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조문을 했는데 그가 말하기를


“현재 80이 다 된 나이에 불편한 몸으로 그동안 안 해봤던 빨래, 청소, 혼밥, 설거지까지 다 한다”

“아내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가 된다”고 하는데요.

백일섭은 외로움과 쓸쓸함에 강아지 제니를 입양했는데, 덕분에 사랑하는 것을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강아지 제니에 대해 

“처음에 보는 강아지가 나를 보는 눈이 딸을 보는 것 같아서 데려왔다”

“사랑을 받기만 했지, 주지못했는데 그래서 졸혼한 것 같다”

“우리 제니를 통해서 사랑하는 법,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고 밝혔습니다.

일만 하는 무뚝뚝한 아버지에서 이제는 사랑을 표현할 줄 아는 아버지로 달라지려 한다는 백일섭

그가 이제는 더 이상의 아픔을 겪게않고 행복하기를 바라며 앞으로의 인생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