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시신에 아버지가 이런 짓을..” 절대 잊지 못할 비운의 천재가수 장덕 이야기

첼리스트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다재다능한 남매가 태어납니다.


바로 현이와 덕이로 80년대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장현 장덕 씨인데요. 

특히 장덕 씨는 심수봉 씨와 함께 대한민국 음악계 최초의 현대적인 여자 싱어송 라이터로입니다.

배우로도 인기를 끌어, “80년대 아이유”로 불리는 등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리워하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장덕 씨와 장현 남매는 비운의 가수로 불리기도 하는데요. 


바로 30대 젊은 나이에 요절했기 때문입니다. 

큰 인기를 끌었던 천재 뮤지션 남매 장덕 장현 씨의 생을 살펴보며 그들을 떠올리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동생 장덕 씨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장덕 씨가 9살일 때, 부모님이 이혼했고,

어린 장덕씨는 생업에 뛰어든 아버지와 오빠를 텅빈 방에서 혼자 기타를 치며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음악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장덕 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스스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불우했던 가정사 때문인지 그녀가 만든 곡들은 어둡고 쓸쓸한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는데요.


사춘기가 되면서 장덕 씨의 성격은 더욱 침울해지면서, 수면제를 먹고 극단적 시도까지 하게됩니다. 


충격을 받은 장덕 씨의 어머니는 딸이 어려서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다는 걸 떠올리고는 오빠와 함께 ‘드래곤 레츠’라는 듀엣을 결성해 미8군 무대에 설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습니다.

이후 방송국 pd들의 눈에 띄어 남매는 연예계에 데뷔하게 됩니다. 

귀여운 보조개, 동그란 눈, 깜찍한 단발머리 차림의 장덕 씨는 많은 인기를 끌게 되고, 70년대 말 ~ 80년대 중후반 최고의 하이틴 스타로 군림하게 됩니다. 

당시 대중음악계에서는 보기 드문 여성 신호송 라이터였던 여고생 장덕 씨는 당대의 젊은이들이 가장 열광하는 스타였죠. 

하지만 이후 장덕 씨의 삶은 꽤 많은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의 뒤편에서 그녀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있었고, 또 한 번 극단적 시도 소동을 일으키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하이틴 스타의 극단적 시도는 팬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녀는 결국 79년 말 국내 활동을 모두 접고 미국에 있던 어머니를 찾아 미국으로 떠나게 됩니다.

그 후 미국에서 음악 공부에만 열중했던 그녀는 그 덕분에 음악적으로는 한 단계 성숙해졌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지독한 향수병이 무겁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한국 생활을 잊지 못해 힘들어하던 그녀는 한국으로 돌아와 재기를 노리게 됩니다.

하지만 어린 여가수의 극단적 시도 소동에 찍힌 주홍 글씨는 생각보다 큰 걸림돌이었죠. 

이후 발표한 음반들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동생이 안타까운 처지를 알게 된 오빠 장현 씨가 울산에서 찾아와 현이와 덕이를 재결성하게됩니다. 

이후 85년 내놓은 듀엣 음반 수록곡 중에서 ‘너나 좋아해’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기적적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1년 후 솔로 가수로 독립해 ‘님 떠난 후’를 히트시키며 제 2의 전성기를 보내게 됩니다.

가수 활동뿐만 아니라 이선희 이은하 양하영 임병수 씨 등의 가수들에게 곡을 주며, 프로듀서로써도 이름을 날렸죠.

그 후 장덕 씨는 이선희 정수라 씨와 함께 80년대 중후반까지 당대 최고의 인기 가수로 군림했습니다.

하지만 운명은 이번에도 그녀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뜻밖에도 오빠 장현 씨가 설암 판정을 받게 된 것이죠.

혀에 반을 자르면 살 수 있었지만 가수로서 이는 사형 선고와 같습니다. 

이에 장덕 씨는 실의에 빠져 수면제 없이 잠을 이루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병석에 누운 오빠를 대신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며, 그녀는 다시 우울증 증세까지 돌아왔습니다.

결국 그녀는 1990년 2월 4일 약물 과다 복용으로 자택에서 스물아홉의 짧은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뒤이어 동생이 세상을 떠난 지 6개월 후 오빠 장현도 동생의 뒤를 따라 34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들의 아버지는 딸이 세상을 떠났다고 하자 그녀를 집으로 데려와 소생시키겠다고 심령수를 동원하며 논란이 되었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장덕 씨의 영과 소통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영이 세상이 더러워 다시 오기 싫다고 했다고 하네요.


그들이 떠난 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은 그들을 그리워하고있습니다

현이와 덕이의 앨범이 lp로 다시 만들어졌고, 후배 가수들은 리메이크 앨범을 발표하며 장덕 씨가 출연한 드라마 촬영지에는 노래비도 세워졌습니다.

너무도 빨리 우리 곁을 떠난 장덕 장현 씨가 부디 하늘에서는 아프지 않고 편히 쉬고 계시길 바라며 이상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