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달라고 빌었어” 끝내 세상을 등진 김희애 전인화의 절친, 조용원의 기구한 운명

배우 강수연 님이 떠나간 후 많은 곳에서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세상에 잊혀졌던 한 인물마저 덩달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바로 이 강수연의 가장 큰 라이벌이라고 불렸던 조용원이죠.


당시에는 냉정하게 말해 강수현보다 한 수위라는 평가마저 받았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얻었죠

하지만 지금은 그녀의 생사 여부마저 모를 만큼 완전히 잊혀진 존재가 됐습니다.


백여우라고 불리던 조용원이 왜 세상을 등졌을까요?

자신을 죽이려는 운명에 발버둥쳤던 그녀의 애처롭고 슬픈 미스터리에 관해 말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매년마다 슬프고 불행한 연예인들의 소식을 듣게됩니다.

참 세상사 정말 알 수 없는 요지경이란 사실을 깨닫고는 하죠.


매번 대표적인 비운의 스토리에 등장하는 인물은 바로 최진실입니다.

그리고 최진실이 동명여중을 다니고 있던 무렵 강수영과 조용원은 같은 해에 동명여고를 다니고 있던 선배였죠.


이 두 선배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와 드라마에서 맹활약하며 배우를 꿈꾸던 최진실의 롤모델이었습니다.

마치 신의 장난처럼 같은 학교를 다녔던 이 세 명은 모두 실패한 결혼사, 안타까운 운명의 비극을 겪게 되죠.

그 중에서도 조용원은 가장 빨리 시들어버린 꽃과 같았죠.


조용원은 중3 때 방송국 직원의 권유로 시험을 보며 kbs 8기에 탤런트로 선발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2년 kbs ‘소리의 빛’에 출연하며 배우 데뷔를 시작합니다.


하얗고 청순한데 섹시한 분위기까지 풍겼던 그녀의 외모에 백여우라는 별명까지 붙여지며 대중들의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강수연보다는 데뷔가 늦었지만 그 성장 속도는 가히 무서울 정도였죠.


강수연이 1985년 ‘고래사냥2’를 통해 성인 배우로서 첫 활동을 시작했죠.


조용원은 그보다 1년 앞선 1984년에 대종상 신인상과 더불어 베를린 영화제 경쟁작으로 출품된 ‘땡볕’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당시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 제의까지 받았던 최고의 인기 스타였습니다.


오죽했으면 강수연에게 베니스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안겨다 준 영화 ‘씨받이’는 사실 임권택 감독이 조용원을 주연으로 생각했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 후 두 명은 동창이자 동 시대의 하이틴 스타로서 치열한 경쟁을 이어나갔습니다.


결과는 아시다시피 강수연에게 월드 스타의 칭호가 돌아갔죠.

현재 조용원은 대중의 관심에서 완전히 잊혀진 인물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에겐 강수연보다 더 일찍 찾아온 불행이 있었기 때문이죠.


조용원은 대학교 1학년 때, 어머니가 운전하던 승용차를 타고 학교에 등교하던도중 그만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5미터의 낭떠러지로 추락해, 얼굴에 52 바늘을 꿰매는 큰 상처를 입고 맙니다.

당시 온몸에 붕대를 감았던 조용원은 병문안을 왔던 김연명 감독에게 “자기 좀 살려달라”며 밤새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녀의 대학 동기였던 김희애와 전인화는 이 교통사고의 소식에 엄청난 충격을 받고 오열했다고 전해집니다.


교통사고 이후 1년여 만에 그녀는 다시 영화계에 복귀했지만 얼굴 부위에 흉터가 연기에 자신감을 크게 떨어뜨렸고, 특유의 풍부했던 표정이 사라지게 되었죠.


이로 인해 심경의 변화를 겪은 그녀는 내면을 더 채우고 싶다며 갑작스럽게 홀로 일본에 유학을 떠나버립니다.

조용원은 이 시간을 일컬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한국에선 그녀의 상처 난 얼굴이 연일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올랐었기 그녀는 일본에서의 시간이 잠시마나 해방감을 안겨줬다고 말하죠.


하지만 일본에서 그녀는 충격적인 점괘를 듣게 되는데 그녀가 앞으로 세 번의 교통사고를 더 당하게 된다는 예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황당한 예언은 실제로 결국 맞아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또다시 그녀의 얼굴을 심하게 망가뜨리고야 맙니다.

도대체 그녀에게 어떤 억한 심정으로 무려 네 번의 교통사고를 당하게 한 것일까요.


연속적인 불의의 사고로 뭔가의 불행을 직감한 그녀는 끝내 연예계를 최종 은퇴하게 됩니다.


결국 동명여고 동창인 강수연과 최진실은 먼저 떠나갔고 현재 조용원만 나홀로 미혼인 채 조용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세 명의 운명에선 뭔가에 알 수 없는 느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모두 인생의 짝을 만나는 데 실패하거나 우여곡절을 겪었고, 평범한 인생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큰 불행들이 찾아왔습니다.

이를 보면, 조용원이 일본에서 본 점괘는 큰 불행일 수 있겠지만 어쩌면, 그녀에 알리는 신의 경고 였을수도 있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부디 그녀의 남은 인생에 행복이 가득하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