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친구’ 실제인물과 재혼하더니..” 가수 이영화, 공사판 막노동하며 떠돌이생활..충격 근황

1979년 가요계 혜성처럼 등장한 가수 이영화는 ‘실비 오는 소리에’로 데뷔해서 국민적 사랑을 한 몸에 받은 80년대 대표 가수였습니다.


한창 잘 나갈 때는 당시 최고의 여가수였던 나미, 방미, 계운숙 등을 제치고 그녀가 1980년 10대 신인 가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죠


그러나 그녀의 가정사가 오래 지나지 못해 탄로나면서 가수 이영화의 삶은 한순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됩니다.


이 후 아들을 잃고 실어증까지 걸렸는데요


그러다 영화 친구 장동건역 실제 인물인 칠성파의 행동대장 정병하와 재혼했고 그 후 16년동안 그녀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는데요.

11월 10일 MBN ‘특종 세상’에 가수 이영화가 게스트로 출연해 근황을 전했습니다.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하며 생활하고 있다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걸까요?


그 내막과 가수 이영화의 온몸으로 버텨 온 인생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52년에 태어난 이영화는 어린 시절 못하는 노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 누구보다 노래를 좋아하셨던 아버지 덕분에 별다른 반대 없이 그녀 역시 가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아버지의 사업에 실패하게됩니다.

아직은 어린 나이의 그녀였지만 집안의 가장이 되어 밤무대에 나가 돈을 벌어야만 했습니다.


한편 그녀는 밤무대 업소에서 음악을 같이 하는 첫 번째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

그렇게 아이를 가지며 21살이라는 나이에 엄마가 되었습니다.

당시만 하더라도 아기 엄마가 가수가 되어 tv에 나온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녀는 자연스레 가수의 꿈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그녀의 스승이었던 작곡과 전재학이

“네 목소리와 가창력이 아깝다”

“아이 엄마라는 사실을 말하지 말고 그냥 처녀라고 속이고 데뷔를 해보자” 라며 그녀에게 권유했습니다.


그렇게 그녀는 스승의 말만 믿고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숨긴 채 ‘실비 오는 소리에’ 라는 노래로 가수 데뷔하게 됩니다.

그녀는 데뷔와 동시에 1980년대 초반 시대를 대표할 만큼 대중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대표 가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인기가 절정일 때 한 잡지사에서 이영화는 사실 애 엄마라는 사실을 폭로하게 됩니다.


아기 엄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녀는 한순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으며 그렇게 그녀의 인생이 무너져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방송에서 이영화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고 사람들은 “이영화가 끝내 은퇴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그녀의 가정 역시 온전치 못했는데 한창 가수로 활동할 때에도 그녀의 아들은 엄마 소리 한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남편 또한 어디 가서 이영화 남편입니다라고 떳떳하게 얘기를 못하다 보니 나름대로 속앓이를 하며 밖으로만 맴돌아야 했습니다.


또한 당시 그녀의 남편은 이영화의 이름을 걸고 사업을 하면서 어음 발행을 너무 난발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어음 건당 3억이라는 어마어마한 빚을 그녀가 지게 됩니다.


이 빚은 훗날 그녀가 첫 번째 남편과 이혼을 한 후에도 고스란히 그녀의 몫이였죠.

그렇게 빚더미에 앉으며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철없던 시절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책임이라 생각하며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그녀가 고단한 하루를 온몸으로 버틸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녀의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날이 날이 갈수록’이라는 노래로 가수로서도 재기에 성공하며 이후 그녀에게 다시금 새로운 꽃길이 펼쳐지나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녀의 아들이 너무나도 이른 나이인 29살에 심근경색이라는 병으로 그녀의 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때를 그녀가 고백하길 그때

“자식을 먼저 보낸다는 건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을 못 한다”


“본인 자신만이 알 수 있으며 그 아픔은 옆에서 아무리 같이 아파해줘도 모른다”

“지금도 자다가 애 생각이 나면 내가 잘못한 것 같아 잠을 못 잔다”

“잊지 못해서 떠난 사람 사진을 본다는데 나는 사진도 못 본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떠난 사람 사진을 본다는지 나는 도저히 그걸 이해를 못하겠다”

“언제부턴가 내가 tv도 잘 안 본다”


“tv 속 아들과 비슷한 나이대의 애들이 나오면 우리 아들은 왜 일찍 갔나라는 생각이 든다”


한편 그렇게 아들을 잃고 모든 의욕을 잃은 그녀에게 투박하지만 따뜻한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지금의 남편이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영화 친구의 장동건 역 실제 인물인 칠성파 행동대장 정병하입니다.

그는 당시 형님이었던 김태촌의 면회 때문에 형수였던 이영숙을 자주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영숙이 이영화를 소개해 준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으로 아픔이 채 가시지 않았던 이영화는 이런 상황에 무슨 남자를 만나나 싶어 거절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녀의 지인들이 정병하가 좋은 남자라며, 적극 권유했고 호기심에 그와의 소개팅에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엔 살짝 무서웠지만 대화하다 보니 당시 웃음을 잃고 살던 그녀에게 재밌는 이야기로 많은 웃음을 안겨주었죠

우울하기만 했던 그녀의 얼굴에 조금씩 미소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이영화는 자신을 위해 살겠다며 결혼하자는 남편의 청혼에 하나의 조건을 내걸게 됩니다.


바로 조직 생활을 정리하고 신학대학을 졸업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3일 정도 고민하다, “신학대학 내가 갈게”라고 약속했고 그녀는 남편을 믿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남편 정병하가 고백하길

“신학대학에 들어가서니 내가 살아온 세상과 극과 극의 세상이었다”

“신학대학을 나온 후에는 예전에 나쁜 마음이 80%였다면 지금은 좋은 마음이 80%다”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 한 번씩 욱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그런 건 이제 마음으로 다스리면 된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던 순간 이영화는 새로운 사랑을 찾았지만, 남편 정병하의 과거 때문에 큰 비난을 받아야 했었죠.

그로부터 16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tvn ‘특종세상’에 이영화, 정병하 부부의 근황이 공개되었는데요.


이영화는 철거가 진행 중인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딜가나 부부는 한 몸처럼 붙어다녔는데요.


두 사람은 시골 마을에 있는 폐가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있으며 집에서 오가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고 합니다.


알고보니, 두 사람은 귀촌을 위해, 같이 살 집을 짓고 있었던 것이였습니다.


이영화와 남편 정병하는 서로 의지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정병하는

“제가 만일 집사람을 못 만나고 혼자 살았다면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수 있다”라고 고백했는데요.


이영화 또한

“아들이 죽은 후 극단적인 선택도 생각했는데 정병화 덕에 살고 싶은 의욕이 생겼다”며 고마워했죠.


가장 힘들 때 서로에게 힘이 되어준 이영화, 정병화 부부


앞으로도 부부로써 의지하며 행복한 인생을 보내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