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죽지 말라 빌었다” 남편과 사별한 이경애의 세번째 결혼 소식, 임하룡과의 깊은 인연

 얼마 전 글을 통해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김청 씨와 이경진 씨의 하차에 따른 후속 멤버를 예상했었는데요.그때 개그우먼 이경애 씨가 어떨까 하고 말씀을 드렸었죠.

그런데 이후 이경애 씨가 지금 재혼해서 잘 살고있다는 제보가 도착했습니다.

싱글 중년이 출연하는 ‘같이 삽시다’에는 나올 수 없다는 뜻밖의 이야기였죠.

지금부터 이경애 씨 삶에 벌어진 우여곡절 이야기를 자세히 전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추억의 코미디 프로그램 기억나시나요.

집 담벼락에 앉은 부부 도둑이 엉뚱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날이 샜던 “쇼 비디오 자키의 달빛 소나타”

이경래 씨와 이경애 씨의 능청스럽고 재밌는 연기는 정말 인기가 많았는데요.

그런 다양한 코미디들을 통해 큰 사랑을 받았던 개그우먼 바로 이경애 씨입니다.

1964년생인 그녀는 연예계에 데뷔하기 전까지 정말 힘겨운 삶을 살았는데요.

초등학생 시절 노름에 빠진 아버지가 전 재산을 날린 후 부모님과 5남매는 망우동에 위치한 단칸방에서 살았습니다.

심지어 생활고가 너무 심해서 부모님이 이경애 씨를 입양까지 보내려 했다는데요.

당시 충격을 받았지만 그녀는 마음을 다잡으며 앞으로는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존재가 되자고 다짐했습니다.

어떻게든 돈을 벌겠다고 마음 먹은 이경애 씨는 중학교 입학을 1년 미루고 방문 판매까지 시작했는데요.

술 마신 아버지가 어머니와 자신에게 폭행을 일삼았던 눈물의 시절을 버텨낸 그녀

그녀는 성공하기 위해 1984년 개그 콘테스트에 도전해 당당히 대상을 타게됩니다.

당시 수상금 50만 원으로 동생들 학비도 해결하고 연이어 광고도 찍으며 반지하에 살던 이경애 씨 가족은 17평으로 34평으로 집을 넓혀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실질적인 가장이었던 그녀는 연예계에 데뷔해 가족 모두를 위해 열심히 일했습니다.

전성기 시절 한 달에 1억 원까지 벌었다니 인기가 많았던 만큼 그 수입도 대단했죠.

그러나 이경애 씨는 그렇게 번 돈을 한 번도 제대로 쓰지 못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 돈을 주식 투자로 모두 날려버렸기 때문인데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버지는 암 판정, 어머니는 심한 간 경화를 앓게 되었습니다.

중환자실에 있던 두 분 병원비가 일주일에 870만 원이 나갔고 결국 남아 있던 집마저 팔아야 했죠.

5년간 병원 신세를 진 부모님은 열흘 차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어머니에 대해 유난히 애틋했던 이경애 씨는 한동안 우울증으로 힘들어 했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가 팍팍했던 그녀에게 어느 날 새로운 가족이 찾아왔는데요.

그런데 그 또한 파란만장했습니다.

이경애 씨는 개그 음원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에 첫 번째 남편을 만났지만 결국 이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1997년 한 카페에서 우연히 합석한 김용선 씨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요.

두 사람은 결국 2002년 결혼을 하게 되는데요.

하지만 이경애 씨는 결혼 후 자신이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나이는 마흔이 넘었고 남편은 50대 중반

아이는 불가능하다 생각했지만 이경애 씨는 인공 수정을 결심했고 정말 어렵게 딸 김희서 양을 낳았습니다.

이제 남편과 소중한 딸 희서 양과 함께 세 가족이 행복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불행이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이경애 씨가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너무 충격적이었지만 알고 보니 맹장염을 잘못 판단한 오진이었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맹장염 수술을 마친 그녀는 두 달 후 이번에는 교통사고를 당하는데요.

이 때문에 왼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고 관절이 탈골되는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런데 이 교통사고는 단지 사고로 끝나지가 않았습니다.

이경애 씨 남편 김용선 씨의 건강까지 나쁘게 만들었는데요.

사실 김용선 씨의 간은 원래부터 좋지 않아 간 이식까지 받은 상황이었습니다.

아내를 걱정하던 김용선 씨가 며칠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했더니 간이 급속도로 안 좋아진 겁니다.

결국 이경희 씨는 자신의 재활을 포기하고 남편의 간병에 매달렸죠.

그러다 보니 그녀는 몸 오른쪽 마비 증상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그런 아픈 상태였음에도 이경애 씨는 남편의 병원비를 위해 쉬지 않고 일을 했습니다.

한 행사장에서 감전을 당해 몸이 공중으로 튀어올라 응급실까지 실려가는 일까지 겪었죠.

하지만 남편 김용선 씨는 2013년 1월 투병 중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것은 딸 희서 양 뿐이었죠.

이를 악물고 딸아이를 잘 키워보려 했습니다.

그런데 하늘은 왜 이리 더 무심한 걸까요.

90년대 초에 이경애 씨는 나이트 클럽 사업을 했다가 투자금을 날린 적이 있었는데요.

그녀는 남편과 사별 후 다시 사업에 도전을 했습니다.

먼저 수제 어묵 사업을 했는데 억대 매출을 올리며 반응이 너무 좋아서 즉석 떡볶이 가게까지 내게 됩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모든 가게의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사업이 망한 그녀는 우울증까지 찾아왔는데요.

급기야 이상 행동까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름 아닌 페트병을 잔뜩 모으게 된 건데요.

다른 것도 아닌 왜 하필 페트병일까요.

그 이유는 알고 보니 오로지 딸 희서 양을 지키겠다는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지난해 tvn ‘신박한 정리’에 출연한 이경애 씨는 집에서 페트병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자 심경을 밝혔습니다.

“만약 전쟁이 나면 비상식량을 모아서 딸을 살려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쌀이 없어서 우리 딸이 먹을 게 없을까 봐 비상식량을 담을 수 있는 페트병을 모았는데 이거 버려야 해요?”

라며 눈물을 쏟았죠.

그러자 진행하던 신애라 씨가

“빈 페트병이 이경애 씨 마음을 안정되게 만들어준 도구인 것 같아요. 안 버리셔도 됩니다.”라며 이경애 씨를 다독여줬습니다.

그녀의 인생이 가여워서 슬프고 먹먹한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그런 이경애 씨가 최근 반가운 소식을 전했습니다.

올해 초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한 이경애 씨가 깜짝 고백을 했는데요.

“사실 올해 만나서 사귄 사람이 있는데 지금은 결혼해서 살고 있다” 라고 밝힌 것입니다.

너무나 진심으로 축하할 일입니다.

그리고 이경애 씨 딸의 근황을 전해드리자면 딸 희서 양은 현재 프로 골프 선수가 되기 위해 열심히 준비 중입니다.

골프 강사가 “너는 딱 골프 하려고 태어난 몸매다” 라고까지 했다는데요.

희서 양의 눈부신 성장도 기대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너무나 힘들게 살아온 그녀에게 큰 힘이 되어준 한 분이 있습니다.

첫 번째 결혼 당시 행복하지 않아서 이혼을 했던 그녀를 향해 동료들이 이상한 루머를 만들고 공격했다고 합니다.

그때 유일하게 막아준 사람이 바로 선배 개그맨 임하룡 씨였는데요.

동료들이 이경애 씨에 대해 이런저런 비난을 하면 임하룡 씨가 나서서

“그런 말 하지 마 네가 직접 봤어? 내가 본 경애는 그런 애 아니다” 라고 후배들을 혼냈다는데요.

이경애 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임하룡 씨를 “내 인생에 있어 잊을 수 없는 은인”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아마 임하룡 씨도 지금의 이경애 씨를 참 흐뭇하게 바라보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경애 씨가 이제는 꽃길만 걷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