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병원에 가둔 엄마의 마지막은..” 심수봉이 3번 결혼할 수 밖에 없었던 충격 진실

트로트와 발라드 그 중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개척한 트롯 발라드의 선구자 가수 심수봉 씨


그녀의 노래는 아직도 뛰어난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인생은 너무나 외롭고 긴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자신을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던 어머니와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떻게 해서 결혼을 세 번이나 하게 되었을까요?


지금부터 심수봉 씨의 파란만장한 인생 여정을 함께하겠습니다.


심수봉 씨는 1955년 충청남도 서산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심수봉 씨가 세 살 때쯤 아주 일찍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딸 하나 잘 키우기 위해 험한 행상일에 나서게 됩니다.


어느 날 행상하는 어머니가 다방에서 문전박대 당하는 모습은 어린 딸의 가슴에는 한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심수봉은 음악에 특출난 재능을 보였는데 여러 가지 악기를 연마하고 혼자서 화성학을 독학 그 후 18살 때부터 돈을 벌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텔 라운지에서 피아노는 알바를 하던 와중, 우연히 손님으로 만난 나훈아 씨를 통해 음반사와 계약을 하고, 연예계에 데뷔하게 됩니다.


그런데 좀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나훈아 씨와 때 스캔들이 터지자 음반 기획사 사장과의 계획이 모두 흐지부지 된 것입니다.

원래 가수에 대한 꿈이 없었는데, 불씨를 확 당겨놓고 그만 좌절되니 심수봉 씨는 오기가 좀 생겼습니다.


당시는 대학 가요제가 휩쓸던 때인데요.

거기에 입상하면 음반을 만들어 주겠다고 해서 1978년 제2회 대학가요제에 참가하게 됩니다.


노사연 씨 배철수 씨 임백천 씨 등 그때 참가한 사람들은 아주 쟁쟁했는데요.


심수봉 씨는 본선 진출은 했지만 수상을 못하고 떨어졌죠.


아마 당시의 20대에게는 포크나 록이 유행했기에 심수봉 씨가 부른 트로트와는 좀 안 맞았던 것입니다.


수상을 못해 상심한 심수봉 씨에게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수상자를 제치고 가장 먼저 음반 녹음을 한 거죠.

지구레코드 사장이 심수봉 씨의 노래를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때 발표된 ‘그 때 그 사람’은 발매되자마자 미친 듯이 빵 뜹니다.


그러나 그 노래는 그녀를 너무나 무서운 운명으로 끌고 갑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도 그 노래를 좋아해서 궁정동 안가에서 열린 술자리에 그녀를 불렀어요.

그리고 어마어마한 사건이 터진 거죠.


죽다 살아났지만 그 후 수많은 조사에 끌려다녔어요.


현장에 있던 것 뿐이었던지라 무혐의로 풀려났지만 결국 방송 금지를 당합니다.

무려 4년간 방송 금지..


그녀는 밤 업소를 전전하다, 1984년이 돼서야 방송 활동 금지가 풀리면서 활동을 재개할수가 있었습니다.


이 당시 나온 노래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무궁화’  ‘사랑밖엔 난 몰라’ 등입니다.


그러나 개인사의 비극은 이후에도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1979년 10월 26일 그날 밤 어머니한테 신문에 나오기도 전에 그 사건을 털어놓자 어머니가 놀라운 얘기를 합니다.


한 달 전 어머니의 지인 중 한 명이 심수봉 씨의 죽음이나 안 좋은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언했다는 것이죠.

그 사람은 심령학을 공부한 한기석 씨였습니다.


심수봉 씨는 그를 만난 후 그의 제자가 되어 심령학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워낙 큰 사건을 겪은 후라 거기서 정신적인 위안을 찾으려고 한 거죠.


그러다 그가 너무나 궁핍하게 사는 것을 보고 경제적인 도움을 주려고 했어요.


그러자 어머니가 기를 쓰고 반대했습니다.


내 딸에게 최면을 걸어 딸이 돈을 바치게 한다고 오해한 어머니는 너무나 심하게 딸을 간섭하고 억압했습니다.

그러자 오히려 역효과가 났죠.

그럴수록 심수봉 씨가 몰래 돈을 빼돌리고 어머니한테 반항하고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녀를 정신병원에 가두어 버립니다.

“26일 동안 점점 엄마한테서 벗어나고 싶더라고요 “

“엄마가 원망스러워요.”

“그런데 그 길로 저를 또 정신병원을 데려왔어요.”


정신병원에서 아무리 말을 해도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자 보름째 되는 날부터 심수봉 씨는 머리를 써서 그들이 원하는 답을 해줬어요.


“한기석 씨 참 나쁜 사람인데 몰랐고 엄마한테 잘못했어요” 라고 말하고 나서야
정신병원에서 풀려납니다.

그렇게 심수봉 씨는 어머니와 철천지 원수 같은 사이가 되고 말았죠.

그런 과정에 한기석 씨와 심수봉은 동거까지 하며 아이를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아들을 낳자마자 보름 만에 집을 뛰쳐 나오게 됩니다.

칼로 베여서 칼자국이 생길 정도로 심한 폭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또 한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기자들의 언론 공세를 막아주고 보호해주는 그 남자에게 마음을 뺏겨 어머니가 반대하는 결혼을 합니다.


그녀는 평생 아버지 같은 남자를 원했으나 두번째 남자도 살아보니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다고 할 정도로 치를 떠는데 방송에서 더 이상 자세한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만난 남자가 지금의 남편입니다.


심수봉 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 연출을 맡은 PD였는데 너무나 자기를 잘 이해해주고 저녁도 사주고 항상 친절하게 대해주었다고 합니다.

사실 방송이 잘 되게 하기 위한 일종의 비즈니스였는데 아버지처럼 다정하게 대해주는 남자에게 그녀는 또 다시 끌리고 맙니다.


아버지의 부재와 결핍 그리고 홀어머니와 단둘이 외롭게 살았던 그녀는 늘 사랑의 굶주렸죠.


그 남자를 짝사랑할 때 만든 노래가 ‘비나리’입니다.


이 노래를 듣고 감동한 PD와 1995년 결혼합니다.

이제는 행복만이 함께 할 줄 알았으나 아직 시련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아이들이 새 아빠에게 적응을 하지 못한 것이었어요.

그는 가정적이고 모범적인 아주 훌륭한 남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엄격한 아버지였습니다. 아이가 엇나갈 정도로..


심수봉 씨는 자신의 불행으로 자녀들도 고통을 받는 것 같아 늘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따뜻한 아버지이기를 바랐는데 남편은 조금 심하게 냉정하고 무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 힘들어 울고 있는데 그때 그녀에게 영혼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한테는 내가 있잖아’

당시 심수봉은 기독교를 믿고있었죠.

이 목소리를 듣고 심수봉은 결심합니다.

내 사랑으로 차가운 이 얼음 남자를 녹여주기로


그렇게 사랑받을 욕심을 버리고, 남편에게 온전히 사랑을 주는데만 집중하니 이상하게 엄청 행복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랑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행복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이후 남편은 크게 달라지게 됩니다.


그녀는 20년만에 그토록 원하던 진실한 사랑을 찾게됩니다.


이후 또 한 사람의 인생을 극적으로 구해주기도 합니다.


심수봉 씨는 자신의 아이들이 새 가정에 적응하지 못하고 반항하고 방황하며 자기를 고통스럽게 할 때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TOP가수로써 인기를 끌었는데, 한순간에 심령학자에 빠지면서 얼마나 어머니를 힘들게 했었나..”

심수봉은 당시 어머니의 심정을 제대로 깨닫게 됩니다.


평생 외롭고 힘들게 살았던 어머니는 2013년 결국 치매에 걸리고 맙니다.

증상이 너무 심각한 상태였죠.


그녀가 어머니를 뵜을 때 겉으로는 정신을 잃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그녀는 어머니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해요.


“딸아 나 좀 버리지 말아줘 살려줘”

그래서 어머니를 붙들고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절대로 엄마를 요양원에 보내지 않고 버리지도 않을거야”

“엄마를 끝까지 책임질 거야 아무 걱정하지 마요”


그러자 엄마가 심수봉 씨를 붙잡고 “너무 고맙다”며 울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같이 살기 시작했는데 어머니는 치매 환자로 심각한 정신 상태를 보였다고 합니다.


심수봉 씨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부모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을 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하며, 속으로도 화내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합니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어머니를 돌봤더니 놀랍게도 치매가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치매는 완치가 안 되는 질환으로 알고 있는데 그녀의 지극한 사랑이 어머니를 다시 돌아오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4년이 지난 2018년 ‘엄마 사랑해요’ 라는 곡을 발표하고 1년 후 모친은 돌아가셨습니다.


어머니는 “엄마 인생이 너무 슬프고 외롭지 않았냐?”는 딸이 물음에 “아니다. 니 음악이 있어서 너무 행복했다. 니 음악을 들으면서 내 인생은 외롭지 않았다.”


어머니가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았는지 오롯이 느껴지며 너무나 뭉클했습니다.

어머니 바람대로 좋은 음악으로 많은 힘든 사람들을 위로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