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57세 모창가수 너훈아 빈소 허락받지 못한 조문객, 평생 한과 비애가 된 나훈아와의 관계

조용필 태진아 패티김 방실이 나훈아 등 대중음악계의 한 자리를 차지한 인기 가수들은 노래와 무대를 통해 대중과 소통해 왔습니다.
하지만 평생 짝퉁이라는 이야기를 듣다가 떠난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나훈아의 모창 가수로 유명했던 ‘너훈아’ 그의 본명은 김갑순이었습니다.
너훈아로 20여 년을 살아온 김갑수는 57세의 나이로 지난 2014년 1월 12일 간암으로 숨을 거뒀습니다.

그는 2년간 간암 투병을 하면서도 밤 무대와 행사에서 음악에 대한 애정을 무대에 대한 열정을 가수로서 존재감을 드러냈습니다.
생전 너훈아는 “진짜 나훈아가 오려면 5천만 원은 줘야 합니다.저 너훈아는 그냥 왔습니다.” 라는 유쾌한 멘트로 공연의 분위기를 달궜습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은 너훈아와 더불어 모창 가수들을 짝퉁이라며 무시했습니다.
세상을 떠난 뒤에야 본명으로 불릴 수 있었던 ‘너훈아’ 김갑순의 삶을 되돌아보며 고인을 기리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충남 논산에서 소를 키우던 시골소년 김갑순은 늘 화려한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박수갈채를 받는 가수가 되기를  꿈꿨습니다.
밤 무대 허드렛일 수년  끝에 1988년 그토록 소원했던 김갑순이라는 이름을 내건 앨범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텔레비전 가요 프로그램 무대에도 올라갔으니 이제 성공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겠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신곡을 발표한 이후 앨범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면서 오랜 무명 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무명 생활이 길어지면서 그는 노숙인 일용직 노동자로 전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수의 길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고향으로 내려갔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나오나 모창 대회에 나가 금상을 수상하게 됐고 그 계기로 가수 나훈아의 모창과 모방을 하게 됩니다. 개그맨 고 김영곤은 그에게 너훈아라는 예명을 만들어줬고 그렇게 무명 가수 김갑수는 너훈아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내 이름으로 살겠다고 나섰을 땐 등을 돌리던 이들이 나의 길을 포기하고 이미 빛나고 있는 별을 흉내 내자 열광하기 시작했습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나훈아를 모실 여력이 안 됐던 밤무대가 그에게 문을 열어줬습니다.
이를 계기로 그는 1992년 SBS 개국 기념으로 열린 나오나 모창대회에서 나훈아를 직접 만나기까지 했습니다.
그렇게 너훈아로 살았던 지난 25년간 김갑수는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밤 무대에서도 너훈아 모셔가려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그는 사계절 상관없이 하루 3 4개의 스케줄을 소화하는 이미테이션 가수 세계의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나훈아가 되기 위해 나오나 원곡 테이프를 듣고 또 들었습니다.
나훈아와 조금 더 비슷해지기 위해서 얼굴 성형까지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말씨가 입에 베어 있어야 한다며 한사코 고향이 아닌 경상도 사투리를 쓰던 그였습니다.

그는 생전 한 인터뷰에서”내가 나훈아 씨는 아니지만, 무대에 서면 팬들이 대리 만족을 느껴요.” 라면 너훈아로 사는 인생의 보람을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너훈아로 살았던 지난 25년의 세월이 행복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의 공연을 본 관객들은 격려와 환호를 보냈지만 비웃음과 야유를 보내는 관객도 있었습니다.
나훈아의 그림자 인생을 사는 그에게 짝퉁 가짜라는 비아냥은 큰 상처였습니다.

나훈아도 무대도 그에겐 늘 처절한 애증의 대상이었지만 그런데도 자신을 찾는 곳이라면 얼굴을 비쳤습니다.
언젠가 제 본명으로 가수가 되어, 2집을 내서 성공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품고 그는 퀵 서비스 오토바이를 불러 타고 다니며 행사를 뛰었습니다.
그러던 그에게 갑자기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간암 3기 판정받은 그는 자신에게 살날이 길어야 4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투병 생활을 하는 것이 알려지면 무대에 오르지 못할까 봐 병을 숨겼습니다.
그는 어차피 얼마 살지 못할 거라면 편한 마음으로 노래하다가 무대 위에서 쓰러지겠다고 말하며 끊임없이 공연을 이어갔습니다.
결국 공연 중 쓰러져 그는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찾는다는 말에 복수로 부른 배와 주렁주렁 꽂힌 파이프를 숨긴 채 세상을 떠나기 20일 전쯤 지적 장애인 보호시설을 찾아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무대가 됐습니다. 

복수에 물이 차서 튜브를 차고 있으면서도 지인들에게 노래를 불러줬는데 그날 눈물바다가 됐다고 전했습니다.

‘너훈아’ 김갑순은 동생에게 마지막 유언으로 ‘난 평생 나훈아 이미테이션 가수 너훈아로 살았다. 넌 나처럼 가짜로 살지 말고 김철민이라는 이름으로 가수에 도전하길 바란다’라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많은 이들은 그의 유언대로 가짜로만 산 것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비록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가수로서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