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미친 짓이다” 54세 엄정화 여태 결혼 못한 이유, 목소리도 잃어버린 안타까운 상황, 엄태웅을 향한 눈물

‘결혼은 미친 짓이다’ 라는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가족에 얽매이는 것보다 혼자 사는 게 나을까요.


그래도 외롭지 않게 복닥거리는 결혼 생활이 나을까요.

아마 각자마다 생각이 다를 텐데요.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 의 주인공이었던 엄정화 씨는 과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요.


오늘은 엄정화 씨가 50살이 넘은 현재까지도 싱글로 지내고 있는 이유에 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나아가 엄정화 씨를 너무나 괴롭게 만들었던 잔혹한 현실은 무엇이었는지도 자세히 전해드리겠습니다.


충북 제천에서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엄정화 씨는 동네에서 가장 예쁜 아이로 손꼽히며 돋보이는 미모를 자랑했습니다.


하지만 중학교 선생님이셨던 아버지가 엄정화 씨 여섯 살 때 바이크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죠.


그때부터 홀어머니와 4남매는 학교 매점에서 사는 등 가난하면서도 힘겨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엄정화 씨는 대학 진학할 집안 여유도 없었고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어머니를 위해 얼른 돈을 벌기로 결심했죠.


그래서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1989년 mbc 합창단 모집 공고를 보게 됩니다.


당시 mbc 합창단이 된다는 건 스타 등용문 같은 느낌이었기에 엄정화 씨는 이 기회를 꼭 잡고 싶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전문대 이상만 채용한다는 기준 때문에 1차에서 떨어졌는데요.


합창단 단원 중 한 선배가 엄정화 씨를 좋게 봤고 다시 오디션 볼 수 있는 기회를 잡아 당당히 합격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간 고생했던 어머니에게 그녀는 첫 월급 80만 원을 고스란히 드렸습니다.


음악 전공자인 다른 합창단원들에 비해 그녀는 고졸이어서 호봉도 작았고 프로그램 투입도 잘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머니와 어린 동생들을 위해선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했기에 합창단 일이 끝나고 극장 ‘홀리데이인 서울’에서 코러스 아르바이트까지 해야 했습니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순간 운명을 바꾸는 일이 찾아옵니다.

어느 날 mbc 유명 쇼 프로그램에 당시 톱스타였던 배우 최진실 씨가 출연하는데요.


엄정화 씨는 최진실 씨 무대의 코러스를 맡고 노래 연습까지 도와주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최진실 엄정화의 운명적인 만남이었죠.


그 일을 계기로 엄정화 씨는 당시 유명했던 최진실 씨 매니저에게 발탁되었습니다.


그렇게 평범했던 합창단원 엄정화의 인생은 180도 바뀌게 됩니다.


같은 소속사였던 최민수 씨 영화 ‘결혼 이야기’에 캐스팅되며 연기를 시작


1993년 영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에서는 주연으로까지 발탁되죠.


게다가 엄정화가 부른 이 영화 주제곡 ‘눈동자’는 영화보다 훨씬 더 히트를 쳤습니다.


이후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데, 1997년 앨범 타이틀곡 ‘배반의 장미’가 초메가히트를 하게 됩니다.


이후 ‘포이즌’ ‘초대’ ‘몰라’ ‘페스티벌’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하며 대한민국 최고 톱 여가수로 우뚝 서게 됩니다.


한동안 가수 활동에 전념하다가 2002년 영화 ‘결혼을 미친 짓이다’를 통해 오랜만에 연기에 복귀하였고 백상예술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합니다.


이후 영화 ‘싱글즈’ ‘해운대’ 등의 흥행작을 연속해서 내놓았죠.


이처럼 엄정화 씨는 가수와 배우로 모두 성공한 1세대 스타로 우리 연예계에 새로운 역사를 썼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두기까지 가장 큰 원동력이 된 것은 가족이었습니다.


그간 고생했던 어머니에게 집도 사드리고 편안하게 모실 수 있는 것이 그녀에게는 큰 기쁨이었죠.


하지만 4남매 중 유일한 아들이며 막내인 엄태웅 씨는 서른이 될 때까지 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당시 엄태웅 씨는 일정한 직업 없이, 영국 무대를 전전하고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는데요.


2003년, 엄태웅 씨도 영화 ‘실미도’를 통해 큰 주목을 받게 됩니다.


엄정화 씨는 ‘실미도’를 보며 엄태웅 씨 모습에 감격스러워서 내내 눈물을 흘렸다는데요.


이처럼 일가 가족을 위해 온몸을 바쳐 지내오던 그녀에게 갑작스러운 시련이 찾아옵니다.

지난 2010년 엄정화 씨는 충격적인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갑상선암은 흔하고 수술만 하면 금방 낫는 걸로 알려져 있지만 엄정화 씨에겐 큰 시련이었습니다.

수술 후 성대 한쪽이 마비가 되어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것입니다.


약 8개월 동안 말도 할 수 없었는데요.

당시 주치의는 ‘앞으로 노래는 힘들 것이다’라는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가수가 노래를 못하고 배우가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다니…

너무나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죠.


엄정화 씨는 모든 일에 자신감도 없어지고 자존감이 낮아지며 우울증까지 찾아왔다고 합니다.


슬퍼서 우는데 울음소리도 안 나왔고, 옆사람이 숨소리를 자유롭게 내는 것도 부러울 정도였다고 하네요.


대중들을 피해 숨어 있던 엄정화 씨에게 손을 내민 작품이 있었으니 바로 영화 ‘댄싱퀸’이었습니다.


목소리가 잘 안 나온다고 했지만, 감독과 배우 황정민 씨는 한 번 해보자라며 응원을 해줬다죠.


끊임없는 노력으로 재활을 했고 어느 정도 목소리를 찾은 엄정화 씨는 노래를 부르고 싶었던 자신의 진심을 그대로 담아 ‘댄싱퀸’에서 열연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400만 관객 돌파에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최우수 연기상까지 수상했죠.


물론 아직도 가끔 목소리가 떨리며 깨끗한 음성이 안 나올 때가 있지만 그녀는 여전히 노력하며 노래 부르는 걸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처럼 힘겨운 시간을 보낸 그녀 곁에 든든하게 사랑해주는 남자가 있었다면 훨씬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녀는 여전히 54세가 될 때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지내고 있습니다.

왜 그녀는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는 걸까요.


사실 엄정화 씨는 결혼을 하려고 그간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다.


그간 열애설도 몇 번 있었고 공개 연애도 한 적이 있었죠.

결론적으로는 다 인연이 아니었는데요.


2002년 엄정화 씨가 공개했던 남자친구는 증권회사 오너의 아들이었는데 남자 쪽 집안의 반대가 계속되었기에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에도 엄정화 씨는 스스로 연애는 쉬지 않고 계속 했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인연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2020년 출연한 ‘놀면뭐하니’에서 엄정화는

“연애를 하면 항상 2년 정도 만나고 헤어졌다”

“이 사람 없으면 못 살 것 같다 싶은 남자가 없었다. 그러니 결국 결혼은 못하겠더라”고 말했습니다.

다들 반려자가 되기엔 뭔가 맞지 않았던 부분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어쩌면 너무나 친했던 고 최진실 씨와 정선희 씨의 힘겨운 결혼 생활을 바로 옆에서 보며 결혼에 대한 두려움도 생겼을 수도 있겠죠.


그리고 동갑이며 가장 친한 이소라 씨도 남자친구는 늘 있는데 결혼은 하지 않고 있죠.


두 사람은 서로의 집을 오가며 함께 유튜브 편집도 공부한다는데요.


한편으로는 이들을 보며 50대 여성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엄정화 씨의 절친 김혜수 씨도 여전히 싱글이죠.


이처럼 여전히 솔로인 친구들과 엄정화 씨는 평화롭게 지내며 결혼할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지 않는 듯 합니다.


어찌 됐든 50대 엄정화 씨는 멋진 솔로로 서핑을 즐기며 열심히 일하며 행복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녀가 좋은 짝을 만나면 좋겠지만 지금으로도 너무나 아름답기에 영원한 디바 엄정화 씨

앞으로도 더 왕성하게 활동해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