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막말”못생겨서 같이 살기 힘들어!” , ‘윤여정’ 긴 침묵 깬 통쾌한 비수’

2021년에 세계적으로 가장 큰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미나리로,

여우 조연상을 받은 윤여정 씨 나이는 무려 일흔다섯살 입니다.

국민들에게 많은 나이에도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윤여정 씨의 젊은 시절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몸이 부서져라 일할 수 밖에 없었는데,

최근 윤여정 씨가 유퀴즈에 출연해서 조영남 씨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을 남겼습니다.

과연 어떤 내용인지 전해드립니다.

윤여정 씨 출생지는 북한 개성입니다.
그 후 이화여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국어국문과에 입학했습니다.

이런 성장 과정이 배경이 되어서 인지 그녀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촌철살인에 솔직함까지 곁들여져 굉장히 큰 울림을 주곤 합니다.

한양대학교에 진학한 윤여정 씨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한 알바로 당시 김동건 씨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도와주는 도우미 역할을 했습니다.

그때 김동건 씨가 윤여정 씨에게 TBC 탤런트 공채 시험을 보라고 권했고 1966년 공채 응시에서 합격해 TBC 3기 탤런트가 되었습니다.

윤여정 씨는 신인 때부터 종횡무진 활약을 펼친 배우였습니다.

TBC 시절에는 단역 조연을 했지만 공채 합격 3년 만에 MBC로 이적하고 ,

1971년 드라마 장희빈에서 장희빈 역을 맡으며 크게 히트해 곧바로 주연급 배우로 올라섰습니다.

윤여정씨의 악녀 연기가 뛰어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저기 장희빈 나쁜 년 간다”며

욕을 해대는 통에 거리를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1971년에는 영화계에도 진출하는데 거장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화녀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최고의 성취를 거두게 됩니다.

당시 신문에서도 천재 여배우가 나왔다고 대서특필할 정도 윤여정 씨는 이 작품을 통해 대종상 신인상과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비평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훗날 윤여정 씨는 2021년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소감에서도,

김기영 감독을 천재적인 감독이자 자신의 첫 감독이었다며, 그가 살아있었다면 이 수상을 무척 기뻐했을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20대 시절만 해도 연기 생활에는 사실 큰 애착이 없었다고 인터뷰했습니다.

윤여정 씨는 1970년대 초 잘나가던 신인 배우였는데 서울 마포구 음악다방 쎄시봉에서 조영남 씨와 만남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스물일곱 살 때인 1974년 조영남 씨와 결혼 후 연기를 포기하고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신학 공부를 위해 유학길에 오른 가수 조영남 씨를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조영남 씨의 외도로 결혼 13년 만에 이혼했고 슬아 있는 아들 두 명을 홀로 키워냈습니다.

이건 그녀의 어머니를 보며 배워온 것이었습니다.

어머니 신소자씨는 윤여정씨 아버지가 서른네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우리나라 최초로 양호교사 시험에 도전해 합격해서 혼자 몸으로 자식들을 키웠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영남 씨는 결혼 생활 당시 돈을 한 푼도 벌지 않았고, 윤여정 씨가 모아둔 돈을 싸그리 탕진해 버렸기 때문에 돈이 필요했습니다.

윤여정 씨는 38살 때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연기를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 복귀 후 드라마 단역으로 다시 연기를 시작했는데 MBC 전원일기에 단역으로 출연했고 생계를 위해 보조 출연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연예계는 많이 변해 있었고 잘 나갔던 윤여정 씨가 보잘 것 없는 역할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과,

당시 싱글맘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좋지 않아 더더욱 그녀를 쓰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식들을 키우고 먹고 살아야 했기에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윤여정 씨는 “그때가 제일 힘들 때였다.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었다”며 다시 미국으로 들어가 애들 키우고 살아야 하나 고민했다고 합니다.

이어, “그땐 집도 미국에 그대로 있을 때니까 아이들을 국립학교 보내면 고등학교까지 돈 안 들고 보낼 수 있었다”.

“나는 타이핑도 못하고 영어도 잘 못하는데 우리 동네에 슈퍼마켓 체인이 있었다”

“거기 가서 캐쉬어 계산을 할 수 있을 것 같더라 그래서 이웃집 여인 린다에게 알아보아 그걸 가서 할까 생각했다” 라고 털어놨습니다.

그때 그녀를 붙잡은 사람이 김수현 작가인데
여정이는 배우로서 재능이 있으니 여기서 다시 일어나라고 조언했습니다.

김수현 작가는 당시 엄청 잘 나가고 있었지만, 자기는 윤여정 씨를 자기 작품에 쓰지 않겠노라 했습니다.

윤여정씨가 자신의 도움으로 성공했다는 시선을 받을까봐 서로 함께 작품을 하지 않겠다는 이유에서 맹세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그 맹세를 깨야만 했습니다.

윤여정씨를 아무도 써주지 않자, 김수현 씨는 큰 부담감속 에서도 윤여정 씨의 생계를 생각한 결정이었습니다.

그 후 김수현 씨의 작품 다수에서 열연을 펼치며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시 굳히게 되었습니다.

윤여정 씨는 모든 인간관계를 끊고 오로지 일만 하며 자식 둘을 키워냈습니다.

57년째 배우 경력의 윤여정 씨는 지난해 영화 미나리의 순자 역으로 세계 영화제 상을 휩쓸습니다.  

아시아 배우 최초로 미국 영화배우 조합상 여우조연상과 영국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받았고,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오스카상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습니다.

그녀의 수상 소감은 이러했습니다. “아들 둘을 키우기 위해 일하러 나갔고 이 상은 엄마가 열심히 일한 결과란다…” 이 말을 듣고 작은 아들은 울었다고 합니다.

그녀가 아들들한테 제일 미안한 건 내가 일하는 여자였기 때문에 집밥이 없었다며 너무 미안했는데,

아들들이 “괜찮아 엄마 우리 그래서 다 말랐잖아” 하더라고 말했습니다.

진짜 미안해야 할 사람은 조영남 이지만, 조영남 씨는 자제분들과 오스카 수상 관련해 연락은 해보셨냐?

라는 질문에 “전혀, 걔네들은 날 아버지로 생각 안 는다 그러려니 하고 살아왔다 내가 자격을 잃은 것 같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윤여정 씨는 2022년 3월 23일 유퀴즈 온더 블락에 출연해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대사가 있는데 김수연 씨가 쓴 대사 중에 하나라고 합니다.

내가 대단하고 안타깝게 소중하면 상대도 마찬가지야, 누구도 누굴 함부로 할 수 없어 그럴 권리는 아무도 없는 거란다. 그건 죄야…

위 대사가 윤여정 씨의 가슴에 맺힌 것 같은데 이 얘기는 혹시 조영남 씨에게 한 말은 아니었을까 합니다.

과거 조영남 씨는 당시 윤여정 씨와 이혼하면서 “네가 너무 못생겨서 같이 살 수가 없다”는 식의 막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막말로 미루어 보면 그가 결혼 생활 당시 윤여정 씨를 어떻게 대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말 한마디면 열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조영남 씨는 윤여정 씨를 전혀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함부로 대했던 것 같습니다.

이에 사람들은 조영남 자신의 얼굴을 보고 그런 말을 하냐며 그를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조영남 씨는 오은영 씨의 금쪽 상담소에 출연하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려는 모습을 보였는데,

방송에서 보인 장난치듯한 모습이 아닌, 이제는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윤여정 씨와 자녀들의 인생에 함부로 군 것을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려운 상황속에도 가정과 커리어를 잘 이끌어갔던 그녀, 멋진 노년 윤여정씨의 앞으로의 행보는 계속 될 것이며 응원하고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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