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론 강원래는… 김송, 충격 고백 “나는 천사가 아니었다”

김송은 2021년 cbs 새롭게 하소서에 나와 지옥 같던 삶에 찾아온 세 가지 기적을 공개했습니다.

교통사고 이후 잉꼬 부부로 연기하면서 살았던 과거와 남편 강원래와 불안을 극복하고 가정을 지켜낸 이야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김송은 1972년생으로 경성여고 졸업 후 이태원 댄서들의 성지였던 문라이트에서 댄스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강원래는 1969년생으로 경기고등학교 동창이던 구준엽과 1990년 현진영의 댄스팀 와와 의 멤버로 활동하면서 유명세를 탑니다.

사실 소문난 춤꾼이던 두 사람은 나이트 클럽에서 처음 만났는데 중3의 김송은 고3이던 강원래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난 두 사람은 강원래가 군대에 있을 때 75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연인이 됩니다.

이후 김송은 박미경과 김건모의 백업댄서로 활동, 김건모의 ‘핑계 ‘ 활동 당시에는 상당히 파격적이고 이국적인 스타일로 큰 주목을 받았었습니다.

이후 김송은 90년대 가요계 미다스의 손이었던 김창환의 라인음향 에서 1996년 혼성 그룹 콜라로 가수 데뷔를 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강원래는 구준엽과 함께 클론으로 활동에 나서는데 이들을 데뷔시킨 사람도 김창환입니다.

우선 그룹 콜라는 댄스로 유명한 김송, 여고생 가수로 인기를 끌었던 박준희, 그리고 유명 댄서인 김영환이 멤버였는데,

김창환이 키운 가수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았지만, 콜라의 노래는 다소 난해하고 실험적이라 대중에게 외면당합니다.

이후 1997년 10월 멤버 교체와 함께 2집을 발매했지만 2집마저 실패를 거두자 김송의 그룹 활동은 마무리가 됩니다.

한편 김창환의 다른 픽이었던 클로는 한국뿐만 아니라 대만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양국을 오가며 바쁘게 활동에 나섰습니다.

남자친구의 성공 속에서 김송은 강원래의 연인으로 간단히 소식만 전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오는데, 강원래가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습니다.

김송 입장에서는 결혼까지 생각하며 지냈던 사이였던 만큼 이후 재활 치료를 받던 강원래의 곁에 늘 함께 있었고 2003년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세계의 수뇌부로 김송 강원래 커플을 바라보았고,

김송은 사랑의 힘으로 강원래 곁을 지키고자 했지만, 장애인이 된 남편과 살아가야 하는 현실에 점점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합니다.

2000년 사고 당시 강원래의 나이는 32세로 남자이자, 연예인으로도 한창의 나이였는데,

댄서이자 가수로서 살아오다가 한순간에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된 강원래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자신에게 사람들이 사인을 받으러 오자 욕을 하며 쫓아낸 일화나,

그의 싸이월드 홈피에 남긴 글의 욕설과 거친 답글을 남긴 사건으로 유명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갑자기 장애인이 되면서 일자리까지 잃어버렸으니 심적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그런 것 아니냐는 옹호론도 적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사고를 당한 강원래도 그 옆에 있던 김송도 만만치 않게 힘들었을 것 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에는 그것 말고도 숨겨진 문제점이 있었는데 강원래가 건강하던 시절 연인 김송을 두고도 늘 바람을 피웠다고 합니다.

사고가 없었다면 결혼이 불투명했던 두 사람은 불의의 사고 이후, 부부가 되지만 속은 곪아가고 있었습니다.

2011년 김송의 간증으로 두 사람의 문제는 외부로 드러납니다.

다음은 그 내용 중 일부입니다.

“남편 강원래가 제대 이후부터 가수로서 정상의 자리에 서기까지, 그리고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되기 전까지 7년 내내 바람을 피웠습니다.

장애인이 되고 나서도 제가 지방에 가 있는 동안 저와 친했던 동생을 집으로 불러들여 관계를 했다는 사실을 몇 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너 때문에 내 인생 포기하고 살았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그 에게 위자료를 청구하고,

이혼을 요구했지만 돈을 주지 않아서 분하고 억울해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혼한다고 해도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고, 이혼하신 부모님 밑에서 언니와 오빠도 이혼했는데 ,

나 마저 가족들에게 이혼의 상처를 안겨줄 수 없었기에 매일 이혼과 도피,죽음만 묵상하며 옥에 갇혀야 했습니다.”

이 간증 영상은 곧 삭제되었지만, 당시 상당한 충격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방송의 동반 출연에 서로를 사랑하는 부부의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입니다.

그런 강원래가 장애인이 된 이후, 김송의 지인과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을 몇 년이 지나 알게 되었다는 김송의 이야기는

아픈 남편을 지극정성 돌봤던 김송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분노를 일으켰고 강원래는 인터넷 창에서 비난을 샀습니다.

또한 쇼윈도부부로 시청자를 속였다며 불쾌하다는 여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3년 tv 프로그램 ‘자기야’에 출연한 구준엽이 현재 강원래 김송 부부가 잘 살고 있다고 말했고,

2014년에는 여덟 번의 시험관 시술 끝에 아들을 낳게 되면서 두 사람의 불화 소식은 사그라들었습니다.

그리고 2021년 1월 방송에서 김송은 단독으로 출연해 그간의 불화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극복할 수 있었던 세 가지의 기적을 공개했습니다.

김송은 첫 번째 인생의 기적으로 강원래가 살아서 돌아온 점을 꼽았습니다.

사고 이후 강원래는 한 달 반 동안 의식 없이 헛소리 했는데 김송은 깨어나기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목 뼈가 3개나 부러졌는데 목을 고정하기 위해 머리에 못을 박았다며 그 고통 때문인지 강원래가 의식을 찾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살아 만나면 좋겠다는 자신의 소망이 이루어진 첫 번째 기적이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장애를 갖게 된 남편과 사는 일은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영원히 휠체어를 타야 하는 강원래의 모습에 김송은 자신만만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난 아직 젊은데 평생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각이 들자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김송은 그때 정신과를 앓았으면 상담도 받고 약물 치료도 했을 텐데 그조차도 말할 수 없었다며 당시의 답답함을 토로했습니다.

심지어 결혼에서 벗어나 이혼하고 싶었던 적도 있는데 속으로 혼자 끙끙 앓다 보니 위궤양이 생길 정도였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강원래와 지독하게 싸웠는데 방송에 나와서는 우리 부부 행복하게 잘 사는 척을 했다며 그 지옥 같던 시절을 고백했습니다.

매일 이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어느 날 남편의 존재가 감사함으로 다가왔다며,

이것이 자신에게 찾아온 두 번째 기적이라고 전했습니다.

한편 김송과 강원래 부부는 결혼 10년 동안 아이가 없었습니다.

결혼 후 시험관 시술을 꾸준히 받았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갈등이 더욱 극단으로 치닫던 배경에는 시험관 시술의 고통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김송은 2001년부터 시험관 시술에 도전했는데 굉장히 아픈 과정이었고,

실패하면 정신적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며 그 경험에 대한 원망의 대상이 남편이 됐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포기한 지 5년이 지나서야 남편이 시험관을 다시 제안했고 총 여덟 번의 시도 끝에 아들을 가지게 됩니다.

김송은 남편은 기형정자였고 나는 늙은 난자였더라 가능성이 거의 없었는데 세 번째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렇게 태어난 두 사람의 아들은 올해 10살이 되었고 강원래를 닮은 눈매의 장난기가 가득한 모습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녀의 가정은 아이로 인해 간극이 메워지고 두 사람은 부모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방송을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과거엔 정말 힘들었고,심지어 남편 강원래의 바람으로 큰 상처를 입었던 김송.

기적을 겪으면서 지켜낸 두 사람의 가정에 더 이상 나쁜 문제가 없이, 행복한 앞날만 있기를 기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