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사업가와 결혼 후, 한 푼도 못 건져..” 회사 부도 후 쫓겨난 김희애 남편에 김희애 충격 고백, 이렇게 인생이 끝나나?

우아한 배우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 중 하나가 바로 김희애입니다.


그녀는 아름답고 우아할 뿐만 아니라 연기력 또한 신의 영역까지 도달한 연기자들 중 한 명인데요.


원로 배우 이순재가 연기를 가장 잘하는 후배로 그녀를 언급했었고

심지어 대한민국 드라마를 꽉 잡고 있는 김수현 작가조차 그녀를 향해

“자신의 대본을 이렇게 완벽히 소화한 배우는 김희애 밖에 없다”며 그녀를 치켜세우기도 했습니다.


김희애라고 하면 따라오는 수식어가 우아한 배우 최고의 연기자 등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인간 김희애의 삶은 배우로서의 탄탄한 삶과 달리 불안 그 자체였습니다.

톱스타 생황을 하다가, 갑자기 결혼이라는 도피를 선택하며 엄청난 재력가와 결혼한다는 말을 들리기도 했고,

IMF 때 남편이 매국노로 몰리며 회사에서 물러나게 됬죠

다시는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아 ‘내 인생도 이제 끝이구나’ 라는 생각까지 하며

현재까지도 남편이 무얼 하는지 알 수 없다고 고백한 김희애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1967년 제주도에서 태어난 김희애

어릴 적부터 엄마 친구분들이나 어른들로부터 ‘아이고 예쁘다’ 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고 합니다.

지금의 우아한 이미지와 달리 학창시절에 그녀는 굉장히 잘 놀았다고 하는데요.

한 번은 학생인데도 불구하고 과음해,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학교 선생님의 동생이 광고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라 우연히 캐스팅되어 고등 1학년인에 제일모직 의류 모델로 연예계에 데뷔하게 됩니다.


1년 뒤 불과 18살의 어린 나이로 영화 ‘스무해 첫째 날’에 출연하며 본격적으로 배우 활동도 시작하게 되는데요

이후부터 하이틴 영화에서 주로 활동하며 그 시절 남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80년대를 대표하는 하이틴 스타로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대학교 1학년 시절 kbs 특채 탤런트로 데뷔하게 되면서 몇 년간은 kbs에서 맹활약하게 되었죠.


그 후, mbc와 전속 계약을 맺으며 당시 하희라 채시라 등과 함께 mbc 간판 탤런트로 활동하게 됩니다.


89년 mbc 연기대상에서는 그녀는 여자 최우수상까지 차지하게 됩니다.


1992년에는 한국 드라마 사상 역대 시청률 7위를 차지한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이후남’ 역을 맡았는데요.


당시 보기 힘든 독립적이면서도 역경을 헤쳐나가는 새로운 여성상으로 사랑을 받게 됩니다.


1993년에는 드라마 ‘폭풍의 계절’로 또 한 번 훌륭한 연기력으로 호평을 받으며 그의 mbc 방송대상 백상예술대상에서 마침내 대상까지 차지하게 됩니다.


한편 김희애 그녀는 최고의 위치에서 뜻밖에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되는데 바로 남편 이찬진이었습니다.


그녀의 남편 이찬진은 국민 워드프로세서인 아래아 한글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한 사람으로 한글과 컴퓨터라는 기업의 초대 사장으로 지냈으며, 1996년에는 국회의원을 지낸 경력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김희애 그녀는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 좋더라도 본인이 연예인이다보니 외모를 좀 많이 보는 편이었죠

‘컴퓨터를 아주 잘 아는 대학후배’라는 정보만 알고 나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당시 남편의 첫인상은 구두 밑창이 다 떨어지고 양말도 비에 쳐져 마룻바닥에는 온통 양말 자국이 생기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게 좋게 말하면 검소한 거지만 솔직히 당시 남편은 옷도 너무 못 입고 완전 별로였다고 밝혔죠.


하지만 이후 그녀는 남편에 대해 하나의 기기를 통해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갖게 되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남편의 짧고 간결한 메일 답장 때문이었습니다.

하루는 남편에게 이메일 보내는 방법을 배우고 그때는 보낼 사람이 없어서 남편에게 메일을 보냈다고 합니다.

몇 시간 후에 답장이 정말 짧게 왔는데 그 짧은 메일의 내용이 그렇게 샤프하고 멋있게 느껴지게 됩니다.

아무튼 두 사람은 점차 사랑을 키워 나가기 시작했는데요


두 사람이 순수한 건지 짧은 연애 기간 동안 여러 가지 황당한 에피소드들이 많습니다.


만난 지 한 달쯤 식당에서 밥을 먹고 나오다가 이찬진이 계산을 하는 모습을 김희애가 봤는데, 서명란에 이찬진이라고 이름 석 자를 쓰는 걸 보고 이때까지 남편의 이름을 창진으로 알던 김희애는 이름이 찬진인 걸 알고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데이트가 끝나고, 항상 집에 데려다 주는 쪽은 남편이 아니라 김희애였는데 두 사람의 데이트가 끝나면 늘 김희애가 이찬진이 살던 대방동 집까지 바라다주고, 방배동 본인의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이처럼 두 사람의 연애 방식은 보통의 남녀와는 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다가 하루는 이찬진이 느닷없이 그녀에게 프러포즈를 하게 됩니다.

훗날 김희애의 고백에 따르면

“남편이 밑도 끝도 없이 내게 다이아몬드 반지는 받을 생각조차 하지 말라는 말을 했고 그런데 그게 바로 프러포즈 아닌 프러포즈였던 것이었다”

솔직히 남들처럼 근사한 말을 기대했건만 프러포즈 치고는 너무 이상했다고 했습니다.


어찌 됐든 김희애 그녀는 이런 이상한 프러포즈를 받아들여 만난 지 불과 4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한국의 빌게이츠라 불리던 벤처 사업가와 결혼해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중 안타깝게도 IMF가 닥쳐왔고, 남편 회사 역시 경영 악화로 부도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결국 1998년 5월 남편의 회사는 1차 부도가 났는데, 이때 한글과 컴퓨터를 마이크로소프트에게 넘기고 약 2천만 달러의 투자를 받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런데 이때 대중들은 한글과 컴퓨터를 미국에 넘길 수 없다며 여기저기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심지어 일부에서는 그녀의 남편 이찬진이 매국노라고 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와 별개로 그녀의 남편은 사실상 거의 빈손으로 회사를 떠나게 되었고 남편이 200억대 주식 부자다 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는데 명성만큼 그렇게 큰 재산은 없었습니다.


아무튼 한글과 컴퓨터에서 쫓겨 아니 물러난 그녀의 남편은 이후 절치부심하며 재기를 위해 현재 네이버와 같은 포털 사이트 드림위즈를 만들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2020년 4월 29일 40억대 배임 및 횡령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이 때 김희애는 톱스타로 지내다가 평범한 주부가 되어 아이들을 연년생으로 낳고 육아까지 하고 있었죠.


그녀는 더 이상은 자신이 여자가 아닌 듯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고 다시 카메라 앞에 선다는 게 상상이 되지 않아 ‘내 인생도 이제 끝이구나’ 라는 생각까지 했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이 시기를 배우 활동이 얼마나 값어치 있는 일인지 깨닫고 결혼 7년 만에 다시 연예계로 돌아오게 됩니다.


이후 그녀는 복귀가 두려웠던 게 무색할 만큼 출연하는 드라마마다 모두 대박이 나며 브라운관 복귀를 완벽히 성공했습니다.


이후에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 ‘꽃보다누나’에도 출연해 40이 훌쩍 넘은 나이에 결혼하고 싶은 여자 1위에 등극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김희애 그녀는 40년동안 정상의 자리에서 오랫동안 사랑을 받다 보니 재산이 상당합니다.


우선 강남구 청담동의 주차장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걸 2006년도에 119억 원에 매입을 했으며 현재 시세는 500억원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김희애와 남편이 사는 곳은 대한민국 아파트의 상징 최근 실거래가 80억까지 기록한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로 알려져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희애 그녀가 고백하길

“내가 데뷔한 지 40년 가까이 되었는데 그간 정말 치열하게 나 자신을 달려내왔다”

“하지만 지금 와서 그 시기를 돌이켜보면 무엇이든 결핍되고 궁지로 몰렸을 때 다시 성장하고 도약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게 아닐까 싶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도 우리 남편이 뭐 하는 사람인지 잘 모른다”

“얼마 전남편의 SNS에 들어가 봤으며 뭔 소린지 하나도 몰라서 바로 나왔다”

“그래서 그때 깨달은 게 부부는 서로 모르는 척 해주는 게 좋은 것 같다”

“사실 나도 촬영장에 가족이 와 있으면 위축된다 그런 마음을 알기에 그날 이후로는 각자의 영역에 대해 존중하고 침범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오랫동안 배우로서 활동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나 스스로가 바쁘게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물론 어쩔 땐 왜 이렇게 고단하게 살지 싶다가도 나태해지면 내 머리도 산뜻해지지 않더라”

“그렇게 내 식대로 숙제를 하며 살다 보니 그게 뭐요 10년이 되고 내 인생이 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